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어떤 사람 본문
20100906 ( 월 ) 어떤 사람
사도행전 15 : 1 ~ 21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15: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말씀 살펴보기) 유대파, 바리세파 성도들이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았다함을 듣고 그들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비방과 모세 율법으로 굴레를 씌우며, 자기들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매, 예루살렘 총회가 열리고 이를 의노하는 과정에 복음의 의를 힘입어 최소한의 규례와 율법으로 복음을 받은 자들을 주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도록 결론을 만드는 글을 기록하심
말씀 듣기) 나는 어떤 부류의 성도인가?
가능한 논쟁을 피하려고 하나 논쟁거리를 만들고 억지다 싶으면 혈압을 올리는 내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나 역시 나의 의를 주장하며 주님과는 관계없이 억지 주장을 만드는 것이 일반이다.
때론 그것이 교회의 문제를 가져오는 큰 화두가 되어 교회를 힘들게 한 적도 몇 번이나 되는 것이다.
평소에는 문제를 만들지 않으나 가장 위험하다하는 시점에서 그런 문제를 만들기에 문제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어떤 사람들 중에 하나인 것이다.
왜 그럴까?
아직 변화되지 못하고 훈련되어지지 않은 성품으로 인함이다.
성화되어지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나 역시 성화되어지지 않은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는 셈이 된다.
나를 내려놓고 나를 비운 자만이 그 속에 그리스도 예수로 충만하여
그리스도의 의와 그 나라로 충만하여 그 충만한 것으로 나타나 질 터인데
나로 충만할수록 “나“라는 내 의만 나타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내 속에 담아놓은 것이 “나“이고 내 ”의” 일진데 어찌 주님의 의가 나오겠는가?
그나마 하루 24시간을 내 “의”로만 100% 표현되지 않음이 감사하다.
적게라도 나를 잊어버리고 순간일지라도 주님을 생각한다는 것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나
생각해 보면 잠자는 시간을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다.
그 시간만큼은 내 의를 위해 나를 변론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내가 아닌 주님으로 변하기를 바라고
내가 원하는 기준점이 주님을 닮아감이길 바라는 염원이 있게 하신 은혜를 감사해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주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기를 기도한다.
나라는 것이 너무 작아져서 나를 찾아볼수 없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고 나를 부유케 하는 일이기에 나는 기도한다.
내 속에 거하는 어떤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어떤 사람
내가 배척해야 할 내 속의 또 다른 나, 어떤 사람
주님과 함께 할 수 없는 나의 모든 어떤 사람을 버리고 싶다.
버려야 만이 내가 산다는 역설적인 것이 주님의 계산법이다.
나도 그 삶을 배우고 익히며 살고 싶다.
적용) 행하기 전에 의식적으로 한번 더 나를 묵상한다.
내안에 안주한 나를 뽑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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