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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 님 서 신 발 앞 에

사랑으로 부르는 이름 선생님 본문

글터/글) 부르심. 글터 2009

사랑으로 부르는 이름 선생님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0. 4. 16. 17:55

  ( 이글은  내적 치유시간에  나의 쓴뿌리를  기록한 글입니다 )

 

     사랑으로 부르는 이름 선생님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제는 이렇게 편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난 세월을 기억해 보건데 선생님을 부를 수 없는 나였슴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외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어린시절  그러니까 2년간을 집에서 놀다가 초등학교 4학년으로 편입하면서 선생님을 만난 것이 내 삶을 통하여 가장 깊은 영향을 받는 일이 되여 버린것 같습니다.

그때가지만 하여도 나에게 선생님이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경하는 분이였고  그림자도 밟을 수 없어 피해 다녀야 할 분으로 고귀한 사명자이며 스승이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을 만난후  어느날 숙제를 해 가지 못한 나를 책망과 채벌을 하시는 가운데 "네 형은 도벽이 심한 놈이고, 네 놈은  숙제를 안해 오는, 말 안듣는 아주 나쁜 놈이라며, 저희 가족을 마치 큰 법죄 가족인 양 함께 묶어 책망 하지 않앗습니까?

형으로 인하여 더 많은 매를 맞은 억울함과 아픔보다는, 아침에 와서 급히 남의 것을  베껴 제출한 친구들을 칭찬하는 모습과,

정당한 방법이 아니기에 끝내 숙제물을 제출하지 않은 나를  " 왜 안해왔는지 이유도 묻지 않고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놓고 탓하는 선생님의 모습속에서 분노가 생겼고,

매를 맞되 아픔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선생님을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반응 없는 반항이 시작되였습니다.

그 후 저희 담임이 되는 사람들은 저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고 , 나는 그럴때 마다 선생님을 기억하면서 되씹는 맘으로 고통을 참으며 분노를 키워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제 맘에는 더 이상 선생님을 존경의 대상으로 볼 수 없는 나의 분노의 대상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자라나며 불신과 분노로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였습니다.

틈만 나면 나를 조종하여, 나의 영을 지배하기를 원했습니다.

고교시절 부터 이유없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내맘에 , 나의 기준에 판단되는 채벌에는 순응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선생들로부터, 선배들로부터  남들보다 더 많은 구타를 당하게 되였습니다.

반응 없이 반항으로 때리면 때리는대로 맞고 버티는 모습으로 나는 그들을 더욱 증오했고,

내 몸은 그런 나의 비뚤어진 마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성품으로 자학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여 주시며 신앙을 갖게 하셨고,

신앙 공동체 안에서,  주님의 위로 속에서 " 거룩한 분노자"  나만의 닉네임을 얻은 나는 조금씩 채벌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시작 했습니다.

군시절에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누가 기압을 줄 때, 이유 없는 구타는 아픔을 버티며, 말 없는 반항을 하였습니다,

한번은 나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중대장을 상대로 18시간을 연병장을 돌아, 중대장을 돌게 만들었으며, 그후  얼마 안되여 중대장은 전출 가고 말았습니다,

육사 출신으로 강직하고 좋은 분이였는데......... 미안합니다. 박 병희 중대장님......

때론 동료들까지도 연대 책임을 지게하는 일도 있었지만,  굴복하면 타협이요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끝까지 맞으며 버틴적이 많았습니다.

내가 지고 갈 십자가라면 나는 기쁨으로 질것이며 아픔을 이기겠노라고.... 나를 위로하며 타협치 않았습니다. 

그 후 주님은 군종병이라는 자리로 나를 높여주셨습니다

결혼하고 직장 생활이나 교회생활, 가정 생활에서도  선생님으로 인하여 받은 분노라는 선물은 사라지지 않았고, 함께하는 지도자들을 향해 표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에선 학연, 지연이 없는 나로서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야 하는데, 학연 , 지연을 따지며 편파적인 인사 행정, 근무실적 평가에 순응치 못한 나는 그들을 이기는 방법으로 실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소신으로 최고가 되기를 갈망했고,

같은 동료들의 아픔을 나눈다는 핑게로 거룩한 분노는 늘 내 주변을 맴돌며, 나를 조종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교역자와의 문제,

항존직들과의 문제도 내 기준선에 맞지 않으면 성도의 권리와 무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나의 거짓된 거룩한 분노는 계속되었습니다.

가정에서도 '거룩한 분노'라는 속삭임에 속아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상처난 나는 아픔으로 이여졌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품으로 나를 내 몰며 가족들에게 가시가 된적이 많았습니다.

혼자만의 삶의 영역을 만들어 나를 가두었고, 혼자만의 기쁨에 만족을 누리는 개인 주의적인 신념에 몰두하며, 그 여파로 남을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이어져 꼭 내가 확인해야만 하는 습성이 생활화 되여, 문제가 되지 않는 아주 작은 것도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성격이 되였고,

다른 사람들의 조그마한 실수도 크게 다루는 습성이 되여 문제되지 않는 작은 일에 목숨을 거는 이상한 사람이 되였습니다.

나를 노출 시키는 것을 싫어하며, 나에대한 작은 노출을 행하는 주변 사람에게 쉽게 분노하는 자로 변해 갔습니다.

나의 우상과도 같았던 선생님을 향한 나의 변심된 분노는 " 가정을 지키며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배필로 허락하신 나의 동역자 박신자 자매에게까지도 연결되여 표출되었습니다.

"제일 믿는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 ?" 는 생각속에 아주 작은 문제로 우리는 늘 싸움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문제가 아닌 작은 불씨가 되여 서로를 불신하는 언어를 토해내고 서로를 힘들게 하는 큰 문제로 변하는 것이였습니다.

이런 내 모습을 주님은 10여년전 부터 나를 다스리시며, 종교적 갈등부터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의 첫 열매로 목사님의 권면에 이렇게 열방 대학에 들어 왔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순종이 이후로 쭉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주님께 기대렵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를 다스려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강하고 담대하기를 종용하십니다.

오늘 나' 여운식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고백합니다.

잊을만 하면 나를 건드리는 포도원의 작은 여우와도 같은 분노와 노여움을 타게 만드는 선생님을 향한 나의 분노와 미워함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선생님을 용서하고 나를 놓아주기를 원 합니다 .

"나를 덮는 불신과 분노의 미혹의 영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진 "" 여운식에게서 떠날지어다."

그리고 이름은 잊었지만 내 어린 시절 나에게 지식을 심어주고 나와 함께 하셨던 나의 선생님, 선생님들을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선생님들은 이나라의 희망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작은 노여움에 반응하기보다는 작은 미소를 가지고 사랑으로 다스리며, 그곳에 머물도록 기도하며, 가꾸며, 다듬어 나가겠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

그리고

나의 투정을 작은 다툼만으로 끝나도록 참으며, 기도하며 주님의 마음을 얻도록 30여년간 함께해준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신부된 자 당신..," 박신자" 자매

당신은 하나님이 맺어준 나의 전부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여보 ! 사랑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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