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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 님 서 신 발 앞 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본문

글터/글) 광야. 묵상 2011

보시기에 좋았더라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1. 2. 16. 08:13

20110216 (수요일) 보시기에 좋았더라

 

고전 14 : 1 ~ 40

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에서 함과 같이 (HNR)

14:33 For God is not a God of disorder but of peace. As in all the congregations of the saints, (NIV)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두 가지입니다.

무질서하여 모든 것이 엉망이므로 파괴하여 다시 세워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자들과

그래도 질서가 좀 더 앞서기에 살만한 세상이니 우리가 좀 더 가꾸어 나가며 지키자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어떠한가?

 

두 가지 말이 다 맞지만 또 한편으로는 둘 다 틀리는 말입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인간 삶에서는 두 가지 이론을 주장하며 맞추어 갈 수 있지만,

꼭 되어야만 하는 처음 창조된 세계에선 질서만이 존재하므로 처음 사람 아담은 “혼자서도 잘해요.” 였다.

조건이야 어찌되었던 창조의 질서를 깨트린 열매로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무조건 질서를 지켜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란 피조물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잘못 이용하는 연고로

자아를 내 세우고 끝내는 교만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형상을 입은 자들이기에 성령으로 충만할 수 없고,

다만 자기의지와 함께 은혜로 성령을 선물로 덧입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충만하게 지음 받았다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시기에 범신론이 되며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며,

사단의 무기인 교만이 싹 틀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호기심이란 기호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인간은 자아라는 인간의 기초 석을 내 발 끝치에 내려놓고

성령의 은혜를 힘입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항상 나의 보호자인양 내 머리 꼭대기에 올려놓고

모자처럼 늘 쓰고 다니며 자랑하며

나를 덮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만이라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가장 강한 냄새로 풍기는 악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잠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8: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

 

나를 넘어지게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미혹하는 영에 사로잡힌 영들은 그 길의 한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사단에게 속아

나를 죽음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 속에서 나온 말이 세상은 무질서함으로 무조건 무너트리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디 그런 사람이 한둘입니까?

일찍이 우리기억에 남는 애굽의 파라오가 그러했고,

로마의 가이사가 그 길을 걸었으며,

근세에 많은 공산국가를 세운 자들의 혁명이론이 아닙니까?

 

그러나 주님의 질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듯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렘1:10)”

 

무질서를 질서로 만드는 작업이 공익이지 혼자만의 쾌락을 지키기 위한 편법의 논리는 아닌 것입니다.

 

말로나 글로는 잘 들 표현 합니다만

현실의 나타남은 자기만의 성을 높게,

더 높게 쌓으려는 아성의 결정체로 만드는 것이기에 아집이요 교만의 열매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말씀에 어긋나는 모습입니다.

 

이 하루도

“창조주 야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마음을 얻기 위해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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