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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한국중공업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BQuality score:Good한국중공업(韓國重工業)은 발전설비, 산업설비, 선박용 엔진 등을 생산하는 공기업이었다. 다시 민영화되기 직전 정부출자기관 중 한국산업은행(43.8%), 한국전력공사(40.5%), 한국외환은행(15.7%)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제기된 공기업의 경영합리화 과정에서 1차 민영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지분매각을 추진하였으며 2000년 두산그룹에 인수되었고, 사명을 두산중공업으로 변경하였다. 본사 소재지는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두산볼보로 22(귀곡동 555)였다. 2022년 3월 29일 이후 사명이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되었다. 연혁1962년 9월 20일 민영기업 현대양행(주) 설립1980년 10월 한국중공업(주)..
주문진 무장간첩사건 주문진 무장간첩사건 14학번 한태일추천 0조회 6117.10.10 14:48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정의 1969년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지역에 침투한 무장간첩 토벌 사건. 역사적 배경 1960년대 말경에는 북한 내 지도부가 무장 게릴라세력을 대량 남파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1968년 1월에 31명의 무장 게릴라가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남하한 1·21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68년 2월 7일 경전선의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250만 재향군인을 무장시켜, 온 국민이 무장공비를 격퇴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 육군본부에 예비군부가 만들어지고, 각의에서 향토예비군설치법시행령이 통과되고, 전국의 경찰서나 구청에는 예비군 본부가 설치되었다. 196..
사진으로 본 경남 마산 백년의 역사 현장 ▲마산 화력발전소(1968년 모습):현 월영동과 해운동 지역. 1956년 4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이 건설을 계기로 국내의 전력구조는 수력발전 중심에서 수력 및 화력 발전의 구조로 변화되었다.또한 국내의 무연탄을 주연료로 사용함에 따라 광업의 활성화와 고용효과를 가져왔다.이처럼 영남지역 전력공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으나,설비의 노후화로 1982년 12월 폐쇄되었다. ▲옛 화력발전소 터의 현재모습(월영동과 해운동 일대). 멀리 돝섬 건너편 삼귀해안이 매립되어 두산중공업이 들어 서 있다. ▲(주)한일합섬(1970년대 의 모습):양덕동 일대. 1964년 설립되어 우리나라 섬유산업을 선도해 온 한일합섬은국민의 생활개선은 물론 경제 발전기에 제조와..
40년전 근무하던 곳의 영상을 넷에서 끌어 모아 편집해 보았습니다 . 조치원서 4주 훈련 후 100을 받고103보를 거쳐 사창리를 지나대성산 밑 동네에 둥지를 틀고 비교적 건장하다고 이유로 주특기 100과는 거리가 먼 75mm 물총반에 따블백을 풀었습니다시도 때도없이 비상훈련과 상시 훈련으로 주 1회는 배낭위에 20 kg이 넘는 물총이나동급인 총다리를 얹어 메고 1170고지인 대성산 op 제 2 방어 진지를거의 1년 간 산행했습니다 . 그 후 특혜를 입어소총소대 203 유탄수로 복귀시켜말고개 밑 승암고개 개활지를 중무장 구보를 시켰습니다 ( 57mm나 60mm는 무겁다고 차량 운반 시켜 줌 ) 그렇게 또 1년 정도를 뛰어 다니게 하더니 철책선 투입 훈련을 준비하며 초소별 종교활동 인도를 위해 역..
주문진 무장공비침투사건 ( 강원 도민 일보 )기자명 정인수 입력 2017.03.20 댓글 0▲ 정인수 ( 전 도의원 ) 1969년 3월16일 0시50분경.주문진항 앞바다는 칠흙 같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통금을 넘긴 시간 고요한 정적만이 감도는 읍내를 칼빈총과 엠원총으로 무장한 대위 계급의 장교와 하사관 계급도 섞여 있어 영락없는 대한민국 국군이었다.그들은 강릉경찰서주문진지서(현 북부지구대) 바로 건너편 강남여인숙에 들이 닥쳤다.이어 각 방을 열고 투숙객을 검문했다.공무원에게는 공무원증을 민간인에게는 주민등록증을 빼앗았다.그들은 여인숙을 나와 당당하게 에둘러 주문진지서를 피해 눈길을 밟으며 선창가 인근에 위치한 수상경비소(오늘날 해양경찰파출소)에 들이 닥쳤다.임검소에는 경찰관 2명과 사환 1명이 근무했다..
태국과 선교지를 써핑하다 고향의 모습은 어쩔까 하고 찾아본 이미지 몇 장을 가져와 봤읍니다
태백산호를 아시나요? 수평선(전경찬40기)추천 0조회 1616.06.10 23:09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주문진 수고 실습선 태백산호 아시나요? 옛 모교 솔밭에 있는 위령비 한번쯤은 보셨스리라 생각합니다. 1972년 11월 28일 주문진수산고등학교 실습선 태백산호는 학생과 선원 등 15명을 태우고 주문진항을 떠났다가 귀항 도중 갑작스런 풍랑을 만나 강동면 정동진해상 앞 15마일 해상에서 침몰하여 탑승했던 전원이 희생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강원도교육감은 위령비를 세우고 희생 학생 3명의 개척정신을 후배들에게 길이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조선일보 신문에 나온 기사 캡쳐 해 보았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내가 1학년 때의 일이였습니다. 그 때는 도시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실력..
무엇이나 할수 있다는 젊음이 있던 시절... 그러나 할수 있는 것이 너무 부족했던 70 년대를 살며 함께 부딪히며 울고 웃던 친구들 ... 그러기에 서로를 잊어가며 삶을 살아야 했던 아픔이 크다. 그리고 그 아픔만큼 보고픔도 크다. 어디서 살든지 행복하고 건강ㅎ게 살아다오. 나의 친구들이여.....
어머니의 일생 . 차윤 cpr 회장 東菊추천 0조회 4614.03.22 20:50댓글 1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어머니의 일생 우리 어머니는 1906년 11월 20일에 마산시 중성동 145번지에서 홍두영 장로의 장녀로 출생하셨다. 1920년 4월 마산공립고등여학교 시절 급우들과 함께 어머니는 유년시절을 마산문창교회 유년주일학교에서 보냈다. 1912년 4월부터 1915년 3월까지 마산의신여학교에서 수학하신 후 그 해 4월부터 1918년 3월까지 동교고등과를 마치셨다. 이때 어머니 나이는 13살이었다. 1920년 4월에 마산공립고등여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3월에 동교를 졸업하셨는데 한국인 학생으로서는 제1회 졸업생이된다. 수학 중 교내 영어 웅변 대회에서 입상하여 일본 관동지역을 여행하는 특전을 누린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