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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마지막이 되어버린 보고서❤ 본문

쉴 만한 물가로 in ㅁr산/회복 2021

❤마지막이 되어버린 보고서❤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21. 10. 6. 23:18
태국 남부 선교사 협의회에 올라 온 글입니다

❤ 마지막이 되어버린 보고서❤
이 글은 선교중앙교회(고신) 선교관에 머물다가 2월 달에 선교지로 다시 들어가서 보낸
고 정정옥 선교사님의 카톡 서신인데 마지막 유언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고 정정옥 선교사를 기리며 우리 GMS 동료들과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존경하는 김목사님, 저는 작년 7월 임플란트 치아를 하려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임플란트 치아 완치를 하고 작년 11월 중순 트빌리시로 복귀를 하려고 하니 조지아도 입국을 완전히 봉쇄 해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한국에서 이곳 저곳으로 돌면서 나그네 생활을 약 5개월을 하게 되었지요.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 길인 것을.....나그네 생활을 나는 그런대로 즐기지만 아내는 많이 힘들어 합니다.
그러던 중에 선교중앙교회(고신) 선교관에 자리가 생겨 선교관으로 입성하면서 안정을 되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선교중앙교회 담임 김영제 목사님은 매일 새벽 예배 후에 목양실에서 커피를 내려 주시고, 콜롬비아 김선교사님은 빵을 구워와서 선교사님들과 함께 교제하며 힘든 코로나 상황을 나름대로 극복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국내에 들어와 선교지마다 입국 금지가 풀리지 않아 선교지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으니 너무나 어려운 시간들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지요.
1) 머물 곳이 없어 힘들고,
2) 교회가 예배를 드릴 수 없으니 후원하는 교회도 어느 교회도 초청을 안 하고 지인들도 만날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도 너무나 힘들고,
3) 한국 교회도 코로나19로 대면 예배를 못하니 헌금이 줄어 선교사 후원을 중단함으로 더 어렵고,
4) 자녀를 둔 선교사님들은 자녀들 교육문제로 어렵고, 코로나19가 우리 모두를 총체적 위기로 내 몰면서 정말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희가 선교관에 입주하면서 이제 좀 편안히 안정되게 조지아가 여행 자유화 되는 날까지 선교관에서 지내게 되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조지아의 트빌리시 분관에서 작년 말 교민 위로의 밤 줌 미팅을 주선하여 교민들과의 시간을 가지던 중에 분관장님께서 애로 사항을 이야기 하라고 하여 제가 한국에 나와 있는 조지아 선교사님들이 입국을 못하여 어려운데 분관에서 입국문제를 도와 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분관장님의 도우심으로 조지아 외무부에서 요청을 받아들여 한국에 나와 있는 선교사 20여명 명단을 확보하고 20명에게 외무부가 직접 초청정을 발부하여 특별 입국 허가가 나오게 되는 믿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뜻 밖에 외무부 초청으로 갑자기 입국을 할 수 있게 되니 선교사님들마다 묘한 감정이 들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반신반의 했는데 이렇게 빨리 입국 허락을 받으리라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일이기에 우리 모두도 놀랐습니다.

조지아 외무부로부터 입국 허락 초청장을 받고 우리 부부는 입국 신청을 하고 가장 저렴하고 짐 가방 하나 추가에 75달러인 저렴한 KLM 네덜란드 항공편으로 구정(설)후인 2월 17일 0시 55분 출발 하는 티켓을 구입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뜻 밖에 한국에서 장기로 머물게 되고 30여년 만에 고국에서 맞이하는 명절로 추석, 성탄절, 신정, 구정까지 사실 정말 오랜만에 자녀들과 형제들과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많이 설레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5인 이상 모임 제한 방역이 계속 되면서 끝내 자녀들과도 형제들과도 같이 모이지 못하여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모두가 입국 금지로 사역지로 가지 못하는데 저희들은 입국 할 수 있음에 한편으로는 감사 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코로나19 재앙이 속히 끝나 각 나라에서 사역하시다가 국내에 들어와 계시는 모든 선교사님들도 현장으로 복귀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갈 데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고 가족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선교중앙교회 담임 김영제 목사님과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과 섬김, 위로, 격려와 이해는 교회 선교관에 머무는 선교사님들과 그 외에 연관되어 오시는 선교사님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큰 기쁨이었습니다.
때마다 맛있는 것 다 대접하시고, 아침마다 직접 각 나라 유명하다는 커피를 내려 커피 대접에 각 방으로 갈 때 커피 한 병씩 들려주시고, 춥다고 입주 기념으로 따뜻한 겹바지와 겹난방 옷을 사 주시고, 방문 선교사마다 설교 부탁하여 여비주시고, 여름에 들어와 양복이 마음에 안 들어 10명이 넘는 선교사님들 모시고 가 겨울 양복을 다 사 주신 목사님과 선교중앙교회 성도님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이 외에도 도우시고 베풀어 주시는 것 다 열거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랑받으며 목사님과 여러 선교사님들과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출국 준비로 바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비행기 표를 변경하여 3개월 후에 오겠다며 저 혼자 먼저 들어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홀로 계신 친정 아버지가 96세로 이번에 아버님을 돌봐 드리지 못하고 가면 후회할 것 같고 혼자 지내는 막내 딸 미혜도 마음에 걸리니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의논 끝에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정말 발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가 않아 저는 처음에는 많이 섭섭하였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나 혼자 선교지로 가라고 남 일처럼 쿨하게 말하는 아내에게 정말 야속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예전에 딸이 현지에서 기흉이 생겨 현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하다 치료를 다 못하고 한국 세브란스 병원에서 수술을 하게 되어서 당시에 딸과 아내만 가고 나 혼자 6개월을 지내게 된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는 아내와 단 하루도 떨어져 살지 않겠다며 아내가 귀찮아 할 정도로 아내의 껌딱지로 잠시라도 아내가 없으면 불안하고 힘들어 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구정 설날 5인 이상 가족도 모일 수 없어 나 혼자 대구에 사는 큰아들 집에 KTX로 가서 장남&며느리 &손녀& 손자를 만나고 하루만에 올라와 출국 준비를 하였습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장남은 걱정이 되어 꼭 들어가야 하느냐며 이제까지 계셨는데 좀 더 계시다가 백신 접종하시고 어머니와 같이 가시라며 만류를 합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처음 선교지로 떠나는 비장한 심정으로 출국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출국 전 짐 가방을 꾸리는데 아내와 짐 꾸리는 문제로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이번엔 현지에서 나누고 사용할 마스크 짐이 거의 인데다가 현지 도착 호텔에서 8일간 격리를 해야 해서 마음으로는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많이 가지고 가고 싶으나 과감하게 포기를 하였습니다.
막상 현지에 와 가방을 풀어보면 별 것도 없는데 대충꾸려도 큰 가방 두개에 핸드 케리 하나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짐 가방 없이 훨훨 나비처럼 날아 볼까? 결국 가방 준비 완료...

한국에 나올 때 마다 우즈베키스탄의 제자 황 세르게이가 항상 공항 픽업을 책임졌는데 제자 가족이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이번엔 공항 픽업 생각도 못하고 있는데 출국 전 선교중앙교회 제 1남전도회에서 저희 간다고 제가 매운탕 좋아 한다고 목사님이 말씀을 하여 두지리 매운탕 집에서 저녁 대접을 받고 오는 길에 운전하시던 김용부 집사님께서 '선교사님 공항 픽업은 누가 하시나요?' 그러자 담임 목사님께서 '부목사님께 픽업 부탁 해야지요'. 그 때 김용부 집사님께서 바로 '부목사님 쉬시라고 하세요, 제가 픽업해 드리겠습니다'. 하시자 담임 목사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렇게 결정이 나서 김용부 집사님께서 기쁨으로 공항 픽업해 주셔서 편하게 공항에 갈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탈 때면 사랑하는 딸이 미리 보딩과 좌석을 다 지정해 놓아 공항에 도착 5분도 안되어 짐 붙이고 보딩 완료하고 같이 동행하는 선교사님 보딩이 끝나 같이 검색대 절차를 거쳐 공항 안으로 가 출국 게이트로 향하는데 이번 여행이 다른 때와 달리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고국에서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트빌리시로 향하는 첫 비행편 KLM 856편 보잉 비행기 좌석 38D에 앉아 몸을 싣고 안전한 여행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2월17일 0시 55분 인천을 출발하여 11시간 30분 비행 약 8600km 날아와 암스텔담 스히폴 국제공항에 현지시각 새벽4시30분 안착을 하였습니다. 코로나19가 여행할 때 좋은 점도 있어 비행기 타고 감사가 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30여년 선교에 항상 저렴한 비행기만 검색 또 검색하여 고생하면서 이코노믹 좌석도 감지 덕지라 여기며 다녔는데 이게 웬일이니 웬일이니 보잉 비행기 가운데 4자리 다 나 혼자 차지했네요.
나는 비행기만 타면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4자리 다 나 혼자니 비즈니스 좌석에 버금가는 침대 좌석 정말 오랜만에 누워서 잠을 자며 편하게 암스텔담 공항에 1차 안전하게 도착해 자동으로 와이파이가 잡혀 모두에게 도착 안부를 전하며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스히폴 공항에서 우리 일행은 커피 한잔하며 편안한 안락의자에 누워 약 5시간 기다리며 2차 프랑스 파리행편에 또 몸을 싣기 위해 경유 검색 절차를 마치고 파리로 가는 탑승게이트 c7 으로 가 탑승을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되어 2차 여행 AF1241 파리편 현지시각 오전 9시 10분 탑승 10시 55분 출발하는 비행기 좌석 7A 에 또 귀하신 몸을 믿음으로 기도하며 맡겼습니다. 1시간 30분 비행 후 우리는 파리 국제공항에 도착 하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해 마지막 목적지 트빌리시행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또 다시 AF 1760 편 k2 게이트 57번 앞으로 가 탑승을 기다렸다. 약 1시간 30분 기다렸다가 현지시각 오전 11시 50분에 탑승하여 좌석 6A 에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정해진 자리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자리가 비어 3좌석 자리에 혼자 누워서 잠을 자며 편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거의 5시간 비행 후 트빌리시 현지 시각 오후 8시 25분에 안전하게 착륙을 하니 늘 다니던 공항인데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로 이동하여 여권 검색대에 줄을 서니 담당 경찰관이 외국인인 것을 바로 알고 우리 일행과 중국인 여행객들의 여권을 다 수거해 가고 우리 모두를 대기실에서 앉아 기다리라고 합니다. 한참 후에 경찰이 와서 우리 일행 4명과 다른 외국인 1명에게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더니 공항 이동 버스에 태워 어디로 가나 했더니 옛 공항 건물 내에 PCR 검사소를 차려 놓고 그곳에서 현지 돈 250라리(현재 환율 $76)카드 결제 후 검사 양쪽 코& 목 터프하게 찔러 간단히 검사를 마치고 경찰 인도에 따라 나와 여권 돌려받고 짐 찾는 곳에 가 한가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소중한 짐 가방을 카트에 싣고 나와 지정된 버스로 안내되어 버스에 짐을 싣고 드디어 버스에 올랐습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눈이 내린 후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다 바람까지 얼마나 부는지 서울 보다 더 춥습니다.

버스에 올라타니 얼마나 따뜻한지 마음까지 따뜻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사는 현지인 아주머니와 마냥 웃고 떠들며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참다못해 제가 '왜 안 가느냐' 묻자 제 2차로 검사 중인 중국인 그룹이 검사 마치고 오면 그 때 같이 출발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여기가 한국이 아니지' 나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인내하기로 마음먹고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뜻 밖에 누워서 잘 쉬고 와서 지금 까지는 전혀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기다리다 이제 몸이 지쳐옵니다.
중국인 그룹이 검사 마치고 버스에 다 타고 출발 하는가 했더니 10m 도 못 가 버스가 서더니 버스 주변으로 경찰 차 4~5대가 둘러섰습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한 동안 그렇게 또 마냥 기다리며 있었습니다. 이제 밤 11시50분 공항에서 지칠대로 지쳐 있는데 마치 우리가 죄인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기들만 생각하지 우리는 안 중에도 없는 듯하였습니다. 갑자기 경찰차가 해산을 하고 경찰차 한대가 버스 앞에서 에스코트 하여 지정된 호텔 갤러리 인 호텔에 하차하여 밖에서 줄서서 한명 한명씩 열검사, 여권 검사, PCR검사, 초청장 검사 다 한 후 방 배정하여 호텔에 들어오니 새벽1시가 되었습니다. PCR 검사증이 여행하는 동안 트빌리시 공항에서도 전혀 보자고 하지를 않아 안 해도 되는 걸 했나 했더니 마지막 호텔에서 PCR 검사증을 요구하고 일일이 사진을 찍고 호텔 체크인 하게 합니다.
호텔에 들어오니 이불도 없었습니다.
프론트에 전화하니 그제서야 얇은 이불 비닐 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한숨 돌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샤워하고 격리 첫날 밤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나 추운지 점퍼를 입고 자는데도 추워서 결국 잠을 자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스태프가 밖에서 마스터 키로 잠그고 가면서 이제 8일 동안 자기가 열어 주기 전에는 절대 문을 열고 나올 수 없다고 하며 내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순간 '감옥이 따로 없구나.' 이렇게 코로나19 여행기는 일단 선교지 트빌리시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김목사님, 왜 나는 이 시국에 여기로 이 난리를 치루며 와야만 하는가? 아무리 되새겨 보아도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겠다고 할 때 성도들과 동역자들이 울면서 만류하였으나 "나는 이미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고 하며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였듯이 오직 복음을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 성도를 위하여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주여! 이 재앙이 속히 끝나게 하사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삶으로 회복되게 하소서!
조지아 정정옥 선교사 드림

(이 장문의 조지아 트빌리시 입국기가 정정옥 선교사의 마지막 보고서요 소식이 될 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잘 안보내는 분인데 웬일인가 했더니 시간이 흘러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마지막 부문에서 그 분의 순교적 자세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대양 육대주에서 오직 선교사명으로 충성하고 헌신하는 선교사님들을 사랑하며 존경합니다. 선교중앙교회 김영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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