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불교-태국” 본문
“불교-태국”
제출자: 이용웅 제출일: 95.10.31
불교는 거의 B.C 600년전에 탄생하였다. 불교는 힌두교와 인도의 소산이며 세계적인 큰 종교들 가운데 가장 먼저 국제적인 종교가 되었다. 불교는 오늘날 중앙 아시아로부터 근동에 이르기까지 2억5천만에서 5억의 인구가 있다. 불교는 유신론과 무신론, 일원론과 이원론, 신앙에 의한 깨달음과 행함에 의한 깨달음, 무아적 축복으로서의 구원과 극락의 기쁨으로서의 구원이 있다. ‘사성제‘는 네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뜻으로서 불교의 교리를 苦,集,滅,道라는 네가지 개념으로 요약된다. 苦란 현실세계에 대한 설명으로서 생로병사, 미운 사람과의 만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구하여도 얻지 못함 등 인생의 모든 고통이라는 뜻이다. 集은 고통스러운 현실세계의 설명으로서 인식기능과 감각기관의 작용이 결집하여서 집착과 애욕 등을 일으키고 이 때문에 고통이 생긴다는 뜻이다. 滅은 그릇된 인식주관의 작용과 이로 말미암은 집착, 애욕을 끊어버리면 고통이 없어지고 열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道는 열반에 이르는 방법을 말하는데 ’팔정도‘가 이에 속한다.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원죄의 개념이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짓는 罪는 불교의 논리 안에서는 단지 무지의 소산이며 나쁜 업을 쌓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의 사망은 윤회하는 중생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며 당연한 연기 법칙의 결과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요11:25-26)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사망을 극복하는 길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삶으로써가 아니라 열반에 이르러 죽으면 열반에 이르러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않은데 있다. 결국 불교에서는 인간이 태어난 이상 죽지 않고 사는 방법은 없다. 열반에 이르더라도 일단 육신이 죽어서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야만 완전한 열반 즉, 無餘涅槃이 된다. 이것이 기독교와 불교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그런데 오늘날 불교에는 같은 뿌리에서 진화해온 두가지 형태의 불교가 있다. 소스불교(데라바다:“어른들의 가르침”)는 불교 최초의 형태인데, 이 가르침은 창시자의 죽음 직후에 열린 중요한 회의에서 승인된 교리의 체계에서 나온 것이다. 이 형태의 불교는 정신적 깨달음에 이르는 좁고도 준엄한 길을 포함하는, 보수적이며 법률을 존중하는 가르침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불교는, 이 길이 대중에게 너무 어려운 길이라고 느낀 사람들이 경멸하는 뜻으로 붙인 이름인 히나야냐(소승)로 보통 불려진다. 이것은 오늘날 주로 남부 아시아, 실론,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라오스에 남아 있으며 “남방 불교”라고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불교 신자의 다수는 마하야나 학파에 속해 있다. 이 나중에 나온 학파는 깨달음에 이르는 넓고 관대한 길을 가진 좀더 자유로운 학파이다. 이것이 “대승”이다. 이 사상은 중앙 아시아와 북 아시아에서 발전하고 전파되었으며 따라서 “북방 불교”라고도 부린다. 오늘날 중국, 일본, 티벳, 몽고, 한국, 베트남, 네팔 등지에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
소승 불교는 맹신보다 인간의 이성에 호소하는 교리를 내세운다. 때문에 다른 종교의 침투가 용이하고 현재 태국의 불교는 본연의 가르침과 교리를 왜곡한 혼합종교로 존재한다. 즉, 외모와 겉치레는 불교처럼 보이지만 실속은 혼합물이다. 태국의 불교는 교리, 가르침, 심오한 철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도덕과 윤리와 전통 속에 젖어있는 생활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선교역사: 1828년 영국선교단체 소속 Karl August Gudslap과 Jacob Tomlin에 의해 최초 복음이 전해졌고 그 후 1833년 미국 침례교 선교사와 1850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가 입국하면서 구체적인 선교가 시작. 1837년 미국 침례교 선교사에 의해 태국내 중국인들을 위한 최초의 교회 태동. ‘94년말 현재 태국 내에 약 1,500개의 교회가 있고, 교인은 97,000명이며, 목회자는 1,160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교회의 성년 세계 교인 수는 10명 안팎이며 상주 목회자가 없는 곳이 많고 그나마 기독교 인구중 50%는 습관적인 교인이다.(총인구 6,000만)
복음전파가 더딘 이유: 167년의 오랜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성도의 숫자가 적은 데는 다음의 이유가 있다.
1. 전통종교인 불교와 이슬람에 대한 신앙이 너무 철저하다. 95%가 불교도이고, 4%가 이슬람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보다 더 철저하며 불교의 신앙교육의 일부는 기독교와 흡사하다. ex)절과 이슬람 사원에서 기독교의 주일 학교처럼 종교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거듭남’ ‘영생’등은 우리와 똑 같다. 심지어 다락방,남.여 전도회, 청년회,학생회 모임이 기독교보다 더 활발하다.
2. 범신론적 사고방식이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있다. 이들은 불교를 믿더라도 불교만을 믿지 않고 다른 종교도 동시에 믿는다. 예컨대, 브라만 신자가 중국사람들처럼 조상신에게 절한다. 심지어는 얼마전 태국에서 추방당한 통일교를 추종하는 태국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현재는 일본 종교인 ‘YORE'가 한창 전도를 하고 있는데 역시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3. 대부분의 태국 사람들은 점령,미신,마법 등을 믿는다. 따라서 마녀, 점쟁이,신들린 사람 등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들이 복음전파의 큰 장애물이다.
4.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섬기는 모든 우상, 모든 신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 뿐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나 이름 있는 사람을 살아있는 사람조차도 신령한 사람으로 섬기고 소원을 빌고 있다.
5. 영적 긴장이 없으며, 그나마 소수의 기독교인도 대부분 가난하고 학력이 낮으며 사회적인 영향력이 없는 자들이다. 기독교인이나 목회자들이 대부분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자립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이들의 모습을 보고 복음에 대해 태국인 들이 무관심한 것은 이해가 간다. 특히 태국 교회가 부족(치앙마이,치앙라이등)에 밀집해 있다. 이는 오래 전 중국인 전도자 John Song이 그 지방에서 많은 부흥집회를 가졌고 따라서 산족들이 많이 개종했다.
선교전략
1. 태국 교회는 서기2,000년까지 60만 성도, 6,000교회, 60명 선교사 파송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도자 양성이다. 이 나라는 순교의 피를 흘려본적이 없는 나라이다. 따라서 훈련받고 사명감 있는 지도자 배출이 시급하며 그 일을 위하여 이들을 위한 전략이 시급하다.
2. 주일학교,학생,청년부가 활성화돼야 한다. 태국교회의 장래는 결국 이들 2세들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영적 매력을 지닌 사역자들이 이들을 위해 더욱 헌신해야 하며 이들 문화에 상황화된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야 한다.
3. 태국은 불교를 신봉하는 나라로 불교문화가 생활과 습관 등 여러 부분에 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승불교의 영향으로 절들의 대부분이 명산을 찾아 산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있으나 태국은 소승 불교로서 절들이 사회공동생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종교행사와 교육의 대부분이 절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자기 욕망을 제어하고 감정을 잘 다스리도록 교육을 받는다. 이곳 저곳에 불교 문화가 편만하다. 그러기에 선교사도 생활을 절제하며 그들보다 거룩한 삶을 통하여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본을 보여야 한다.
4.교회가 사회를 바로 이해하고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사회 사업 부문의 투자도 해야 한다. (나환자 사역, 마약 중독자 사역, 산지 및 난민촌 선교)
참고문헌
강순관, 태국교회 지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 PROJECT, 침신대원 석사논문,1990
안점식, 세계관과 영적 전쟁, 죠이 선교회 출판부, 1995
존 시몬즈,홍성철 역, 복음 전달의 원리와 적용,세복,1995
출처 : http://www.missionthailand.net/thaimission/thaimission1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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