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내 주 님 서 신 발 앞 에

[스크랩] 돈과 선교와 선교사 (Money, Missions and Missionaries) 본문

선교 태국/펌) 태국 선교

[스크랩] 돈과 선교와 선교사 (Money, Missions and Missionaries)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8. 11. 7. 10:49

선교사의 효과적인 재정사용에 관한 소고

 

선교선교사 (Money, Missions and Missionaries)


선교사의 생활과 사역을 말함에 있어서 에 대한 언급은 마치 아킬레스의 건을 건드리는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활동에 있어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 그 효과적인 사용 방법론, 그리고 그 돈 사용의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거나, 적어도 그 통로 역할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선교를 위한 돈 사용에 관한 철학과 윤리 문제를 점검해 보는 일은 21세기 한국교회와 선교계, 그리고 선교사들에게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과거 서구교회의 식민주의적 선교접근 방식 및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언급할 때 매우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이 주제가 이젠 세계선교에 본격적으로 뛰어든지 30년 정도 지난 한국교회의 선교 방식과 결과에 대한 평가를 하는 자리에 뺄 수 없는 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한국교회의 선교접근 방식 및 그 동기가 과거 서구교회의 식민주의적 그 것들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제 선교지에서 드러나고 있는 양상, 피선교지 기독교 지도자들과 서구교회 선교사들의 눈에 비친 모습을 보면, 결과적으로는 서구 교회 선교역사 가운데 드러난 돈의 부정적 사용의 모습들과 매우 흡사한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교회의 선교사 파송 숫자의 급속한 증가와 함께 한국의 경제적 발전, 한국교회의 비교적 풍부한 선교비 지원 등과 맞물려 있어 시간이 흐를 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그 중간 평가를 해야 할 때

그 구체적인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가 이미 알고, 듣고 있듯이 그 동안 한국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가 사역하고 있는 지역들 속에서 과거 서구교회의 역사적 실수를 답습하고 있는 많은 예들이 있다. 필자가 사역중인 인도차이나와, 그에 인접해 있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만 하더라도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예배당, 각종 학교 및 교육시설, 신학교, 선교쎈터, 병원, 고아원 등을 세우기 위한 토지 매입 기금, 건축기금, 유지 기금 등이 사용되고 있는가? 1990년대 초에 선교사에게 문을 연 CM국의 수도에는 지난 십 여 년간 물밀듯 들어온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토지 매매 계약이 이루어 지고, 시내 곳곳에 교회건물이 세워지고 임대되어 그 곳 부동산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선교를 위한 우리의 이러한 부동산 투자(?)가 과연 그 나라 안에서의 선교에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될지는 정말 미지수이다. 과거 서구교회의 역사와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줄 확률이 더 많다는 염려가 지배적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은 과거 가난했던 역사와, 그 당시 외부로부터 받은 원조의 고마움을 피부로 느낀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한국교회는 아주 예외적으로 외부의 원조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자립의지를 더해 성공적 발전을 이루어 낸 것이다. 한 예로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유네스코(UNESCO)로 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수혜국이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유네스코를 지원하는 유일한나라가 되었다. 이런 영적, 사회적 경험은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각 선교지에서 일할 때, 그 선교지 역시 외부로부터 적절한 원조가 주어진다면 머지 않아 그들 역시 한국과 같이그들 속에 잠재된 특별한 자립의지를 동원하여 곧 성공적 자립을 이루어 낼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강한 기대감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과 한국교회의 그런 특별한 자립심은 당시 한국이 처한 특수한 역사적 정황, 또는 그 동안 오랜 고난의 역사를 통해 축적해 온 의지가 하나님의 은혜로 제 때를 만나 극적으로 발로된 것임을 있어서는 안된다. 즉 과거의 한국과는 다른 역사적 정황을 가지고 있는 각 선교지에 막대한 재정적 원조가 주어질 때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 서구교회의 식민주의적 접근 방식의 문제점들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의 21세기 선교에 있어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통한 대규모 프로젝트 지향적 선교에 대한 재고, 현지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프로젝트들이 이양되었을 때 오는 부작용과 제문제들, 현지 교회에 의해서가 아닌 외부 원조에 의해 교회 건물이 설립되고, 현지인 교역자 사례비가 지출되며, 각종 물질적 필요가 채워 질 때 발생하는 현지 교회와 신자들의 외부 원조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성(dependency)에 대한 경계, 돈과 관련된 선교사의 사역 철학 및 윤리적 문제 등에 대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평가할 때가 되었다.   

            

평가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


1)  현재 한국교회 선교운동의 역사적 상황                                                                  

Glenn J. Schwartz는 말하기를 많은 서구의 기독교 운동은, 장애를 가진 교회들을 탄생시키고 영속시키기를 계속하는, 엄청난 재정을 헌금하는 이들에 의해 이끌어지는 선교학(선교방법론)을 채택해왔다. 그러한 선교학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많은 건강하지 못한 새로운 교회들을 양산해 내는지를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새신자들(그리고 기존신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존감과 품위를 그들로부터 강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Much of the Western Christian movement has adopted a massive donor-driven missiology that continues to create and perpetuate handicapped churches. Little do the advocates of such missiology realize how much their efforts are producing unhealthy new churches; they do not realize that they are robbing new believers (and older ones) of the self-respect and dignity they deserve.) 고 했다.

과거 서구 기독교 운동에 대한 이러한 평가가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교회 중심의 기독교 선교운동을 평가할 때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을 상당히 가지고는 있지만, 지금 현재 한국교회, 한국 선교사들에 의한 선교 운동을 중간평가할 때, 서구교회에 대한 그 평가를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아직은 시기 상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서구교회의 선교운동은 그 지역에 따라 2~3세기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한국선교사들의 선교운동은 100명 정도의 한국 선교사들을 내보낸지 이제 겨우 20~30년이란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서구교회의 선교운동이 2008년 현재 각 선교지에서 확보하고 있는 각종 사역의 기반과, 한국교회의 선교운동이 확보하고 있는 각 선교지에서의 사역의 기반은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서구 교회, 선교단체, 선교사들은 긴 선교역사 속에서 이미 광범위한 사역의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서구교회 선교사들은 그 동안의 많은 원조(때때로, 특히 그들의 초기 개척선교 시대에는 필수적인 적절한 지원도 있었을 것)를 통해 현지교회와 맺게 된  폭넓고 깊은 동반자적 관계들, 오랜 세월 동안의 장기적 투자로 인해 소유하고 있는 각종 선교적 설비들(각종 쎈터, 교회, 학교, 병원, 휴양시설 등)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역을 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교회는 서구 교회의 십 분의 일 정도에 해당하는 짧은 선교역사로 인해 이제 막 그 사역의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방 후 첫 선교사가 나온 태국은 아마도 한국교회의 여러 선교지 중, 가장 긴 한국교회에 의한 선교역사를 자랑할 것이다. 그렇지만 태국도 실제적으로 수 십명 단위의 선교사가 나와 일 한지는 그리 길지 않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선교지는 그 본격적인 선교역사가 길어야 20~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으므로 한국교회에게는 그 파송한 시니어 선교사들과 그들의 지도를 받고 있는 선교사들이 이제 그 지역 선교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하드 웨어를 한참 구축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역을 위한 하드웨어적 기반 구축 역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한 재정 투자는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볼 때 더 더욱 중요하다서구교회에 대한 Glenn의 평가는 그들의 선교초기, 사역의 기반을 놓기 위해 지출된 필수적인 재정적 유입까지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역이 수 십년 넘도록 장기화됨에도 불구하고 현지교회의 자립이 이루어 지지 않는 상황 가운데, 심지어 오늘날 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서구교회의 재정 적 원조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따라서 만일 현재 한국교회, 선교단체, 선교사들의 이러한 사역 기반 구축에 투자되는 재정 문제까지 서구교회의 오랜 재정적 원조 차원으로 동일시하여 미리부터 부정적 평가를 하려는 태도와 시도가 있다면, 서구교회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 선교운동의 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변호를 먼저 하고 싶다. 이런 평가의 진정한 목적은 불필요하게 남용되는 재정적 원조를 피하는 것이지, 모든 종류의 시설에 대한 투자나,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에 대해 부정적 시각과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 태도와 시도는 가끔 시기와 질투, 견제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있다.

 

2) 재정지원의 평가에서 다소 예외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사항

또 한 가지 고려할 사항은, 재정적 원조에 대한 평가를 함에 있에서, 특정 빈민국가, 빈민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단체,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의 생존을 위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원조에 대해서는 우리가 비교적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빈곤의 문제 역시 가능하면 외부 원조에 기대지 않고 현지인 스스로 해결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들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경우라면, 아무리 재정을 많이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현지인의 자립 정신이 가장 강조되어 져야 한다 하다라도 그 재정적 지원이 그들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라면 우리는 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랑의 섬김 차원에서 관대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막대한 재정의 사용에 대한 철학과 정책을 세우는 일에 고민하고 있는가?

현지교회의 예배당, 선교 본부(Mission-Home), 성경학교 또는 각종 학교 및 교육기관, 기숙사, 사역 쎈터 같은 건물을 짓기 위한 대지 구입 및 건축, 장학금, 현지인 사역자들의 사례비, 대규모 구제 및 복지 프로젝트, 교회 개척 프로젝트(특히 도시교회), 병원사역, 출판사역, 스포츠 사역  등 사실 대부분의 선교사역을 수행함에 있어서 막대한 재정의 사용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각종 선교사역을 위한 돈 사용의 문제는 각 선교사나 선교단체, 후원교회의 돈에 대한 철학과 정책에 따라 그 비중, 방향성과 방법론이 상당히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서구(국제) 선교단체는 지난 수 세기 동안의 과거경험을 바탕으로 선교지에서의 돈 사용에 관한 철학, 방법론 등에 대한 연구결과를 정책적으로 각 단체의 핸드북에 명시해 두고 그 소속 선교사들에게 그 정책대로 실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때때로 이런 실천은 단순한 제안적 수준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순종하도록 철저히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어 인도차이나 CM국에서 일하고 있는 한 국제단체의 교회개척팀은 그 회원 선교사에 의해 개척중인 교회에 그 선교사가 십일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비록 한국 및 아시아계 선교사들의 온전한 동의를 얻지 못하는 면이 있지만, 이러한 결정은 현지교회가 그 재정적 필요를 선교사에게 의존하는 습관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심에 찬 결정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많은 서구 선교단체는 과거의 실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런 정책 결정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그 단체의 공통된 의견을 수렴, 통일된 정책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 나간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 선교계는 비교적 그런 노력이 부족하며, 그런 정책을 결정한다고 해도 각 소속 선교사들이 그것을 지켜나가는 지에 대한 관찰, 평가, 지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경우는 공증된 그런 정책이 전혀 없고 각 선교사가 스스로 알아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선교현지의 관리, 감독 체제의 부실함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한 선교 전문가는 선교사역에 드려지는 돈이 어떤 효과와 결과를 나타낼지를 예측하는 것은 일기예보 보다도 그 예측이 힘들다고 한 적이 있다(Daniel Rickett). 비록 자세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특정 예보가 나갔어도 당일 바람, 구름, 기압, 일조량 등 일기에 관계하는 각 요소들이 조금만 변화를 가져와도 실제 일기가 예보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이게 되듯이, 선교에 드려지는 그 돈도 그것을 사용하는 선교사, 선교단체의 철학과 태도, 사용방법, 그 돈을 사용하는 상황, 액수, 지원 기간, 현지인 지도자들과 나눈 토의의 깊이, 현지교회의 문화적, 경제적 상황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 사이에 약간의 변수가 생겨도 그 결과는 기대한 것과는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 단체들은 한국교회보다 훨씬 긴 선교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의 상황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돈 사용의 정책을 최선의 예측을 통해 세워 나간다. 반면에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는 비교적 짧아서 우리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서 그런 정책을 세워 나가기에는 아직 통찰력이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서구 선교단체의 과거, 현재의 정책 변화를 연구하고 적용함으로 우리에게 부족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선교사역을 위한 막대한 재정이 외부로부터 지속적으로 선교지에 유입될 때 생겨날 수 있는 여러 핵심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문제의 핵심 1 - 선교사역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변질, 왜곡시킬 수 있다.

선교지에서의 막대한 돈의 사용이 선교사역의 본질적 핵심사항이 될 수 있을까물론 선교와 돈의 관계가 아주 큰 이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리고 선교사역의 효과적 수행을 위해 돈의 사용이 필수적인 면이 있지만, 선교의 본질, 본질적 방법론의 핵심사항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의 선교 사역 수행에 외부에서 들어온 돈의 사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선교사역의 본질은 전도와 양육, 교회개척(예배당 건축이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를 일으키는 일), 더 나아가 그 같은 일의 재생산(현지교회를 새로운 선교세력으로 준비시키는 일)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그 동안 한국교회 성장의 주요 모델은 미국교회였고, 그 결과 물량주의, 외형주의 등의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각 선교지에서 그 선교지의 사회, 문화적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력 없이 사역을 수행한 경우, 미국교회로부터 영향받은 한국식 성장 모델을 그대로 모방하여 사역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교지에 눈에 보이는 땅, 건물, 기관을 세우고 그 규모를 무의식적으로 자랑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성경적인 선교사역이라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선교사역의 본질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새롭게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절대 그런 부동산,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에 선교적 투자가 무가치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0여년간 도시 상황에서의 교회개척자로서 사역해 온 선교사로서, 그리고 앞으로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동원, 선교사 훈련 사역을 비전으로 기도하고 있는 선교사로서 때때로 그런 투자가 얼마나 절실한 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왜 많은 선구 선교학자들이 가능하면 적은 돈을 사용하며 선교해야 한다(LESS MONEY FOR MISSIONS)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다면 많은 무분별한 투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돈에 의한 선교는 우리 자신에게 선교사역의 본질을 변질, 왜곡시킬 뿐 아니라, 현지교회에게도 동일한 잘못된 영향을 주게 된다.    

 

문제의 핵심 2 - 현지교회의 외부 의존성을 높이고, 자립정신을 거세시킬 수 있다.                           

우리는 과거 선교역사와 경험, 그리고 심지어 현재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례들을 통해 선교지에서의 올바른 돈 사용에 대한 원리를 배워야만 한다. 서구교회가 지난 수세기 동안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서 행한 재정적 투자가 좋은 결과를 낳은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에 있어서 현지교회로 하여금 외부 선교세력의 지원을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외부 선교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실시된 각종 재정 지원은 결과적으로 현지 교회의 스스로를 돌보는 자립, 자급의 의지를 거세시켜 버린 결과를 낳았는데, 이는 마치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 처럼, 외부 지원이 끝도 없이 장기적으로 계속 되풀이 되어야 만 하는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외부에서 지원된 재정에 의해 교회 건물을 세우고, 교역자 사례비, 각종 유지 관리 비용 등이 지불되는 경우, 우리는 외부 원조에 대한 현지인 교회와 신자들의 물질적 의존성이 오랜 기간동안 지속적 습관으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만 한다.

선교지 교회의 자치, 자급, 자전을 강조한 중국 선교사 네비우스(John Livingston Nevius (1829-1893))삼자원리(three-self theory)는 이런 상황 속에서 나온 것으로 비록 중국에서는 큰 효과를 보진 못했으나, 그리고 그 구체적인 실천 원리가 제시되지는 못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의 자생력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John Mark Terry는 네비우스의 3자 원리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1.      Christians should continue to live in their neighborhoods and pursue their occupations, being self-supporting and witnessing to their co-workers and neighbors.

2.      Missions should only develop programs and institutions that the national church desired and could support.

3.      The national churches should call out and support their own pastors.

4.      Churches should be built in the native style with money and materials given by the church members.

5.      Intensive biblical and doctrinal instruction should be provided for church leaders every year.


이처럼 네비우스의 삼자원리는 선교 현지교회의 자립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을 비롯한 선교지에서 그 동안 서구 선교단체들이 행해온 막대한 재정적 투자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현지교회의 외부 선교세력에 대한 장기적 재정 의존이라는 현상을 낳는 것을 보고 내려진 자기 반성적 결론을 담은 이론이었다. (네비우스의 선교방법론은 로랜드 알렌 (Roland Allen, 1868-1947) 같이 조금 후대에 중국에서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자신의 경험이 담긴 여러 글들에도 자주 나타난다.) 네비우스의 삼자원리의 등장 자체가 오랜 외부의 원조는 선교지 교회의 외부로부터 오는 원조재정에 대한 의존성을 높이고, 그것을 습관화 시키며, 결과적으로 현지교회의 자립의지를 거세해 버리는 결과를 낳게 한다는 경고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 3 – 우리의 무분별한 원조로 현지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얼마 전 인터넷을 통해, 브라질로 보내지는 미국의 한 선교회의 선교비가 미국의 경기침체로 2003년대비 약50%가 하락되었고, 유로화에 대한 달러화 약세 등으로 동유럽, 중동, 아프리카로 보내지는 미국교회 선교비 역시 그 가치가 50%나 하락되었다는 한 비디오 자료를 보았다. (Money and Missions (Video) http://www.metacafe.com/watch/1531276/money_and_missions/만일 금융 위기나 본국의 선교 재정정책의 변화 등의 이유로 외부로부터 선교현지에 보내지던 재정적 지원이 중단될 경우, 선교현지에 있어질 혼란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이런 혼란은 처음에 외부 지원으로 시작된 막대한 재정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들이 일정한 시간이 지났으나 아직은 그 프로젝트를 감당할 수 없는 현지인들에게 갑자기 이양되었을 경우에도 발생하게 된다. 또한 원조된 재정의 혜택이 현지교회의 일부에게만 돌아가는 경우, 그 혜택을 보지 못하는 현지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의 시기, 질투, 비교, 불신감은 현지 교회의 하나됨을 깨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3년 전에 태국교회 사이에는 태국교회 지도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소식이 하나 등장했었다. 그 내용은 UNCDP라고 불리는 한 원조 프로젝트로, 한 그리스도인의 유산이 그의 유언에 의해 태국교회에 지원되게 되는데, 그 액수는 천문학적 숫자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소식은 2007년에 다시 강화되어 태국교회를 설레이게 했는데, 실제로 그 막대한 재정을 지원할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일부 교단대표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조직하고 예비모임을 가지기도 했다. 이 일에는 일부 선교사들 조차 관심을 기울여, 실제로 많은 선교사들과 태국교회 지도자들이 그 조직을 통해 요구되는 사역계획서(특히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들)를 경쟁적으로 서둘러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이 문제는 필자가 속한 태국교회 한 교단의 방콕노회에서도 거론, 추진되었는데, 필자는 속으로 그런 일은 사기성이 농후하거나, 혹시 그 같은 일이 실제로 계획되고 있다면 정말 위험스러운 일이요, 궁극적으로 지난 180년 동안 외부 원조에 의존해 온 태국교회의 의존성만 더 키우는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며, 태국교회의 하나됨을 깨트리는 악한 요소로까지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염려했었다. 2008 10 20, 태국 개신교 조정 위원회(Thailand Protestant Churches Coordinating Committee) 3인의 회장단의 이름(태국의 3대 교단인 EFT, CCT, 침례교 교단 대표들)으로 태국 각 교회에 공식적 편지를 써 보냄으로, 그 같은 프로젝트는 사기성이 있었으며, 따라서 모든 태국교회가 조심하고 그 일에 가담하거나 협조하지 말라고 경고함으로 결말 지어졌다. 이 일에 대한 태국교회의 지속적 관심, 예비 모임, 조직, 사역 계획서 작성, 헛된 기대감 등은 지난 2-3년 동안 태국교회의 관심을 부분적으로 헛된 곳에 두게 했고 상당히 많은 교회, 교회지도자들 사이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이처럼 무문별한 원조는 그 소문과 헛된 기대감만으로도 현지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한 해악한 힘을 가지고 있다.

 

효과적인 재정 지원의 모델들은 ?

Gailyn Van Rheenen은 그의 글, Using Money in Missions: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January, 2002): 38-45)에서 선교지에서의 재정사용의 모델들(Four Perspectives)을 소개했는데, 다음은 그 요약이다.                                                                                                                                                                                                 

1) The Personal Support Model  (개인적 지원 모델)  - 외국의 개교회, 개인이 직접적으로 선교현지에 보내는 모델 유형으로 현지의 신뢰할 만한 단체나 선교단체와의 협의 없이 현지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에 의해 재정 사용의 결정이 이루어짐으로 돈의 사용이 남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소명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은 지원의 혜택을 받기 위해 현지인 사역자들이 다른 사역지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고,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스스로 일하려 하지 않으며, 후원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시기로 현지교회가 분쟁,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경우 현지교회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는 구조를 낳을 수 있고 선교사역에 힘을 실어주기 보다는 결과적으로 방해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역동적 팀(실제 사역의 제반 문제들이 전체 팀원들과의 협의를 통해 정책화하는 강도 높은 팀사역을 하는 팀)으로 사역하지 않고, 단지 팀으로서의 모양 만을 구축하고 있는 팀의 멤버이거나, 아니면 팀이 아닌 개인적으로 사역하는 선교사들의 경우, 비록 선교현지의 선교사들이 외국의 후원교회, 후원자들과 현지교회를 연결해 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런 경우라도 선교현지의 신뢰받을 만한 컨썰팅 그룹이나 단체가 없기 때문에 돈이 남용될 가능상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괄호 안은 필자 의견)

 

2) The Indigenous Model  (토착적 모델) 이 모델 유형은 처음에 부유한 경제적 조건 속에서 외부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한 사역이, 그 사역이 진행된 직후부터 그 재정적 필요를 현지교회가 내부적으로 충당하도록 격려하는 것으로 현지교회의 자급(self-supporting)이 철저히 강조된다. 그런데 만일 경제적으로 가난한 선교지에서 외부 선교사에 의해 부유한 재정을 가지고 시작한 사역들이 이런 토착적 모델을 지향해 간다면 슬프게도 현지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능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 번 외부 그리스도인들이나 단체에 의한 지원을 맛본 현지교회는 그 지원을 내부에서 충당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 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내부적 재정 충당 능력이 없는 선교지라면 교회에서 사례를 받는 전임사역자를 두는 것보다는 평신도 지도자를 두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겨 진다.

 

3) The Partnership Model  (동반자적 모델)  이 모델은 어떤 한정된 선교지의 경우, 비록 일시적인 외부의 지원이 있다하더라도 외부지원에 대한 지속적 의존이 생겨나지 않을 경우 취해지는 모델로 이 경우 외부 자원은 직접 현지 개교회로 가지 않고 신뢰할 만한 현지 선교단체 등을 통해 지원되게 된다. 이 유형은 성숙한 현지 지도자들이 있는 경우, 그 지도자들과의 상호협력을 통해 이루어 지는데, 특수 목적을 위한 협력사역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유형이 효과적인 선교지는 비교적 부유한 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있거나 도시를 발판으로 일어나는 사역으로 스스로 자급능력을 가지고 있는, 적어도 잠재적 자급능력을 가지고 있는 선교지이다. 이런 경우라 할지라도 혹시 외부 지원에 대한 의존이 장기화 되는 경우에는 그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급원리에 의해 시도되는 도시교회 개척의 경우, 그 재정적 필요가 방대하여 외부의 장기적 지원이 없이는 그 사역이 성공적으로 성취되는 예가 드물다. 이 모델에서도 외부의 자원이 유입되므로 외부인이 사역을 조정할려고 할 경우 자칫하면 지배적(paternalism)이 될 수 있다.

 

4) The Indigenous/Partnership Model  (토착적/동반자적 모델)  이 모델은 토착적 모델동반자적 모델이 복합된 모델로 첫 단계, 첫 세대 사역은 토착적 모델(자급원리 강조)로 시작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 현지교회가 성숙해 지는 두 번째 단계, 두 번째 세대에는 선교단체나 후원교회들이 선교사들과 함께, 아니면 선교사들을 통하여 현지교회 지도자들과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여 현지교회가 재정적 의존을 하지 않게 하는 가운데 재정적 지원을 하는 모델이다. 개척단계에는 자급원리를 강조하여 자급능력을 가지게 되는 단계에 선교사와 외부 선교지원 세력은 현지교회가 스스로 일어나 자급할 뿐 아니라, 사역을 확장하도록 하기 위해 비교적 지속적으로 유지될 구조를 함께 만들게 된다.

 

Gailyn Van Rheenen은 요약하기를 2) 3) 4)의 모델들이 선교지의 다양한 상황에 맞게 효과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토착적 모델 토착적/동반자적 모델이 국제적 분위기에 노출되지 않고 비교적 덜 전문화된 시골지역에 적합하고, 도시상황에서 진행되는 사역에는 동반자적 모델이 더 유용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러한 각 모델들이 갖는 장단점들이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경우는, 상당히 많은 선교하는 교회와 단체, 선교사들이 아무런 모델이 없이사역하고 있는 경우. 선교현장에 나가 있는 각 일선 선교사들의 실용주의적 판단에만 의지한 채 아무런 대책, 정책, 모델이 없이 사역하는 경우들은 과연 선교사역과 돈 사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일선 선교사의 돈 사용은 우연적, 즉흥적, 지배적, 권위적이며, 많은 위험요소가 내포되어 있어서 결과적으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 특별히 현지 교단, 교회 지도자들과 연합, 교류, 지도 및 감독 없이 사역하고 있는 많은 선교사들의 경우, 그들의 돈 사용은 선교현지에 부정적 결과를 낳을 확률이 지극히 높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안 1 – 솔직한 평가와 반성을 바탕으로 재정사용의 철학, 원칙, 벙법론을 점검해야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는 지난 20~30년 동안 수행해 온 한국교회 선교사역을 반드시 평가해 봐야 하며, 각 선교사들도 개인적으로, 팀으로 수행해 온 과거, 현재의 사역의 맥락 속에서 자신의 사역을 위한 재정 사용 방법과 그 결과 현지교회에 미친 영향 등을 진지하게 평가하고 반성해 봐야 한다. 이런한 평가와 반성은 그 자체로 끝나서는 안되고 우리의 미래 사역에 반영을 시켜야 한다. 서구 선교단체는 책상 앞에 앉아 회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들은 지난 수 주, 수 개월, 수 년 동안의 사역을 평가, 반성하고 그 결과를 되먹임 과정(feed-back process)을 거쳐 새로운 정책을 세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약간의 변수만 생겨도 다시 모여 그 변수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하고, 그 논의에 따라 새로운 수정된 정책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이러한 평가와 반성이 얼마나 진지한가에 따라 우리의 선교사역을 위한 재정 사용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이런 평가와 반성은 선교사 개인적으로, 각 선교현지의 사역팀별로, 각 선교단체별로, 각 후원교회 별로 해야할 뿐 아니라 상호 연계된 모임을 통해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평가와 반성을 위해 우리는 내부적으로 부정적, 긍정적 사례에 대한 연구 발표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안 2 – 선교사 개인의 재정사용에 관한  성경의 원리에의 재헌신이 있어야

우리가 선교를 위해 돈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돈의 바른 사용에 대한 성경적 원리를 알고 그에 대한 확신, 헌신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전 세계 믿음의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돈을 포함한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들을 기꺼이 나누는 것이 성경적 가르침임에는 틀림이 없다( 6:10, 21:17~19, 24:17, 고후 8:9, 요일 3:17~18). 그러나 이런 원리는 모든 경우에 필요한 이들에게 돈을 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선을 행할 때도 분별력 있게 하는 것이 요구될 뿐 아니라, 때때로 각자가 스스로의 짐을 지고 자기를 돌아볼 줄 알며, 스스로 자신의 일을 책임지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 준다.( 6:5)  돈 사용에 대한, 재정적으로 다른 사람(특히 주 안에서 한 형제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일에 대한 성경의 일반적 원리를 아는 일은 우리가 돈 사용에 대한 극단의 생각을 갖게 되는 일을 막아주고 일관성 있고, 균형있는 가치체계를 갖도록 도와준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안 3  – 21세기 선교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재조명이 있어야

바울사도는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통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Come over to Macedonia and help us)”는 말을 들었다.( 16:9)  바울은 전도와 양육을 통해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들을 도우러간 사람이었다. 현지교회를 세우는 일은 결국 현지교회가 주도권, 주인의식을 가지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개척초기 선교사가 잠시 그 기능적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겠으나 그 초기사역의 결과 생겨난 지도자들을 가능한 한 속히 사역의 주체로 세워야 하며, 그런 지도부가 생겨난 뒤에는 그들을 돕는 자로서 그들이 자립의지를 가지고 사역을 해 나가도록 격려해야 한다. 만일 한국 선교사들이 각 선교지에서 현지 교회들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려고 한다면, 과거 서구교회의 식민주의적 발상과 태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특히 태국과 같이 비교적 긴 기독교 선교역사를 가지고 있고 교회의 조직(각 교단총회, 노회, 신학교 등)이 갖추어진 선교지에서는 태국교회가 주도권, 주인의식을 가지고 선교사에게 요청해 오는 사역들을 중심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재정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재정적 필요는 주인의식을 가진 선교지 교회가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필수적인 경우 선교사로부터 보조적 지원이 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현지교회의 주권을 깊이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그 주권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사역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사실 선교사의 역할에 대한 이런 무분별하고, 고민의 흔적이 없거나 부족한,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이해 때문에 선교지의 재정적 필요도 선교사가 우선적으로 채우려고 하는지 모른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안 4 – 후원교회, 선교단체, 선교사들이 공동으로 선교현지 중심의구체적이고도 효과적 재정 지원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선교지 현지교회의 외부 선교세력에 대한 재정적 의존은 비단 과거의 역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오늘날 한국 선교사들의 활동 무대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일부 서구 선교단체의 선교사들이 여전히 네비우스 이론 같은 자급의 원리를 고려하지 않고 사역하고 있는 것은 무시하고라도, 전에 한국이 피선교지였을 때 네비우스 원리의 타당성을 그래도 가장 많이 경험한 한국교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들이 우리의 선교현장에서 자급의 원리를 원칙적으로 적용하지 않거나 소흘히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네비우스의 원리가 각 선교지가 처한 구체적이고 다양한 상황에 맞게 그 구체적 실천방법론이 연구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네비우스 이론에 대한 개념과 원리만 알고, 각 선교지의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연구, 계발하지 않는다면 선교현지 교회의 자립을 강조한 그 원리가 그 구체적인 실행 방법론의 부재로 말미암아  아무리 달려도 결국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The Möbius Band) 같이, 과거 서구 선교단체가 범한 똑같은 실수를 앞으로 계속 거듭 거듭 범하게 되고 말 것이다. 많은 선교역사 학자들은 네비우스의 3자 원리가 그의 선교지 였던 중국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 하게도1951, 모든 선교사들이 추방된 이후, 당시 100만명 정도로 알려진 중국의 그리스도인들이 50년 안에 1억 명으로 거의 100배나 성장했다는 사실이 현지인에 의한 자급, 자전, 자치라는 ’3자 원리의 타당성을 증명해 주고 있다. 이 사실은 기독교 선교 역사가 50~100년 이상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외부 의존적인 피선교지에서는 꼭 생각해 봐야 할 중요한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안 5 – 서구(국제) 선교단체들, 한국의 다른 선교단체들과의 더욱 밀접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국 선교사들의 집산주의(collectivism)적 사역 성향은 한국 선교를 평가하는 자리에서 자주 논의 되어지는 일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운동과 서구교회의 선교운동은 그 처한 역사적 정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선교역사 초기에 필수적인 사역의 발판, 기반,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피선교지에의 재정 유입은 어느 정도는 긍정적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변호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 선교단체, 선교사들이 서구교회 선교세력(또는 다른 한국 선교기관의 선교세력)에 의해 선교현지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기반들을 함께 이용하거나, 다양한 종류의 동반자 관계(partnership)를 맺어 현지교회의 필요를 중심으로  부분적으로라도 연합사역을 해 나갈 수 있다면, 선교현지에 사역의 교두보를 구축하기 위한 재정 유입의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교파와 선교단체가 서로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사역지 안에서 비슷한 사역에 중복투자를 하고 있는 현실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줄 것이다. 일부 선교지에서는 복음주의적 한국 선교기관, 선교사들에 의해 교파(아니면 소속)가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여러 개의 신학교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여기에 설명하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들로 인해 동일 선교단체에 속한 한국 선교사들이 100여 킬로미터의 공간적 거리를 두고 별도의 독립된 두 개의 신학교를 운영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교회 선교단체, 선교사들이 서구의 선교단체, 더 나아가 현지교회 및 단체, 한국 선교단체, 각 선교팀 사이에 보다 원활한 동반자적 협력체제를 세우는 일을 모색하고자 노력한다면 그런 중복투자의 상황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보다 밀접한 동반자적 관계 구축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충분했는지 반성해 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제안 6 – 현지교회의 성장, 부흥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주권 을 인정하는 가운데 인내해야

열대 난초를 기르다 보면, 그 발육을 견실하게 하고, 꽃을 보다 탐스럽게, 또는 개화의 시기를 조금 앞당기기 위해 물비료를 사다가 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료 사용은 때때로 참담한 결과를 낳곤하는데, 난초 뿌리가 점점 말라 죽거나, 때때로 생명은 유지했는데, 모양이 더 왜소해 지거나, 좀 더 심한 경우는 꽃을 피우는 능력이 거세된 열성 변종을 낳게 한다. 마찬가지로 분명 분별력있게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용한 돈은 현지교회의 성장에 비료의 역할을 하게 되지만, 좋은 비료도 지나치게 많이 쓰거나 잘못 사용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선교지 교회는 그 처한 영적, 사회적, 역사적 정황에 따라 그 성장의 양상과 속도를 달리한다. 현지교회가 짧은 시간 안에 초고속 성장을 경험한 한국 선교사의 눈에 너무 더디게 성장한다 하더라도 그 교회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성령에 의한 자연스런 성장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된다. 우리의 육신의 눈에 선교지의 부흥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 안보인다 하더라도 친히 전 세계 선교지, 모든 교회의 머리시며 친히 그 소유된 교회를 성장키키고 계신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선교사들은 대량의 재정을 투입함으로 사역의 빠른 인위적 성장을 유도하고자 하는 유혹을 버리고 - 이런 경우 대부분 외관적 성장에만 그치게 되는데, 그 실제적인 열매는 그 큰 외관에 비해 너무 적고 초라해서 더욱 부끄러운 사역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가 많다 - 대신 믿음과 인내로 현지교회의 성장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열매를 기다리며 심고 물주는 일에는 오랜 인내가 요구 되어진다

 

맺는 말

결론적으로 선교지에서 돈을 사용하는 일에는 많은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선교사들이 자신의 관대함을 나타내며 소명과 비전을 성취해 나가는 일과, 현지인들과 현지 교회의 책임을 일깨우는 일 사이의 긴장을 무시한다면, 우리의 짧은 생각의 결과로 결정한 돈 사용이 선교지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각 선교 현지의 문화와 상황을 깊이 고려하는 가운데, 처해 있는 선교역사적 정황가운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인정되는 공동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조심스럽게 돈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선교 현지 교회의 자급의 원리는 선교관련 논문이나 책에서는 여전히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실제 사역의 현장에서는 고전적인 원리로 취급되어 거의 응용되고 있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비교적 선교역사가 짧아 각 선교지에서 다양한 선교사역의 발판을 구축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주도하고 있는 선교운동에서는 아직은 그 강조를 꺼리고 있는 원리로 취급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현지교회 자급의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건전한 선교의 기초가 된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오늘 날에도 네비우스(Nevius)가 강조했던 현지교회의 자급의 원리에 대한 확신과 헌신 없이 일한다면, 우리는 선교지에서의 막대한 재정사용을 인해 과거 서구선교사들이 경험했던 그 부정적 역사의 길을 계속, 반복 되풀이해 걷게 되는, 결국은 아무리 걷고 걸어도 현지교회의 자립과 자급의 단계에 이를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The Möbius Band) 위를 걷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 선교사들은 바울사도의 본 처럼 선교지 영혼들을 위해, 현지 교회를 위해 기꺼이, 기쁘게 우리 자신 뿐 아니라 우리가 소유한 모든 재물까지 다 허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후 12:15). 그러나 돈은 결코 선교의 원동력이 될 수 없다. 돈의 힘을 의지해 쌓은 모든 사역은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사상누각이 될 수 밖에 없다. 오직 성령님 만이 선교의 유일한 원동력이시다(1:8, 4:6).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늘 인식하고 우리 스스로 속한 선교단체, 현지 사역팀 안에서 현지 상황이 충분히 고려된 가장 좋은 돈 사용의 철학과 방법론, 모델들을 발전시키기위해 고민하며 온전한 노력을 해 나갈 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보다 분명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사용되는 구별된 재정 사용 만이 현지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 

< 참고 문헌들 - Sources Cited >

 

Roland Allen. 1930. Missionary Methods: St. Paul’s Or Ours? London: World Dominion Press.

Beyerhaus, Peter. 1979. The three selves formula: Is it built on biblical foundations? In Readings in Dynamic Indigeneity. Ed. Charles Kraft, 15-30.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McQuilkin, Robertson. 1999. Stop Sending Money! Breaking the cycle of missions dependency. Christianity Today (March 1):57-59.

John Nevius, 1958.  Planting and Development of Missionary Churches, rev., ed., Phillipsburg, P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House.

Jonathan J. Bonk. 1999. Missions and Money: Affluence As a Western Missionary Problem. (American Society of Missiology Series)

Rickett, Daniel. 2002. Fine-Tuning Financing : Principles of Giving and Receiving in Missions Partnerships.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January): 28-35  

Schwartz, Glenn. 2007. "A Cure for Handicapped Churches: Reflections on Dependency in the Christian Movement" Mission Frontiers (May/June), pages 26-28.

Van Rheenen, Gailyn. 2002. Using Money in Missions: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January): 38-45

 

----------------------------------------------------------------------------

*** 다음은 원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들앞에 있었던 내용인데 ...너무 양이 많아 빼낸 부분임

 


고민의 사례 - 태국, 방콕 및 수도권 지역에서의 교회개척사역을 위한 외부 재정 지원 정책에 관한 고민의 사례들

 

1) F 국제단체의 도시교회 개척팀 이 선교단체는 태국 EFT(Evangelical Churches in Thailand) 연합 교단의 한 중심적 교단인 A교단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사역해 왔는데, 방콕지역의 경우, 지난 20년 동안 이런 동역이 이루어 졌다. 이 개척팀은 1989, A교단이 방콕노회를 조직할 때 당시 소수의 회원 선교사들이 태국인들과 함께 연합하여 개척중이던 교회들과 함께 노회를 구성하여 동반자적 관계를 가지고 협력해 왔다. 20년 전 한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의 교회가 선교사들의 열정과 지원 등을 바탕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현재는 약 25개 교회로 늘어났다. 물론 이러한 숫적 증가는 노회에 새로 가입한 외부에서 유입된 교회들도 많지만, 이 중 10여 개의 교회는 이 선교팀의 사역과 지원을 힘입어 새롭게 생겨난 교회들이다.

 

비록 이 교회들은 도시상황 속에서 개척된 교회들이지만 초기 개척 당시 회심한 기독교인들의 경제적 형편도 좋지 않았고, 현지교회의 교회개척 비전과 그 헌신도 강하지 않아서 당연히 이 선교팀이 부여한 동기를 바탕으로 교회들이 개척 되었다. 이 선교사팀의 개척방향은 CPM의 일부 원리 처럼 교회가 아직 40명 미만의 작은 상태에 있어도 그 교회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도록 격려했고, 한 교회의 내부적 갈등이 있는 경우에도 그 교회를 분립시켜 새로운 교회가 개척되도록 격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당연히 재정적 문제가 찾아 왔다. 방콕 상황에서 40~50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절약하면 목회자 사례비와 교회 임대료를 낼 수 있었는데, 자꾸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도록 격려받는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교회가 늘어나자, 2000년 전후를 기준으로 18개 교회중 자립할 수 있는 교회는 30% 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각 교회 개척에 투입된 회원선교사들을 통해 새로 개척되는 교회사역들을 지원하며 토착적 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이후에는 회원 선교사가 직접 일하지 않는 교회개척 경우를 중심으로 재정 지원 구조를 만들기 위해 A교단 방콕 노회 지도자들과 협의하에 매년 교회 개척 지원금을 노회 예산에 포함시켜 지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원금은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사례 보조, 교회 건물 임대료 보조 등으로 사용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Gailyn의 모델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이 선교팀은 2000년을 전후하여 동반자 모델을 구축하려고 노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시 교회개척을 위한 동반자적 모델은 많은 협의를 거치고 또 거치면서 시행된 것이다. 선교팀은 자체적으로 주중 1회의 팀미팅을 가졌고, 선교회 지도자들은 자주 만나 그런 정책을 평가, 보완하는 시간도 가졌다. 선교회 지도자들과 현지지도자들(노회 지도자들로 운영위원들) 역시 자주 만나 이러한 재정 후원 씨스템에 대해 상의했다. 상호 적절한 보고도 있었고, 지도, 감독도 있었다. 선교사팀 멤버들과 노회에 속한 모든 교회대표들이 모여 3개월에 한 번씩 협의하는 협의 체제(노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원 체제도 자립적 교회개척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2-3년 정도의 지원을 입은 교회들이 자립교회로 성장해 나갈 것을 기대했는데, 그런 성장이 두 세 교회를 제외하고는 일어나지 않았다그 두 세 교회는 사실 그 선교단체의 후원금을 받지 않은 교회들이었고. 그 중 한 교회는 선교사들에 의해 토착적 모델을 지향하며 개척된 교회였다. 결국 한 번 재정적 지원을 받기 시작한 교회들의 선교단체 의존도가 너무 높아졌고, 그로 인한 예기치 않은 문제들이 생겨나자 선교팀은 필수적인 소액의 지원을 제외하고 그 대부분의 지원을 중단했다. 막대한 지원금의 중단은 그 노회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그 지원의 혜택을 받아왔던 사역자, 교회 지도자들에게 적지않은 부정적 반응을 일으켰다. 2005년 이후 그 선교팀은 앞으로 새로 개척되는 교회들에 한하여 지원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한 두 교회의 지원금만 남기고, 재정 지원을 중단했고, 노회는 그 지원금을 노회에 넣지 말고, 직접 해당교회로 후원하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서로 서먹한 관계로 끝이 났다. 2008년 현재 이런 서먹한 관계는 시간이 흘러 희석되었고, 새롭게 개척되고 있는 두 교회의 개척 지원금은 다시 노회를 통해 보내지고 감독되어지고 있다.  

 

이 간략하게 소개한 사례는 선교단체, 선교사, 현지교회가 협의를 해 나가면서 재정지원 정책을 세워 나가도 그 정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준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재정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너무나도 많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는 것이다. 때로 각 지역에서 행해지는 지원정책은 교회개척에 관한 교과서들에도 나오지도 않는 미처 생각치 못한 문제들로 인하여 방해를 받기도 한다.

 

위의 사례는 이런 요소들이 더 충분히 고려되었어야 했다.

 

1)    먼저 교회개척 프로젝트의 내용, 방향이 일방적으로 선교사들에 의해서 주도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작은 교회를 돌보기에도 바쁜 노회 임원들과 사역자들에게 제시된 선교회의 새로운 교회개척 비전은 큰 짐이 되었고, 재정 지원책을 인해 마지 못해 따라가긴 했지만, 새로운 교회개척 요청은 태국교회 내부의 요청이 아니었고 오히려 외부에서 주문된 것이었다. 교회의 자연스러운 성장 및 성장을 인한 자연스러운 확장(개척)이 너무나 인위적인(소위 전략적인) 비전에 의해 강요될 때 비전을 함께 공유하지 못하는 현지 지도자들에 의해 선교사 중심의, 외부 지원자 중심의 전략은 실패로 끝날 수 있다. 물론 선교사가 교회개척에 대한 초기 동기부여를 먼저 할 수 있으나, 교회개척이란 비전은 깊이 있게 나누어져서 그 비전이 공유되어야 했다. 재정적 지원은 태국교회 내부의 요청이 있은 후 수립했어야 보다 진정한 의미의 동반자 모델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동반자 모델은 현지교회의 성숙과 자급 능력과 의지에 대한 확신 없이는 이루어 지기 힘들다.

2)    그 재정 지원이 공평하게(아시아적 공평의 개념을 이해해야) 되지 못했을 때, 그 혜택을 보다 적게 누리는 현지 사역자들에 의해 마음 속에 불평으로 자리 잡았다. 재정 지원이 전체의 동의로 결정된 원리에 의해 집행된 것이 아니었고, 선교팀이 제시한 조건을 따라 집행되었다. 더욱이 각 교회개척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이 논의될 때 마다 충분한 논의 없이, 공적인 논의 없이 그 액수와 지원 기간이 달랐다. 이런 과정 가운데 마음이 상한 한 현지인 목사는 이 선교회가 아닌 다른 선교회와 손잡고 교회개척을 하게 되었다. 어떤 목회자는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켜 사임 해야 했을 때, 곧 바로 새로운 교회개척 프로젝트를 만들어 지원을 받기를 기대하기도 했고, 그런 기대가 받아들여져 선교팀의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교회개척을 시작할 수 있었다.

3)    교회개척 지원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그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한 이들은 소수(필드 대표, 지역 대표, 2)의 선교부 지도자들과 소수의 현지인 지도자(노회장)였다. 공개적으로 논의를 했더라면 새로 구축할 동반자 모델과 새로운 지원정책에 대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고, 교회개척 비전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노회 구조를 인해 소수의 현지 지도자와만 상의를 했고, 그 결과 많은 오해를 낳았다. 아마도 노회에 속한 20여 교회 중에 다수의 교회가 다른 선교회에 의해 개척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르지만, 선교팀은 다른 선교회들과도 그런 문제를 미리 조율해서 노회내 모든 선교회, 교회들을 포함하여 전체적인 동반자 모델 구조를 만들어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기 힘들었다면 그것은 아직 노회 산하 태국교회 지도자들의 성숙도를 믿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였음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4)    기대한 대로 후원받는 현지교회들이 재정자립을 해 나가지 못하고, 현지교회와 지도자들의 선교팀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높아져갈 때 그 지원을 그만 두기로 결단을 내린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 지원의 중단이 잠시 혼란을 가져 왔지만, 2-3년 후 이 노회 안에서는 보다 강해진 자립의 의지를 보이는 교회들이 생겨났다. 2008년에는 노회 운영위원회에 의해 선교사들로부터 동기부여를 받지 않은 자체적인 교회개척 프로젝트와 그에 따라 실현 가능한 방법론이 연구, 발표되었고, 그에 따라 한 곳에 새로운 개척교회가 설립, 자원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실로 토착적인 모델을 세우는 첫 걸음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소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선교팀과의 협의를 통해 여전히 선교회로부터 계속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2) 도시교회 개척을 위한 외부 재정 지원 정책의 고민 – K교회 개척사역을 중심으로

1998년부터 태국 방콕에서 도시교회를 개척해 온 필자는 당시 서구(국제) 선교단체에 속하여 사역하고 있었기에 가능하면 적은 외부 재정을 사용하며 교회를 개척하는 일, 가능하면 사역 초기부터 토착적 모델을 구축하도록 격려받는 분위기 속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필자가 속해 있는 노회 내 어떤 선교사님들은 그 해당 선교회와 모교회(초기 사역 기간에 협력하던 교회가 모교회가 되어준 경우)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초기사역을 시작하지만, 이러한 발전된 모델은 2004년 이후에 생겨난 좀 더 발전된 모델이고, 2000년에 수도권 지역에 K교회를 개척할 당시에는 교회개척 기금을 한국의 파송교회와 후원교회에서 별도의 재정지원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사역지가 탐마삿대학(랑싯)에서 가까운 방콕 외곽지역이어서 교회 건물 임대료와 태국인 동역자 사례비, 기본 사역비를 다 합해도 40여만원 내외가 되도록 검소하게 초기 세팅을 했고 모든 사역비는 헌금의 형태로 교회로 들어가 교회가 직접 관리, 집행하게 하여 가능한 한 외부적으로 개척 초기라도 외부의 헌금으로 사역이 진행된다는 인식을 덜 하도록 주의력 있게 조정했다. 한 명의 교인도 없이 시작한 사역이라 처음에는 사역에 필요한 모든 경비가 선교사들을 통해 공급되어져야 했다. 당시 함께 팀에서 일했던 한 선교사님 가정의 재정적 분담도 큰 힘이 되었다. 필자는 사역 초기부터 가능하면 태국 동역자와 교인들이 외부에서 유입되는 재정 지원을 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고민했다

 

사역이 진행되면 될수록 전도비, 수련회비, 대학생 사역비, 어린이 사역비 등 그 재정적 필요에 대한 보조가 점점 많아졌다. 당시 필자가 설정한 모델은, 초기 사역시에는 선교단체와 후원교회들의 후원금이 선교사를 통해 현지교회에 직접 사용되어지고(개인적 지원 모델) – 재정사용에 대해서는 속해 있던 선교단체의 감독을 받았고, 정기적으로 보고할 책임이 있었다 - 사역이 열매를 맺을 수록 현지교회가 속히 자급하는 교회가 되도록 격려하며(토착적 모델), 자급, 자립이 이루어지는 단계(현실적으로 적어도80명 정도의 현지 교인이 자체 예배당을 가진 단계라고 생각했다)에서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여 특정 사역분야(예를 들어 계속적인 국내 교회개척 및 해외선교)에 있어서 계속 협력하는 구조(동반자 모델)를 구축하려고 계획했는데 이러한 계획은 시간이 지날 수록 좀 더 구체적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가족 단위의 성도들이 회심, 교회에 출석하게 되어(타지에서 이사를 와 유입된 교인도 있었다) 교회는 조금씩 자립도를 높여 갔지만, 사역 도중에 안식년을 가는 동안에도 교회가 재정적 문제에 부딛히지 않도록 특별 재정 충원 방법을 준비해 두고 떠나야 했었다. 세례받는 교인이 늘어나고 교회가 숫적으로 성장하여 설립 4주년이 된 2004년에는 새로 이사한 임대건물에서 매주 40~50명씩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교회 내부적인 필수적인 필요들(목회자 사례비, 교회 건물 임대료)은 어느 정도 자립이 되어 갔다.

 

교회설립 4주년이 된 즈음, 작은 공간에 40명 이상의 교인들이 모여 콩나물 시루 같은 환경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본 필자에게 닥친 큰 고민은 어떻게 자체 예배당을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하우스 처어치(House-church) 같은 형태도 생각해 보았지만, 성전 중심(Temple-oriented) 문화권에 속한 태국의 불교적 심리 배경을 생각하면 예배를 위해 자체적으로 구별된 공간을 적당한 규모로 짓는 것이 필수적으로 보였다. 가장 쉬워 보이는 길은 한국교회에서 대부분의 재정을 가져다가 예배당을 짓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큰 규모의 지원으로, 이제 막 자급의 길로 들어 선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에게 다시 외부 지원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시킬 것이 분명했다. 필자는 일단 현지인 사역자팀과 그 문제를 깊이 상의하고, 교회 건축을 위한 재정에 대해서는 최선의 자체적인 재정조달의 분위기 가운데 기도를 통해 건축을 준비해 나갔다여러 차례 기도회가 있었지만, 2004년 중반에 있었던 일주일 동안의 24시간 연쇄기도 도중에 교인 한 가정이 자신들의 가구 공장 건축을 위해 새로 구입한, 교회 근처에 있는 토지의 십분의 일( 1,200 평방 미터-당시 지가 5천 만원)을 헌납하겠다는 결정을 했고, 그 같은 교회 내부적 변화는 교회 건축의 불을 당기게 되었다. 이 후에도 K 교회는 직접적인 건축헌금 뿐 아니라, 특수 무늬목으로 소형 십자가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사역자 부인들이 쿠키를 구워 팔기도 하여 그런 활동을 통해 건축비의 30% 정도를 모금하게 되었다. 2006년 초에, 한 중요한 문제를 상담해 주기 위해 필자의 파송교회 담임목사님이 태국을 방문하셨는데, 아울러 이런 상황을 보시고는 파송교회의 동의를 구하여 남은 70%의 본 예배당 건축비를 지원해 주셨다. 사역자 팀 안에서는 공개적으로 가능하면 50%의 건축비가 내부적으로 모금되도록 기대했었지만, 내부적으로 헌납된 토지의 가격을 포함하면 총 교회 건축비의 65%에 해당하는 재정이 교회 내부에서 마련되었고, 35%에 해당하는 재정이 외부에서 지원된 것이어서 나름대로 필자의 마음이 자유할 수 있었다. 2006 9월에 입당예배를 드리고, 2007 1월에 헌당식을 마친 다음에는 상당한 예산의 교회 부속 시설이나 에어컨 설치비 등이 그야말로 외부지원금 한 푼 없이 교회 자체적으로 모금되었다. 2007년 이후, 완전한 자립의 기반을 갖춘 이 교회는 2008 10월에 스스로 건물, 재정을 마련하여 T자매교회를 개척하게 됨으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자립의 모델을 이룰 수 있었다.     

 

이 교회개척 사례를 돌아 볼 때, 한국 선교사인 필자에게 가장 힘들었던 일은, 필자 역시 뼈저리게 느끼는 재정적 필요에 대해서라도, 현지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필요를 발견하고, 자체 토의를 통해 재정적 필요와 그 충당 방법을 결정하고, 일정 수준의 자급을 이룰 때 까지 가만히 입다물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현재도 이 교회가 인도차이나 선교에 드려지도록 계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데, 태국교회 중심의 자생적, 토착적 선교단체를 설립하고, 더 나아가 선교사 훈련원을 세우고 인도차이나에 태국 선교사들을 파송하는 일을 함께 동역함에 있어서, ‘동반자 모델을 바탕으로 그 일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적 필요에 대해 현지교회의 내부적 자급과 외부적 지원의 비율에 대해 최선의 계획을 세우고 조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여기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K교회를 개척하며 외부의 재정지원에 관한 실수도 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새로운 측면을 배운 뒤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수정된 철학과 신념, 정책을 세우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현지교회의 자급의 날을 바라보며 재정적인 면에서 현지교회를 도와 나가는 일은 아마도 이 사역을 마칠 때 까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며, 계속 고민하게 될 것이다. ()

출처 : jediyointhai
글쓴이 : jediYO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