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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시위 노란 티셔츠와 빨간 티셔츠의 대립 |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는 국왕 태국의 라마 9세인 푸미폰 아둔야뎃 왕, 그는 형인 라마 8세의 의문사로 인하여 어린 나이에 태국의 국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 후 62년 동안 그는 변화 무쌍한 현대 사회의 정치 지형의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라마 9세에 대한 태국인들의 신임은 가히 절대적이다. 문제는 그가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차후 왕위를 현재의 단 하나밖에 없는 왕자에게 물려줘야만 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현재의 왕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핵심이다. 쉽게 말해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라마 9세와는 달리 한번씩 붉어지는 여성편력과 방탕한 생활, 거기에 따라오는 비난 여론과 낮은 인지도, 더불어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지지는 않지만 언론을 통해 조금씩 추측 되어지는 정치권과 태국 군부의 왕실에 대한 낮은 신뢰도 등은 태국 왕실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왕위를 그에게 물려 주지 않을 수도 없다. 국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둘째 공주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싶지만 태국의 왕실법은 여성이 국왕이 될 수 없는 구조이다. 결국은 잘못하면 현재의 라마 9세를 끝으로 왕실이라는 존재 자체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세계 언론은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태국 정치의 거물 탁신 그는 기업가와 경찰 출신의 총리이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출신으로 태국의 거대 기업을 경영 하는 태국 최고의 재벌이기도 하며 화교 출신이라는 특수한 핏줄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태국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총리가 되었다. 기업가 출신이라는 한계가 있어 항상 그의 정책 뒤에는 끊임없는 부정 부패의 구설수가 따라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책 중 많은 부분들은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탁신의 가장 큰 지지 기반은 기업이나 중산층 이상의 부자들이 아닌 지방의 농민들과 도시의 빈민들이었다. 그는 태국 하면 떠올려지던 마약이나 매춘 같은 이미지와의 전쟁에서 큰 공을 쌓았으며 나름대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또한 경찰 출신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과감한 사기진작 정책을 펴 경찰 세력의 막강한 지지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에게는 아이러니 하게도 결국 현 사태를 불러 일으키게 된 가장 큰 모티브가 되고 말았다. 후계 구도가 확실치 않은 왕실 세력들에게 서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경찰 권력을 등에 업은 탁신은 자칫하면 미래에 왕실의 종말을 불러 올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던 것이다. 거기에 은연중으로 탁신의 세력들은 태국의 정치제도를 선진국형인 대통령제로 바꾸려는 뉘앙스를 곳곳에서 풍기게 되었다. 이러한 탁신의 세력을 꺾기 위한 첫 번째 시도는 바로 2006년 손티 장군에 의해 진행되었던 군부 쿠테타였다. 탁신의 부정부패에 항의를 하는 시위대의 걷잡을 수 없는 총리퇴진 요구 상황에 군대가 순발력 있게 대처하여 탁신이 외유중인 틈을 타 쿠테타를 성공시키고 현재 국왕의 추인을 얻어내었다. 그 후 태국의 다수당이었던 탁신의 타이락 타이당은 수라윳 과도 정부에 의해 국회가 해산을 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태국은 과도 정부의 지휘 아래 국민 총선거를 치루게 되었다. 그런데 해산당했던 타이락 타이당은 탁신의 후광을 뒤에 엎고 총선에서 국민의 힘(PPP)라는 새로운 당을 만들어 선거를 치루었다. 그들은 총선에서 특별한 대안을 찾지 못한 국민들의 표를 얻어 다시 제 1의 다수당이 되었으며, 2008년 1월 탁신 계통의 사막 순다라벳 내각이 출범되었다. 결국은 범법자로써 망명자의 신세가 되었던 탁신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국민들의 투표로 인해서 다시금 사면의 효과를 얻게 되어 태국으로 다시 돌아 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2008년 대법원은 탁신에게 징역2년 형을 선고 하고, 판타믿(PAD)세력은 탁신의 후광을 입었던 정부퇴진을 요구하며 공항을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물론 그전에 탁신은 또 다시 해외로 도피했다. 헌재는 당시 집권당을 해체하도록 명령하고 의회는 과도 정부를 세웠다. 그것이 지금의 아피싯 총리가 이끄는 정부이다. 여기에 대법원은 탁신 재산의 1/2 이상을 몰수하도록 2010년 2월 26일 판결한다. 이에 탁신의 지지자들은 이 판결을 시발점으로 아피싯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현재의 시위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06년부터 매해 진행되었던 태국 시위는 왕실 지지를 표명하는 노란티셔츠와 탁신 지지를 표명하는 빨간티셔츠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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