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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네 신을 벗어라 본문

선교 한국/책 @ 한 권

네 신을 벗어라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0. 7. 8. 21:59

 

 네 신을 벗으라

로렌 커닝햄, 제니스 로저스 공저. 예수 전도단 옮김

 2002-05-30 출간 | ISBN 10-898528956X , ISBN 13-9788985289566 | 판형 A5 | 페이지수 166 

 

책 소개

 

저자 소개

국제예수전도단 설립자이자 하와이 열방대학 총장으로 섬기고 있다. 1996년 세계 모든 국가를 방문한 최초의 선교사로서 인정받았고, 현재까지 238개의 주권국을 포함한 400개 이상의 국가와 속령, 섬을 방문한 바 있다. 또한 그는 50년이 넘는 사역 기간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국가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 책에 담긴 모든 것은, 그가 평생 동안 끊임없이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얻은 체험과 교훈이다.저자는 현재 아내 달린과 함께 하와이 코나에 살고 있으며, 슬하에 두 명의 자녀와 세 명의 손자가 있다. 로렌과 달린 부부는 초교파 선교단체 Youth With A Mission(YWAM)을 이끌고 있다. YWAM에는 현재 전 세계 150개 나라에서 온 2만 명의 사역자들이 173개 나라, 1,200개 장소에서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다. 또한 단체 설립 이래, 4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생이나 자원봉사자, 혹은 간사로 훈련받거나 사역해 왔다.

 

&&&

 

우리 인생의 작은 사건 하나가 우리 인생 전체를 영원히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승리하는 비결은 곧 포기라는 사실이다. 곧 나의 권리를 하나님 앞에 포기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함을 말한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을 처음 대면하였을 때, 하나님은 “네가 선 곳이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셨다.

당시 풍습에서는 신발을 벗는 다는 것은 곧 노예라는 표시이다.

노예에겐 어떤 권리도 없다.

모세는 ‘네 권리를 포기하라’는 부름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도 기꺼이 하나님 됨을 포기하셨고, 정상적인 출생의 권리, 육신의 가족과 함께 할 권리, 결혼해서 가정을 가질 권리, 돈에 대한 권리, 그리고 명예까지도 포기를 하셨으며, 더 나아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순종하기 위해 그의 생명 까지도 포기 하셨으며, 남에게 빌린 무덤에 장사되며 그의 마지막 권리까지도 찢기 운 채 음부의 가장 깊은 곳 까지 내리워 지셨다.

예수님이 이 모든 권리를 포기한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께 돌이키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 중의 하나는 가족의 일원이 되는 권리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머리되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 되어 사랑의 조화를 이루는 결혼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 됨을 잘 나타내 주길 원하신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 하다라고 하시면서 비롯된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며, 자녀는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면 무엇이나 우상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복음을 위하여 아내나 남편, 자식들과 늙으신 부모님을 버리라고 요구 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공식이 책임 - 권리 = 하나님과의 관계의 상급. 으로 나타난다.

즉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가족에 대해서 무책임하기를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가족관계 안에서도 하나님의 원칙은 적용된다. 우리가 포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꼭 붙잡고 있게 된다면 결국 나중에는 놓치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실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독신인 사람도 권리 포기라고 하는 열쇠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을 우리를 위해 선택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적인 것들을 소유하고 개인적인 재산을 가질 권리를 주셨다.

곧 개인 소유권을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물질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은 그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뿐더러 잘못된 것이므로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정도의 신앙 자세가 확립되기 전에 세상적인 소유의 포기는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주고 또 준다 해도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은 잃지 않아야함이 원칙이다.

소유권이 하나님이 주신 권리임을 이해하면서도 주는 것에 대한 순종은 우리의 소유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이해하는 만큼의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물건을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시고 나서 그분이 우리에게 축복해 주신 것으로 우리가 그분께 기꺼이 돌려 드리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세계 복음화를 시킬 수 있는 돈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할 때 모든 사람들의 육신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채워 주시기 원하시며 그분은 우리 없이도 그 일을 하실 수 있지만, 우리가 그 일에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 의지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데 있어서의 당신의 책임에 관한 것들을 선호 할 수 있으며, 그 문화를 즐기고 속한 조국을 사랑할 권리를 가지며 중요 단체에 속할 권리, 옷을 갖추어 입을 권리가 있다.

그렇지만 만일 이런 권리들을 우리 자신과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배재한 채 행사한다면 분명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 하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부르짖음에 귀를 막는 것이 된다.

선교사란 ?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요 20: 21에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심은 우리가 지리학적으로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 살고 있다면 선교사라는 의미이다.

선교사로서 이웃에게 보내심을 입은 자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분이 원하시는 곳에서 선교사님을 섬기고 있는가를 하나님께 묻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가라!” 는 주님의 지상명령이 어떤 특별한 제자들이나 선교사, 남편감을 찾지 못해 그들의 괴로움을 선교지에 파묻어 버릴 필요가 있는 자매들, 인본주의자들, 그리고 너무 영적이기에 이 사회에 머물 수 없어 해외로 떠나는 참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나,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기에 세상이 구원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신에게 부르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당신은 이미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 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어디든지 보내시옵소서” 라고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에 ‘아니요’ 아니면 ‘ 아마 나중에 ’ 라고 대답한다면 당신도 역시 우상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지 마음을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한다.

기꺼이 가려고하는 의지와 함께 예수님은 당신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그 분이 필요로 하는 섬김에 사용될 수 있도록 다듬어지고 준비되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진리는 무한하고 우리는 유한한 이상 우리 모두가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가야할 길이 멀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오늘날 하나님은 성경의 수수께끼들의 해석을 각자에게 이해된 만큼의 조각들을 하나로 맞추어 갈 때 우리의 이해를 좀 더 크게 전체로서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밤을 새워 기도하기를 원하실 때, 우리 육신을 창조한 주님, 더불어 잠이라는 것을 애초에 발상해 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잠을 자지 못했을 때, 우리의 잃어버린 잠을 우리에게 충분히 보상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지, 금욕주의 고행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인도하실 때에는 어는 일정한 기간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금식 기도도 해야 한다.

자유를 잃어버리는 권리까지도 하나님께 돌려 드릴 때 우리의 진정하고 유일한 그분께 순종하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바울은 스스로 예수님의 종이 되었고, 그런 그는 옥중에 있든지 밖에 있든지 그 자신은 진정한 자유인 이였다.

용서는 선택이다.

아니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선택이 아니라 명령이다.

그리고 당신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없는 이상 당신은 당신의 기도로써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 하실 수 있도록 풀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용서, 이것은 곧 감정적으로 당신의 권리를 포기해 내려놓는 것이다.

용서는 다른 사람이 당신을 대적했던 것을 기억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용서의 장애물로는 용서를 선택하지 않는 것, 당신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것, 질투, 하나님의 성품인 긍휼하심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온유함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순복해 드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강한 성품의 한 특성이다. 어두움은 1초에 약 18만 6천 마일의 속도로 빛이 밝혀지면 빛보다 빠른 속도로 앞서서 도망간다.

그러니 불만 켜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수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그와 같은 공격을 통하여 우리의 정신적, 정서적, 물질적 필요를 공급하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세상과의 갈등에 부딪히고 세상 사람들이 하듯 맞불로 싸우는 방법을 택한다면 우리는 양이 아니고 늑대가 되는 것이다.

불 충성하는 지체가 있다면 무조건 잘못을 눈감아주는 충성이 아니라 잘 못된 것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해결하고(마18:15), 용서와 위탁된 마음을 갖고 각 사람의 차이와 잘못, 연약함을 뛰어 넘어 함께 일해가기 위한 충성인 것이다.

겸손은 곧 당신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있는 모습 그대로 기꺼이 알려지고자 하는 마음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권리를 포기해 드릴 때 우리는 그 어떤 사단의 세력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반대 정신을 갖고 행해 나갈 때 실로 땅을 유업으로 받는 온유한 자가 되며. 이 온유함이 슈퍼 양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당신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또한 그 분 안에서 가능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믿음이란 육신의 아버지 없이 한번 사람을 창조하신, 바로 그 하나님이 아버지나 어머니 없이 첫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그가 바로 아담이다.

하나님만이 오직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우리가 잃음으로써 이길 수 있는가?

그렇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어린 양으로 죽으심으로 늑대인 사단을 패배시켰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두 가지 언약 중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너를 축복 하겠다.” 는 것을 좋아 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겠다. (창 12 : 2)는 축복의 통로가 됨을 잊어버렸다.

예수님은 우리를 선교사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사람으로 세상에 보냈다.

가정, 교회, 교육계, 정부와 정치계, 언론계, 예술 연예 스포츠계, 사업 과학 기술계를 통하여 우리의 역량을 능가하는 권세를 주셨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 학교를 운영하는 동안 공립학교에서 빛과 소금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 방송이나 신문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반드시 어떤 사람들은 비기독교적인 대중 매체에 침투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포기해 버리는 곳이 어느 곳이든지 간에 그 자리는 사단이 차지 할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돈을 벌어라.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저축하라....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라‘ 고 요한 웨슬레는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이 나라가 아니면 저 나라, 즉 빛이 아니면 어두움에 속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다만 두 개의 나라만 존재하고 있고 그 나라들은 전쟁 중이다.

“나는 너에게 나의 원리 원칙들을 가르쳐서 네가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많은 영혼들을 원하게 되기를 원한단다.

너를 향한 나의 부름이 네게 있고, 네가 그 일을 잘 완수하기를 원한단다.

내게 모든 것이 있으니 너는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된단다.“ 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를 따르는 군사들에게 딱딱한 잠자리를 약속하셨다.

더 나아가 “당신이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올해도 죽게 될 30만 명의 사람, 그 이상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일 수도 있다” 고 하신다.

그 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사단에게 빼앗긴 영토들을 점령하라고 말씀하신다.

점령하라는 것은 통치권을 갖고 다스리라는 말이다.

사회 모든 전반에 걸친 통치권을 가지고 그들의 권위로 다스리라 하신다.

무력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분의 노예가 되는 것을 통해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반대 정신을 가지고 이 땅을 정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섬김을 통해서, 즉 종으로서, 온유한 자로서, 겸손한 자로서 다스리는 것이다.

그 예수님이 우리에게 “ 나를 따르라” 하신다.

그 분의 십자가를 지고, 신발을 벗어 던져 버리고 “ 맨발로 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종이 되라”고 하신다.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면 당신은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예수님과 함께 다스리고, 통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예수님을 위해 온 세상을 취하게 될 것이다.

 

 

신을 벗는 다는 것은 나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순종하는 것을 말하며 주님의 거룩한 나라의 사역을 준비한 자로서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요, 따르는 자라는 고백인 것이다.

세상을 주장하되 주님이 위임해 주신 권위로서 다스리되 온유와 겸손, 사랑으로 섬기는 종의 자세로 섬기며,

주님이 주신 자유로움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자유자가 되어,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부름 받은 군사로 예수님과 함께 그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되기 위해

먼저 보냄 받은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로서 헌신하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을 갖고 준비된 자가 되어,

부르실 때 ‘ 주님 !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 라고 고백하는 신실한 믿음을 갖기 위한 훈련과 예배자로서 기다림 속에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 목차

 

001. 전세계에 이르는 글
002. 맨발로 걷다
003.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
004. 전능하신 하나님. 아니면 전능한 돈?
005. 스스로 있는 자
006. 아무 명성도 없이
007. 나는 미칠 권리도 있다
008. 어떻게 슈퍼 양이 될 수 있을까
009. 모든 것을 이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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