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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독립만세" 외친 이들 위해 … 기도하고 기록했던 美선교사
'한국 개신교 선교 140주년' 美 선교의 길 순례 下
韓 장로교의 아버지 모펫
일제 만행들 낱낱이 기록
신사 참배 거부해 쫓겨날때
목숨 걸고 역사기록물 지켜
든든한 선교후원자 가우처
세계 곳곳 교회 15개 지어
韓사절단 만난뒤 조선 방문
이화학당 등 학교 설립도와
지난달 29일 방문한 프린스턴신학교 시어도어 세드윅 라이트 도서관에는 5m에 달하는 두 개의 나무탁자 위에 모펫이 직접 쓴 보고서가 한가득이었다. 라이트 도서관은 인류의 지성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대 재직 시절 살았던 생가로부터 고작 200m 거리에 위치한 프린스턴신학교의 중앙도서관이다. 이곳엔 1919년 조선팔도의 3·1운동 직후를 담은 수많은 보고서가 모펫의 손길이 닿은 원본 그대로, 그리고 낱장마다 순번이 부여된 채로 차곡차곡 보존돼 있었다.
'수천 명의 한국인이 길가에 서 있고, 모든 사람들이 옷을 벗고 있었다. 일본 군인들 옆으로 피 묻은 상처와 총검이 보였다. (중략) 군중 속에서 신학새들이 잔혹하게 구타를 당했다.'(1919년 3월 5일 모펫 선교사의 기록)
모펫은 1890년 1월 서울에 도착하며 선교를 시작했던 미국 북장로회 소속 해외 선교사였다. 당시 그는 만 26세 젊은 나이였다.
모펫 컬렉션은 'Korean Independence movement'라는 영문 이름의 3권짜리 묵직한 파일로 구성돼 있었다. 모펫이 일생 동안 모은 자료는 600박스로 추정된다. 모펫이 직접 쓴 컬렉션에는 "시위로 인해 신학교 개교가 연기됐으며, 기독교인에 대한 잔혹행위가 진행됐다"는 내용도 상세히 기록됐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도 이곳 프린스턴신학교 출신이기에 모펫 컬렉션에는 당시 이승만 박사가 남긴 자료와 그에 대한 소개, 심지어 사망 당시의 신문기사까지도 원본으로 함께 보관돼 있다.
브라이언 셰틀러 프린스턴신학교 아카이브 담당자는 이날 한국 기자들과 만나 "평양을 중심으로 한국 선교에 공을 세운 모펫 보고서는 당시 혼란스러웠던 조선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러준다"며 "당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모펫은 한국에서 보았던 이야기를 보고서로 작성해 미국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모펫은 1935년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한 뒤 추방당한 인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모펫 컬렉션은 그런 그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기록물이다.
한국 개신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장소는 볼티모어에 위치한 러블리 레인 연합감리교회다. '세계 감리교의 어머니교회(모교회)'로 불리는 곳으로, 모(母)교회란 쉽게 말해 '감리교가 비로소 여기서 부흥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교회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간직한다. 한국 개신교 선교의 절대적인 후원자였던 존 가우처 선교사(1845~1922) 때문이다.
가우처의 생을 이해하려면 그의 아내 메리 존 가우처 서실리아 피셔부터 기억해야 한다. 가우처의 부인은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였다. 평생의 동반자였던 두 사람은 해외 선교에 뜻이 깊었다. 이로 인해 가우처는 21년간 목회를 하면서 교회 예배당 15개를 건축했다. 물질과 정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봉헌한 것이다. 가우처 부부는 중국 톈진에 병원을, 일본 도쿄에 대학을 설립했다. 둘의 후원은 아프리카, 중남미, 그리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까지도 뻗어나갔는데, 그들이 해외 선교에 사용한 액수는 당시 25만달러를 넘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가우처 부부의 따뜻한 손길은 조선 땅에도 닿았다.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이 체결되고 1883년 민영익이 이끄는 보빙사(견미사찰단)가 미국에 파견된다. 보빙(報聘)이란 자국을 방문한 외교사절단에 대한 답례로 상대국을 방문하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가우처는 워싱턴 DC로 향하는 열차에서 보빙사 수행단장 민영익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가우처는 그 자리에서 한국 선교의 가능성을 확인한다. 이후 한국 땅을 밟은 가우처는 연희전문학교, 이화학당 건축을 후원했다.
한때 교인이 1000명에 달할 정도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러블리 레인 연합감리교회는 '감리교 모교회'이자 성지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현재는 신도 수가 20~30명에 불과하다. 한때 모든 이들이 기둥처럼 붙들었던 예배당은 세상 속으로 흩어졌다.
이제 현대의 우리는 '종교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고심한다. 특히 팬데믹에 이어 인공지능(AI)의 발달이 눈앞에 벌어지면서 성직자, 예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의미까지 고민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도 한때 세상을 충만하게 만들었던 선의는 변질되지 않는다. 긴 여정에 동행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140년 전 한국을 사랑하여 개화의 문을 열게 하시고 선교사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과 선교사들의 열정이 주는 메시지를 이 자리에서 고민하게 된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건 복음의 회고이자 자성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프린스턴·볼티모어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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