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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나를 통하여 이루소서 본문

부르심의 축복/산책 in the wilderness 2010

나를 통하여 이루소서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0. 8. 20. 17:17

20100820 (금)  나를 통하여 이루소서 

 

행 7 : 18 ~45

7: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관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비로소 모세를 보내시고 바로의 궁전에서 40년간 그들의 지혜와 말을 배워 능통한 자가되어 자기 백성을 돌아 볼 마음을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와 순종함에 앞서 모세는 자신의 능력으로 열심만으로 그 백성을 돌보려고 함.

 

해석) 나는 주님 앞에 서기를 즐겨 하는가?

나 역시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한 맘이다.

즉 분주하고 성급하며내 열심히만 가득한 삶을 살아 온 듯하다.

그런 나의 삶에 주님이 들어 올 틈이 없었고

혹이나 주님이 마음을 주시면 간섭이나 한다는 듯 외면함으로 나를 보호하려고만 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가장 못한 것이 인간의 가장 좋은 것보다, 가장 지혜로운 것보다

더 좋고, 더 지혜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고전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지혜롭지 못한 나는 나를 의지하는 것이 너무 많고, 교만함이 앞서는 듯 하다.

주님은 모든 일에 주님과 함게 하시기를 원하시며 나를 지켜 보시고 계신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의식치 않고 내 마음대로 나를 조종한다.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 하고 한번쯤은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아니다 주님의 마음이 아니라 주님을 생각해 내지도 않는 것이 나의 본 모습이다.

그만큼 어리석은 생각과 삶을 살아 온 나이기에 주님이 슬퍼하였으리라.

지금도 그러한가?

근간의 훈련과 묵상하는 시간들을 통하여 조금은 생각과 마음이 바꾸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100%바뀐 것은 아니다.

나를 내려놓고 주님으로 채워지기를 바라기는 하나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이 인위적으로 너무 힘든 과제물이었다.

주님의 도우심과 긍휼하심의 은혜가 없다면 털 끝 만큼도 내가 움직일 수 없고,

만들어 지지 않는 것이 내 삶이고, 믿음임을 실감케 하는 시간들이다.

요즘들어서 첫 사랑 때, 주신 마음같이 예배가 좋아지고, 찬양이 좋아지고, 기도가 좋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고 생각하며, 주님의 큰 사랑임을 고백한다.

주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날아갈 듯 한 부푼 마음을 갖게 하신다.

새삼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늘 언제나 그래 오셨듯이 내 곁에 서 계시며 지켜보시는 가운데 나와 친밀하시기를 바라며,

내가 주님 앉을 자리를 조금만이라도 내어 주기를 오랜 시간 기다리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작은 창문을 열고 주님을 바라보고자 할 때,

주님은 두 팔 벌려 나를 안아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그러나 너무 좁은 내 마음의 열린 창문이 주님이 힘들어 하시는 것이다.

좁디좁은 나의 창문이 아니라

나의 온 전신이 달려 나가도 부딪힘이 없을 대문을 열어 드려야 할 때인 것이다.

세상의 미혹과 유혹에 눈 감아 버리고

아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여 승리함으로

그 승리의 깃발을 나의 대문 앞에 세워 둠으로 주님을 크게 환영하는 주님의 군병이고 싶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나는 보고 싶다.

혹이나 측은하여 나의 무딘 손을 빌리시기를 원하신다면 나는 기꺼이 감사함으로 순종의 모습을 갖겠다.

나를 통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무익한 종이지만,

주님이 기뻐하는 아들이고 싶다.

주님의 아들 된 자로서 아부지의 기뻐하시는 일에 나를 맡기고 싶다.

주님의 나라와 그 백성을 위하여, 그의를 위하여,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견습자로서, 학습자로서 서고 싶다.

그리고 주님이 그 백성을 부탁하는 예배자로 남고 싶다.

 

적용) 오늘 이루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담긴 주님과의 동행하는 데이트를 꿈꾸며 묵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