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부르심의 축복/처음사랑 in Jumunjin 1972 (39)
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주문진 무장공비침투사건 ( 강원 도민 일보 )기자명 정인수 입력 2017.03.20 댓글 0▲ 정인수 ( 전 도의원 ) 1969년 3월16일 0시50분경.주문진항 앞바다는 칠흙 같은 어둠에 쌓여 있었다.통금을 넘긴 시간 고요한 정적만이 감도는 읍내를 칼빈총과 엠원총으로 무장한 대위 계급의 장교와 하사관 계급도 섞여 있어 영락없는 대한민국 국군이었다.그들은 강릉경찰서주문진지서(현 북부지구대) 바로 건너편 강남여인숙에 들이 닥쳤다.이어 각 방을 열고 투숙객을 검문했다.공무원에게는 공무원증을 민간인에게는 주민등록증을 빼앗았다.그들은 여인숙을 나와 당당하게 에둘러 주문진지서를 피해 눈길을 밟으며 선창가 인근에 위치한 수상경비소(오늘날 해양경찰파출소)에 들이 닥쳤다.임검소에는 경찰관 2명과 사환 1명이 근무했다..
태국과 선교지를 써핑하다 고향의 모습은 어쩔까 하고 찾아본 이미지 몇 장을 가져와 봤읍니다
태백산호를 아시나요? 수평선(전경찬40기)추천 0조회 1616.06.10 23:09댓글 0 북마크공유하기기능 더보기 주문진 수고 실습선 태백산호 아시나요? 옛 모교 솔밭에 있는 위령비 한번쯤은 보셨스리라 생각합니다. 1972년 11월 28일 주문진수산고등학교 실습선 태백산호는 학생과 선원 등 15명을 태우고 주문진항을 떠났다가 귀항 도중 갑작스런 풍랑을 만나 강동면 정동진해상 앞 15마일 해상에서 침몰하여 탑승했던 전원이 희생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강원도교육감은 위령비를 세우고 희생 학생 3명의 개척정신을 후배들에게 길이 전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조선일보 신문에 나온 기사 캡쳐 해 보았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내가 1학년 때의 일이였습니다. 그 때는 도시로 진학하고 싶었는데 실력..
무엇이나 할수 있다는 젊음이 있던 시절... 그러나 할수 있는 것이 너무 부족했던 70 년대를 살며 함께 부딪히며 울고 웃던 친구들 ... 그러기에 서로를 잊어가며 삶을 살아야 했던 아픔이 크다. 그리고 그 아픔만큼 보고픔도 크다. 어디서 살든지 행복하고 건강ㅎ게 살아다오. 나의 친구들이여.....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리움도 같이 흐르며 지워지지 않는 유산으로 남는것 같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까까머리 학창시절의 그 친구들은 ....
19730217 입교19741224 세례, 김태범 목사 19750505 소풍 , 향호리 1974년 학생히 수련회, 연곡 소금강산 1975년 1월 졸업식날 학생회 졸업예배 고등부 졸업생 1975년 아동부 소풍 19750606 동지방회 체육대회 19760505 아동부 소풍, 교사 1977년 여름성경학교 1978년 군종사병시절 , 행정반에서 첫 휴가와서 GOP 근무, 행정반 식구들 영산강 통문에서 19811216 마산 갈릴리 성결교회 1992년 중앙 성결교회 청년 수련회
펌) 주문진 중학교 전경 ( 좌측 나무뒤 교실이 3학년 5반 교실이였을껄 ^^*) 우리 학교 다닐적 주문초등학교 ( 왼- 6학년때 교실, 중우- 4학년때 교실, 우2층-5학년때 교실) 현제 있는 터미널 이긴 한데 처음 옮겼을때 촬영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