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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펌) 태국의 이해 본문

선교 EH국/태국 선교

펌) 태국의 이해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9. 9. 2. 11:25

제1장 태국의 이해

1. 태국의 일반적인 개괄

국호 - 싸이얌(1932년6월24일 이전), 타이랜드(Kingdom of Thailand-자유의 나라),

정치 - 입헌 군주국

면적 - 남한의 5배, 농경지 42%, 산간지 18%, 밀림지 26%

인구 - 6,500만명 80%가 농촌, 방콕에 20% 거주

문맹률 - 25%

국민소득 - $2,500 수준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언어 - 태국어

주변국가 – 버마(서쪽), 라오스(북동쪽), 캄보디아(동쪽), 말레이시아(남쪽), 안다만(서쪽), 태평양(남쪽)

 

 

2. 역사적, 종족적 배경

태국의 역사는 13C 수코타이 왕조부터 시작,

-그 전에도 군주들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들이 있어 왔다.

역사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태국인의 유래를 찾아본다.

(1) 몽고 알타이 산맥 (2) 중국 남부 지방 (3) 태국 남쪽 (4) 현 태국 땅

1대 왕국 수코타이 왕국 – 북부

  1. 1219년 퍼쿤씨인타랏왕 / 200년간 9대왕에 의한 통치 / 끄룽씨 아유타야와 합병
  2. 람캄행왕 시대와 현 지도는 비슷 / 1319년부터 쇠약

2대 왕국 끄룽씨 아유타야 왕국 – 중부

  1. 1350년 프라짜우 우텅이 쏨뎃프라라마티버디 1세왕으로 등극 /
  2. 417년간 33인의 왕에 의해 통치

3대 왕국 톤부리 왕국 Kingdom of Thonburi - 방콕

  1. 1967년 딱씬 장군이 버마에 멸망한 태국을 다시 세워 15년간 통치,
  2. 부하 장군 (짝끄리 왕조)이 죽이고 현 왕조를 세웠다.
  3.  

4대 왕국 랏따나꼬씬 왕국 – 방콕

  1. 1782년 카멘국 원정에 돌아온 장군이 프라람(라마) 1세란 왕명으로 등극하여 228년이 넘게 방콕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2. 9대왕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왕이 현재 왕이다. (83세)
  3. 근대화 시대는 4 (King Mongkut), 5(King Chulalongkorn) 대왕 시대에 크게 발전
  4. *List of Thai Monarchs

 

 

3. 사회적, 문화적 배경

태국 사회는 고대사회로부터 수코타이 시대, 아유타야 시대, 랏따나꼬씬 시대, 현대 사회로 구분 된다.

    1. 고대 사회 Traditional Society

6-7C 가정, 동네 수준의 사회 형성

3.2 수코타이 시대 Kingdom of Sukhothai

가정제도가 바로 사회제도로 되었는데 구성원은 왕, 관료, 평민, 노예 계층으로 나뉘었다.

3대 람캄행 왕이 카멘국과 버마국의 언어와 문자를 조정하여 타이 문자를 창안하여 사용하게 하였다.

 

3.3 아유타야 시대 Kingdom of Ayutthaya

사회의 중심은 사찰이었으며 교육 문화, 예술, 사회의 중심지가 되었다.

남자 아이는 14-15세에 입찰 수도하면서 학문을 배웠다.

사회 구성원은 왕과 왕족, 평민 노예로 구분되었다. 가정을 책임지는 모친 중심이 되어 모계사회가 되었다.

1-7대왕까지는 고유의 예술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8대왕부터 고유의 예술을 갖기 시작하여 21대왕까지를 제1기로 보고, 제2기는 22-30대까지, 제3기는 31대왕부터인데 이때에 태국어 교본(찐다마니)을 만들었다.

 

    1. 랏따나꼬씬 시대 Kingdom of Rattanakosin, Siam, Thailand

1-3대는 아유타야 시대와 동일하였으나 사회 구성원은 왕과 왕족, 귀족 또는 관료, 평민, 노예 등으로 구분되었다.

평민은 3종류였는데 프라이루엉(왕의 직속 일군), 프라이 쏨(왕족, 귀족에 속한 일군) 프라이 쑤웨이(돈, 지역 특산물로 부역을 대신하는 사람)

라마5세때 이런 노예 제도를 폐지되었으며 1932년 혁명으로 입헌군주제가 되면서 더 많은 개혁이 일어났다.

라마 4세는 즉위 전 27년간 승려생활을 하면서 불교 교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고 탐마윳 교단을 만들었는데 주변 국가에 까지 영향력을 끼쳤으며 영어를 구사하는 왕이었기에 왕궁에서 영어교육을 실시하였다.

쭈라롱꼰 대왕으로 알려진 5대왕은 한국의 세종대왕으로 비교되는 교육의 대가로 승려교육, 불교 경전 발간 승려제도 확립 등으로 유명하다. 그의 이름의 대학교는 태국 내 최고 수준의 대학교이다.

9대왕은 불교 경전을 완성하였다.

선교사들의 교육기관 설립의 자극으로 1871년 현대 국민교육이 시작되었다.

 

 
    1. 현대 사회.

랏따나꼬씬 4대왕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는 시기로 제 반면의 변혁을 이루었다.

3.5.1 태국의 사회구조(수팟뜨라교수)

a. 느슨한 사회(Loosely Structured Social System) b. 변화가 적은 사회

c. 농촌사회(Informal Society) d. 예절과 풍습을 기초로 한 사회

e. 교육 수준이 낮은 사회 f. 고향에 집착하는 사회

g. 계층사회(Class Structure)

 

3.5.2 태국인의 가치관(Values)

a. 개인 숭배 b. 어른 공경 c. 주인을 높임

d. 부모, 은혜 베푼 사람을 높임 e. 쾌락 주의 f. 편의 주의

g. 편안 주의 h. 물질 주의 i. 자유 주의

j. 개인 주의 k. 예식 주의 l. 중용주의

m.쉽게 잊음

 

4. 종교적, 신앙적 배경

태국인은 종교심이 강한 민족으로 고대로부터 신령숭배, 자연숭배, 미신숭배를 비롯하여 쁘라만교, 힌두교, 불교 신앙으로 다져졌다. 특히 불교 신앙이 주 신앙이지만 여기에 각종 미신과 타 종교의 신앙이 혼합되어 순수한 불교 신앙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기독교신앙도 이런 영향을 입어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지 못하여 태국에서의 포교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중에 있다.

 

각 시대별 종교 상황은 다음과 같다.

4.1 수코타이 시대

초대 왕부터 남부 라콘씨탐마랏 제국을 방문하여 불교 랑까옹 교리를 도입하였으며 람캄행 대왕은 불교를 흥왕하게 하였고 6대왕(리타이)은 자신이 승려가 되었다. 말기에 카멘국으로 부터 쁘라만교가 수입되어 불교 신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4.2 아유타야 시대

이 시대에는 불교, 쁘라만교에 천주교가 전래되었다. 8대왕이 입찰 수도하였으며, 31대왕까지 랑까 제국과 국교를 맺고 승려 훈련과 육성에 힘썼다. 쁘라만교는 태국의 예식을 주관하게 되었다. 천주교는 태국과 무역관계를 가지면서 제1대왕 시대부터 포교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3대왕 시대에는 폴투갈이 버마군의 침공 시 도와 승리하자 포교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으나 활발하지는 않았다. 27대왕 시대에는 불란서인들이 들어와 활발한 포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종교의 자유를 허락 받았다.

4.3 랏따나꼬씬 시대

역대 왕들은 불교 진흥에 앞장서 왔다. 라마 4세는 왕자시절 승려 수업을 받은 후 태국 불교가 의식과 이론에 치중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승려의 수행과 경건에 치중하는 탐마윳 종파를 만들어 불교 개혁에 힘썼다.

4.4 현대 시대

태국 사회는 신령숭배가 편만하였으며 힌두교 불고 쁘라만교가 사회의 신앙을 대변하고 있다.

4.4.1 불교

태국의 불교는 기원전 3세기에 전래되어 1985년 현재 31,939개처(국립은 167개)의 사찰이 있고 약 90%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풍습에 따라 남자가 만 20세가 되면 우기철에 3개월간 입찰 수도한다. 태국은 불교를 헌법에 국교라고 규정하지는 않았으나 불교와 태국인은 하나로 모든 태국인들의 생활에 기반이 되고 있다. 생활 그 자체가 국교임을 보여주고 있다.

4.4.2 이스람교

역사적으로 어느 시대에 전래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벌써 수코타이 왕국 시대의 비문에 이스람교의 신앙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이스람교도들은 두번째로 많은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는데 4.5%를 기록하고 있고 주로 남부지역의 4개도(나라티왓,빳따니,야라,싸뚠)를 중심하여 70%를 보유하고 있다

.

4.4.3 쁘라만-힌두교

쁘라만교의 전래는 인도에서 출발하여 카멘국을 거쳐 태국에 들어왔는데 특히 랏따나꼬씬 왕국 초기에 왕들에 의하여 신봉되어져 태국 사회의 예식으로 행해 지고 있다. 쁘라만교는 힌두교의 생가로 1925년 태국 내 협의회를 구성한 이래 3개처의 교당이 있다.

4.4.4 씩교

씩크교는 1894년경(라마 5세)에 태국에 전래되었고 1963년 정부의 인가를 득하고 활동하고 있다. 현재 15개처의 사찰에 10개처의 종교 사업체가 있다.

 

 

제2장 태국의 기독교

태국의 기독교는 천주교가 1555년에 개신교가 1828년에 전래되어 455년 또는 182년이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합하여 1%정도이다.

 

1. 태국 기독교 역사

1.1 복음 전래기 1828-1832

개신교의 처음 복음의 전래는 1828년 8월23일 구출라프(독일), 톰린(영국)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구출라프는 1832년 중국인 분띠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장로교 선교사는 1840년에 입국하여 19년만에 첫 수세자를 획득하였다.

1.2 교회 성장기 1833-현재

1.2.1 개척시대(1833-1851)

이 시기에 미국침례교회(1833/존 테일러 존스), 아메리칸 보드(1834/찰스 로빈손, 스테펜 존슨), 미국장로교회(1840/윌리엄 피 부엘) 등이 입국하여 활동 하였다.

1.2.2 구축시대(1851-1883)

1861년까지는 방콕지역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활동하였다. 장로교회는 펫부리와 아유타야에 선교본부를 설치하였고

1867년에는 멕낄봐리선교사가 북부 치앙마이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태국인과 라오스인을 상대로 활동하였고

1880년에는 카렌족 선교로 확장하였다. 선교 55년 후에는 476명(북부 100명, 남부 190명, 펫부리 110명, 카렌족 50명)의 수세자를 획득하였다.

이 시대에 쭈라롱꼰 왕에 의하여 1878년 종교의 자유(The Proclamation of King Chulalongkorn’s Edict of Religious Toleration)가 선포 되었다.

1.2.3 대 성장시대(1884-1914)

북부 맥낄봐리선교사의 사역이 두드러졌는데(80%차지) 1914년까지 26개처 교회에 6,934명의 결신자를 획득하였다. 그러나 방콕 및 남부 지역의 성장은 부진 하였다.

1.2.4 성장 정지시대(1914-1940)

이 시대에는 사역자들이 학교, 병원 등의 사역으로 나아갔기에 전도와 교회개척 사역을 게을리하였다.

또한 중국인 존 송박사를 일으켜서 1938-39년에 큰 부흥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는 앞으로 올 핍박의 때를 준비시키셨는데 특히 중국인 사이에서 활발하였다.

1.2.5 핍박과 배교 시대(1941-1945)

이 기간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으로 신도들이 핍박에 굴복하여 기독교 신앙을 버렸는데 20-40%는 되었다. 기독교 인구는 10,000명에서 6,000명으로 감소하였다.

정부는 일본 정권하에서 선교사들을 억류하였다.

 

1.2.6 전후 성장시대(1946-1982)

제2차 세계대전 후 선교사들의 재 입국과 기존교인들의 열심으로 활발한 교회 활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태국기독교총회는 1950년에 13,425명의 교인이 되었고 1978년까지 28,000명의 교인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개신교 전체는 많은 선교단체들의 입국으로 활발한 선교 활동이 있게 되어 10%의 성장율을 보였으나 카렌족은 44%의 교회 성장율을 보였다.

1.2.7 미래전망시대(1982-2020)

이 시대는 태국 정부가 선교사 규제조치를 취한 기간이다. 또한 1988년에는 태국교회들이 개신교협의회(The Coordinating Committee of Protestant Churches in Thailand)를 조직하여 교회 연합 운동을 시작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 2020년 계획을 수립하고 교회 성장에 매진하고 있다.

 

 

2. 태국 기독교 상황

2008년 현재 태국 내 교회 수는 2,000여 교회로 선교사는 1,125명에 이르고 있다.

2.1 기독교 단체별 상황

태국 정부는 5개의 기독교 단체를 허락하고 있는데 3개(천주교,태국기독교총회,태국복음주의연맹)의 대 단체와 2개(남침례교연맹,안식교)의 소 단체가 있다.

 

2.1.1 태국기독교총회 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CCT) 75 또는 52년

1828년 서양선교사의 입국으로 태동하였다. 1831년 이후에는 미국의 장로교회, 침례교회, 회중교회의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활동하여 1934년(75년전) 7개 노회 9,421명의 교인으로 싸이암 기독교회를 조직하였고, 1943년 태국 기독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안식교, 미국남침례교, 태국복음주의 계열은 조직에 가담하지 않았다. 1951년 사도교회가, 1903년 영국교회가 가입하였다.

그러나 1957년(22년후)에는 미국장로교 선교부가 모든 권한을 총회에게 이양하였고 1962년에는 다른 선교부도 총회로 이양하였다. 2010년 현재 19개처 노회에 844개처교회 170,218명의 교인을 보유하고 있다.

5개처(맥낄봐리신학교,방콕신학원)의 신학교육기관과 2개의 대학교(파얍대학교,태국기독대학교), 8개의 병원, 25개의 교육기관, 32개의 외국선교단체에 116명의 선교사를 보유하고 있다. 장로교회로 운영되지는 않으나 장로교회의 모습은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는 1956년부터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파송 선교사인 최찬영,김순일목사를 시작으로 관계를 맺고 1971년에는 KIM 선교회, 1989년 이후에 현재의 합동총회 파송 선교사가 WPM(신홍식), KGAM(양덕훈) 선교부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통합총회(조준형) 선교사와 기성총회(김용식)선교사 등 30여명이 소속되어 활동 중에 있다.

 

2.1.2. 태국복음주의연맹 The 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EFT) 40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많은 선교 단체들이 태국에 들어와 활동 중이었다. 이들은 1956년 태국기독교총회 조직 시에도 참여하지 않고 자유스런 선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관심과 단체간의 연합 사업을 위하여 1969년(40년전) 9월9일 태국복음주의연맹(The 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이라는 명칭으로 종교성에 기독교단체로 등록하여 천주교, 태국기독교총회에 이어 3번째 기독교 단체가 되었다. 조직 당시에는 6개 외국선교 단체뿐이었으나 1970년에 9개처의 교회가 입회하였고 1971년에 2개의 국내 선교 단체가 가입하였다.

현재 1400개처의 교회에 156,455명의 교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170개 교회와 선교단체가 소속되어 있고 7개의 신학교육기관이 속해 있다. 822명의 선교사 쿼타를 보유하고 있는데 1980년 이후에 태국에 설립된 외국 선교 단체는 선교사 비자 쿼타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어서 다른 선교단체를 의지하여야만 한다.

한국교회는 1979년 예장합동총회가 정승회선교사를 태국에 파송하면서 EFT와의 관계를 수립하였고 한국선교사로서는 최초의 완벽한 선교단체를 조직하게 되었다. 현재에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이 단체에 소속되어있던지 주변에 있다.

 

2.1.3 태국남침례교연맹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 37년

1949년 미국남침례교해외선교부 (Foreign Mission Board of Southern Baptist Church)가 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사역을 시작하여 1971년(37년됨) 태국침례교연맹을 조직하고 1977년에 종교성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선교사는 42명 1개처의 신학교육기관 1개처의 병원 및 1개처의 나환자병원과 학생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92개처 교회에 10,079명의 교인 8개처의 신학교와 병원, 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2.1.4 태국 안식교회 The Seventh-Day Adventist Church in Thailand

1906년과 1910년에 안식교 권서가 태국 땅을 방문하고 전도 책자를 배포하였으나 최초의 선교사가 태국에 입국하기는 1919년이다. 1921년에는 5인의 결신자를 얻었고 1926년에는 88인의 신자를 획득하게 되었다. 1990년 72주년에는 40개처 교회에 5,000여명의 신자를 보유하였고 현재에는 107개처의 교회를 보유하고 있다.

 

2.1.5 태국 천주교회 Thailand Roman Catholic Churches

1511년 천주교인을 처음 접했으며 1955년부터 선교사가 상주하게 되었기에 약 452년이 되었다. 1990년에 542명의 신부와 141명의 수도승과 1,261명의 수녀가 있었고 222,181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2.2 지역별 기독교 배경

2.2.1 북부지역

북부지역선교는 장로교 선교사인 맥낄봐리(McGilvary) 선교사가 1867년 치앙마이(Chiangmai)에 선교 본부를 설치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시작되어 오늘의 태국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태국기독교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태국기독교총회(CCT)의 신학교로 태국 최고 수준의 신학교인 McGilvary College of Theology, Payap University를 비롯하여 많은 군소 신학교육기관(훈련원)가 있고 주태 한국장로교선교부가 설립한 석사과정의 치앙라이 장로교신학교가 있고 교회들은 주로 구 장로교 계열이나 신앙과 신학이 자유주의이다.

이 지역엔 버마에서 건너온 30여 부족(80만명)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1950년도 초부터 New Tribes Mission,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Thailand Baptist Missionary Fellowship, The Church of Christ, USA, 같은 선교 단체들이 활동하여 산지족들을 거의 복음화 시켰으며 바로 아래 지역(수코타이,딱,깜팽펫)은 Worldwide Evangelization Crusade 선교단체가 활동하여 소 그룹 교회를 형성하였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방콕 다음으로 많이 거주하며 주로 산족들을 중심하여 일한다.

2.2.2 북동부지역

1929년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던 C&MA(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선교사들이 태국 북동부 지역에 입국하여 선교를 시작한 이래 콘깬을 중심으로 C&MA가 개척한 교회들로 The Gospel Church 총회를 조직하게 되었고 예하에 The Northeast Bible College를 설립하여 교역자 양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인들이 선교사의 주권을 강제로 이양 받은 후 많은 후유증을 보이고 있다.

한편 북부와 북동부 중간 지역에는 1946년부터 선교를 시작한 Finish Free Foreign Mission에 의하여 러이, 펫차분, 롬싹 등에 교회를 개척하였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컨껜을 중심하여 3번째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

2.2.3 중부지역

1951년 중국에서 철수한 Overseas Missionary Fellowship 선교사들이 태국에 입국하여 북부지역의 산지족들에게 전도를 시작한 후 1953년 의료팀이 중부지방의 마노롬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전개한 결과 중부지방을 복음화 시켜 Associated Churches in Thailand 를 조직하고 성장하고 있다.

2.2.4 동부지역

1949년 Foreign Mission Board of Southern Baptist Church 선교부가 전도 활동을 전개하여 많은 교회들을 설립하였다.

2.2.5 남부지역

방콕 근교의 남부 지역은 1960년 미국장로교선교부 선교사인 맥낄봐리선교사가 태국에 입국한 후 펫부리에 선교 본부를 정하고 전도활동을 전개하면서 복음화가 이루어졌다.

남부 중부지역은 스칸디나비안 선교사들이 1951년부터 활동하여 오순절교단을 조직하고 운영 중이다.

남부 국경지역은 OMF 선교사가 중국에 있을 때 모슬림 사역을 하던 선교사가 말레이지아 4개도의 모슬렘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설립하였다.

 

2.2.6 방콕지역

방콕 내에는 개신교 교회가 200개처 천주교회가 55개처로 태국 전 교회의 약 1/4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교파들도 장로교, 침례교, 오순절 교회와 태국 및 중국계 교회들이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신학교육기관도 Bangkok Bible Seminary(방콕성서신학교), Bangkok Institute of Theology(방콕신학원), Thailand Baptist Theological Seminary(태국침례교신학교)을 비롯하여 다수의 군소 신학교들이 있다.

한국인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면 일하고 있다.

 

2.3 태국 교회 상황

2.3.1 교회의 영세성

2.3.2 교회의 미 조직화(정치 및 행정적)

2,3,3 교역자들의 지도력 부재(훈련원 수준)

2.3.4 교인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 /

2.3.5 열성은 있으나 조직신학은 부재

2.4 태국 신학교 상황

2.4.1 신학교 지망학생의 절대 부족과 소명이 없는 학생들의 지원

2.4.2 교수의 수준 미달과 수적 부족

2.4.3 훈련원 수준의 신학교육 기관과 학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신학교육(정부인가 없다)

2.4.4 목회 훈련의 부재

2.5 태국 정부의 종교 정책

1980년도부터 태국정부는 5개 종교 단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선교사 쿼타를 제한하고 선교사들이 현지 교회 지도자들에게 사역을 인계할 수 있는 준비를 하도록 하면서 선교사 쿼타를 년 10%씩 감축하기로 하였으나 아직 이 조치를 구체적으로 실행하지는 않고 있는 실정이다.

2.5.1 종교자유 정책

쭈라롱꼰 왕에 의하여 1878년 종교의 자유(The Proclamation of King Chulalongkorn’s Edict of Religious Toleration)가 선포된 이래 현재 태국은 1200개의 선교사 비자를 허락하고 선교활동을 지원하기에 자유스러운 선교지 이다.

2.5.2 종교육성 정책

선교의 자유 뿐 아니라 5개 종교(불교,이스람교,기독교,쁘라만-힌두교,씩크교)를 육성하는 일을 전개하고 있는데 종교부지, 육성비 제공 등 제반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2.5.3 선교제한 정책

그러나 선교활동에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제한도 있다. 1980년도에 제정한 새로운 종교정책은선교사 퀘타 고정, 선교사 쿼타를 1981년부터 년 10% 감축, 선교사들의 사역을 책임 질 현지인 육성과 사역 인계 등 활동을 제한하였으며 자유로운 선교활동은 보장하나 종교활동으로 국민의 화합을 방해해서는 않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3장 태국 선교의 역사적 이해

1. 태국교단과 선교사들

(1) 태국기독교총회 The Church of Christ in Thailand / 선교사에 대한 특별한 대우 없음(100여명)

(2) 태국복음주의연맹 The 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 / 선교사 우대(825명)

(3) 태국남침례교연맹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 / 선교사 주관(60여명)

2. 한국 선교사들(태국 선교 역사)

2.1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사 시대(1956년)-CCT 소속

2.2 국제선교협력기구 선교사 시대(1971년)-CCT 소속

2.3 한국 선교사 전성시대(1980년)-CCT */ EFT 소속

(1) 주태국 한국장로교선교부 (1980년)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합동)

(2) 국제선교협력기구 (1980-1987년)*

(3) 기독교대한성결교총회 (1983년)

(4)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개혁) (1985년)

(5) 태국선교협의회 (1985년/서문)

(6)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1987년)

(7) 한국지구촌선교회 (1987년)

(8) 세계선교동역기구 (1987년)*

(9) 한국총회선교회 (1987년)*

(10)기독교대한감리교총회 (1988년)

(11)기독교한국침례회 해외선교부 (1993년)

(12)팀(TEAM) 선교회 (2002년)

(13)국제선교단체 OMF, YWAM, C&MA, Nazarene, UBF

3. 태국 선교의 평가

3.1 직접적인 선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과 이와 직접 관계된 사역들(신학교 운영 등)에 관계된 사역들이 있다.

태국은 직접 선교 사역은 미약하여 교회 성장이나 교인수의 증가가 미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

3.2 간접적인 선교

직접적인 선교 사역 이외의 사역으로 사회사업, 구호사업, 개발사업, 교육사업, 의료사업, 음악사역, 체육사역 등 기독교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는 모든 사역들이 있다.

간접 선교 사역은 상당히 활발하나 이 사역을 선교 사역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