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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탁신家의 유산과 초기생활 본문
태국 탁신家의 유산과 초기생활
탁신의 증조부인 셍새쿠( Seng Sae Khu)는 중국 광둥성 동북부 메이저우 출신으로 1860년대 시암왕국시절 태국으로 이주했고, 1908년 치앙마이에 정착했다 , 그의 첫째아들 치앙새쿠(Chiang Sae Khu)는 1890년 찬타부리에서 태어나, 생솜마( Saeng Somna)와 결혼했고, 치앙의 큰 아들 삭(Sak)은 1938년 "반 중국" 운동 때문에, 태국가족 성(姓)인 , 시나와트라(Shinawatra)를 채택했다. 그리고 가족의 나머지 구성원들도 그 이름을 사용했다.
생새쿠(Seng Sae Khu )는 조세 징수도급( tax farming)을 통해 부를 일구었다. 치앙새쿠/시나와트라는 나중에 시나와트라 실크회사(Shinawatra Silks) 회사를 설립하고, 금융,건설, 부동산개발등으로 확장했다. 탁신의 아버지인 럿/ Lert은 1919년 치앙마이에서 태어나 1968년 공주 잔팁의 딸인 인디 라망웡과 결혼했다, 럿 시나와트라/ Lert Shinawatra는 정치를 시작했고, 나중에 치앙마이 국회의원이 되었고, 지금은 사라진 민주당( Liberal party)의 부총재가 되었다. 럿시나와트라/ Lert Shinawatra는 1976년에 정치에서 은퇴했다. 럿 시나와트라는 커피숍을 오픈하고. 치앙마이 산캄행지역에서 오렌지와 화초를 재배했으며, 2개의 영화관, 주유소, 그리고 차와 오토바이 판매점을 운영했다.
탁신이 태어날 무렵, 시나와트라 가족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부유하면서 영향력있는 가문중 하나가 되었다. 탁신은 치앙마이 온천지역으로 유명한 산캄행에서 태어났다. 그는 15살까지 산캄행지역에서 살았고, 나중에 치앙마이 시내로 이주해 몬포트대학(Montfort College)애서 공부했다. 16세에 탁신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영화관 하나를 경영하는데 나섰고, 탁신은 1980년 폿자만 다마퐁( Potjaman Damapong)과 결혼했다. 그들 부부는 판통태( Panthongtae)라고 불리우는 아들 한명과 판통타(Pintongtha)와 피아통탄 (Peathongtarn)이라 불리우는 2명의 딸을 두었다. 그들은 2008년 이혼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들의 이혼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 단지 필요상의 이혼으로 보고 있다. 탁신의 막내동생인 잉락시나와트라(Yingluck Shinawatra)가 2011년 정치권에 들어와 탁신의 영향력아래 있는 푸어타이당 ( Pheu Thai Party)의 지도자로 나섰으며, 2011년 7월 3일 선거에 총리로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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