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신학함의 방법 본문
사람들은 신학이라 하면 신학교를 연상하게 되고 신학교를 졸업하면 신학을 졸업한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신학에는 졸업이 있을 수 없다.
죽을 때까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신학은 계속되어야 한다.
신학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함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신학교로 가야 된다는 뜻은 아니다.
신학교를 가야 신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학에 대한 정의와 신학함의 방법이 잘못된 데서 기인한다.
신학함이란 하나님이 역사의 현장에 나타나심을 궁구하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고백하고,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게 됨을 소망함이다.
그러므로 신학함이란 신학자나 종교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학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신학을 하고,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신학함의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야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신학함의 첫번째 방법은 마음의 신학함이라 생각된다.
이 마음의 신학함은 신학함의 근본으로서 성실한 마음(誠)과 경건한 마음(敬)으로 하는 신학이다.
성과 경의 마음으로 주님과 하나님을 대면하고 성과 경의 마음으로 성경을 궁구하고 성과경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고 성과 경의 마음으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이다.
마음의 신학함이 없이는 어떠한 신학적 지식도 힘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학은 마음의 신학을 외면하고 있다.
오늘날은 근본이 되는 마음의 신학을 외면하고 지식 신학 혹은 체계 신학을 중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마음의 신학은 존재 신학이지만 체계 신학은 소유 신학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는 존재보다는 소유를 중시하기 때문에 소유 신학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유 신학을 중시하는 자들의 마음은 신학 지식을 소유함으로써 신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신학함의 목적이 존재의 변화, 새사람이 되는 데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자들이다.
마음의 신학은 성경적 용어로 표현하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을 의미한다.
신학함의 근본이 되는 마음의 신학함이 없이는 허탄한 마음과 세상적 가치관 때문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신학은 모래 위에 쌓은 집과 같이되고 만다.
그러므로 옛 선지자들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하였다.
신학함의 두 번째 방법은 삶의 신학함이다.
성과 경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출되는 삶의 현장이 없이는 관념의 신학, 무능의 신학이 되고 만다.
마치 실험실이 없으면 과학을 할 수 없듯이 삶의 실험장이 없으면 신학도 할 수 없다.
가장 근본이 되는 삶의 실험장은 가정이다.
두, 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예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가정이야말로 신학함의 가장 중요하고 근본된 삶의 현장이다.
가정 다음으로 중요한 삶의 실험장은 교회이다.
교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모이는 만남의 장소가 아니다.
교회는 신앙 공동체이며 문화 공동체이며 밥상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 공동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와 같은 교회 공동체라는 삶의 현장에서 신학함이 없으면 신학함의 목적을 온전히 달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날의 교회는 이러한 목적에 맞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지 않으면 그 존재가치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교회 공동체 다음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삶의 현장은 노동 공동체이다.
농경 시대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곧 노동 공동체였으며 그 중심이 교회 공동체였기 때문에 노동 공동체라는 말이 필요없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면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고 노동 공동체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은 노동 공동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제 신학함의 삶의 현장은 노동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신학함의 현장으로서 가정 공동체, 교회 공동체, 노동 공동체의 모습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신학함의 세 번째 방법은 체계를 세우는 신학함이다.
그러나 이 체계 신학은 지식의 습득이 아니며 이성으로 탐구하는 학문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체계 신학은 마음의 신학, 삶의 신학의 토대 위에서 체계를 세워가는 학문이기에 교리로 고착될 수 없으며, 마음의 신학, 삶의 신학과 더불어 됨의 신학으로 자라가야 한다.
즉 마음의 신학이 삶의 신학에서 구체화되고 표출됨으로써 체계 신학이 형성되어가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퇴계 선생님은 하나를 배워도 그것을 실천하는 자는 학자라 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학 풍토는 배울 줄만 아는 지식 숭배자를 배출시킬 뿐 퇴계 선생님이 말씀한 학자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삶의 신학을 중시하는 실천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이 역시 마음의 신학, 체계 신학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온전한 신학으로 꽃 필 수 없다.
*** 도서출판 대장간. " 꺼꾸로 사는 삶 " 중에서 ㅡ
인생들이 만든 시간 크로로스의 시간이
한 해를 보내고
또 다른 제목의 시간을 열어 갑니다 .
아직도
너무나도 많이 나를 모르는 나
변해야 할 것이 넘 많은 나
비울 것이 넘나두 많은 나
방황이 아닌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나를 찾고 싶다
나를 만나고 싶다
나를 ...
나를 찾아가는 길목에 서성이다 보니
세월이 지나 가기를
산천이 일곱 번
변해가는 거리에 거닐고 있습니다 .
나의 나 됨을
주님의 말씀 안에서 찾아지기를 기도하는 아침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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