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내가 주를 만남으로 본문

보내심의 축복. 광야에서/광야의 삶. ㄹr오 2011

내가 주를 만남으로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1. 2. 15. 09:57

제가 하나님과 처음 만난 것은 교회 나온 후 10 여 개월 지난 후 이였던,

고 2학년인 1973년 가을 때였습니다.

주님을 알기를 갈망하던 중 부흥회를 통하여 성령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23일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신학을 함께 하자는 친구들의 권면을 통하여 주님이 처음 부르신 것 같습니다.

결과는 수원의 아주 공대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지고, 다시 1년 재수하다가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왔습니다.

 

두 번 째 부르심은 제가 군종사병을 마치고 제대하던 해였습니다.

1980년 4월 초에 제대하였는데 많은 친구들이 신학대학을 간다고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사업이 안 되는 것이, 직장이 없는 것이 신학을 하라는 주님의 뜻 인가 보다. 라는 고백과 함께 기도와 신학공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함께 기도하며 가장 멋있는 말씀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창세기의 말씀 이였습니다.

그러나 나를 돌아 볼 때 내 자신이 보아도 보기에 안 좋은 것 이였습니다.

당시 고물상을 하시는 아버지를 도우면서 직장을 찾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내가 세상에서 밀리지 않고 필요가 있는데, 주님이 부르신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고 고백한 후 이곳 마산에 차비만 가지고 내려 왔습니다.

결혼도 하고, 직업학교를 통하여 배운 제관 업무로 한국중공업(현, 두산 중공업)에 입사하여 25년간 지혜와 지식과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적어도 제 업무에서는 최고였다고 자부합니다.

회사 내 일천여 명의 제관사, 원자력 공장만 일백여명의 제관사 중 이론과 실무에서 선두를 달리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사고도 없고 남들보다 빠르게 진급되는 나에게 윗선에 좋은 빽이 있느냐 ? 고 다들 묻곤 했지만, 나는 오로지 하나님뿐이라고 했습니다.

 

그 은혜로 명퇴대상에도 없는 일정에서 스스로 명퇴를 하고 주님과의 더 깊은 사역을 추구하며

2004년을 지냈지만 훈련되어지지 않는 연고로 얻지 못한 주님의 침묵으로

1년만에 다시 중소기업을 찾아 직장 생활을 하여야만 했습니다.

 

세 번째 부르심이 느껴오기는 3년 전 이였습니다.

역시 두산 중공업에 있을 때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대우를 받는 은혜를 입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세상일에 올인 할 때인 2008년 가을부터 주님의 간섭하심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손길이 스칠 때마다 모르는 척 외면하며 예배만을 지키며, 가정에 눈을 두며, 직장을 섬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기적을 보이십니다.

출하한 물건이 깨끗하고 좋다고는 하면서도 대금지급을 미루며,

차기 물량을 더디 주기도 하며 회사가 부도 직전으로 만들기도 하시더니

급기야는 30 여 년 간 손끝 하나 다치지도 않게 보호하시던 보호막을 풀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렇게 1년을 버티는 나의 마음은 30년의 공장 생활을 의심스럽게 까지 했습니다.

집에 말하진 못하고 전전하였지만, 영적으로 깨어있던 배필인 집사람은 느끼고 있었습니다.

단 몇 개월이 되지 않는 시간을 모시고 계시던 아버지를 부끄러운 구원이지만 병상세례를 받은 후

2009년 8월, 주님 품에 보내고 나서는 더욱 저를 막는 주님을 느꼈습니다.

육신의 고통이나 아픔은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심적 부담을 안고 고향을 찾아 형제들과 의논하여 낙향의 꿈도 꾸어보고,

그래도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귀농지를 알아도 보았으나 심적 갈등과 아픔은 더욱 가중되어 갔습니다.

한 기도원을 찾아 묵상하며 집회에도 참석하며 주님의 마음을 얻기를 기도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얻는다. 라기 보다는 나의 현실을 재고해 줄 것을 구하는 시간 이였다고 봅니다.

기도원에서 돌아온 후 담임 목사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더 깊은 기도와 훈련을 하기를 바라며, 예수 전도단 소속인 열방대학에서 집중 훈련을 받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했던 저로서는 막상 훈련을 받으려니까 학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핑계로 주님과 줄다리기를 하듯 피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결국은 한 달이 훨씬 넘는 시간을 넘겨 주님 앞에 순종하게 하셨습니다.

입학원서를 보내고 난 후 이어지는 은혜는 이 훈련만이 내가 살 길이라는 감격을 주십니다.

서류 시험을 걸쳐 면접시험을 마치고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학비가 문제였습니다.

평소 물질만큼은 기도 제목으로 올리지 않았고,

내 믿음의 보너스로 받는 것이 물질이라고 믿었기에

그 은혜로 남에게 꾸어 준적도 없지만 꾸어 살게 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비를 만든다는 것은 빌릴 사람도 없지만, 나를 도우신 주님을 배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집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교육과 훈련을 6개월 받았습니다.

넘지 못했던 못된 것들도 이기게 하시며,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믿음의 세계를 만나게도 하셨습니다.

훈련은 힘들고 아픔도 있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즐기던 교회 사역이 한없는 나의 게으름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더욱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고난이 없는 은혜는 평범한 것이지만,

십가가를 통한 고난과 아픔이 있는 믿음의 삶은 기적이 상식이 되는 것이다. 라는 지식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미전도 종족에 대한 선교의 비젼은 열방 대학 훈련 중 아련하게 다가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탐방 중에 느끼는 평강은 내 삶에서 최고의 향연 이였습니다.

혹자의 말대로 더 필요한 곳, 아버지의 마음이 더 많이 머물고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일찍 마음을 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걱정의 마음을 주십니다.

더 많은 나라를 따라 다닐 여유와 마음을 주시지 않기에 멈추려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지게 하시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품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제 저희 부부가 나가는 선교사가 되는 것은 주님의 손길에 맡기렵니다.

성령의 흐름에 맡기렵니다.

 

나를 내려놓고 비우는 것만큼만 성령님이 채워지시는 훈련 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져야 은혜와 사랑이 넘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20110215 -

'보내심의 축복. 광야에서 > 광야의 삶. ㄹr오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시기에 좋았더라  (0) 2011.02.16
요즈음  (0) 2011.02.15
부분적인 것과 온전한 것  (0) 2011.02.15
이제는 긍휼을 바라다.  (0) 2011.02.14
지도  (0) 201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