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실시된 한국중공업 입찰전이 두산 컨소시엄의 승리로 끝나면서 10년 넘게 끌어온 한중 민영화가 마무리됐다. 이로써 1962년 현대양행으로 출발한 한중은 80년 11월 공기업화된 이후 20년 만에 다시 민간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한중을 넘겨받는 두산도 그간의 소비재 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길고도 힘들었던 민영화=한중 민영화 작업이 본격 거론된 것은 한중이 경영악화로 자본잠식 상태가 심화됐던 지난 88년부터다. 정부는 당시 두차례의 공개입찰을 실시했지만 모두 유찰됐다. 이후 주식시장의 침체로 민영화가 유보됐다가 98년 8월 지분 51% 이상을 매각키로 결정하고 민영화를 재추진했다.
지난해 초에는 7대 사업 구조조정 일정에 따라 발전설비 및 선박용 엔진 일원화 작업이 선행됐고 4대 재벌과 외국 업체를 배제한 채 경영권 지분에 대한 입찰에 돌입했다. 한중 관계자는 “오랫동안 내수시장을 독점한 결과 대외경쟁력에 한계가 있었다”며 “90년대 이후 외국 발전설비업체들의 가격 파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내외 민간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민영화만이 대안”이었다고 말했다.
두산이 낙찰자로 결정되면서 한중 민영화는 고비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낙찰가가 당초 예상치(5천억원선)보다 낮은 3천억원에 낙찰된 것과 관련, 정부가 민영화에 집착한 나머지 ‘과도하게 고개를 숙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중 민영화는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한전 등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두산, 재도약하나=두산에겐 한중이 갖는 의미가 크다. 당장 재계 서열 12위에서 8위(자산규모 11조6천억원)로 뛰어오른다. 더 큰 의미는 두산이 재도약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두산 박용만 사장은 이날 “한중 인수로 향후 두산은 소비재와 중간산업재를 양대 축으로 하는 초우량 기업군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1896년 서울 동대문에서 ‘박승직상점’이란 상호로 출발한 두산은 올해로 창업 104년을 맞는 국내 최고(最古) 기업이다.
60년대 두산건설·두산음료·두산기계·두산전자 등을 차례로 설립, 사세를 확장했으나 확장경영으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면서 95년부터 자산매각을 통한 유동성 개선 등 구조조정에 착수, IMF 기간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함을 보여줬다.
두산은 일단 이번 한중 인수로 발전설비 분야와 두산의 공작기계·플랜트사업부문, 화학기계 분야를 접목시켜 사업다각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두산 관계자는 한중의 운영계획에 대해 “선진화된 기업 지배구조를 도입, 철저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면서 한중을 수익성 있는 사업구조로 개편해 2년 내에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공업 분야의 국제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소비재 중심기업인 두산이 험난한 파고를 제대로 헤쳐나갈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준호·김준기기자 juno@kyunghyang.com〉
▲88년 9월=민영화 발표(이후 2차례 유찰)
▲93년 12월=증시 침체 등으로 민영화 유보
▲98년 8월=51% 이상 지분 매각 통한 민영화 방침 확정
▲99년 1월=현대와 삼성, 선박용 엔진 부문을 한중에 이관
▲2000년 9월30일=미 웨스팅하우스와 전환사채(2천5백만달러) 매각 MOU 체결
▲10월25일=증시 상장 및 지분 24% 공개 매각(우리사주 10%, 일반 공개 14%)
▲11월17일=두산과 스페코 컨소시엄 입찰 적격자 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