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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펌) 마산 최초의 근대 건축 본문

부르심의 축복/동행 in Masan 1981

펌) 마산 최초의 근대 건축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3. 11. 9. 01:20

<마산 최초의 근대 건축>

개항 당시 각국거류지에는 러·일 영사관 건물 외에 러시아와 일본 민간인의 건물 몇 채만 있었을 뿐, 일본인 대부분은 한인거주지인 마산포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899년에 건축한 러시아 영사관 건물입니다.
마산이사청과 함께 지은 마산 최초의 2층 건물로 조계지 언덕에 걸터 앉은 모습이 위용 당당합니다. 경남대 평생교육원(구 창원군청) 옆에 있었습니다.

 


 

조계지 내에서 경제활동을 했던 러시아인들은 조계지내의 대지주이면서 무역업과 러시아군함에 대한 잡화용달업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함석이나 기와로 된 주택을 직접 지어 살았습니다.
1900년 연말 현재 조계지 내 러시아인 건물은 모두 6동이었으며 그 중 한 채는 건평 80평으로 호텔업을 목적으로 건축 중이었는데 조계지에서 가장 규모가 컸고 위치는 조계지 남단 해변의 전망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현 경남대학교 정문 앞 광장 부근으로 추정됩니다.

경술국치 전인 이 시기에 식민 지배를 위한 법원 등 관아와 교육시설․금융시설을 비롯하여 요정․상점 등의 상업용 시설들이 일본에 의해 들어섰으며 이 외에 서양선교사들에 의해서 종교시설과 교육시설들도 지어졌습니다.
건물의 양식은 대부분 의양풍(서양식과 유사한 형식) 혹은 일본식의 단층 건물이었습니다.
 
다음 사진은 대표적인 관아건물로 1908년에 지어 마산이사청으로 사용됩니다. 목조2층으로 지금의 경남대학교 평생교육원(구 창원군청) 자리에 있었습니다.
1899년 지은 일본영사관 건물을 헐고 지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1910년 건축한 부산법원 마산출장소 건물입니다.
목조2층 양식으로 마산시청 앞에 있는 현 마산법원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음은 개항기(1899년-1910년) 마산의 근대건축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상술의 논문자료입니다. 

 

 

No 건 물 명 현 위 치 건축연대 有無 구조 및 규모 양식 면적 비고
1 일본영사관 대내동 1899 목조2층 르네상스풍   1906년 마산이사청
2 러시아영사관 대내동 1899 목조2층 식민지양식   현 월포초등교 내
3 마산우편국 월남동4가 1902 목조1층 의양풍 42평 1930.2.24중앙동이전
4 마산포교회 성호동 1903 벽돌조1층 개량한식   문창교회전신
5 심상고등소학교 장군동3가 1904 목조1층 의양풍 384평 일본인학교, 후 이전
6 마산공립소학교   1904       1901開校,성호초등교
7 마산병원 중앙동철도용지 1905 목조1층 의양풍 75평 도립병원전신
8 마산 역사(驛舍) 중앙동철도용지 1905 목조1층 일식    
9 제일은행출장소 월남동3가 1907 벽돌조1층 의양풍    
10 서전(西田)주조장 홍문동 1907     112평 마산最古酒造場
11 마산이사청 대내동 1908 목조2층 의양풍   1914년 마산부청
12 망월루 두월동1가 1908 목조3층 일식 96평 여관, 요정
13 심상고등소학교 중앙동 1908 양풍 平家   612평 이전하여 신축
14 창신학교 상남동87번지 1909 목조1층 의양풍 56평 호주선교사(신교)
15 마산신사(神社) 문화동 1909        
16 마산헌병분대 월남동3가 1909       현건물은1926년신축
17 육군중포병대대 월영동 1909 기와     여러 채가 있었음
18 환서좌(丸西座) 신마산 1909 목조2층     5-600명 수용
19 마산 세관 월남동4가 1910 목조1층 의양풍    
20 지방법원마산지청 중앙동4가 1910 목조2층 양식    
21 성지학교 완월동206번지 1910 벽돌조1층 양식   프랑스선교사(구교)
22 부산감옥마산분감 장군동 1910        

 

 

여기서 소개한 건물들은 그 시기를 대표할만한 것들만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외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전 글에서 밝힌 대로 보험회사․목재상․정미소․양조장등의 공업시설과 마산청과물 시장 등의 유통시설, 여러 개의 유곽과 30여 개소의 여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이 시기에 매우 다양한 시설물이 들어서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표의 세번 째에 적힌 마산우편국(1902) 사진입니다. 의양풍으로 목조1층이었습니다.


여관과 요정으로 사용되었던 망월루 사진입니다.
목조 3층 일본식 건물로 창원천변에 있었는데 사진을 보아 알 수 있는 것처럼 영업규모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한편, 일제는 1906년부터 부산․인천․성진과 함께 마산에도 항만 및 세관 설비공사에 착수하였습니다.
1908년에서 1910년까지 신마산 세관에 종래의 부두연장 84.5m에 돌제(突堤)의 연장 10m를 보강해서 등대를 설치하고 계단이 딸린 목조잔교를 설치했습니다.
다음 사진이 그 때 설치한 마산세관의 목조잔교입니다.

 


 

세관 구내에 목조 단충의 파상형(波狀形) 철판지붕으로 된 50평 규모 창고 1동을 건설했으며, 세관 주위에 철책을 두르고 세관지서장 관사(목조 23여 평) 1동도 이 시기에 신축하였습니다.<<<

출처: https://www.u-story.kr/204 [허정도와 함께 하는 도시이야기: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