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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펌) 사진으로 본 경남 마산 백년의 역사 현장 본문

부르심의 축복/동행 in Masan 1981

펌) 사진으로 본 경남 마산 백년의 역사 현장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7. 10. 26. 21:32

사진으로 본 경남 마산 백년의 역사 현장

 

 

 


▲마산 화력발전소(1968년 모습):현 월영동과 해운동 지역.

  1956년 4월 15일에 준공되었다. 

이 건설을 계기로 국내의 전력구조는 수력발전 중심에서

  수력 및 화력 발전의 구조로 변화되었다.

또한 국내의 무연탄을 주연료로 사용함에 따라

  광업의 활성화와 고용효과를 가져왔다.

이처럼 영남지역 전력공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으나,

설비의 노후화로 1982년 12월 폐쇄되었다.

 

 


▲옛 화력발전소 터의 현재모습(월영동과 해운동 일대).

  멀리 돝섬 건너편 삼귀해안이 매립되어 두산중공업이 들어 서 있다.  

 


▲(주)한일합섬(1970년대 의 모습):양덕동 일대.

   1964년 설립되어 우리나라 섬유산업을 선도해 온 한일합섬은

국민의 생활개선은 물론 경제 발전기에 제조와 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 왔다.

   한일합섬은 1960년대 당시 ‘신비의 섬유’라 불리는

아크릴 섬유를 국내 최초로 생산하기 시작해

해외 수출의 길을 열었으며,

1973년 단일 기업으로는 국내 최초로 1억불 수출탑을 수상하였다.

   나아가 79년에는 4억불 수출탑을 수상 하며 섬유산업을 선도해 왔다.

   한때 30,000여명의 고용 효과를 가져온 마산의 대표기업이기도 했다.

   2006년 동양그룹에 흡수되고 역사의 한폐이지를 남기고 사라졌다. 

 


▲한일합섬 옛터. 지금은 메트로시티 아파트 단지가 들어 섰다.

 

 

 

▲ 몽고식품 창업지. 몽고간장으로 이름이 알려진 옛터이다.

 

 


▲해병대 벽암지 유격훈련 터(봉암 수원지 입구):

   1966년9월 부터1979년 3월까지 무적해병대를 양성한 유격훈련 장소이다.

   진해 해병대 교육사령부가 포항으로 이전 되어 현재 그 흔적만 남아있고,

   주위는 시민 산책로로 단장되어 있다.

 

 


▲옛 KBS 마산 방송국. 현 마산 완월동 대동 한마음 아파트 단지.

  1942년 2월에 개국한 KBS 마산방송국은 1960년 7월 완월동의 청사에서

  1987년 6월 창원 신월동의 현 사옥으로 이전 될때까지의 모습이다.

 

 

 

▲ 마산 해인대학(현 경남대학 전신). 현 마산 완월동 경남아파트 단지.

   1956년 마산 완월동에 해인대학이 유치되었다.

   뒤에 한마학원인 경남대학이 인수하여 월영동에 이전 할때까지 마산 유일의 대학이었다.

 

 


▲마산 외교구락부(마산 두월동):

  1950년대와 1960년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

  6.25전쟁중 피난지였고 전쟁중 미군의 주둔과 부산항외에 유일한 피점령지 항구였던

  마산항으로 인해 선원들의 휴식처이기도 했다. 

사교클럽이었던 외교구락부를 중심으로

  두월동, 반월동, 월남동 일때는 굉장히 번창했다고 한다.   

 


▲마산 외교구락부 옛 터(마산 두월동 1가)

 

 


▲마산 반공포로수용소 터(마산 해운동):

  6.25전쟁중 반공포로를 수용한 자리이다.

이 곳도 곧 아파트가 들어 설 예정이라고 한다.

 


▲마산 가포동에 있는 국립마산병원(옛 마산결핵요양소):

  1946년 개원. 결핵전문 의료 기관이며,

1960년대 심금을 울린 가요 '산장의 여인'이

이곳에서 요양중인 한 여인의 애틋한 사연이 위문공연차 왔던

작사가 '반야월'에게 알려지면서 노래가 만들어졌다.

 

 


▲가요 '산장의 여인'에 나오는 산장 터. 국립마산병원 맞은편 숲속에 있다.

 


▲곳:마산 양덕동 한일타운 3차 아파트 뒷산 등산로 입구.

  이산(반월산)에 있는 광산이라 불렀으며

1960년대 후반까지 철과 구리를 생산한 지역이다.

 

 


▲마산 깡통골목(두월동, 반월동):

  1950년 6.25전쟁으로 전국에서 흘러온 피난민들이

당시 최고의 번화가였던 반월시장  하천위에 판자촌을 짓고,

인근 부근에 주둔중인 미군부대(내 기억으로는 현재 월영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나오는 깡통에 담긴 전투식량(시레이션)으로 만든 꿀꿀이죽과 깡통을

  파는 상가로 형성되어 깡통골목으로 불리게 되었다. 

  도시정화사업에의해 판자촌은 철거되고 하천을 복개하여 시민휴식처로 바뀌었다. 

 


▲1983년 10월 봉암동과 신촌동을 연결하는 봉암대교가 건설되기전에

봉암나루터를 연결하는 구교 입구에 세워진 봉암교 표지석. 

봉암 꼬시락과 함께 사라진 추억의 다리를 생각하게 한다. 

 


▲국군 의무병과 요람 터(월영동 월영마을 아파트 단지):

   6.25전쟁후 수도육군병원이 이곳으로 옮겨와 자리를 잡았다. 

   그후 36육군병원, 26육군병원, 마산국군 통합병원, 육군군의학교로 수많은 간호장교,

   군의관, 위생병을 배출한곳이다.

   1973년 12월 현 합포구 진전면으로 이전 되었다.

 

 


▲1970년 마산 가포해수욕장. 1974년 폐쇄 될때까지 마산의 유일한 유원지였다.

 

 


▲가포해수욕장 터. 현재 매립되어 신항만 물류단지로 변신했다.

 

 

 

▲ 옛 가포해수욕장 입구에 추억을 기리고자 조그만 기념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사라져 버린 추억속 마산의 극장들...

  60년,70년,80년대의 전성기를 구가하든 마산의 극장은

복합상영관 멀티플렉스에 밀려 2008년 강남극장을 끝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연인들의 마음이 설레는 만남의 장소...

  영화상영이 끝난후 쏱아져 나오던 수많은 인파...

  자리가 없어 서서 보면서도 보고 또 보고...

  대한뉴스에 앞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기립...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

  지금은 그런 풍경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마산태양극장:마산 상남동

 

 


▲마산 태양극장 자리에는 NICE TOWER 빌딩이 서있다. 곳:마산 상남동

 


▲중앙극장 자리에는 가구판매장이 들어섰다.(곳:마산 추산동) 

 

 

▲제일극장의 옛 모습:마산극장과 함께 신마산 번화가의 상징이었다.

 

 


▲제일극장 자리에는 음식점과 학원이 들어섰다. 곳:마산 두월3가. 창원 소하천 옆.

 

 

 

▲ 1960년대 옛 시민극장

 

 


▲창동의 시민극장이 있었던 자리.

 

 


▲마산극장:제일극장과 함께 신마산 번화가의 상징이다.

 

 


▲원룸등 숙박 빌딩으로 변한 마산극장. 곳:마산 중앙동1가 반월시장 입구.

 

 


▲동보극장 옛터:동보스크린 골프장이 동보극장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강남극장의 옛 모습.

 

 


▲강남극장은 주차장으로 변했다. 곳:마산 추산동.

 

 

▲마산 3.15극장의 옛 모습.

 

 


▲3.15극장에는 마산노인종합복지관이 들어섰다. 곳:마산 서성동

 

 


▲ 전기불터. 곳:마산합포구청.

   이 곳 불터는 1911년 5월13일 이 자리에 있었던 발전소에서

마산지역에 처음으로 전기를 만들어 보냈던 곳이다.

 


▲ 마산시 타임캡슐. 곳:마산합포구청.

   마산,창원,진해 통합 기념으로 구 마산시청사(현 마산합포구청)에 타임캡슐을 묻어두었다.

 

 


▲ 마잿고개.

   무학산에서 천주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이며 내서읍과 회성동을 이어주는 고개이다.

   1530년 '신승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학산의 원래 아름은 두척산(말斗 자尺)이다.

   斗는 한말 두말의 말을 의미하며, 尺은 자라는 뜻이고 무학산에서 뻗어내려온 고개를

   우리말로 말재가 마재로 바뀌어 마잿고개라 부른다. 두척고개라고도 한다.

 

 


▲ 바냇들. 현재 마산종합운동장, 신세계백화점이 있는 산호동 일대.

   60년대만 하더하도 이지역은 갈대밭이 무성한 늪지역이었으며 한방약초인 '반하'가

   많이 자생했다고 한다. 반하가 바나 바내로 불리면서 이일대를 바냇들이라 한다.

 

 


▲ 밤밭고개, 마산에서 통영 진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밤밭이 많아 밤밭고개라 하는데 지금은 밤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 봉오재. 석전사거리(옛 석전삼거리). 

   산복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대구에서 마산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관문이었다.

   고개 뒷산에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이라 부르고 고개를 봉화재에서 봉오재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