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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지금] 벤츠에 잡화…중산층 몰락 노점상으로
북적이던 백화점 유령건물로...IMF 1년여만에 거품 빠져 .
방콕 공항에 도착하니 예전처럼 번잡스럽지 않다. 시내로 들어가는 곳곳에 짓다 만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하던 '스카이 트레인(Sky Train:고가 철도)' 건설도 반중단 상태 다. 중심가 오피스빌딩은 보통 40∼50%가 비어 있었다. 80년대말 이후 10% 가깝게 고속성장을 보이던 태국의 경기가 한 순간에 곤두박질치며 퇴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긴장 상황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시위-소요도 최근에는 수그러들었다. 경찰이나 군인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무 엇보다도 일반 시민들의 모습이 평상적이다. 영자지 네이션지의 카비 총킷타온(43) 편집장은 "금융위기 초기만 해도 일가족 동반자살 같은 사회불안이 심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 상황에 순응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태국은 아시아 금융위기의 첫 희생 국가다. 작년 7월2일 금융위기 에 빠진이래 8월20일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1백72억달러를 긴급지 원받았다. 이후 1년여간 가장 큰 변화는 거품경제와 함께 중산층이 사 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대변해주는 곳이 방콕 최대의 쇼핑 중심지인 라차다가 포천타운이다. 작년 7월 금융위기 전만 해도 세계 최고급 상 품으로 흥청되던 이곳은 서울의 변두리 시장만도 못한 잡화가게들로 변해버렸다. 문을 닫은 일본계 야오한 백화점 5층건물은 빈터로 남아 있으며, 바로 옆 포천 쇼핑센터는 불경기를 감당치 못한 점포주들이 속속 문을 닫았고 복도는 싸구려 좌판상들이 진을 치고 있다.
야오한 백화점 앞 주차장은 매주 수, 토, 일요일에 문을 여는 '3일 장터'로 변했다.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1회용 라이터, 깔창, 화 장지, 소형건전지, 볼펜, 헌옷, 중고 휴대폰 등 온갖 싸구려 잡화물들 이 등장해 과거의 소니, 샤넬, 구치 등 최고급 제품들을 대신하고 있 다. 마치 30년 전 우리 시골장터를 연상케 한다.
주목할 점은 이곳 노점상 주인들 대부분이 과거 고소득에 자가용을 끌고다니며 태국의 '떠오르는 중산층'으로 인정받던 사람들이라는 점 이다. 볼펜등을 파는 앤(26·여)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인 력송출회사 공보실에서 근무하다 3개월 전 퇴출됐다고 한다. 그 옆에 서 벤츠 190E 승용차를 몰고와 뒷트렁크에서 장난감 장식용칼 서부모 자 등을 꺼내 주섬주섬 좌판을 벌이고 있는 띠(36)씨. 금년 초 56개 부실금융사 정리시 자신의 회사(시카 종금사)도 문을 닫으면서 실직된 뒤 생활비 마련을 위해 동료 퇴직자들 2명과 함께 노점상을 차리게 됐 다고 했다.
띠씨가 하루에 벌어들이는 평균 순수입은 대략 1천바트(미화 25달 러 상당).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하다며 미소를 짓는다. 앤씨는 "주위 노점상들이 서로 비슷한 처지라 위로도 된다"고 했다. 현지통역인 김 영규(30)씨는 "지난 1년간 방콕인들 모두가 장사꾼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 방콕=함영준기자 : yjhahm@chosun.com)
[태국은 지금…] 쌀 수출국…"경기 나빠도 먹을건 있다"
방콕 시민들은 의외로 경제위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대 부분" 아직 살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상황에 대한 전망도 "바 닥을 넘겼다"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쇼핑센터인 포천타운내 복도에서 신발 액세서리 등을 팔고 있는 난 타야(35·주부)씨. "남편 월급이 줄어들어 5개월 전부터 장사를 시작 했다"고 말하고 "지난 3∼4월까지가 최악의 시기였으며 이후 조금씩 회복세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는 커피가게 종업원도 공감 하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재무부 예산처의 츠옷차이 칸나바(49) 부처장은 "지난 몇주간 국내 적으로 바트화가 안정세를 이루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엔화 강세를 비롯하여 일본 등 선진국들의 적극적 자세전환이 국민에게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태국경제 거시지표 중엔 긍정적 변화를 나타내는 대목이 많 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는 당초 목표액(미화 1백억 달러)을 훨씬 웃도 는 1백2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직접투자도 지난 1∼ 7월중 32억6천만 달러에 달해 지난해 동기(17억6천만 달러)보다 1.8배 나 늘어났다. 지난 1월 1달러당 57바트까지 됐던 환율도 39바트 수준 을 유지하고 있으며, 금리도 15일마다 0.25%포인트씩 내리고 있다.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탐마삿대 사콘 바라뉴와타나(42·경제학)교 수는 "시민들이 느끼는 것은 표피적인 것일 뿐, 실제 명확한 경기회복 조짐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는 "세계적 불황으로 수출도 잘 안될 뿐 아니라 농업생산고도 하락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특히 연말쯤 2 백만명에 달할 실업자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사회적 혼란이 급격히 가중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태국으로선 최후의 보루가 있다. 세계 최대의 쌀 수출국이 라는 점이다. 지난해 생산량만 2천2백50만t. 이 중 5백만t을 수출, 22 억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한국무역관(KOTRA) 허길주(51) 관장은 "태국은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굶거나 얼어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는 다"고 말하고 "바로 이 점에서 식량 수입국인 인도네시아나 한국이 느 끼는 절박감은 갖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람캄행대 핏 솜퐁(54) 인문과학 학장은 IMF시대후 변화의 특징을 '과거 회귀(back to the past)'라고 규정했다. "지난 30년간 현대화 과정에서 검약과 절제 대신 사치와 낭비를 하며 물질만능 풍조에 살다 이제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죠.".
그는 방콕시민들의 귀향 행렬이 늘어가고 있다고 했다. 사업에 실 패하거나 실직한 이들이 너도 나도 시골로 내려가 마지막 생업수단인 농삿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업에 실패한 핏 학장의 형님도 호미질을 다시 시작한 뒤 "그나마 잃어버린 평온을 되찾았다"고 얘기 하더라고 전했다. (홍콩=함영준기자 : yjhahm@chosun.com)
[태국은 지금] 추안총리 주도 `부패와의 전쟁'
'미스터 클린(Mr.Clean)'이란 별명을 가진 추안 릭파이 총리는 태국 판 '부패와의 전쟁'에 착수했다. 태국이 IMF 구제금융 체제하에서 진정 한 체질개선을 하고 재도약하기 위해선 사회에 만연돼있는 부패, 연고 주의의 청산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추안은 지난 6일 자신의 제2차 연정내각 첫 상견례에서 "부정직한 각료는 결코 보호받지 못할 것"이 라고 경고했다. 태국 신문들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 부패 스캔들의 추 적에 열심이다.
그동안 쉬쉬 감추어져 오기만 한 태국의 부패사슬은 심각하다. 관공 서에서 계약하는 모든 공사-구매 등에는 5∼20%의 뇌물(리베이트)이 항 상 뒤따른다. 방콕 주재 한국상사 관계자는 "프로모션 경비를 안 쓰고 는 수주할 방법이 없다"며 "심지어 관리들의 유학경비나 세미나-국제회 의 참석 비용도 지원해 줘야 될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선 학생들 이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해 수제 와이셔츠나 비디오(VCR)를 선물하기도 한다.
태국 중앙정부는 28개 부처에 각료가 55명. 부총리만 6명이다. 세계 에서 장군이 가장 많기로 소문난 태국 육군의 별은 무려 1,859명. 이중 616명이 무보직으로 평소 골프치기로 소일하고 있다. 이는 끼리끼리 봐 주고 나눠먹는 기득권층간의 연고주의의 전형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영 어신문 네이션의 카비(43) 편집장은 "한국은 전직 대통령까지 부패죄로 감옥에 보내기도 하지만 태국은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서 "그러나 앞으로 부패가 청산되지 않는 한 발전도 어렵다는 것이 공 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안의 '부패와의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더 많다.본 인의 청빈함이나 강직함은 인정하지만 정치권 전체가 썩어있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냐는 것이다. 더구나 현 집권내각은 7개 정당 연정으로 이 뤄져있다.
IMF시대를 맞아 혼미한 시절인 작년 11월 정권을 넘겨받은 추안의 지난 11개월간 성적은 우수한 편에 속한다. 취임 직후 부실금융기관 56 개를 폐쇄조치하고 외국인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39개 분야를 개방하 는 등 신속-과감한 개혁을 실천에 옮겼다. 국내적으로는 시위-소요사태 가 급속히 줄었으며 대외적으로는 IMF의 모범생 소리를 듣고 있다.
아시아 경제위기를 맞아 태국이 이웃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덜 시끄러운 것은 그만큼 유연하고 안정된 사회-정치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 두 나라가 모두 특정정당이나 인물의 장기집권으 로 인해 국민의 원성을 받는데 비해 태국은 의원내각제이면서 다정당제 다. 도리어 너무 잦은 정권교체가 문제가 된다.
더구나 태국은 이웃 두 나라와 달리 민족 갈등이 거의 없다. 타이족 (85%)과 화교(12%)는 협력공생관계다. 88년 이후 역대 총리 5명 모두가 중국계다.
대신 화교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언어도 타이식으로 사용할만큼 현지 화됐다. 유연성은 있는데 단호함이 부족한 것이 태국 정치체제의 특징 이랄수 있다.
(기자 : yjhahm@chosun.com)
[추안회견] "부패추방없인 아무것도못해…의혹은 조사"
"차주겠다"는 등 온갖 유혹 무소유원칙으로 극복 .
-- 총리댁은 택시에서 내려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하는 변두리 골목길 에 있던데 왜 그런 곳에서 사십니까.
"친구가 빌려준 집인데 20년 이상 살았죠.".
-그렇다면 태국총리가 무주택자란 말입니까.
"(미소를 지으며 작은목소리로) 집이 한채 있는데 매우 작아요. 아 파트1층 집인데 한 사람이 잠만 잘 수 있죠. 요리하기도 어렵고…."(옆 의 보좌관이 "독신자 1인용아파트(원맨 스튜디오)예요"라고 거들었다.).
-총리 관저가 있지 않습니까.
"너무 크고 낡았어요. 고치기도 어렵고 화장실도 불편합니다.".
-지난 30년간 정치인 생활에서 경제적 유혹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까.
"왜요. 차를 주겠다, 뭘 주겠다 많았죠. 그런 제의를 받으면 고향 이나 시골에 기부하라고 권유하죠. 국민의 위임을 받은 정치가로서, 나 는 무소유의 원칙을 견지하고 싶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자녀들이 좋아할까요.
"(웃으며) 집사람이 시골에서 연로한 어머니(85세)를 모시고 있는 데 아들도 거기서 살아요.".
-실례지만 타고 다니시는 차종은 무엇입니까.
"제 개인차는 도요타 코롤라이며, 총리 승용차로는 폴크스바겐 밴 을 탑니다.".
-총리는 '미스터 클린(Mr. Clean)'이란 별명으로 불리며 국민들에게서 신뢰와 존경을 받지만 사실 태국 정치나 기득권 사회가 얼마나 부패했 습니까. 총리 한 사람이 깨끗하다고 흐린 물이 맑아질까요.
"과거에는 신문에 부패 스캔들이 나도 그냥 유야무야됐어요. 이젠 용납되지 않아요. 부패 의혹이 나오면 이를 공개하고 조사에 착수합니 다. 관련위원회도 만들었죠. 우선 정치가 깨끗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자 유로울수 없죠. 국가부강도 이룰 수 없죠. 물론 내 임기중 부패가 완전 히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지한 노력이 시작됐습니다.".
-작년 7월 2일 태국이 처음 금융위기에 빠지면서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그 전에 이미 각국이 많은 문제와 취약점들을 갖고 있었어요.".
-작년 11월 9일 극도의 혼란상황 속에서 '구원투수'로 선발돼 두번째 총리직을 맡았는데, 지난 1년간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트화 폭락이었죠. 당시 외채는 미화 900억달러로 대부분 민간 기업들이 빌린 것이었죠. 바트화 폭락으로 빚은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 결과 기업들의 부도-파산이 속출했죠. 이로 인해 실업자도 기하급 수적으로 늘어나고 소요사태까지 일어났죠. 매우 비정상적 기간이었습 니다.".
-그래도 이웃 인도네시아 같은 대혼란이 야기되지 않았습니다.
"우린 행운아입니다. 농업기반이 매우 강해 아무리 어려워도 국민 들을 먹여 살릴 쌀이 있고 수출도 할 수 있으니까요. 당시 국왕폐하께 서 '(정 어려우면) 농촌으로 돌아가라'며 자립경제를 강조해 민심을 설득한 것도 주효했죠.".
-언제쯤 태국경제가 회복될까요.
"올해안으로 바닥은 지나가고 내년부터 천천히 회복할 것으로 봅 니다. 결코 빠른 속도가 아니고…. 과거 같은 버블(거품)은 재현되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 10월 20일은 악몽의 '블랙먼데이'로 홍콩 증시가 폭락하기 시 작한 날이었습니다. 이후 한국 경제의 추락으로 이어지면서 동남아 위 기는 아시아 전체의 위기로 확대됐습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볼 때 이 위기는 과연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을까요, 아니면 예방 가능한 것이었 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만약 각국 경제의 펀더멘틀(기초)이 튼튼했다 면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겠죠. 경제 단위가 투명해 서로 체크할 수 있 었다면 위기를 미리 감지할 수도 있었겠죠. 불행히도 우린 그 두 요소 를 모두 갖추지 못하고 있었죠.".
-일본의 우파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를 비롯해 여러 아시아 인사가 '아시아 금융 위기 뒤에 서구열강이 있다'면서 소위 서구의 음모론을 주장하는데.
"음모론이고 뭐고 우선 우리가 자력갱생해야 합니다. 아시아 위기 와중에서 구기업들이 득을 보았다고 하는데 피해도 클 것입니다. 일단 경제를 개방하면 자유무역-금융체제를 유지해야죠. 거기서 발생되는 부작용에 대비할백신도 우리가 준비해야죠. 그러나 개발도상국들이 선 진국들과 같은 룰, 그것도 선진국에는 이미 익숙한 룰을 놓고 함께 경 쟁하자는 것은 반드시 공평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진국들은 달에 사람을 보내기도 하지만 후진국에는 아직 신발도 없이 맨발로 다니는 이들도 있는 수준입니다.".
-태국은 과거 한국전 때 미국 다음 두번째로 병력을 파병해 한국을 도와준 사실을 한국인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로 한국은 건국 50 주년을 맞았을 뿐 아니라 한-태 정식 외교관계가 수립된 지 만 40주년 이 됩니다. 한국민들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본인은 한국인들이 그 동안 매우 어려운 상황과 여러 자연적 참 화에도 불구하고 결단력과 불굴의 노력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국가건 설에 매진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사실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웃 으면서) 비유하자면 세계 복싱경기에서 한국 복서는 태국복서에게 힘 과 투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태국은 과거 한국을 돕기 위해 군대를 파 병한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 새마을운동을 참관하러 갔죠. 그때(80년대) 한국은 한창 산 업개발을하던 때죠.".
-총리의 정치철학은.
"특별히 기억할 만한 것은 없고 단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살고 있죠. 내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합격자 115명 중 유일하게 법관을 지망하지 않고 정치를 지망했습니다. 그 당시 정권은 권위주의적 정권으로 의원은 내각에 참여조차 할 수 없었죠. 선량으 로서 내 목적은장관이나 총리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 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법대에 가기 전 미술학교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셨더군요.
"(웃으면서) 한때 화가의 꿈도 있었습니다.".
-언제 정치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생각했고 결심은 대학 때 했지만 당시 누구에게 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내가 안정적인 법관이 되기를 바라셨 기 때문에 그분들에게도 말씀 안 드렸습니다.".
-무엇이 정치가를 지망케 했습니까.
"나는 시골서 태어났는데 매우 가난한 곳이었죠. 소년 시절 방콕에 올라와 공부할 때 집이 어려워 8년간 절에 머무르면서 청소도 하고 그 릇도 닦아주면서 지냈습니다. 물론 무료로 말입니다. 그때 나는 여러 사람에게 빚을 많이 졌죠. 크면 나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총리는 불쑥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근황을 물었다.).
"사실 나는 전두환씨에 대해 깊은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처 음 한국갔을 때 청와대를 방문해 만났는데 그분은 내가 만난 한국의 첫 대통령이죠. 그분은 이후 뇌물죄로 감옥에 갔었죠?" -예.
"대통령 그만두고 절에도 간 적 있었죠?" -그렇습니다. 이제는 교도소에서도 나와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 니다.
"(웃으며) 한국정치는 우리와 매우 달라요.".
-태국도 부패추방운동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점이 있어요. 정치가들이 받는 뇌물의 액수가 수천만달러대 가 된다니, 아마 한국은 산업화를 이룬 나라라서 코스트도 높은가 보죠. (씁쓸하게 웃으면서) 하여튼 우리와 매우 달라요. 국민을 생각한다면 정치가는 나쁜짓을 할 수가 없어요.".
(방콕=함영준기자 : yjhahm@chosun.com)
[추안 누구?] 취임후에도 변두리사는 "Mr. 클린"
변두리 라자판가 471의 1에 위치한 추안 릭파이 총리 집 주변에는 구멍가게 간이식당 이발소 꼬치장수 등이 포진해 있다. 서울 변두리 동네와 다를 바 없다.
추안 총리의 강점은 청렴, 소박함과 엄청난 자기절제력에서 나온 다. 한국보다도 훨씬 심한 부패사슬 속에 묶이지 않고 소신을 유지해 왔다. 그의 별명은 '미스터 클린(Mr.Clean)' 그래서 그는 IMF하의 경제위기 상황을 구할 인물로 지명돼 작년 11월부터 두번째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앞서 그는 92년 5월 유혈혁명 이후 군부가 물러 난 뒤 2년8개월간 총리로 재임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신속-과감한 개혁조치를 취해 높은 점수를 얻 었다. 그러나 현 집권당은 7개 정당으로 이뤄진 불안한 연정이다. 이 들의 나눠먹기식 정치행태는 개혁의 걸림돌이다. 방콕 신문들은 최근 추안의 새 연정내각 구성에 대해 "추안 뒤에서 때묻은 정치인들이 미 친 듯 춤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안은 1938년 남부 트랑주에서 초등학교 교사 아들로 태어났다. 62년 명문 탐마삿대 법대를 졸업,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원래 정치 가가 꿈이던 그는 68년 태국 민주화 이후 처음 실시된 선거에서 단돈 3만바트(미화 7백50달러)를 갖고 입후보, 최연소의원으로 당선됐다.75 년 법무차관, 76년 총리실장관, 80년 법무장관에 이어 81년부터 91년 까지 상무-농업-교육-보건장관 및 하원의장과 부총리직을 역임했다.
( 방콕=함영준기자 : yjhahm@chosun.com)
[태국경제] 과도한 외자유치…작년7월 IMF맞아
80년대 후반부터 연 8%의 고성장을 이룩했던 태국 경제는 정부의 부주의한 개방화 정책 추진과 민간기업들의 무분별한 외자 유치로 90 년대중반 이후부터 빨간 신호가 켜졌다.
유입된 외자는 부동산 투기나 주식 등 비생산분야에 집중돼 경기 과열과 거품경제를 만들어냈고, 97년 초부터 외국자본의 급격한 이 탈이 시작되면서 금융위기조짐을 맞았다. 그러나 태국정부는 작년 5 월 하루에 미화 100억달러를 투입하면서 환율안정을 위해 무리한 방 어를 거듭하다가 외화보유고가 불과 15억달러로 줄어든 7월2일 결국 손을 들고 외환위기를 맞이했다. 태국정부는 그해 7월 말 IMF에 긴 급구제를 요청, 사회 전체가 총체적 위기상황에 빠지게 됐다.
태국에선 보기 드문 가두시위가 계속되던 작년 11월9일 추안 릭 파이 총리가 새 연정을 구성, 집권하면서 달아올랐던 사회적 분위기 는 일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추안 정권은 곧 56개 부실금융회사를 폐쇄조치하고 긴축재정 운용, 공기업 민영화 추진, 추가 시장개방등 신속한 구조조정-경제개혁 조치를 추진하면서 국내외로부터 신뢰를 얻어나갔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고는 9월 말 현재 미화 272억달러가 됐고 올 경상수지흑자는 당초 예상보다 높은 미화 120억달러로 전망되는 등 점차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연초 미화 1달러당 57바트까지 되던 환 율도 최근 38바트 수준으로 떨어지고, 주식시장도 상승세를 타고 있 다.
( 방콕=함영준기자 : yjhahm@chosun.com)
출처 :
http://www.missionthailand.net/tm3-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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