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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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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만한 물가로 in ㅁr산/회복 2024

멘토와 멘티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24. 9. 20. 06:19

                                                     

                                                                          ​한국기독교사 (한국경교사편)

                                 한국기독교사(한국경교사편)/  오윤태 저 혜선문화사 발행/  329p/  1973.11.25. 초판

 

*

1990년대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교육하던 시절 우연히 만난 서적이다.

조금은 꿈같았던 이야기

한반도에 기독교의 뿌리가 들어온 시기가 150년이 아닌 신라시대 일 것이라는 

전설이나 유전이 아닌 실증을 찾아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어 기뻐했던 것을 시작으로

기도하며 기대하며  막연히 시간을 지내던  요즈음...

이것 저것 하다

요즈음 다시 한국 기독교 전래의 뿌리에 대한 생각할 시간을 주셔서 인터넷 리써치 쑈핑 중입니다.

*

경교 전래설에 심층 연구하시는 분이 기록한 글을 일부 옮겨봅니다

이상규 (고신대· 역사신학)  

 

한국에 온 첫 번째 경교인(景敎人)은 누구인가?

 

  중국 당나라에 온 앗시리아교회의 사제는 알로펜(Alopen) 즉 아브라함 선교자입니다.

635년 당태종을 만나 포교의 허락을 받고 장안에 638년 대진사(大秦寺)를 건립하면서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경교가 100여 년 동안 크게 발전하면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수도 장안에 781년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비석에 휘호를 쓴 이가 경교신학교 교장 려수암(呂秀岩) 대경존(大景尊, 혹은 대승가)입니다.

대경존은 원래 노자교도였지만 경교의 신실한 신자가 되면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경정(景淨) 아담과 함께 경교발전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경교가 신라의 오게 된 경위는 려수암의 후손인 한림학사 려어매(呂禦梅)가 당나라에서 일어난 황소(黃巢)의 난을 피하여 877년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에 국적을 옮긴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려어매 한림학사가 신라에 귀화한 때가 바로 한국에 경교가 들어온 연대라고 추측할 수 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려어매를 종시조로 삼는 성산 려씨와 함양 려씨 가문이 신라와 백제 땅을 중심으로 하여 경북 성주성산과 경남 함양에 세거하면서 경교의 계대를 잇게된 애기도 있습니다.

그 후손들은 다양한 종교와 사상으로 한민족사회에 크게 공헌한 인물들을 수없이 배출한 족보를 지니고 있습니다.

 

해방 후 민족진영의 건국대표단중의 한 사람인 몽양 려운형 선생은 바로 려씨의 후손입니다.

그는 31 독립운 동에 참여했으며 상해임시정부수립에 참여했으며 해방 후 한국의 정부수립을 위한 민족진영의 대표로 활동하였습니다.

민족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국하였으나 건국수립 유공자로 대한민국훈장을 받은 정치사상가입니다.

 

려씨 문중에서 현재 장손으로서 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 려용덕(呂容悳) 법학과 문학박사입니다.

경교사를 쓴 오윤태목사에게 경교문헌을 제공하였고(현재 그 문헌은 동경대학교에 기증된 상태임),

한국교회신문을 발행하면서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대한 해설을 2000년2월부터 5월까지 11회 걸쳐 소개했고,

1970년경부터 극동방송국을 통하여 경교의 역사를 강의한바가 있습니다.

 

이런  문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

평소에 저는  두운 법칙으로 "여" 로 쓰고 있지만 

제 성씨를 사랑하기에 여권과 싸인에는 Ryeo를 고집합니다.

그러던 제가

여운형씨와 학렬이 같고 막연한 인척이라는 이유로

군시절 전방 근무시 연좌죄로 인하여 힘들었던 경험이 많이 있었슴에도 

이로 인하여 제대 후에 관심을 갖고

여운형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보았고

오늘날까지 멘토로 삼아오고 있습니다.

*

그리고

저희 조상이 한국 기독교 전래를 위해 섬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합니다

*

말씀이 나를  이끄시는 중에도

우리는 보이는 멘토를 갖기를 원하고 갖어야만 하나봅니다.

우리가 야훼 하나님의 창조물이지만 

창조주가 아니기에 

창조물 중에 본받아야 할 모습을 사랑하게 되나 봅니다.

그것이 멘토이고

멘토가 필요한 이유인가 봅니다.

 

( 나의 영육간의 삶을 이끄시는 영원한 멘토이신 야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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