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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한국중공업 본문

부르심의 축복/동행 in Masan 1981

한국중공업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8. 7. 4. 23:28

한국중공업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B
Quality score:Good

한국중공업(韓國重工業)은 발전설비, 산업설비, 선박용 엔진 등을 생산하는 공기업이었다. 다시 민영화되기 직전 정부출자기관 중 한국산업은행(43.8%), 한국전력공사(40.5%), 한국외환은행(15.7%)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제기된 공기업의 경영합리화 과정에서 1차 민영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지분매각을 추진하였으며 2000년 두산그룹에 인수되었고, 사명을 두산중공업으로 변경하였다. 본사 소재지는 현재의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두산볼보로 22(귀곡동 555)였다. 2022년 3월 29일 이후 사명이 두산에너빌리티로 변경되었다.

 

연혁

  • 1962년 9월 20일 민영기업 현대양행(주) 설립
  • 1980년 10월 한국중공업(주)로 사명 변경(공기업 전환)
  • 1998년 7월 완전민영화 방침 발표
  • 2000년 12월 두산그룹이 인수하면서 다시 민영화
  • 2001년 3월 두산중공업(주)로 사명 변경
  • 2005년 1월 대우종합기계(주) 인수
  • 2022년 3월 두산에너빌리티로 사명 변경
 

각주

  1. 이슈분석 - 한국중공업 민영화 관련《LG투자증권》2000년 9월 22일 장근호
  2. 두산그룹의 ‘꿩먹고 알먹기’《한겨레21》2003년 10월 30일 정남구 기자
  3. 한국중공업(주)[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브리태니커 백과사전》
  4. 한국중공업 20년만에 민영화《경향신문》2000년 12월 12일 이준호·김준기 기자

 

 

한국중공업(주)

Korea Heavy Industries and Construction Co., Ltd.
  •  

요약 국내 발전소 설비 독점공급업체이며, 발전설비 및 대규모 산업 플랜트업을 주요사업으로 하는 종합 중공업 설비업체.

한국중공업(주)은 정부투자기관이 출자한 공기업이었으나 2000년 12월 두산그룹에 인수되어 민영화되었다. 1962년 9월 (주)현대양행의 상호로 설립되었으며, 1976년 11월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인 창원종합기계공장을 착공했다. 1978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연산 150만t 규모의 지잔시멘트 공장을 건설했으며, 인도네시아 누산타라 시멘트 공장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대규모 시멘트 공장,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 등지에 해수담수화공장을 수주·건설했다.

1980년 8월 정부의 중화학 투자조정에 의거하여 발전설비 제작 및 건설중장비 생산을 독점하게 되었고, 1980년 10월 한국전력공사·한국산업은행·한국외환은행의 자본참여로 공영화되면서 한국중공업(주)으로 상호가 변경되었다. 이후 1982년 6월 창원종합기계공장 준공, 1984년 6월 선박용 엔진 조립공장 준공, 1992년 11월 서인천 복합발전소를 준공했다. 1998년 공기업 경영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윤영석 사장이 취임했다. 1999년 발전설비 및 선박용 엔진 사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HSD엔진(주)을 출범시켰다. 20여 년 간 국내외에 걸쳐 원자력발전소 6기, 수·화력 발전소 93기 등 총100여 기 약 3만MW의 발전설비를 공급했으며, 60여 기 약 2만 5,000여 MW의 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다. 또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추진하고 있는 북한 경수로사업에 주기기 공급업체로 지명되었다. 주요 사업내용은 발전설비와 관련해서는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와 해외수출, 산업설비 플랜트와 관련해서는 핵심기자재 생산·수출, 건설사업과 관련해서는 국내발전소·지하철·고속철도·고속도로 건설 및 국내외 산업플랜트 건설, 선박용 엔진사업과 관련해서는 조선 관련 핵심부품 생산·수출, 주단조 사업과 관련해서는 국가 전산업의 기초소재 생산·공급 및 주단조품 해외수출 등이다. 1997년 10월 공기업 민영화법이 제정되고 1998년 7월 공기업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완전민영화 방침이 발표된 지 2년여 만인 2000년 12월에 (주)두산과 두산건설로 구성된 두산 컨소시엄에 인수되어 민영화되었다. 본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귀곡동 555번지에 있다.

한국중공업

한국중공업 노조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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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공업 20년만에 민영화

12일 실시된 한국중공업 입찰전이 두산 컨소시엄의 승리로 끝나면서 10년 넘게 끌어온 한중 민영화가 마무리됐다. 이로써 1962년 현대양행으로 출발한 한중은 80년 11월 공기업화된 이후 20년 만에 다시 민간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한중을 넘겨받는 두산도 그간의 소비재 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길고도 힘들었던 민영화=한중 민영화 작업이 본격 거론된 것은 한중이 경영악화로 자본잠식 상태가 심화됐던 지난 88년부터다. 정부는 당시 두차례의 공개입찰을 실시했지만 모두 유찰됐다. 이후 주식시장의 침체로 민영화가 유보됐다가 98년 8월 지분 51% 이상을 매각키로 결정하고 민영화를 재추진했다.

지난해 초에는 7대 사업 구조조정 일정에 따라 발전설비 및 선박용 엔진 일원화 작업이 선행됐고 4대 재벌과 외국 업체를 배제한 채 경영권 지분에 대한 입찰에 돌입했다. 한중 관계자는 “오랫동안 내수시장을 독점한 결과 대외경쟁력에 한계가 있었다”며 “90년대 이후 외국 발전설비업체들의 가격 파괴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내외 민간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민영화만이 대안”이었다고 말했다.

두산이 낙찰자로 결정되면서 한중 민영화는 고비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낙찰가가 당초 예상치(5천억원선)보다 낮은 3천억원에 낙찰된 것과 관련, 정부가 민영화에 집착한 나머지 ‘과도하게 고개를 숙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중 민영화는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한전 등 주요 공기업의 민영화 작업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두산, 재도약하나=두산에겐 한중이 갖는 의미가 크다. 당장 재계 서열 12위에서 8위(자산규모 11조6천억원)로 뛰어오른다. 더 큰 의미는 두산이 재도약의 기회를 잡았다는 것이다.

두산 박용만 사장은 이날 “한중 인수로 향후 두산은 소비재와 중간산업재를 양대 축으로 하는 초우량 기업군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1896년 서울 동대문에서 ‘박승직상점’이란 상호로 출발한 두산은 올해로 창업 104년을 맞는 국내 최고(最古) 기업이다.

60년대 두산건설·두산음료·두산기계·두산전자 등을 차례로 설립, 사세를 확장했으나 확장경영으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면서 95년부터 자산매각을 통한 유동성 개선 등 구조조정에 착수, IMF 기간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함을 보여줬다.

두산은 일단 이번 한중 인수로 발전설비 분야와 두산의 공작기계·플랜트사업부문, 화학기계 분야를 접목시켜 사업다각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두산 관계자는 한중의 운영계획에 대해 “선진화된 기업 지배구조를 도입, 철저한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하면서 한중을 수익성 있는 사업구조로 개편해 2년 내에 영업이익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공업 분야의 국제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소비재 중심기업인 두산이 험난한 파고를 제대로 헤쳐나갈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준호·김준기기자 juno@kyunghyang.com〉

▲88년 9월=민영화 발표(이후 2차례 유찰)

▲93년 12월=증시 침체 등으로 민영화 유보

▲98년 8월=51% 이상 지분 매각 통한 민영화 방침 확정

▲99년 1월=현대와 삼성, 선박용 엔진 부문을 한중에 이관

▲2000년 9월30일=미 웨스팅하우스와 전환사채(2천5백만달러) 매각 MOU 체결

▲10월25일=증시 상장 및 지분 24% 공개 매각(우리사주 10%, 일반 공개 14%)

▲11월17일=두산과 스페코 컨소시엄 입찰 적격자 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