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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을현 누나하고는 제가 고 1 때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만났습니다 . 우리가 살던 장성리와 이웃한 교항리에 살기에 매 주 토요일 학생 예배를 드리고 교항리에 사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귀가하였습니다. 또한저의 동기인 준현이의 터울 누나이기도 하여습니다. 그렇게 제대 후, 제가 이 곳 마산에 내려 오기 전까지청년회까지 함께 예배드리던 교우였으며선배였으며친구 누나 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만난지가제대후 여기로 내려 오던 80년도 부터였네요. 제가 부르심에 따라 출국할 때남편이자 선배인 임 목사님만 한 번 만난 적이 있구요 참 오랜 세월입니다 벌써 40년이 넘었으니까요 그런데 마주 할 날이 더 멀어져 갔습니다.그날. 주님의 날에나 마날 수 있으니까요 진작 한번 올라가 친구들과 고향 분들을 만난다는..
두산에너빌리티최근 수정 시각: 2024-11-11 15:47:3414편집토론역사 분류두산대한민국의 건설 회사대한민국의 중공업 회사대한민국의 에너지 관련 기업대한민국의 방위산업체경상남도의 기업코스피상장법인1962년 기업성산구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시공능력평가순위 상위 30대 건설사[ 펼치기 · 접기 ] 두산에너빌리티斗山恒能 | DOOSAN ENERBILITY 법인명두산에너빌리티 주식회사 (2022년 3월~ )영문 명칭Doosan Enerbility Co., Ltd.설립일1962년 9월 20일업종명기타 기관 및 터빈 제조업아파트브랜드트리븐, 트리마제기업 규모대기업경영진CEO 박지원COO 정연인CFO 박상현상장 거래소유가증권시장 (2000년 ~ )종목 코드034020시가 총액..
북위 35° 10′ 48″ 동경 128° 33′ 17″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창원 월영대(昌原 月影臺)종목수량시대위치주소좌표정보 경상남도의 기념물 기념물 제125호(1993년 1월 8일 지정)1기통일신라 창원 월영대창원 월영대(대한민국)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밤밭고개로 442 (해운동)북위 35° 10′ 48″ 동경 128° 33′ 17″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월영대(月影臺)종목정보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해지)문화재자료 제1호(1983년 7월 20일 지정)(1993년 1월 8일 해지)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창원 월영대(昌原 月影臺)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신라 말기의 학자인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로 들어가기 전에 말년을 보내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1993년 1월..
마산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 문서는 폐지된 행정 구역에 대한 것입니다. 폐지 이후 통합된 행정 구역에 대해서는 창원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마산항의 공중 전망2010년 7월 1일 통합 이전의 마산시마산시 시절에 사용된 깃발마산시(馬山市)는 대한민국의 폐지된 행정 구역으로, 경상남도 중남부에 1910년부터 2010년 6월 30일까지 100년간 존재했던 시이다. 2010년 7월 1일에 인근에 위치한 창원시·진해시와 통합하여,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에 속하는 지역이다.마산은 예로부터 합포로 불리던 중요한 항구였으며, 19세기 말부터 근대적인 항구로 개발되었다. 또한, 마산은 1960년대 3·15 마산 의거와 1970년대 부마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의 발상지이자, 마산자유무..
시대가 흐르며 새 천년을 지내는 세대가 되었어도 고향을 향한 마음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고 다가가고 싶은 곳 잊혀지지 않는 곳 잊을 수 없는 곳 아름다운 내음으로 손짓하며 내 영혼을 부르는 곳입니다 행여 그곳에 옛 시절 노닐던 그 골목길과 놀이터는 아직도 있으려나 ... 행여 그곳에 옛 시절 함께 어우렸던 친구들과 이웃들은 아직도 있으려나 ... 아직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들과 기억 너머에서 지워져가는 것들 ... . . 그러나 그 곳에는 날 찾는 이가 없고 날 기다리는 이가 없을 곳 같은 망설임이 앞서 갑니다 . 그래서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쉽게 갈 수 없는지도 모릅니다. . . 지워지지 않는 향수 잊혀지지 않는 고향 만날 뵐 수 없는 부모님 이방인의 이방인으로 살아 온 시간들의 흐름만큼이나 회귀의 ..
넷에 떠도는 주문진 영상을 모아봤습니다. . . . 내년 2024년 봄 즈음에 한번쯤 다녀오고 싶습니다. 딱히 이유는 없습니다 . 그 때 쯤되면 좋을듯하여 마음으로 정해 보았습니다. 혹이나 우연히 아는 분들을 보았으면 합니다. 친구나 . 보고픈 분들이면 더 좋겠네요 . 긴 아주 긴 시간의 약속을 마주하는 이도 없이 혼자서 잡아 봅니다 . 가는 길이 좋을 것같아 그 기쁨을 많이 누리고자 길게 잡아 봅니다 . 내 꿈의 동산을 ...
한국 중공업 19811216 제대후 고향을 뒤로하고 마산으로 내려와 첫 입사한 곳이 공기업인 한국 중공업이였습니다 중제관 공장에서 분리되며 원자력 생산부 sus 과였습니다 도면을 배우며 현도사로, 제관사로 근무했습니다. 그 후 중제관으로 옮겨가서 담수, 발전기, 터빈, 운반설비, 교랑 주탑, 해상크레인, 엔진 등 발전 보조 설비에 근무했었습니다. 나중에 민영화 되면서 두산 중공업으로 바뀌었습니다 2003년 두산 중공업에서 명퇴할 때까지 청춘을 함께 한 곳입니다 한국중공업(주) Korea Heavy Industries and Construction Co., Ltd. 한국 중공업 두산 중공업 요약 국내 발전소 설비 독점공급업체이며, 발전설비 및 대규모 산업 플랜트업을 주요사업으로 하는 종합 중공업 설비업체...
'가고파' 이은상과 아버지 이승규 장로 프로필 성경환목사 2021. 1. 28. 22:12 이웃추가본문 기타 기능 '가고파' 를 작사했던 이은상과 아버지 이승규 장로 서울 태생의 이승규 장로(李承奎, 1860~1922)는 독립운동가이며, 육영사업가이기도 하다. 1866년 병인년을 맞이한 조선에서는 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이 심했다. 천주교인이었던 이승규 가문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가족 모두 경남 동래까지 피난을 하였다. 이승규는 1875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상경하였다. 대원군의 극심한 탄압 때문에 다시는 정치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는 한의사가 되겠다는 뜻을 정하고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 한약방에서 7년간 잔심부름을 하면서 한의사 시험을 준비하였다. 한의사 시험에 합격하고 면허를 얻은 후 제2의 고향인..
산장의 여인(山莊의 女人)권혜경(權惠卿) Jimie 2020. 7. 30. 06:10댓글수0공감수3 반야월 선생과 권혜경 여사의 ‘산장의 여인(山莊의 女人)’ 반야월 선생이 노랫말을 쓴 수많은 가요 중에서 권혜경씨가 불러 히트한 에 얽힌 이야기다. 한때 가수로서 인기절정을 달렸지만, 권혜경씨의 운명은 기구했다. 으로 유명 가수가 된 직후인 1959년 심장판막증 진단을 받은 뒤 '호반의 벤치'와 '동심초'는 병상에서 녹음을 해야 할 정도였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인연이 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련을 이기기 위해 불교에 귀의한 그는 생의 절반 이상을 봉사활동에 바쳤다. '대명화'라는 법명을 받고 70년대 이후 전국 교도소를 돌며 재소자들을 격려해 수많은 수인(囚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