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나의 한계를 넘어 주님의 이끌림 속에... 본문
20110108 (토요일) 나의 한계를 넘어 주님의 이끌림 속에...
로마서 3:1 ~
롬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개역개정]
롬3: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a)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a. 시14:1-3(70인역),53:1-3(70인역),전7:20)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표준 새 번역]
Rom.3:10 As it is written: "There is no one righteous, not even one; [NIV]
Rom.3:11 there is no one who understands, no one who seeks God. [NIV]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신 말씀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는 세대에 사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나는 깨닫는 자인가?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인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나의 의지를 반영하는 말이고
깨닫는다는 것은 주님의 은혜인 것 같다.
지난 일 년을 보내면서 가장 큰 감사는 야훼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 되여 주신 것입니다.
말인 즉 내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예정하시고 택하여 주셨으며,
모든 것이 주님이 이끌지 않으시면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깨닫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나의 지식수준에 머물러서 깨닫는 것이기에 한계가 좁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안목이 좁은 자로 남을 수밖에 없고,
작은 지식으로 대변하자니 자연 불필요한 말이 많아지고,
어떻게든 자신을 잘 포장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일괄해져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지식을 조금이라도 맛본 자는 그 경지의 크고 놀라움에 자신의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할 말이 없어서 말을 하지 못함이 아니라 너무도 크신 야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작은 모습을 바라보기에 초라함이 아닌 겸손함을 표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우리의 깨달음도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의 은혜로 지혜와 지식에도 믿음이 함께하는 깨달음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금 주님의 것으로 채움 받는 것이 온전한 깨달음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찾는 것은 나의 의지가 강하게 표현 되어야 함을 고백합니다.
적어도 주님은 나를 로봇이 아닌 가장 귀한 걸작품으로 만드신 주님의 의지를 나에게도 나누어 주셨기에
믿음 안에 들어온 나에게 긴급한 상황이 아니고는 가능한 개인의 자유 의지를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빠짐없이 야훼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지음 받았기에 지으신 분을 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찾는다는 것은 아는 지식에서 행동의 의지를 갖는 것입니다.
때론 미혹의 영에 이끌리어 거짓의 영을 찾기도 하지만
우리는 자신을 내려놓을 때 창조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종교인들이 그 삶을 마감할 때면 자신의 무익함과 창조주의 진솔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삶의 마감 날이 아닌 이 젊음의 시절에 주님을 만났고
이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이기에 축복 받은 자인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넘어 주님의 인도하심 속에 거하게 하시는 야훼 하나님을 송축 하나이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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