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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장례 희망’을 보다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전국 집에 누워 있기 연합’ ‘전국 과체중 고양이 노동조합’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연맹’ ‘전국 뒤로 미루기 연합’ ‘전국 얼죽아 연합’ ‘나, 혼자 나온 시민’…. 계엄 정국 시위에 나부끼는 깃발들이다.
발랄했고 위트도 넘쳤다.
시위를 이끈 건 노조도 정당도 아니었다.
‘MG’(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젊음이었고 여성들이었다.
머리띠 대신 스카프로 멋을 냈다.
손에는 방망이와 화염병 대신 응원봉을 들었다.
외국인 눈에는 밴드 공연이나 길거리 축제로 보였을 것이다.
한 기자는 새로운 시위 문화를 지켜보며 ‘1인칭 깃발 시점’이라 명명했다.
그랬다.
1인칭이었다.
1인칭으로 특징 지어지는 MG의 화려한 등장이었다.
밀레니얼은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한다.
세대 전문가이며 역사 연구가인 미국의 윌리엄 스트라우스와 닐 하우에 의해 구분 지어졌다.
‘조직이 곧 나’ ‘조직을 위한 충성과 희생’으로 대표되는 베이비붐 세대는 이미 주객이 아닌 관객이었다.
조직보다는 ‘내 커리어’를 중시하고
보상과 승진보다는 ‘(자신의) 성장’에 몰두하는 MG들이 이번 시위를 이끌고 있었다.
표정도 마네킹처럼 심각하거나 결연하지 않았고 삼쾌(유쾌 통쾌 상쾌)했다.
소풍 나온 듯 소담스러운 파티가 곳곳에서 열렸고 짜인 각본도 없었다.
무대와 관중석의 구별도 사라졌다.
모두가 주인공이고 모두가 관객이었다.
시위 현장만이 아니다.
머잖아 장례문화도 바뀔 것이다.
현재 장례를 주도하는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61~79세)와 X세대(45~60세)다.
2030년대 초부터 MG에 바통 터치된다.
6년 후다.
혼사는 부모의 잔치,
초상은 자식의 잔치라 한다.
장례 결정권이 부모가 아닌 자식에게 주어진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뀐다.
MG는 기존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복잡한 절차를 거부한다.
간결함과 실용성을 선호한다.
가치 중심이고 개인화된 경험을 중시한다.
자연히 작은 장례가 대세가 된다.
말 그대로 ‘소담 장례’다. 형식보다 본질, 거창함보다 진정성을 추구한다.
화려한 조화(弔花), 긴 조문 대신 작고 정성스러운 추모 공간을 마련할 것이다.
획일화된 장례식이 아니다.
고인의 삶과 가치관을 반영한 맞춤형 장례로 바뀐다.
‘룸곡’. 무슨 말일까.
의문부호를 찍는 순간, 꼰대다.
MG에게 룸곡은 ‘눈물’이다.
비틀기를 넘어 뒤집는다.
언어조차 풍자와 위트로 작동한다.
당연히 이들에게 장례는 죽고 난 다음이 아니다.
죽기 전이다.
스스로 ‘여명(餘命)’을 선고하는 의사라 부르는 박광우 교수(가천대)가 고백했다.
“전국 1102개 장례식장 중 병원 장례식장이 637개(2022년 기준)예요.
사람을 살리는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 것도 이상하죠.
망자는 보지도 못할 장례식을 왜 크고 화려하게 합니까.
저는 죽기 전에 저를 아는 사람들을 불러 ‘생전 장례식(餘生宴)’을 하고 싶어요.”
박 교수가 정의하는 웰다잉은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죽음이다.
20여년간 죽음 가까이 있는 환자를 지켜보았다.
어림잡아 4000명쯤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는 죽음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했다.
하이패밀리가 지난 연말 조사한 일반인 353명을 대상으로 ‘엔딩파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MG의 참여가 40%를 상회했다.
결과는 ‘하고 싶다’(40.2%)
‘매우 하고 싶다’(21.8%) 순이었다.
10명 중 6명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부정적 응답은 10명 중 1명꼴이었다.
엔딩파티를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소중한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어서’(50.8%),
‘생애 마무리’(15.8%)였다.
‘허례허식이 싫어서’(9.3%)가 그다음을 따랐다.
오래 전 한 기자가 내게 ‘장래 희망’을 물었다.
“제 장래 희망은 ‘장례’ 희망인걸요.”
그 장례 희망이 MG를 통해 피어나고 있다.
죽기 전 장례를 희망했던 박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아니다.
MG를 이끄는 선봉에 있다.
그뿐인가.
MG의 막내 격인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은 아예 ‘장례 희망’을 노래한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신바람 나게 춤추던 그가 마지막에는 관 위에 눕는다.
관에는 ‘레스트(Rest)’가 아닌 ‘에러(Error)’가 새겨졌다.
디지털 시대에 익숙한 단어다.
기술적 결함이나 시스템 오류를 뜻한다.
이찬혁이 죽음에 똥침을 놓는다.
통쾌하다.
이문재 시인은 말했다.
“죽음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삶이 팽팽해진다”고.
봄을 이겨낼 겨울은 없다.
밀레니얼 세대,
거기 ‘죽음의 탄생’이 있었다.
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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