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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스펠투데이
- 승인 2018.02.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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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8일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장신대 교수모임 주관의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교회개혁을 위한 신학포럼 및 연합기도회'에서 발표되었다. 주요현안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지난 10여 년 간 한국교회 안에서는 담임목사직의 대물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대형교회들이 너도 나도 세습을 감행하고, 그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이제 담임목사직 세습이 대형교회들뿐만이 아니라, 중소형 교회들에까지도 번져가고 있다. 일부 교단들에서 세습 금지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하거나, 심지어 법질서를 어기고 파괴하면서까지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고, 조직적으로 담임목사직 세습을 옹호하는 주장들도 시도되고 있다. 이 글은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이 옳지 않음을 신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
1. 교회의 주권자, 하나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상에서 부름을 받아 믿음과 순종으로 거기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며,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모여진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성도들,’ ‘시민,’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성전(엡2:19) 혹은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집’(고전3:9) 등으로 불린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에 의하여 모여진 하나님의 백성이다(벧전2:9).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고전12:27, 엡1:23). 교회가 하나님의 권속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교회의 주(主)는 하나님이시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값으로 산 것’(고전6:2)이 된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주님의 주권을 부정하거나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것은 특정 목회자와 그 가문이 교회의 주권을 차지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담임목사직 세습은 흔히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이끌어 온 대형교회들에서 일어난다. 그러한 교회들의 모습은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이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자발적 결사(結社)(voluntary association) 혹은 하나의 거대한 사설 기업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모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관심사에 따라서 모인 사람들이며, 그들은 대개 카리스마적인 목회자가 제공하는 설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종교 프로그램의 유익을 누리며, 헌금을 바친다. 아마도 그 카리스마적인 목회자는 그 교회가 자신이 자수성가하여 이룩한 자신의 공적이요,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하여 아깝고 불안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기독교 협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표방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이루어진 교회라면, 그들의 외형적 형태는 자발적 결사라 할지라도 내용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르심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요, 거기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목회자와 교인들의 겸손한 나눔과 섬김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목회자는 진정 주님의 종처럼 “나는 무익한 종이라, 내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17:10)고 고백해야 할 것이고, 임기를 마쳤으면 겸손하게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2. 교회의 표지들과 세습 문제
예로부터 교회는 교회의 본질적 특징들을 교회의 ‘표징(marks)’이라는 용어로 신앙고백에 담아 표현하여왔다. 주후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확정되어 발표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교회에 관하여 네 가지 표징을 고백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의(one), 거룩하고(holy), 보편적이며(catholic), 사도적인(apostolic) 교회를 믿습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본성을 가진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서술적인(indicative)인 선언이며 동시에, 명령적인(imperative) 함의를 가진다. 만일 교회가 이 표징들을 무시하고, 올바로 실현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하나님이 교회에 부여하신 특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은 바로 이 표징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하는 행위이다.
1)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일치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하나이다(엡4:4~6). 교회가 하나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의 특징이다. 교회는 교회 안에 여러 지체들이 존재하고 여러 지교회들과 여러 교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획일적인 일치성이 아니라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이다. 교회의 일치성은 여러 다른 인종, 성별, 신분,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이루는 일치성이다. 그것은 위계질서적이고 수직적으로 강요된 일치성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가운데, 평등한 지체들이 이루는 일치성이다. 교회의 하나됨은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가 이루는 공동체의 일치를 반영한다. (요17:21) 그런데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고, 교회 안에 분쟁과 분열을 야기한다. (세습에 성공한 교회들은 평등한 지체들의 일치성이 아니라, 위계질서적이며 획일적인 일치성을 강조한다.) 또한 특정 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은 다른 교회나 사회가 무어라 하든, 다른 교회야 어찌 되든 자신들의 교회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개교회주의적 발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아래에서 논할 교회의 보편성을 포함하는 교회 전체의 일치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2)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거룩하다. 교회의 거룩함의 근거는 교회 구성원들의 도덕적 우월성이 아니라, 교회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된 사실에 근거한다. 교회의 거룩함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에 의하여 죄 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고전1:2) 교회의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한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교회의 거룩성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원수 같은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희생적 사랑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훼손한다. 담임목사직을 세습함으로써 교회의 거룩함은 속됨으로 왜곡되고, 거룩한 섬김의 직무는 지배하고 군림하는 권력으로 왜곡된다.
3) 담임목사직 세습은 교회의 보편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보편적이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본래 catholic인데, 이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헬라어 kata와 holos의 합성어에서 온 말로서, 전 세계에 있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가리키며, 이는 교회의 전체성, 우주성 혹은 보편성으로 이해된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며(예를 들어, 엡3:21), 지역에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예를 들어, 계2:1, 8, 12, 18 등). 그러므로 교회는 한 지역에 존재하더라도 그 성격은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우주적이며 공공적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특정인들의 의견을 대변하거나 특정인들의 이익과 권력에 봉사하는 단체가 아니다. 교회의 보편성은 또한 공공성(publicness)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회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이러한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이다.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해치고 교회를 사유화(私有化) 하는 일이며, 또한 교회를 사적인 단체로 만들어 사사화(私事化, privatization) 하는 것이다. 신앙을 가지고 교회에 참여하는 일은 전적으로 개인의 사적인 영역의 일이며 누군가가 외부에서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들만의 일이니 우리가 어떻게 믿고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담임 목사직 세습이 교회의 사회적 신뢰를 더욱 추락시키며 선교를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교회는 더욱 잘 성장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결국 공적 영역에서 교회의 존재 가치와 신뢰를 더욱 상실하게 만들고, 복음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결국 그 교회는 보편성과 공공성을 상실한 “그들만의 교회”가 되고 말며, 다른 교회들 즉, 전체로서의 교회는 신뢰성을 더욱 상실하고 오히려 선교의 장애를 겪게 된다. “그들만의 교회”에서는 모든 권력이 담임목사에게 집중됨으로써 결국 교회가 단순히 교인 각자의 정신적 사사화의 모습에서 더 나아가, 특정인이나 특정 가문을 위한 사사화의 길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상실한 개교회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4)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교회의 사도성을 훼손한다.
교회는 사도적이다. (엡2:20) 교회가 사도적이라는 말은 교회가 사도들이 전해 준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하여 있으며, 그 복음을 계속해서 전파하도록 보내심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사도성은 사제나 목사에게 안수를 통해 부여된 특권이 아니라, 교회가 전파하는 복음이 사도들이 전하여 준 복음과의 내용적 연속성을 가지며, 계속 그 복음을 전파할 사명이 있음을 의미한다. 담임목사직의 세습은 결과적으로 특정 가문의 목회자만이 그 교회에서 복음을 설교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교회를 사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특정 가문의 사적인 단체로 변질시킨다.
3. 교직자 소명론, 청빙론의 관점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한 비판론이 맹렬하게 일어나자,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목회자 청빙(부르심)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세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칼뱅은 교역자(주로 목사)가 정식으로 세움을 받는데 있어서 두 가지 요소를 말한다. 즉, 각 사람이 하나님의 존전에서 의식하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소명, 즉 내적 소명(inner calling)과 신자들(교회)이 어떤 신자의 자질과 자격을 보아서 선택하는 외적 소명(outer calling)이 그것이다.
먼저 내적 소명에 대하여 살펴보자. 목사의 자녀가 다시 목사로 부름받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교회의 모든 목사들이 과연 그 부친이 사역하던 바로 그 교회를 향한 진실한 내적 소명을 받았는가?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부르심인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물려 주는 것보다 낫다는 극히 인간적이고 사적인 동기가 지배적이지 않은가?
외적인 소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세습을 감행하는 교회들은 그 결정 과정이 절차상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외적 소명의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 매체는 세습한 교회들의 청빙 과정에 여러 가지 불법, 탈법의 사례가 있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또한 외부인 후보자에겐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정당한 청빙인가? 또한 외부인 후보자가 있어도, 아들 목사가 원로 목사가 되는 부친의 카리스마적인 영향력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공정한 심사가 가능할까? 또한 세습이 예상되는 자녀가 이미 그 교회 안에서 교역자로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지지를 받고 있는 상태에 있다면, 설사 외부인 후보자가 있더라도 과연 동등한 심사가 가능한가?
4. 제사장직 세습과 담임목사직 세습
구약시대의 제사장직 세습이 담임목사직 세습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구약시대에 제사장직 그리고 제사장을 보좌하는 레위인들의 직무는 처음부터 세습직으로 주어졌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제 특정한 계급의 사람들만이 제사장이 아니다. 모든 신자들은 다 왕 같은 제사장들로 부름 받았다(벧전2:9). 그러므로 이제 목사만이 제사장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직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을 대신하는 제사장이요, 성경에서 제사장들은 대대로 세습되는 직책이었으므로, 담임목사직 세습은 성서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우리의 죄를 속해 주는 희생 제사로서의 제사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더 이상 속죄의 희생 제사는 없다(히9:23~28). 따라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도 이제는 없다. 지금도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가 있다면 그것은 기도와 감사와 찬양의 제사요, 서로 섬기고 나누는 사랑의 제사이다. (히13:15~16) 이러한 제사는 목사에게만 맡겨진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일이며, 따라서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벧전2:9). 루터는 로마 교회의 희생제사로서의 미사를 집전하는 계급적 제사장직에 대하여 반대하고, ‘전신자 제사장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목사가 제사장이어서 세습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또한 주목해 볼 것은 제사장직이 세습되던 구약 시대에도, 제사장 가문은 생업의 기반이 되는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즉, 그들이 대를 이어 간 것은 권력과 이익이 아니라 희생과 헌신이었던 것이다.
5. 맺는 말
지금까지 담임목사직의 세습이 왜 신학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살펴보았다. 담임목사직 세습은 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신학적으로 고찰하기 이전에 이미 사회인들은 그것이 상식 이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세습을 감행한다면, 그것은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성을 더욱 실추시키는 일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복음 전파를 더욱 어렵게 하고, 교회로 하여금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변혁적 능력을 상실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가 2013년 2월 19일에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교회세습에 대한 조직신학적 고찰”이라는 글을 수정 보완하여, 필자의 졸저 『조직신학과 목회현장』(서울:한들, 2017), 제2장에 실었던 것을 이번 발표를 위해서 발췌, 편집한 것이다.
현요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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