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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개항 당시 각국거류지에는 러·일 영사관 건물 외에 러시아와 일본 민간인의 건물 몇 채만 있었을 뿐, 일본인 대부분은 한인거주지인 마산포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9년에 건축한 러시아 영사관 건물입니다.마산이사청과 함께 지은 마산 최초의 2층 건물로 조계지 언덕에 걸터 앉은 모습이 위용 당당합니다. 경남대 평생교육원(구 창원군청) 옆에 있었습니다. 조계지 내에서 경제활동을 했던 러시아인들은 조계지내의 대지주이면서 무역업과 러시아군함에 대한 잡화용달업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함석이나 기와로 된 주택을 직접 지어 살았습니다. 1900년 연말 현재 조계지 내 러시아인 건물은 모두 6동이었으며 그 중 한 채는 건평 80평으로 호텔업을 목적으로 건축 중이었는데 조계지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위치는 조계지..

한국 원자력산업의 공장 ‘두산중공업’APR-1400 원자로로 세계 시장 공략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입력2006-12-15 16:23:00 창원이 박정희의 꿈이 어린 땅이라면, 귀곡단지는 정인영의 야망이 서린 땅이다. 어렵게 출범한 기계공업의 메카에서 어떻게 원자력산업이 꽃피게 됐을까.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를 제작하는 두산중공업은 미국과 중국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쫀득쫀득한 강철이 방사선에 잘 견딘다. 그러한 강철을 만들려면 담금질 과정이 필요하다. 두산중공업의 단조공장.경남 창원시 귀곡동에 있는 두산중공업을 찾아가는 길은 묘하다. 창원 시내를 벗어나 진해 쪽으로 잠시 차를 달리다 장복터널 못미처 오른쪽으로 빠지면 두산중공업 입구가 나타난다. 창원에서 진해로 가는 길도 ..

오래된 정원 같은 교회 구현기자명 황승영 기자 호수 743 입력 2010.02.27 00:00 댓글 1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SNS 기사보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60년 전 돌로 만든 성전 그대로 … 소박하고 포근한 느낌나무와 담쟁이, 돌 등 자연과 조화 이뤄 … 도심의 영혼쉼터 마산 용마산 입구에 자리 잡은 갈릴리교회는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는 말씀이 어울리는 교회다. 화려함이나 웅장함은 찾을 수 없었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룬 예배당에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고 그 안에서 서로 소통하며 섬기는 성도들의 모..

마산 갈릴리, 창립 61주년 임직예식기자명 남원준 기자 호수 756 입력 2010.05.29 00:00 댓글 0 바로가기 복사하기 본문 글씨 줄이기 본문 글씨 키우기SNS 기사보내기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스토리(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URL복사(으)로 기사보내기 이메일(으)로 기사보내기 다른 공유 찾기 기사스크랩하기명예안수집사 추대 등 일꾼 세워경남서지방 마산 갈릴리교회(이성지 목사)는 지난 5월 23일 창립 61주년 기념임직예식을 드리고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다짐했다.이날 예배는 이성지 목사의 집례로 지방회 부회장 정금영 장로의 기도, 지방회장 정찬선 목사의 설교 등으로 진행됐다.‘충성된 자가 받을 축복’이란 제목으로 설교한 정찬선 목사는 “하나..
야훼 하나님은 또 한 마디의 매듭을 만들어 나가길 원하십니다 친구들이 함께 신학교를 가자고 할 때 부족함과 두려움에 현실을 훼피하듯 마산에 내려와 영육간으로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지내 온 시간이 30여년이 가까워 오며 또 다른 부르심을 원하십니다 순종할 수 밖에 없고 순종해야만 하는 결단의 시간 속에 반 년정도의 선교 훈련과 또다른 반년의 준비과정을 통해 나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2003년 조기 은퇴를 했던 두산 중공업 중제관 공장 홍보물 1981년 첫 직장이였던 한국 중공업 모음 ( 2020년 재 편집 올림 ) 떠돌아 다니는 동영상과 함께 모아 봤습니다. 내 나이 스물 여섯. 군복무를 마치고 독립적 삶을 살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만나야 했던 직장 . 그 첫 직장이 창원 한국 중공업 원자력 생산부 현장이였습니다 . 박봉에 힘든 일이였지만 미래 가정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였습니다 . 그 후 결혼하고 정착한 곳이 마산 산호동이였고 두산 중공업으로 상호가 바뀌며 중제관공장 산업과에 편성되어 25여 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한 직장에 이십 여년을 한 직종에 삼십 여년을 살게 했던 것은 가정과 가족 . 신앙 생활이였지 않나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