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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인의 세계관과 선교전략연구 본문

선교 EH국/태국 선교

태국인의 세계관과 선교전략연구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2. 10. 6. 11:45

     태국인의 세계관과 선교전략연구 

    태국인의 세계관(소승불교를 中心으로)


    태국인의 95%가 불교인으로 자처할 만큼 불교는 태국의 국교이다.  타이의 불교는 소승불교로서 타이의 사회와 문화 전체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더욱이 타이에 있어서 절(temple)은 종교적 요람이요, 교육의 장이요, 정신적 구심점이요, 문화생활의 본거지이다.


    그러므로 타이 선교에 있어서 가장 선행되어야 할 일은 타이의 사회와 정치와 종교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소승불교의 본질과 또한 불교와 타이인들과의 관계성에 대한 연구이다.  이를 철저히 연구해야 태국인의 세계관을 잘 이해할 것이며 이를 통한 구체적인 선교 전략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타이 불교인 소승불교의 신관과 인간관, 구원관, 내세관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제 1 절  神觀


    R. E. SPEER박사는 말하기를 "불교에는 인격적 신이 없고 오직 불 와 자연에 대한 지식뿐이며, 불교도들은 고타마를 그들의 신으로 예배하지는 않는다".


    19c중엽 태국의 군주 정치 말기에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Damrony은 C. B. Mecafee박사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종교와 나의 종교가 다른 것은, 당신은 인격신을 믿는 것이고, 나는 비인격신을 믿는 것이요."라고 말했다.


    불교에 대한 신관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후기에 일어난 대승불교에서는 절대적 존재, 창조적 신, 구원주로서의 신을 믿는데 이것은 분명히 초기의 고타마의 사상과를 반대되는 것으로 혹자는 이러한 불교 교리의 변질을 기독교와의 접촉에서 일어난 혼합적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원시 불교에서는 인격적 창조신의 존재만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여하한 형태의 절대적 존재도 부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지나가고 소멸되고, 생성되는 하나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경전에서 신에 대한 말들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는 고대 힌두교의 신 개념에서 유래된 것이며, 결코 인격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 있어서 가장 신 개념에 근접한 사상으로서 AVIJJA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AVIJJA역시 인격적 절대자는 아니다.  다만 錄起의 시작일 뿐이다.  그러면 AVIJJA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AVIJJA메서 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AVIJJA로부터 모든 유형 무형의 行이 구성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AVIJJA는 하나의 비인격적 실체로서 모든 業(KARMA:인격적 비인격적 모든 실체의 삶을 총괄한 개념의 뜻으로 내생의 원인이 되는 원리를 말함)의 法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AVIJJA는 고통스런 세상에 우리를 유출시키는 하나의 악한 실체가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AVIJJA로부터 온 것이므로 고통을 주는 악이라는 것도 AVIJJA의 소산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그에게 있는 것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불교에는 결코 神의 개념이 없으며, AVIJJA 역시 대단히 혼돈된 개념으로서의 비인격적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다만 변화하는 MANA(자연을 지배하는 비인격적인 힘)적 실체를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제 2 절  人間觀

     

    PAIL경전 중, 相應部(SAMYUTTU)경전에는 인간은 다섯 KANDAS의 집합체라고 했다.  즉 그것은 形(RUPA), 感覺(VENENA)認知(SANNA), 性向(SANKHARA), 意識(VINNANA)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영이나 혼의 독립적 존재를 허용하지 않고 오직 이와 같은 요소들이 결합되어 하나의 존재가 형성되는 것으로 보며, 이 존재 또한 영구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마치 양초가 타는 것처럼 刹那로 이어가면서 변화하여 그 존재가 사라지고 나면 오직 業(KARMA)만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인간관은 철저하게 물질주의적 개념을 갖고 있으며, 특히 인간 이외의 다른 사물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을 동일하게 봄으로써 인격적인 존엄성을 무시하게 되는 것이다.  불교에서 그들의 독특한 인간관을 대표하는 교리가 三法印중 諸法無我印의 교리이다.  여기서는 我를 3가지로 분류하는데, 흔히 인간들이 세상적인 조건에 의해 인식하고 있는, 일반적인 개념에서의 자신을 가리켜 實我라고 하며, 위에서 언급한 다섯 KHANDAS 즉, 五蘊으로 구성된 자신으로, 실제 존재는 하나 無常한 존재를 가리켜 假我라고 부르며, 오직 佛陀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하므로 얻어지는 이상적인 자신을 가리켜 眞我는 인정하는 것이 불교의 人間觀인데, 이 역시 독립된 인격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발전되어 나가는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정신을 말하는 것뿐이다.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宗敎史 교수인 R. E. HUME박사는 이와 같은 불교의 그릇된 인간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곱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해서 그 가치를 격하시킨다.

    둘째, 가정과 여성에 대해서 너무 낮추어 평가한다.

    셋째, 개인의 귀중성을 말살시킨다.

    넷째, 사회에 대한 의무를 거절한다.

    다섯째, 자력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여섯째, 일반적으로 구원에 대해 소극적인 방법을 주장한다.

    일곱째, 극락의 절정인 열반에 대한 공허한 개념을 갖고 있다.




    제 3 절  救援觀(구원관)


    타이 불교도들의 구원 개념은 한 마디로 말해서 고통을 야기시키는 악한 신 AVIJJA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욕망과 존재를 망각함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고통을 주는 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영원한 자기 소멸"을 가리키는 것으로 혹자는 이를 "영적 자살"이라고 말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교의 구원 개념을 주도하는 지식은 그들의 죄에 대한 그릇된 개념에서 출발한다.  즉 죄는 기독교에서처럼 인간의 삶을 결정적으로 주도하는 요소로 보지 않고 단순한 행위로 빚어지는 "과실"정도로 이해한다.  타이 불교도들은 죄를 TUCHARIT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TUCH는 "악하다"는 뜻이며, CHARIT는 "행위"라는 뜻이다.


    그들이 말하는 기본적인 죄 3가지는 악한 행동(KAI TUCHARIT) 악한 말(WAEHI TUCHARIT), 악한 마음(MANO TUCHARIT)인데 이러한 악은 전적으로 자신에게서 야기될 뿐만 아니라, 자신에 의해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오직 구원은 他에게 전가시킬 수가 없으며, 외부로부터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고타마 역시 그 누구로부터 구원의 힘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리수 밑에서 正覺成道(EWIGHTENMENT)하였던 것처럼 모든 사람은 스스로 覺道(KNOWLEDGE)를 통해 소위 그들이 말하는 구원(VIMUTTI:"해방", "자유케 하다."는 뜻으로 불교도들이 쓰는 구원의 개념)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제 4 절  來世觀


    고타마는 내세에 대해 언급하기를 회피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生,老,病,死의 문제에만 있었던 것이다.18)  물론 불교에도 기독교의 종말론과 비슷한 내세관이 보여지기는 한다.  즉, 장차 이 세상은 불과 물과 바람으로 멸망할 것이라는 것인데, 이것 역시 그 개념이 분명치 않아 이해하기가 대단히 곤란한 설법이다.19)  엄밀히 말해서 불교의 교리대로 한다면 내세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모든 것은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윤회적 시간개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분명하게 구분될 수가 없는 까닭이다. 


    더욱이 불교에서 주장하는 無常의 개념은 참된 실체. 즉, 개체의 독립성을 부인하며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변하여 또 다른 것이 되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배제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가장 내세를 그나마 분명하게 나타내는 교리가 涅槃論이다.  그러나 이 교리도 기독교의 종말론처럼 수직적인 종말 즉, "역사의 한 정점에서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것의 개념이 아니라, 끝없이 파멸과 재생이 순환되는 것을 말하며 역사적으로나 사실을 통해 증명될 수 없는 다만 무(無)(NOTHING)의 상태를 주장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이 교리를 증명하기란 대단히 어려울 뿐 아니라, 그 개념상 분명한 내세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열반(NIBBANA)이란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첫째 生, 老, 病, 死의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말하며, 둘째, 고타마가 말했듯이 어느 하나도 남아 있는 것이 없는 모든 것이 사라지는 공허한 상태이며, 셋째, 마치 하나의 심겨진 씨의 상태와 같이 새로운 것으로 자라나는 상태를 말하는데, 여기서도 볼 수 있듯이 둘째와 셋째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대단히 혼란스런 개념이다.


    타이 불교도로서 후에 기독교로 개종한 WAN PETCHSONGKRAM이 불교의 열반과 기독교의 천국을 비유한 것을 보면,


    가. 천국은 분명한 장소이지만 NIBBANA는 하나의 정교한 상태일 뿐이다.

    나. 천국은 예수께서 육체로 승천하심처럼 현실이지만, NIBBANA는 비현실의 상태이다.

    다. 천국은 육체의 사망 후에 들어가는 곳이지만, NIBBANA는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점 발전되어 점점 발전하다가 죽은 다음에 완성되는 것이다.

    라. 천국은 스스로 죄를 끊어 버림으로써가 아니라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지만,

         NIBBANA는 스스로의 악을 파생시키는 法인 AVIJJIA를 극복함으로 도달할 수 있다.

    마. 천국에서는 삶이 있지만 NIBBANA는 모든 삶이 꺼져 버린 상태이다.  천국은 주관자        이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지만, NIBBANA에는 창조주도 주관자도 없다.


    타이는 단순히 불교신도가 많은 나라라기보다는 차라리 불교를 위한 시범 국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소승불교와 깊이 결탁되어 있다.  그러므로 타이 선교를 거론함에 있어서 소승불교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결코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타이의 소승불교는 타이의 민족사와 호흡을 같이 해 왔기 때문에, 타이의 정치와 사회와 그들의 국민성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각도에서 타이 소승불교의 본질은 무신론과, 무종말론적 역사관, 그리고 자력 구원 사상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소승불교는 타이의 역사와 생사를 같이해 왔기 때문에 결국 현재의 정치형태, 사회구조들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왕을 하나의 부다로 숭배하는 전통 때문에 절대 군주 정치가 실현되었고, 윤회적 인생관을 신봉하기 때문에 철저한 봉건사회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타이인들의 사회적 인성인 민족주의와 낙천성, 그리고 봉건성 등과 그들의 모든 사상의 기초가 되는 세계관 곧 상대주의적 가치관, 현실에 대한 환상적 개념, 이 모두가 바로 소승불교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구체적으로 태국의 소승불교하에서의 선교 전략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제 3 장  세계관 -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흰두 - 불교도 세계관에 그리스도를 전하기)


    선교사들이 오랜 세기 동안 흰두 불교권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선교사들이 흰두-불교권 세계관 자세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없었다.

    둘째는, 선교사들이 흰두-불교권 세계관을 대체할 만한 상황화 전략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는, 선교사들이 흰두-불교권 세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끼리의 Networking작업에 힘을 쏟지 못하고 있다.

    본인은 8년간 불교권에서 사역해온 선교사로서 태국 소승불교에 대한 기독교적 선교전략을 세우며 본인이 직접 사역의 목표를 잡고 있는 남부 태국 선교 현장에서 말뚝 사역을 하며 얻은 결론을 연구 보고용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제 1 절  개론

     

    타이 선교에 있어서 종교적인 문제가 큰 장애가 되는 이유는 불교라는 종교는 그 어느 종교보다 대단히 강한 혼합적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구조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타이의 불교는 기독교와 많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미 그들의 불교가 애니미즘과 혼합된 것처럼 기독교의 진리 역시 불교와 혼합되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타이 불교는 진리 규명 방법부터 상대적 논리를 사용하며 모든 사물과 사건을 상대적 관점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성경의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제 2 절  전략


    이러한 각도에서 대략 다음과 같은 3가지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첫째, 변증적으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는 방법.

    둘째, 상대주의와 유사성을 접촉점으로 이용하는 방법

    셋째, 일반적인 불교도들을 위한 토착화를 통한 접근 방법.


    첫째와 둘째를 기독교인 및 한 번이라도 복음을 접했던 자에게, 세 번째의 토착화를 통한 방법은 불신 불교도들에게 적용한다.


    1.  변증적 방법


    먼저 변증적 방법은 타이에서 선교한 선교사들에 의해 사용되어진바 있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 적대감을 일으키는 것보다 불교도로서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악령에 사로잡힌 현지인에게는 다음과 같이 전개시켜 나갈 수 있다.

    1)하나님은 모든 힘의 구원이 되시며, 예수 그리스도 역시 능력의 주이시며, 만물의 창조주      와 통치자시라는 사실(요1:1-3, 골1:16-17)

    2)하나님은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인간      은 이러한 능력과 자유를 죄와 사망이 없는 하나님 안에서 누려야 한다는 것(창1:26-27,      2:7-25)

    3)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힘을 하나님을 대항하고 불순종하므로 상실했기 때문에 그후부터       악령의 지배하에서 슬픔과 죽음과 고통을 당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업(KARMA)의 법      아래 속박되어 죄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창3:, 롬3:12, 요8:34, 엡2:1-3)

    4)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악령의 결박을 끊고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므로      참 능력을 회복하러 이 땅에 왔다는 사실(요1:14, 18, 29)

    5)우리 인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참 능      력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은 이 참 능력과 그의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요1:10-13, 15:26, 16:12-15)을 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증적 방법에서 거론될 주제들은 성경의 진리와 불교의 교리적 개념들에서 유사한 것을 들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기독교의 하나님/불교의 아비야(AVIJJA)

      *기독교의 죄/불교의 고(苦)

      *기독교의 천국/불교의 열반(NIRVANA)등을 주제로 삼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사한 것과는 반대로 서로 상반되는 교리의 내용들을 제시, 비교 설명하므로 기독교의 진리를 밝혀서 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신(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영원히 계신 분)/불교의 신(영원한 인격신도 없으      며 아무 신도 존재하지 않음)

      *기독교의 인간(하나님이 창조주. 자기 형상대로)/불교의 인간(인간 기원 알 수 없다. 영       혼.참자아도 없는 존재)

      *기독교의 죄 문제(현실의 고통은 인간의 하나님께 불순종 범죄하여 타락한 결과)/불교(인      생은 고통으로 이루어짐. 이 고통은 욕망으로부터 옴)

      *기독교의 구원(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불교(행복은 욕망을 그침으      로)


    실제로 타이 교회의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전체 응답자 중에 22.6%가 지옥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개종했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러한 주제에 의한 변증적 전도 방법이 대단히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기독교의 진리를 아무리 열심히 전해도 이미 그들에게 先入되어 있는 불교적인 개념 때문에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타이인들은 죄를 밥(BAAP)이란 말로 표현하는데 이 밥이란 특히 생물을 죽이는 행위를 의미하며, 그들이 생물을 죽여 밥을 행했을 때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불교도들이 지켜야 하는 5계명의 하나를 범했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은 이와 반대로 죄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할 때 죄를 밥(BAAP)으로 사용하게 되면 결코 그들에게 구원의 필요성과 속죄의 효력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두 번째 방법인 접촉점을 통한 전략이 필요하다.


    2.  접촉적인 방법

     

    접촉적인 방법이란 풍부한 기독교적 의미를 지닌 토속 예화와 언어의 개념들을 복음 전달의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비유할 수 있는 재림 부화에 관한 이야기인데 "수만년전 흰 까마귀 한 마리가 5개의 알을 낳았는데, 이 알들은 각각 부화들을 배태하였다.  그리하여 알에서 배태된 부화들을 지금 높은 곳에 현존해 있으며, 그들 중에 4부화는 이미 나타났고, 아직 한 부화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는 앞으로 나타나서 8400년을 통치하여 인간들에게 순결함과 행복을 줄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세례요한에 비유할 수 있는 푸나야툼(PUNYAH TUM)이야기인데, "푸나야툼이란 한 선지자가 길을 예비하게 될 것이다.  그는 거친 땅을 부드럽게 하며, 사찰의 터를 만들 것이며 이태 알렌 야 마타이(ALEN-YAH-METTAI)라는 부타의 형제가 하나의 구세주로 성육하게 되며, 그를 보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타이에는 많은 진실과 예화들이 놀라우리 만치 기독교의 내용들과 일치되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예화들을 사용함으로써 복음 전달할 수 있다.


    그 외 타이인들에 대한 인성 전도 방법으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한다면


    첫째, 제2세 기독교인들과 한번 복음을 접했던 자들에게 대해서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한 쇼          크(SHOCK)방법과

    둘째, 일반적인 불교도들을 위해서는 토착화를 통한 접근 방법이다.


    이상과 같이 태국 소승불교에 대한 기독교적 선교 전략을 살펴보았다.


    실제적으로 태국인들은 민족주의와 낙천성, 그리고 봉건성 등과 그들의 모든 사상의 기초가 되는 세계관 곧 상대주의적 가치관, 현실에 대한 환상적 개념, 이 모두가 바로 소승불교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변증적으로 기독교 진리를 설명하거나 상대주의와 유사성을 접촉점으로 이용하는 방법 외에 삶을 통한 토착화 전략이 있다.





    3.  토착화 전략


    토착화란 성경에 근거한 즉, 사도들의 선교 방법론(고전9:19-22, 고전7:18-20)과 초대 교회의 회의에서(행15:28) 결정한 피선교지 문화를 고려하여 선교지의 문화를 이식하는 것을 지양하라는 개념을 말한다.  그러므로 로마 카톨릭의 순응설(ACCOMODATION) 즉, 자연을 말씀과 동질적인 계시의 과정으로 봄으로써 피선교지 문화를 무조건 수용하는 형태의 과격한 토착화를 배격하며 DYNAMIC EQUIVALENCE즉, 변형설(TRANSFORMATION)을 취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피선교지의 모든 문화는 타락한 인간들의 죄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지만 역시 하나님의 일반 은총 아래 간수되는 것으로 봄으로서 복음 전도에 있어서 토착 문화를 크게 붕괴시키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가치관에 입각하여 그것을 변형, 이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각도에서 혹시 토속 문화의 이방 종교적 요소 때문에 진리에 변질을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가질 수 있으나, 실제로 피선교지 문화들은 이미 그 종교적 저력을 상실한지 오래인 하나의 형식적 모형뿐임을 바빙크(J. H. BAVINCK)는 증거했다.


    이상과 같은 토착화의 실례는 태국의 장례식을 화장 대신 기독교식으로 대치하는 일과 예배 형식의 변화. 즉 주해 설교, 찬양과 예배 뜨거운 교제 등으로 환원하면 좋을 것이다

     

     

    출처 : http://www.missionthailand.net/thaimission/thaimission2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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