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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4·3과 5·18이 개인에 가한 폭력, 서정적 문체로…한강의 작품세계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24. 10. 11. 18:04
 

 

최재봉 님의 스토리
 

4·3과 5·18이 개인에 가한 폭력, 서정적 문체로…한강의 작품세계

  • 수정 2024-10-11 08:10
  • 등록 2024-10-10 22:40
  19시간  4분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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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세계 3대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은 한강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열린 신작 소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은 역사적 사건이 개인에게 가한 폭력과 상처를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로 형상화하는 데 특장을 보여온 작가다. 1980년 광주 5·18을 다룬 장편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을 형상화한 ‘작별하지 않는다’가 대표적이다.

한강 ‘소년이 온다’.

2014년 작인 ‘소년이 온다’는 200자 원고지로 700장 남짓한 비교적 짧은 분량이지만, 매우 압축적이고 밀도 높은 문장과 내용 때문에 두툼한 장편 못지않은 독서의 포만감을 제공한다. 이 소설의 핵심에는 5·18 당시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있다가 진압군의 총에 맞아 죽은 열다섯살 소년 ‘동호’의 죽음이 있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일곱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1장에서 동호를 2인칭 ‘너’로 지칭하는 것을 비롯해 장별로 시점과 화자를 달리해가며 그의 죽음과 그것이 남긴 파장을 조망한다. 동호와 마찬가지로 사태의 와중에 죽은 동호 친구 정대, 생전의 동호와 함께 도청 상무관에서 주검을 수습하는 일을 했던 은숙 등 주변 인물들이 동호의 삶과 죽음이 지닌 의미를 다각도로 드러낸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인용한 부분은 5·18 뒤 가까스로 들어간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뒤 출판사 편집 일을 하던 은숙이 편집 작업을 했으나 책으로 출간되지는 못한, ‘광주’를 빗댄 희곡의 무대 공연을 보면서 동호의 죽음을 떠올리는 대목이다. 역시 은숙이 편집했으나 검열에 걸려 빛을 보지 못한 문장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소설의 핵심을 담고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이 2021년에 낸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의 상흔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소설가 경하와 동갑내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선 두 여성을 중심에 놓고 진행된다. “그 도시의 학살에 대한 책을 낸” 뒤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던 경하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온 상태. 그는 눈 내리는 산등성이에서부터 벌판에 걸쳐 마치 묘비처럼 수천그루 검은 통나무들이 심겨 있고 나무들 뒤로는 봉분들이 엎드려 있는 사이를 걷다가 갑자기 차오른 바닷물에 무릎까지 잠기는 꿈을 꾼다.

경하는 이 꿈 역시 다른 악몽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소설로 쓴 도시의 학살에 대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사진과 영화 일을 하다가 어머니를 돌보고자 고향 제주로 내려가 목공 일을 하는 인선과 함께 그 꿈을 영상 작업으로 옮기기로 의기투합한다. 그러나 서로의 일정과 형편이 맞지 않아 작업은 몇해 동안 진척이 없는데, 어느 겨울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해 입원한 인선의 당부로 갑자기 제주로 내려가게 된다. 어머니도 돌아가신 뒤라 집에 혼자 남게 된 앵무새를 보살펴달라는 것. 폭설 속에 가까스로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가 환상 속에서 4·3 피해자이자 생존자였던 인선 어머니의 지난 삶을 만나는 이야기가 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한강은 이 작품을 두고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책을 내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소설 앞부분 두 쪽에 걸쳐 서술된 꿈은 제가 실제로 꾸었던 꿈이고, 2014년 6월 말 즈음에 썼던 거예요.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이나 책으로 낸 뒤에 계속 악몽을 꾸었는데, 이것 역시 광주에 관한 꿈이라고 생각했지요.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게 어떤 소설의 시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작가 특유의 시적인 특성이 돋보이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처음에는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소설가 경하를 주인공 삼은 소설인 듯 보이다가 그 친구인 인선의 이야기로 중심이 옮겨 가고 결국은 인선의 어머니 강정심이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작품이다. 강정심은 4·3 때 잡혀가 실종된 오빠의 행방을 찾고자 평생을 분투했는데, 그의 분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한국전쟁 시기의 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수천명의 학살로까지 소설적 관심이 뻗어 나간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기는 한데, 앞선 작품인 ‘흰’이나 ‘희랍어 시간’은 물론 제 첫 장편인 ‘검은 사슴’과도 연결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저도 변형되었고, 그 소설을 쓰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어요. 그 소설을 쓰는 동안 제게 왔던 악몽과 질문은 제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되었죠.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많이 회복되었어요.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는 악몽이나 죽음이 제 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 소설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이 소설이 나를 구해 줬지, 그런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다음 소설은 이 소설과는 다른 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상] “역사적 트라우마 맞서”…한강,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한강은 시로 먼저 등단한 뒤 소설로 방향을 틀었으며, 약관 스물네살인 1995년에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펴내며 일찍부터 주목받았다. ‘여수의 사랑’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도저한 고독과 캄캄한 절망의 세계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고, 그런 특징은 두번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2000)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8년 첫 장편 ‘검은 사슴’을 냈고, 2002년 두 번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을 펴냈다.

2007년에 낸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채식주의자’는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주인공 영혜를 둘러싸고 영혜의 남편과 아버지, 형부 등이 가하는 유무형의 폭력, 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육식을 거부한 채 차라리 나무가 되기를 꿈꾸는 영혜의 모습을 통해 폭력의 본질과 위험성을 환상적 필치로 그린 작품이다. 데버라 스미스가 번역한 이 책의 영어판이 2016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세계적 권위를 지니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을 발표한 스웨덴 한림원 역시 이 작품이 한강의 국제적 명성을 높였다고 소개했다. 한강은 지난해 11월에도 ‘작별하지 않는다’로 권위 있는 ‘올해의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에 선정됐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