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작하는 말
지금 한국교회의 타문화권 선교의 열기는 점점 고조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교회성장은 마이너스선으로 하향하고 있다는 기이한 현상을 우리는 목격한다. 교회 성장의 둔화와 함께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한국 교회의 참여의 쇠퇴를 걱정하는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교파를 초월한 거의 모든 교회가 형태나 내용은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타문화권 선교의 참여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 선교는 선교사 파송 숫자는 급작스럽게 증가되는 것과는 비례해서 선교의 질과 숙련도(Competence)에 대한 비판적인 지적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들의 선교가 비판의 도마위에 올려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낸 선교사들이 선교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평가 각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건물을 많이 짓고 큰 규모의 프로젝트 등을 얼마나 잘하고 있느냐라는 가시적인 평가를 통한 지적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영역을 지적하고 있다는 데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봉린 박사는 미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영문 선교 전문잡지 FMQ(1993년 7월호), 한국에서 발행하는 목회와 신학(93년 12월호)에 "한국선교 100년의 평가와 새 전략(296-302쪽)" 그리고 미션월드(94년 신년호)에 "1994년 한국선교 이렇게 달라져야 한다(11-15쪽)"등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한국 선교사들은 현지 교회와의 불편한 관계(아울러서 선교사 동료들과의 충돌과 갈등의 수치도 높아가고 있다)를 가지고 있다. 둘째, 한국 선교사들은 불투명한 재정관리로 인한 오해들을 받고 있다. 셋째, 한국 선교사들은 군림하는 선교사의 "식민지적 선교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지적과, 넷째, 한국 선교사들의 국제화에 대처하는 모습의 부족함, 다섯째, 한국 선교사들의 자녀교육의 심각한 문제점, 여섯째, 개교회가 선교를 주도하는데서 발생되는 문제점들과 마지막으로 한국 선교의 선교사 훈련의 체계화를 지적하고 있다.
필자는 이 7가지의 지적들 말고도 몇가지의 또 다른 문제점들이 우리 한국 선교를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노봉린 박사의 지적들의 상당부분을 동의한다. 조금 더 비약한다면, 우리 한국 선교는 서구 선교사들의 잘못을 비난하면서도 그들의 잘못된 부분들을 답습하는 이율배반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거부감 또는 변명하기 보다느 우리들 스스로가 겸손하게 주님앞에 자신들을 열고, 성령의 조명을 따라서 우리들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난후에, 우리들 스스로는 "이러한 문제들을 야기시키는 근본적인 원인들은 무엇인가? 문제 해결의 대안은 무엇인가? 이 해결 방안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를 질문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선교의 장이 될지도 모르는 21세기를 5년 앞두고 세계 교회는 마지막 남은 과업을 위해서 함께 힘을 합쳐 일하자고 외치고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이 엄청난 과업을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바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 선교의 람보시대는 더 이상 그 효용가치가 없으며, 또 무작정 상경식, 일단 선교현장에 가보고 보자는 식의 선교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우리 선교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주로 전반적인 선교사 훈련에 대한 영역을 통해서 해결점을 찾아보려고 한다.
2. 선교사 훈련의 종류와 그 중요성
선교사들은 훈련을 받아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이것은 면제되어질 수가 없다. 더 이상 훈련되지 않은 장교들을 전쟁터로 보내는 것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선교사 훈련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른 원칙을 통해서 바른 훈련을 받고 또 훈련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사역을 극대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인 것이다. 훈련이 잘 되면 재정, 시간, 인력 등을 충분하게 절약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훈련에서 기인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선교사들을 위한 훈련의 내용을 간략하게 구분해 보고 그 중요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선교사 훈련의 종류 선교사들을 훈련하는 내용은 선교사가 현장으로 출발하기 직전 등을 통하여 받는 "현장 진입 전 훈련(Pre-Fied Orientation)"과 현장에 도착해서 받는 "현장 훈련(On-field Orentation)",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교사 계속 훈련(On-Going Training)"등으로 분류한다.
(1) 현장 진입 전 훈련(PFO) 선교사의 임지가 결정된 후, 또는 파송을 받기 직전에 받는 훈련으로서 문화 인류학, 타문화권에서의 의사소통원리, 선교신학 등의 기본적인 훈련을 하기도 하지만, 조금 더 전문적인 훈련기관에서는 충돌해결의 기술, 언어습득의 기본적인 원칙, 팀윅의 원칙들, 선교의 동향과 이슈 등과 같은 훈련생의 절실한 요구들(Felt Needs)을 주축으로 훈련한다. 대개가 4주에서 길게는 9개월 이상을 하는데도 있다.
(2) 현장 훈련(OFO) 신임 선교사가 현장에 도착하면 현장 선교기관은 현장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언어와 문화 습득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데 이를 가르켜서 현장 훈련(OFO)이라고 한다. 기간은 2주에서부터 1년 동안인데, 기간이긴 것은 언어 습득을 위한 훈련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훈련 프로그램이 없는 기관들은 다른 기관들과 같이 공동으로 실시한다든가, 위탁 교육등으로 그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무작정 상경하고 있는 고아와 같은 고아 선교사들 대부분이 이러한 훈련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현장 진입을 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한국선교에 혼동과 무질서가 상다한 문제로서 선교지를 어렵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3) 계속 교육(OGT) 이 훈련은 대개의 경우, 선교사 자신의 재충전을 위한 훈련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즉 선교사들 자신의 발전(Enrichment)을 위하여 안식년 또는 연구 휴가를 얻어서 학위 등을 목표로 하는 훈련을 말한다. 자신의 선교를 돌아보고 재조명(Reflection)을 통하여 자신의 선교를 정리하여 앞으로의 발전적인 선교를 위한 준비를 하는 기간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현장에서도 세미나, 수련회 등의 비공식적 교육(Informal Training) 프로그램 등을 통하여서 선교사 자신의 영양섭취를 할 수 있으며, 개개인들이 조그마한 소그룹으로 스터디 그룹을 이루어서 연구하고 발표하면선 자신의 증진을 시도하는 무공식적 훈련(Nonformal Training)등이 있다.
2) 선교사 훈련의 중요성 우리는 훈련을 영어로 TRAIN이라고 한다. 그 첫 머리자들을 따서, 훈련의 중요성을 밝히려고 한다. 중요성과 필요성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1) T-TARGET(목표) 타문화권 선교는 목회 그 이상이다. 목회가 전문성을 요구하듯이 타문화권 선교 또한 대단한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다. 예전의 선교사는 팔방미인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이제는 많은 것을 폭넓게 알아야 할 필요도 있지만, 하나를 알아도 뚫어지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을 통하여 자신의 은사를 알고 그 은사를 통하여 선교의 영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선교는 타켓이 없이 총을 쏘아대기만 한 경향이 있지 않았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즉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바로 훈련은 이러한 목표 설정을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선교에 경영기술(Management skills)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선교도 이제는 주먹구구식의 영세성에서 하루속히 탈피해야 할 것이다.
(2) R-RELIABILTY(신뢰성/믿을만함) 선교사의 생명 가운데 하나는 신뢰감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복음으로 섬기는 현지인들이 우리들을 체크하는 첫번째 과정이다. 즉, "과연 이사람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서 우리들과 삶을 나누고 공개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를 피선교지민들은 민감하게 알기르 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는 비단 원주민과 선교사 사이만이 아니라, 파송기관/후원단체와 선교사 사이, 선교사와 선교사 동역자들 사이 등, 그 영역은 대단히 크고 넓다.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의 테스트와 삶을 통해서 그 출발을 하게 된다. 지식을 전달하는 훈련도 필요하지만 당면한 선교현장의 절실한 요구를 채워주는 훈련의개발은 참으로 중요한 영역이다.
(3) A-Accountability(책임감) 지금 한국 선교사들의 결정적인 실수들 중의 하나는 Accountability에 대한 충분치 못한 이해이다. 대개의 경우,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잘 되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재정에 대한 원칙, 인간관계 훈련, 사역에 대한 신실성 등의 무책임성을 통하여 대단히 많은 부분에 낭비를 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책임감이 있는가 없는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여간 어렵지 않은 영역임에는 틀림없지만, 얼마나 훈련을 잘 시키느냐에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얼마나 잘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4) I-Information(정보) 지금은 정보시대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는 우리들의 머리를 혼란케 할 정도이다. 또 다가오는 앞으로의 세대를 지식의 시대(The era of Knowledge)라고 한다. 전문지식을 갖지 않으면 기업 자체가 존재하기가 용이하지 않은 시대를 맞게 된다. 우주화-세계화 시대(The era of Globalization)를 맞고 있다. 일본 상표인 캐논 회사의 고용인들의 70%가 일본 밖에 있다든가, 매년 코카 콜라가 미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은 기업의 시장이 자국에서 타국으로 그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 다양하고 신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 한국 선교가 증진하기 위하여서는 훈련을 통한 충분한 정보를 소유하고 선교 현장으로 나가기도 하고 또 사역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10-40 창문"에 대한 작금의 선교의 흐름들, 미전도 종족에 대한 입양운동과 같은 선교 정보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은 동의하지 않아도 좋지만 이러한 영역을 충분하게 이해하는 것은 오늘의 선교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손해 볼 것이 없을 것이다. 어느 선교사님이 "입양운동이 홀트아동 복지에서 고아를 입양하는 것이냐? 나도 양자를 하나 입양했는데, 참 좋더라. 여러분들도 한 번 입양해 보아라"라는 등의 에피소드들은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우리 선교의 현주소이다. 이것은 훈련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필자는 그 책임을 통감한다.
(5) N-Nurturing(양분섭취) 선교사가 받고 있는 요구의 양은 너무나 크다. 채움을 당하기 보다는 거의 대부분 주위로부터 요구를 당하다가 보내, 심령이 매말라져 가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적인 고백이 아닌가? 그 누구보다도 선교사는 계속적으로 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영양 섭취면에서, 고국의 목회자들은 상당히 많은 선택이 있지만 현장 선교사는 그렇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영양섭취의 결핍은 병을 유발케 한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선교사들이 우리들 주위에 상당히 많아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특별히 동료들, 현지인들, 그리고 후원기관등과의 갈등과 충돌 등으로 정신적인 아픔을 안고 있는 선교사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국 선교사들은 만경창파에 홀로 떠 있는 배와 같기도 하며, 허허벌판에 혼자서 외롭게 살아가는 아무도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역하고 있는 상처 투성이의 사람들이다. 누가 이들을 돌보아 줄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한국 선교사 세계에 유행하기 시작한 말은 "알아서 기어라"라는 말이 있다. 현장으로 보냄을 받기는 받았지만 그 누구도 책임감을 가지고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는, 버려진 고아들과 같은 신세가 바로 한국 선교사들이 아닌가 싶다.
3. 선교사 훈련의 특생들
1) 초기(1950-1970년대 초) 한국 선교는 선교 훈련의 불모지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간 선임 선교사들의 악전고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실패와 시행착오, 그리고 실수와 아픔으로 얼룩진 한국 선교의 초창기는 건강한 아이들을 낳기 위한 산모의 고통과도 같았다. 최찬영, 김순일 선교사의 아세아에서 시작한 선교가 이제는 120여개국에서 약 3800명의 선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초기 선교사 대부분들은 선교사로서의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 조차도 받지 못한 채 "선교에 대한 열정"만을 가지고 현장 진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은 선임 선교사 대부분들이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행스러웠던 우리 타문화권 선교의 시작은 우리들 앞에 먼저간 선임 선교사들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불필요한 시행착오나 실수 등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놓여진 한국 교회의 타문화권 선교가 한국식의 독특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잇는 실정이다.
초기 한국 선교의 특성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한국 선교는 자생적인 선교로 시작되었다. 즉 서구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에게 타문화권 선교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 지도자들 스스로가 타문화권 선교의 헌신으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b. 한국 신학교의 대부분의 교과과정은 선교 지향적이 아니라 교회 목회 지향적인 토양에서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c. 당시 타문화권 선교에 대한 대부분의 인식이 고운 눈초리가 아니었으며, 굴절된 시각을 가진 지도자가 타문화권 선교에 영향력을 끼친 것 또한 무시 못할 부분이었다.
d. 불타는 선교의 열정을 가진 선교사 후보생들이 일단 현장으로 진출해보자는 태도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2) 중반기(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초) 사실, 초기 한국 선교사들이 받을 수 있었던 선교 훈련은 신학교에서 받은 신학교육, 그것이 전부인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서 선교사로서의 준비해야 할 문화, 언어 습득 기술과 원칙, 인간관계 훈련과 팀윅의 원칙, 효과적인 재정관리 등의 여러가지의 실제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의 결여가 19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시도가 그 자태를 서서히 들어내기 시작했다고 본다. 즉 KIM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 오리엔테이션, 1980년대 중반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GMTC등과 같은 선교사 훈련원, 합동측의 MTI, 통합측의 세계 선교사 훈련원 등은 한국 선교사 훈련에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본다.
본격적인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이 한국 선교사들에게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중반 이후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물론 이전에도 미미한 훈련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교단들의 선교사 훈련원 운영은 교단 중심의 선교사 파송의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훈련기간도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다. 적게는 4주 정도의 집중적인 훈련이 있는가 하면, 7개월에서 1년 정도의 훈련으로도 발전된 양상이다.
3) 현재(1980년대 초 - 현재) 선교사 훈련원이 많이 일어나기 시작한 현재의 특색은 다음과 같다. a. 선교사 훈련의 공유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즉 미국의 MI와 같이 초교파적인 선교사 오리엔테이션 과정의 훈련기관의 구실보다는 자체 기관의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에 더 치중하고 있는 인상을 지울수가 없다.
b. 선교 훈련 내용의 거의 대부분이 서구 선교사 훈련의 복사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c. 선교사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훈련자들의 현장 경험의 한계가 극복되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 또한 무시 못할 부분으로 지적할 수가 있을 것이다.
d. 선교사가 가서 사역할 현장에 적합한 내용과 현장의 절실한 요구 등을 만나 주기에는 역부족인 훈련 내용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4.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 선교사와 선교지 교육에 미치는 영향들
한국 선교사 훈련은 한국의 교육방법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입식, 입시 위주의 교육 등은 목적을 달성하면 된다는 식이라고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 방법에 젖어 있는 우리 선교사들이 현장에서 교육과 훈련 사역을 개발해서 사역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즉 한국에서 자신이 받은 교육 방법을 그대로 자신의 사역에 적용하는 것에 우리는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이러한 교육 방법은 현장에서 혼돈을 불러일으킬 요소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는 지역들은 어디를 막론하고 서구적인 영향권 아래에서 교육을 받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아프리카는 불란서와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아서 그 교육 제도나 운영의 많은 부분이 유럽적이라고 우리는 경험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 선교사가 아프리카인들을 훈련하는 데 있어서 한국식 교육 방법을 도입한다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한다.
물론 서구 교육 방법에 문제가 없다는 말은 결단코 아니다. 컨텍스트에 맞는 교육 방법과 원칙의 개발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육 방법은 선교사 훈련에도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필자는 목격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초기의 한국 선교는 교단의 "전도부"가 국내 전도와 해외 선교의 두 가지를 동시에 관리하는 것이 하나의 상례로 되어왔다. 그래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타문화권 선교사는 "전도"라는 영역의 일부분에 편승된 채 수년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한마디로 한국 선교는 구식 파라다임의 한 모습으로 한국 선교사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들은 "철 지난 구식 옷"을 입고 그것도 체형에 맞지 않은 외국의 기성복을 입고 선교 현장을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한계, 바로 그것이었다는 말이다. 한국 선교사 훈련의 파라다임의 점검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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