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선교 한국/묵상 @주님의 마음 (19)
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율법 준수의 정신여호와의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로 지키느냐 아니면 마음으로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믿음으로 지키는 것과 수양을 통해 지키는 것,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과 보상을 바라고 지키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전자는 부모를 모시는 아들로서 지키는 것이며, 후자는 주인을 섬기는 종으로서 지키는 것이다. 전자는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우므로 피곤치 않으나, 후자는 발꿈치를 들고 걸어다니는 것과 같아서 계속 지속할 수 없다. 전자에는 계속 잘못하여도용서함이 있으나, 후자에는 조금만 실수하여도 징계가 따른다.전자는 자연적인데 반하여 후자는 인위적이며, 전자는 능히 지킬 수 있으나, 후자는 완전하게는 지킬 수 없다. ..
율법 준수의 정신여호와의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로 지키느냐 아니면 마음으로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믿음으로 지키는 것과 수양을 통해 지키는 것,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과 보상을 바라고 지키는 것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전자는 부모를 모시는 아들로서 지키는 것이며, 후자는 주인을 섬기는 종으로서 지키는 것이다. 전자는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우므로 피곤치 않으나, 후자는 발꿈치를 들고 걸어다니는 것과 같아서 계속 지속할 수 없다. 전자에는 계속 잘못하여도용서함이 있으나, 후자에는 조금만 실수하여도 징계가 따른다.전자는 자연적인데 반하여 후자는 인위적이며, 전자는 능히 지킬 수 있으나, 후자는 완전하게는 지킬 수 없다..
세상을 거꾸로 살자빛이 늘 어두움을 비취되 어두움은 그 빛을 깨닫지 못하였다(요1:5). 개역성경의 번역이 어색하여 이렇게 고쳐보았다.빛은 늘 어두움을 비추고 있었다. 빛은 태초부터 계속하여 어두움을 비추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셨으며 우리 가운데 계셨다. 빛이 없어 하나님이 없어 진리가 없어 지식이 없어 인간이 타락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빛은 늘 우리 가운데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빛에 대하여 관심이 없음으로 인하여 그 빛을 빛으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인간의 눈에는 언제나 그 빛이, 하나님이 보잘것 없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치 기준과 인간의 가치 기준이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귀하고 의로운 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천하고 의롭지 못..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통계 숫자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일천만 교인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들을 과연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나는 또 생각한다. 그 일천만 그리스도인을 양육하고 있다고 하는 목회자들을 과연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을까? 이미 교회의 제도에 예속되어 버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이와 같은 질문을 불경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의 의미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과 비슷한 결단과 각오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남북이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서, 또한 공안법이 서릿..
전도의 정신마태복음 16장 16절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이 나온다. 이 고백에 대해 예수께서는 “네가 복이 있도다"하고 칭찬하셨다.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예수가 그리스도란 고백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예수가 그리스도란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전도가 되었으며 그것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예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이유도 자신이 주님이시며 메시야임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그런데 왜 주님은 더러운 귀신들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하고 고백했을 때 잠잠하라고 하셨을까? 예수께서 왜 베드로..
최선을 다하지 않음그러면 도대체 게으름이란 무엇일까요? 게으름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게으름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알아야합니다.앞장에서 이미 게으름의 기초는 자기 사랑임을 밝혔지만, 이것은 게으름의 시작일 뿐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시작 단계의 게으름은 그것을 나타낼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 한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게으름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의무가 필요합니다. 의무가 없는 곳에서는 그 사람의 게으름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기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해야 할 일이 없어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는 그를 게으르다고 탓할 수 없는 것입니다.그런데 의무가 확인되어 게으름이 게으름으로 드러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시작 단계에서 나타나는 그 게으름은..
위대한 설교란 ? 오늘 날의 설교에는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다.오늘 날의 그리스도인 역시 , 생명의 설교 듣기를 거부하고 지식의 설교를 듣기 원한다 . 지식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마가복음 3장 11절 ~ 12절을 읽어보라 .설교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증언이다. 증언은 생명을 건 것이라야 힘이 있다. 단순히 유창한 말 만하고 자신은 그 증언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 증언은 의미가 없다.그러므로 설교자는 그 설교에 생명을 건 증언을 할 필요가 있다. 설교자는 대중 앞에서 설교하기에 앞서 그 자신이 성경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위로를 받아야 참 설교자가 될 수 있다.설교자란 이 세상에서는 소망을 얻을 수 없기에 매일 매일 성경 말씀에서부터 소..
은혜의 한탕주의신자가 은혜를 끊임없이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부지런한 자기 희생과 성실한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로또 복권이 출시되고 나서 얼마 동안은 온 나라가 로또 열풍으로 들썩였습니다. 로또에 1등으로 당첨될 확률은 800만분의 1로, 1년 동안에 벼락을 2번 맞거나 교통사고를 5번 당하는 확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일어나기 힘든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것이란 환상을 갖습니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어리석은 꿈을 꿉니다. 이것이 허황된 꿈임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며 사는 것에 지쳐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꾸준히 노력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을 피곤해 합니다. 한방에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이것은 은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
성경의 해석권성경은 인간의 이성으로 논리를 체계화시킨 인간 문화의 산물이 아니다. 성경과 철학의 차이점, 성경과 도덕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철학이나 도덕, 기타의 학문은 인간 문화의 산물이다. 그것은 이성의 역작이다. 그것은 신을 찾아가려는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책이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신 것이 성경 말씀이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말씀이다.그러므로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말씀 위에서 생각하고 말씀 위에서 체계를 세우고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우쳐야 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일이며 그리스도인의 일이다.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판단과 교회의 판단 역시 성경에서 체..
문자의 우상화문자는 사상의 형상이며 의미의 상징이다. 문자에 예속된 자는 사상 의미의 형상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나 진배 없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 2계명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형상은 그 형상이 아무리 거룩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으며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피조물과 동등시하게 하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마찬가지로 어떠한 문자도 어떤 사상을 완전히 드러낼 수는 없다. 사상 · 의미를 드러내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 문자이기 때문에 문자가 필요하게 되었을 뿐이지 문자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 문자 그 자체에 예속된 자는 우상 숭배자와 동일한 것이다. 문자는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