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본문
20110321 (월) 두렵고 떨림으로...
시편 2 : 1 ~ 12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HNR)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HNR)
2:11 Serve the LORD with fear and rejoice with trembling. (NIV)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멧세지를 주시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맘에서 나오는 두려워하며 떠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복함의 시작이요 이를 통해 즐거워함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은 사랑이며 생명이기에 준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태여 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가?
정의의 하나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정의로운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의로운 자가 되기를 갈망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배워갈수록 주님을 알아 갈수록 내가 정의롭지 못함이 드러나고 볼품없는 자로 남는 것입니다.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을 깨달기에는 엄청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내 인생의 갈등이 나를 고민케 하며 나를 힘들게 할 즈음에 주님의 훈련이 시작되었고
주님의 종이 아닌 아들로 나를 만나주시고 깨달게 하시며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은 자녀로 삼기를 원하시는데 정의를 즐겨하는 나의 옛사람은 종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경외함이란 정의라는 이름하에 경직된 질서인줄만 알았습니다.
경외란 두려움의 하나님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요 결과물인 줄 알았습니다.
좀 더 많은 분량의 수고함이 보일 때에는 스스로 자랑스러워지는 교만이 쌓여 갔습니다.
내가 짊어지고 가는 무거운 등짐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면 두려워하고 의기소침해져 낙망합니다.
참으로 바보같은 모습이 나의 현실 이였지만 그것을 나의 의로 여김이 됨을 깨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경외함이란 사랑함입니다.
아버지의 존엄함과 어머니의 부드러운 사랑이 함께하는 온전한 사랑의 흐름이 경외함 이였습니다.
내가 정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이 정의로운 것이며
그 정의로움은 나약하고 힘없는 자를 돌보시는 사랑의 흐름 이였습니다.
그리고 쓰임 받는 자들이 축복된 자들이요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쓰임 받는다는 것은 그 분의 역사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에 기쁨이 충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으시는 주님의 사랑이 흘러 섬기는 아들에게 부여된 나눔의 기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피조된 인간이 만들 수 없는 것들이기에 창조주 야훼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떨 수밖에 없고, 깨달은 자는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눈길이 머무는 땅
주님의 사랑이 머무는 땅
주님의 사랑하시는 백성을 향해 나아가고자 함은 주님의 의지이시며 사랑임을 고백합니다.
부족하고 어리지만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시며 맡기시는 분이 창조주 야훼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며 나아갑니다.
그곳에서 주님의 의와 사랑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사랑, 주님의 어여뿐자가 되기를 묵상합니다.
그 분이 이 하루를 다시 열어 주시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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