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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찬양의 예배를 감당하는 하루를 누리게 하소서 본문

부르심의 축복/광야에서 거닐다 2010

찬양의 예배를 감당하는 하루를 누리게 하소서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0. 9. 30. 08:41

20100930 (목) 찬양의 예배를 감당하는 하루를 누리게 하소서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개역개정]

엡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표준새번역]

엡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현대인]

Eph.1:3 Praise be to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o has blessed us in the heavenly realms with every spiritual blessing in Christ. [NIV]

 

창조주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나를 예비하셨다고들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늘의 모든 영적인 복도 역시 그 때에 함께 준비 하셨음을 말씀 하십니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오늘의 믿음에 연연하듯 하늘의 복을 지금의 나의 믿음의 분복으로 받고자 함을 주장이나 하듯 복을 구하며, 현실에 나를 맞기며 삶을 추구한다.

말씀은 복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을 이미 주셨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그 복을 보는 눈이 어두워져 볼 수 없고 찾을 수 없어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말씀에서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을 찬양할 때 복을 누리는 은혜를 얻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건적인 것이기에 말도 안 되는 말인 것 같아 보이지만 말씀으로 우리에게 보이시는 또 다른 은혜의 열쇠이기에 깨달아 누리는 자 만이 얻는 귀한 열매인 것이다.

나는 어떠한가?

아직은 유동적이다.

내 기분이 내키는 대로 나의 감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깊은 묵상이 없기에 주님의 심오한 말씀을 깨닫는 은혜를 누리지 못함도 있다.

주님 앞에 머무른다고는 하나 수박 겉만 맛보기를 하 듯 겉치레에 불과하다.

아직 주님의 마음을 온전히 바라지 못하고,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찬양을 틀어 놓지만 듣고만 있을 뿐이고, 따라 흥얼거릴 때가 전부이기에 내 것의 찬양이 아니라 남의 것을 구경하며 듣는 입장만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 역시 주님의 감동하심으로 함께 누려야 할 것들이지만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아픔이다.

어제 누린 은혜요 기쁨의 찬양이 오늘은 멀리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보며, 아직은 찬양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는 마음이 짙어 온다.

어제의 찬양이 오늘도, 내일도 은혜로 내가 높여야 할 찬양의 제사이고, 예배로 만나져야 하는데.....

같은 찬양인데도 어제 부를 때의 마음과 오늘 부를 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은 아직도 편식하는 나의 믿음이기에 나를 더 내려 놓아야 할 것이다.

찬양의 기교를 원하시는 주님이 아니기에 내 입술을 벌려 주님을 찬양하며,

첫사랑의 애틋함이 충전된 불변의 믿음으로 부르는 세레나데가 기뻐 받으시는 찬양의 예배라는 마음을 주신다.

온전한 찬양의 예배를 드릴 때 우리의 어두운 눈이 열리고 온전히 그 분의 나라와 의를 볼 수 있기에 우리의 은혜와 축복의 분깃도 바라 볼 수 있다는 마음을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