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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란 무엇인가? 본문

선교 열방/펌> 선교

선교란 무엇인가?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0. 9. 20. 23:53
선교란 무엇인가? business,sales / 인생..

2009/05/18 15:27

복사 http://blog.naver.com/dksxoffod1/10047598283

 

* M.M.A 안내

선교란 무엇인가?

                                                    

                      



서        론


제 1 장  만주의 일반적인 고찰

   A. 자연환경

   B. 정치적 배경

   C. 문화적 상황


제 2 장 만주의 선교 역사(한국교회의 만주 선교 포함)

   A. 선교의 역사

   B. 교회 개척과 개신교의 부흥시기(1906 - 1911)

   C. 교회의 내실화 시기 (1912 - 1917)

   D. 간도노회 성립시대(1918 - 1921)

   E. 간도 노회 성립 이후 (1922 - 1948)


제 3 장 만주의 선교 전략(한족 교포교회 중심으로)

 A. 최근의 만주의 교회당 현황

   B. 지도자 및 교인의 신앙상태

   C. 이단의 활동

   D. 만주 교회의 문제점

   E. 만주의 선교 전략


결 론


참 고 문 헌



선교에 좋은 자료가 되기를 바랍니다.

총신대학 부설 선교연구소  김성환목사(TEL.910-7696)

지교회의 선교사의 선정과 후원에 관한 소고



선교는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 명하신 명령일 뿐만 아니라 교회 존재의 가장 기본적 근거가 된다. 즉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복음은 구원만을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에서의 복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 사랑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활도 포함된다. 즉 지상에 있는 교회가 행하는 일 전체이다.

이같은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고 있다. 이 방법들을 대별(大別)해 보면 국내에서 교회를 설립하는 일과 국외에서 교회를 설립하여 성도들의 생활을 가르치며, 앞으로 맞이할 천국시민의 생활을 이 지상에서부터 훈련받게 하며 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중에 국내 전도는 이미 교회가 존재하거나 말씀의 기초가 형성된 자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이며 자치적이고 자력적으로 복음이 증거되는 것으로 해외보다는 쉬운 형태로 증거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해외선교는 국내전도와는 달리 복음의 기지가 없거나 그 국민의 자력(自力)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역에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러가지 일들이 국내보다 더 빈번히 그리고 강도높은 것들은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국내전도보다 더 어렵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自明)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사를 택하는 것과 후원하는 것이 국내 전도보다 더 어렵고 신중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절차나 방법으로 하나님의 명령이며 교회의 본질인 선교를 감당해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자.



1. 선교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


선교를 흔히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너무나 흔한 것 같다. 즉 사회의 사업체가 영리를 목적으로 어떤 일을 잘 처리하는 자기를 필요로 하듯이 교회도 선교지에서 많은 일들을 감당할 선교사들을 찾고 또 후원하고자 한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선교의 임무는 사회의 일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은 일을 많이 한 자를 귀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존귀히 여기지 아니한다. 만일 일을 많이 한 자를 귀하게 여긴다면 여로보암 2세와 같은 자가 다윗에 못지 않게 유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도외시 된 자들이며 버림을 받은 자들이다. 도리어 부자집 앞에 있던 거지가 더 귀중하게 여겨졌다(눅 16:20 ff). 이같은 내용은 성경 여러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하다.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다음 하나님은 그들을 왕같은 제사장이며, 족속들이라고 하였다. 구약 성경에서 왕과 제사장들은 단지 택함을 받은 것으로만 만족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것에 상응한 거룩함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직분을 받았을 때에 그들의 복장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를 착용했다.(출 28:36) 이같이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것은 얼마나 순결하며 정직한가이다. 이점을 예수님도 동일하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12~16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기능의 강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기능을 아무나 갖는 것은 아니다. 빛과 소금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만이 갖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소금과 빛의 기능을 상실한 것은 이미 빛과 소금이 아닌 것이다. 이는 곧 진실한(거룩한) 그리스도인 만이 갖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마태복음 5:16에서 빛과 소금의 기능을 착한 행실이라고 했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였다.

이것을 예수님에게서도 볼 수 있다. 하늘나라에서는 죄인을 구원할 일을 위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회의를 하셨다. 우리는 이 회의를 구속언약을 위한 의논이라 한다. 여기서 결정하신 것은 천사를 보내거나 다른 이를 보내어 죄인을 구원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의 행실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게 한 것이다(요 14:9~14). 백부장의 고백과 등 여러명이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고 있다.

선교사도 동일하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안에서 성품이 사랑으로 형성된 자가 먼저 필요하다.

이것은 선교 역사에서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선교지에 임한 자들은 성공한 것에 비해 어떤 조직력이나 배후에 강력한 힘을 가지고 선교에 임했을 경우에는 십중팔구 실패한 것을 볼 수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식민정책과 함께 선교를 시도한 19세기는 선교의 실패시대이다. 중국은 선교사들을 제국주의들의 앞잡이로 여겨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중국 공산당이 들어왔을 때는 쉽게 복음을 버린 것이다. 이것에 비해 제국 침략국과 선교국이 다른 나라인 우리나라인 경우는 성공을 할 수 있다. William Carey와 썬다싱, 허드슨 테일러 모두 헌신적으로 노력한 자이므로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보내는 선교사도 동일하다. 선교의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선교사의 활동의 범위나 활동 방법이 달라진다. 한 예로 보내는 교회의 교회 성장을 목적으로 보내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상계동에 있는 모 교회, 대구의 모 교회 등 사실] 대부분의 교회가 이것을 목표로 심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성장에 위배될 경우에는 선교사 파송을 중지하거나 후원을 중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이거나 교회의 본질을 변질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는 선교사도 선교의 본질에 맞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보내는 선교사 중 가장 모범적인 선교사는 곧 하나님이시다. 죄인을 구하려 구속자, 전도자를 세상에 보내실 때에 인격이 흐린 자를 택한 것도 아니요 가장 온전하신 자를 택하여 보내셨다. 또 출생하는 과정도 마리아와 요셉 즉, 의인을 택하였던 것이다.(마 1:19 ff)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은 단순한 테크닉이나 기술이 아니라 곧 인격 자체인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을 것이다.



2. 선교사 선택 방법


⑴ 기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선교사를 선택하는 것은 사실 가장 어려운 것에 속한다. 그러므로 선교 단체들은 선교사 선택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신중하고도 객관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SIM(수단내지 선교회:Sudan Interior Mission)의 경우에는 선교사를 확인키 위해 10명의 추천자를 요구하며 10명의 추천자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다시 추천자 각각에게 10명의 추천자를 요구한다. 총 110명의 추천자를 요구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추천한 자들의 신뢰도까지 조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같이하고서도 실패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같은 문제에 대해 성경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예수님은 12제자를 부르시기 전에 40일간 금식 기도를 하셨고(마 4:1~22), 안디옥 교회도 선교사 사도바울을 택하기 전에 기도를 하였고, 그들은 성령의 지시대로 바울을 선교사로 택하였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 시므온과  … 루기오와 … 마나엔과 사울이라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 13:1~3)


선교사 선택은 교회에 재정이 있어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재정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기도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선교사를 선택해도 실패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부전교회의 경우 선교에 1차 실패한 경험이 있으므로 기도하며 필리핀 원주민을 선발하여 한국에서 공부시키고 선교사 훈련도 시켰으나 어느날 도주(?)해 버려 매우 씁슬해 하였다.

또 기도보다는 교회의 명예나 또는 교단의 명예 때문에 갑자기 후원한 경우도 있으나 역시 그 선교사가 선교지를 이탈함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던 일도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경우는 선교를 시작하고 기도가 계속되지 아니하고 교회의 성장만을 생각한 이후로 아프리카 오지국가에 선교사를 파송한 후에 후원을 끊어 버림으로 선교사가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선교사 선택은 단순하지 않다. 어떤 교회는 선교사 모집 광고를 낸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선교단체들이 행하고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교회가 형식만을 본받아서는 안된다. 이유는 선교 단체의 경우, 이미 이 일을 위해 전적으로 헌신했고 또 그 필요성을 위해 일정기간 이상 참으로 간절하게 하나님께 소원을 올린 후에 비로소 광고를 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문제를 놓고 참으로 놀라우리만큼 기도한다. 그래도 선교사 인선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선교사 한 명을 선교지에 파송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자금이 소요되는 것도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선교사 1명이 선교지에 정착해서 선교사로 활동하기까지 3년을 잡으며, 그 사이에 훈련비용으로 투자되는 금액이 액 3,000만원을 계상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선교사 선택은 매우 힘든 일이므로 기도없이는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선교사를 얻을 수 없다.

그러면 선교사의 인선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⑵ 선교지와 선교 사역 방법에 따라 결정되어져야 한다.

선교지가 결정되지 아니하고 선교사를 택하게 되면 선교 사역지가 선교사에 의해 결정되고 교회의 뜻과는 멀어질 수 있다. 물론 전적으로 선교사에게 일임을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서로가 선교지에 대한 선교 정책을 세우고 선교하는 방법을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고통과 갈등을 서로간에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사 중심보다는 선교지 중심이 옳다고 본다. 이유는 성경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택하신 것은 사도바울 중심이 아니었고 선교지 중심이었다. 하나님은 중동 아시아보다 유럽을 원하셨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무시아로 가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게도냐의 환상을 보게 하고 그곳으로 선교사 스스로의 뜻을 포기하고 마게도냐로 가게 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즉 로마를 중심으로 먼저 서부 유럽을 선교해야만 기독교가 전세계에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예는 선교역사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선교지의 발전을 보면 처음에는 로마제국이었지만 다음은 영국 다음은 독일과 주변국가를 그리고 미국 다음은 동남 아시아였던 것을 우리는 세계사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이같이 선교사 결정은 먼저 선교지를 결정한 다음 결정하는 것이 좋다. 그럴때에 선교지에 알맞는 선교사를 선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택하신 것과 같다. 당시 로마 제국을 다니며 선교할 수 있는 이는 로마 제국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자와 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을 로마시민권 소유자를 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신학에 무지하거나 약한 자가 아니었다. 사실 가장 탁월한 자였다.

이같이 선교사 인선은 먼저 지역을 선정한 다음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⑶ 선교사역의 형태에 따라 선택한다.

세계 어느곳이건 선교지의 사역 형태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서로 전혀 다른 세계 또한 아니다. 다만 개성이 독특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개성을 무시해서는 결코 안된다. 이유는 이 개성이 어떤 때에는 선교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비아와 같은 서부 아프리카나 동부 아프리카는 대단히 가난한 나라이다. 이곳에서 단순히 복음만을 전한다고 복음이 쉽게 들어 가지는 않는다.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예는 아르헨티나도 동일하다. 성미가 급하고 낙천적이며 음악을 즐기는 곳에 조용하고 음악에는 전혀 재주가 없고 선교사가 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복음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지역의 독특성에 따라 그 지역에 알맞는 선교사가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에겐 그들에게 알맞은 선교사가 필요하다.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선교지에는 어떤 사역들이 있는가? 일반적으로 크게 3가지를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Church Planting(개척교회)부분이 있고 둘째는 자국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수 사역이며, 세번째는 그들의 복지와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복지 선교가 있다. 일반적으로 선교지에는 이 3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다만 선진국의 경우는 세번째나 두번째 요소가 생략될 수 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필요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첫번째 사역의 경우는 목회적 소질이 있고 한 영혼, 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건강한 자라야 한다. 또한 성경말씀을 조직적으로 잘 가르치기도 해야 하며, 때에 따라 그들의 장례식이나 결혼식 등 각종 예식을 다 거행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력도 있어야 한다. 또한 인간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그래야만 목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간 목회자가 개척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던 중 교인이 자신을 못살게 굴고 모함한다고 장로의 얼굴을 때렸다고 해서 교회가 깨어진 경우가 호주와 케냐에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에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개척교회 사역을 하고자 할 때는 그것에 맞는 선교사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의 경우 교수 요원은 인정된 신학지식과 세련된 전달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나라 국민의 기독교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한 자가 필요하다. 그는 학위도 있어야 한다. 한국에 온 선교사와 중국에 간 선교사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미국, 카나다, 호주계 선교사인데 비해 중국은 영국계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중국에 간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학적 수준이 낮은 비해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놓은 수준(거의가 대졸 이상임)이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교육은 우리나라에 맞는 신학교육을 시도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신학교육을 위해 많은 책들을 한국어로 저술하기도 했고 또 가르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이 행한 실패중 중요한 것은 Raynold(이눌서) 선교사와 같은 이들이 외국의 고급학문 내지 유행하고 있는 학문을 가르치지 말자라고 한 것이며, 나아가 네비우스 선교 정책을 너무 과용하여 하류층 시민에게 집중전도함으로 사회의 지도자가 될 상류층 사회와는 관계가 멀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하여간 신학적으로 안정되고 발전될수록 선교지는 살아갈 수 있다. 한 예를 든다면 케냐의 경우 목회자가 성경책 한 권만을 가진자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같은 상황에서 올바른 목회자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다. 

[출처] http://blog.naver.com/dksxoffod1/10047598283     선교란 무엇인가? |작성자 안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