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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 님 서 신 발 앞 에

첫 번째 만남 - 필리핀 본문

글터/글) 꿈의 여행. 단기 선교

첫 번째 만남 - 필리핀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09. 12. 24. 07:12

 

 

필리핀 여행 ( 주후 199413~ 7)

 

0.  12( 일 요일 )

신정 연휴를 처제 집에서 보내고 성민이와 주희를 맡기고,  2일 저녘 김포로 가는 마음은 설레임 반 걱정 반으로 담담했다.

공항 근처 여관에서 동행할 교회 식구들을 만나 저녘을 먹고 출국 준비를 하였다.   늦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누는 이야기들로 잠을 설친 일행은 임 완철 목사님, 최 운옥, 하 숙희, 김 남희, 윤 영악, 오 형진,  "형수, 최 미영, 박 영순, 박 신자, 여 운식. 모두 11명 이었다.

 

1.  13( 월 요일 )

많은 과일은 통관이 안 된다는 말에 각 자의 가방에 여 나므 개씩 선물용 사과를   나누어 가진 후  김포 공항을 이륙하는 아침 비행기 안에는   해외로  나들이 한다는 기대에 모두가  상기된 듯 조금은 들떠있는 기분들 이었고  객석의 대부분이 한국인 이라는 데 놀람을 금치 못하며 국제화의 물결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차가 1시간 정도 빠르다는 섬나라 필리핀 국제공항에 내린 일행은 낯선 이국인의 모습에 조금은 움 추렸으나  30여분이 지난 후에 오신 김 광수 선교사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백화점 같은 곳의 한국인 식당에서 중식을 하고, 찾아 간 곳이 유엔 묘지였다.  잘 정리된 참전국 전사들의 묘비 중 유태인의 것은 유독 선택 받은 민족 임을 자만하는 느낌을 주듯  6각 별 모양을 고집하고 있었다.  길가 이동 점포에서 파는 사탕과 과자는 어릴 적에 먹었던 동네 구멍가게의 그 맛이었다.  그러나 껌은1달라나 하는 미제였다. 

이멜다 여사의 영빈관인 코코넛 궁을 찾았으나 허락치 않아 파고다 공원같이 독립 운동가 리잘을 기념하는 리잘 공원에 가보았다.  저소득층의 길거리 호객 상행위가 짜증은 났으나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우리도 겪은 역사의 이유만은 아니리라.  

지갑 외에는 소지 할 수 없는 식품 마케ㅌ에 들려,  실갱이 끝에 외국인의 자존심을 세워 저 마다 가방을 들고 들어가 구경과 함께 풍성한 열대 과일을 사 들고,

선교 센터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먼 길을 왔다고 반기는 사모님과  식구들의 환영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의 갈급한 향수의 짙은 연민을 갖게 한다. 한국 음식과 필리핀 음식의 어우러진 맛난 저녘을 먹고 과일을 추가하는 저녘 이었다. 

필리핀 선교의  고충과 현실을 사진과  일지와  현황 판으로 설명을 듣고  원주민의 생활 모습과 선교 자료도 보았다.  장로님 댁과  우리는 부부라는 이유 만으로 선교실 옆의 가정부가 쓰던 아주 적은 침대 방을 배정 받았고 일행은 선교실에서 대나무 침대를 사용했다.

 

2.  14( 화요일 )

새벽 예배를 마치고 부지런을 떨어 여장을 갖춘 뒤  70년대 초의 한국의 국도 길과 같은, 긴급 보수공사를 해야 할 왕복 3~4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주변에는 4모작에 바쁜 농부들의 모습도 보였으며,  한 개에 3페소 ( 100)밖에 안하는 야자 열매를 산더미같이 싸놓고,  한 개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촌 부부의 모습, 할 일없이 앉아있는 젊은이들을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며 3시간 정도 달려 누런 흙탕 물의 강에 도착한 일행은 카누라는 4인승 조각배에 부부의 몸을 의지하여 팍상암 폭포를 탐험했다.호객 꾼들과 덤핑을 외치는 선주들, 누런 강물에 빨래하는 아가씨, 웃 돈을 요구하는 사공과 검문 경찰들,  일행의 카누 여행은  깊은 밀림의 강 줄기와 열대 숲, 금방이라도 넘어질듯한 높은 절벽,   사람들의 목소리를 감추어 버리는 팍상암 폭포의 물줄기 소리로 즐거움을 더했다.

마닐라로 돌아오는 국도 길에서 휴화산 인 볼케노 화산을  먼 발치로 바라보며    당시의 처참했던 모습을 들으며 길 섶에 핀 야생 화초를 꺾어 그 향기에 심취할 즈음 열대 과일이 풍성한  따 까이 따이 산지에 올라와 있었다.       풍성한 파인애플 밭에서 저마다 폼을 잡아보고서 비교적 싼 가격에 거봉, 바나나, 파이애플, 망고,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열대 과일을 사서 먹으며   복음 성가를 부르는   일행의 차창으로 스치는 이국 풍경에 눈길을 가져간 곳은 어느 철길 가의 빈민촌이었다.      저녘 후에 나와 앉은 아낙들의 초라함과 벗은 아이들의 모습은 기후 탓만은 아닌 듯 하나      그래도 어린 마음들은 뛰어 놀기에 바쁘며 마냥 즐거운 듯하다.

선교 센터에 도착하니 사모님은 한국에서는 먹기 힘들고 귀하지만 이곳에는 비교적 싸다며 손바닥 만한 왕 새우로 저녘상에 장만 해 놓았다.  식 후 메리라는 적은 키의 흑인 가정부 아가씨의 파인 애플 깎는 멋진 시범과 일행의 엉망인 실습에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되었으며,  잠 자려는 침대 위,  석 가래에 기어 다니는  한 자나 될 것 같은 열대 도마뱀의 소동과  끼 있는 여자들이 밤 새 그려 놓은 일행의 밤 화장 사건은 피곤한 밤을 만들고 말았다.

 

3.  15( 수 요일 )

일찍부터 서울에서 온 대학생 선교 팀과  어울려 찾아 간 곳은  도심 속의 극장을 빌려 사용하는 생명의 빵 교회였다. 2천 여명의 성도와 새벽 예배까지 드린다는 마닐라 최대의 개신교를 뒤로 하고, 4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 토마스 카토리ㅋ 대학의 싱그러운 학동들과 캠퍼스를 돌아보고

흑인 예수를 섬기는 뀌아포 성당을 찾아 많은 순례자와 엎드려 기어 가며, 무릎으로 걷는 고행과 함께 미사에 참여하는 신도들의 모습과 역사성 있는 유물들을 사진에 담은 후

뀌아포 성결교회로 가서  현지 목회자들과 서울에서 온 대학생 선교 팀과 잠시 교제를 나눈 후  오랜 역사를 가진 성 어거스틴 성당을 찾아 4백년 전  스페인 백인 교회의 독선적인 선교 모습이 담긴 많은 진품 성화와  유력한 자들의 납골당, 석상 및 유물들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주교들만이 앉을 수 있었던 멋진 의자에 앉아   크기가 1미터가 넘는 전시된 옛 찬송가를 보노라니   때마침 열린 결혼식 미사로  본당이 시끄러웠고   일행은 내려가 볼 수 있었다.   들러리 꼬마 여아들의 귀엽고  예쁜 모습을 함께 사진에 담은 후 그 곳을 떠났다.

중식 후 시내를 돌며 무 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선진 문화를 받은 후진국의 모습을 느꼈다. ---엔진과 후레임이 노출된 뚜껑 없는 차, 필리핀  최대의 대중교통 수단인 어여쁜 지프니와 마차가 같이하는 도심의 거리, 집 밖 길거리에서 접시에 담긴 음식을 맨 손으로 먹는 젊은 여인,  길 옆 열대 나무 아래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  이를 잡기 위해 어린 아이의 머리를 나꿔 채는 젊은 흑인 엄마의 모습, 예산이 없어 퇴색된 채 사용하는 관공서 건물들,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십리쯤 되는 뱀 모양으로 늘어선  대사관 앞의 사람들,    성탄 절기를 즐기기 위해 1년을 준비한다는 반세기 가까운 카토릭 신앙의 후예들이, 현현절 이후 까지 절기를 지키기 위해 거리를 치장한 다양하고 이색적인 카토릭 문화의 갖가지 이벤트 장식들,

슈퍼 마케ㅌ이나 지키는 경찰들, 신호등이 있으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과 자전거 차, 오토바이 차, 마차, 멋진 일제 승용 차, 짚차를 개조하여 만든 호화스럽게 보이는 지프니,속이 보이는 깡통 버스,  광주 택시라고  새긴 아크릴 판을 그냥 달고 시내를 질주하며   영업을 하고 있는  70년대의 우리의 영웅 택시,   그리고  프라이드 경찰차를 타고  엄지 손가락을 세우며 코리아를 외치는 검은 피부의 용감한 건 맨들, 1 달러를 요구하는 아이들, 정부 은행의 까다로운 환전보다  환율이 좋고 절차가 없으며 한눈에 위조지폐를 분간하는 유능하고 편한 허가 난 암 달라 상점 Money Changer,

호화스러운 수백 척의 모터 보트가 정박 된 항구 등을 보노라니  세계적인 산호와 진주와 보석과 수십만 개의 코코넛 열매로 장식한 호화스러운  이멜다 궁에 도착하였다.    독재 집권자의 호화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영빈관 이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 밭 정원에서, 열대 나무 아래에서, 평생 접하지 못할 화려한 장식들 앞에서 그 리고 국정을 거론하던 원탁의 간이 집무실에서 자신들의 품위를 한껏 폼 잡아 본 후    끝이 안 보이도록 길게 늘어 선 국도 변에 형성된 노점상들의 재래 시장을 지나, 

난지도와 같은 쓰레기 매립지에서 사는 주민들과 급식소를 찾아 갔다.  파리 떼에 무감각해진 채 쥐어준 몇 개의 사탕을 최고의 선물로 아는 꼬마들과   1페소 ( 30) 짜리  팥죽 한 그릇으로 하루 두 끼를 해결한다는 빠야다스 급식소 어린이들, 그리고 그들은 젖먹이 때부터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고 사용 해 야하는 이유를 모르는 채  유치원에서 언어 공부를 마치기가 무섭게 급식소의 배급 행렬을 더 길게 연결하려고 애 쓰는 모습을 보며 아픈 마음을 안고,

세계 9위 권의 필리핀 대학의 울창한 숲속의 캠퍼스와 넓고 푸른 잔디 운동장을 돌아보며 마음은 젊은 탓 인지 그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은 마음으로 바라본다.

저녘 식사 후  투바우 교회에서  대학생 전도 팀의 찬양과  율동과 함께  수요 밤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나 본듯한  서양 주택과  같은 교회와 푸성귀로 가득 차고  잘 다듬어진 정원,   이국 인과 함께 드리는 예배,  그들만의 문화와 방법으로 드려지는 찬양,  그러나 함께하는 한 시간의 은혜는  동질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 같다.  교회는  아직 구입하지 못 하고  임대로 사용 중 이라는 것과  천주교 국가에서의 어려운 선교 활동 이야기로 교제의 시간은 밤을 짧게 만들었으나, 주는 자의 기쁨을 넘어선  우월감은  받는 자의 무의식적인 의기소침을 한번쯤 경험이 있는 민족으로서 조금은 석연치 않는 마음을 갖게한다.

 

4.  16( 목 요일 )

계속 강행된 여정을 풀고자 세 시간 만에 찾아 간 노천  폭포 온천  히든 빌리지는 심신의 피로를 풀기에는 과분할 정도의 아늑한 곳 이었다.  우기의 습하고 추운 (그래도 우리에겐 더운 25~6) 날씨에 우리는 지칠 줄 모르고   시간을 멈추어 놓은 양 모두가 어린 아이가 되어 물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음미 했다.   그림에서만 보았던 일행의 열 두 명이 두 팔 벌려 잡은  팔 길이보다  더 굵은 열대 나무, 처음 보는 움직이는 야생 초, 열대 숲, 알카리 성  노천 폭포 온천의 아늑함,  아무에게도 관심 받지 못하고 뒹구는 야자 열매, 즐거움을 더해주는 3류 집시 가수들의 굵직한 톤의 한국의 유행가들, 아쉬움을 감추며 돌아서는 일행의 뒷짐에는 어린아이의 머리만한 야자 열매를 하나씩 감추고 있었다.

돌아오는  차창 가에는  도로변에서 물고기를 팔기 위해 소리 지르는  맨발의 젊은이들,  수줍은 듯 과일을 파는 임신한 새댁,   하학 길의 아이들,  검지만 어여쁜 선생님의 모습이 비쳐진다.   3페소 짜리 야자 열매 하나를 사서 신자 씨와 함께 마셔본다. 

한국인 상가에 들려 진주와 소라 껍질로 된 장식품 등 약간의 선물을 구입한 후

쓰레기를 매립하여 동산처럼 언덕을 이루고 쓰레기가 썩어 나오는 가스의 위험을 막기 위해 곳곳에 항상 불을 붙여 논 이유로   연기가 없는 날이  없다는  스모킹 마운팅 위에 있는 홀리 랜드 성결교회를 들려 

마닐라 상권과 은행을 대부분 독점한다는  차이나 타운의 중국인 묘를 늦었다고 열어주지 않는 문을  반 강제로 뚫고 들어가 십자가가 있는 무덤 집, 강시가 있는 무덤 집, 길섶에 방치된 무덤, 술 마시는 곳이 준비된 무덤 집, 주인을 기다리는 빈 무덤 집,  T.V 가 설치된 무덤 집, 휴게실이 있는 호화 무덤 집을 돌아보았다. 죽은 자를 위해 노자 돈을 태워 보내는

문화 선교의 현장을 보았고, 피부와 언어는 달라도 젊은 감정은 같은 경비원의 마음을 보았다.

산 아래로 보이는 마닐라 시의 야경과  지나는  밤 거리는 네온 싸인 빛으로 볼 만했고,  스치는 젊은들은 어디나 똑같이 싱그러움을 갖게한다.

늦게 돌아 온 탓에 피곤하였으나  오는 길에 사 온 두 손바닥 만한  민물 게를 요리하여  원 주민들이 사용 한다는  대나무 등잔을 주변에 세우고   분위기 있게   저녘을 마친 후 이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 하며  지난 4일간의 여정을,  즐거운 일들을 이야기 하며 짐 정리를 하노라니 새벽이 되는 듯 하였다

 

5. 17( 금 요일 )

예배 후 서둘러 짐을 정리하여 선교 센터 식구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기념품 몇 가지를 더 구입한 후 마닐라 공항을 출발했다.   구름 아래로 멀리 보이는 이국의 모습은 아쉬움이었고 선교사님들의 수고하시는 모습은 하나님께 영광이며  바라본 나는 부끄러움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