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4/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내 주 님 서 신 발 앞 에

아시아에서의 한국 선교의 역할 본문

선교 태국/펌) 태국 선교

아시아에서의 한국 선교의 역할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2. 10. 6. 11:36

아시아에서의 한국 선교의 역할



화 융/싱가폴 아시아 기독교연구소 소장


이글은 1999년 한국 선교사 모임에서 했던 강의를 저자의 동의를 얻어 번역, 게재한 것이다.


이 강의는 21세기 아시아에서 무엇이 선교 과제로 등장할 것인지 선교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려는 것입니다. 이 주제와 연관하여 한국 선교가 아시아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해 보려고 합니다. 강의에 앞서 두 가지를 먼저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사실 강의 부탁이 매우 촉박하게 와서 글을 급하게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부탁하신 주제에 부합하도록 이 글을 잘 다듬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한 연구를 충분히 하지 못했습니다. 둘째로, 저는 사실 한국 교회나 한국 선교를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시고 강의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강의는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우선 성경적인 선교관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앞으로 오는 시대에 이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한국 선교사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는지 제안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가지 미리 말씀드리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주로 선교학적 논의에서 구분이 되고 있는 ꡐ선교ꡑ(mission)라는 용어를 저는 단수로 사용합니다. 선교는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의 사명으로 명령하신 사역의 총체를 의미하고, 또한 그의 아들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 이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ꡐ선교ꡑ(missions)가 복수로 될 경우에는 종종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이루어지는 타 문화권 사역을 언급할 때 사용됩니다.


교회 선교의 정의

20 세기 초 이후 선교를 복음전도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활동으로 볼 것인지에 관해 복음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열띤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식의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974년의 로잔 세계 복음화 대회이래 복음주의자들은 점차 통전적(holistic) 선교를 말하게 됩니다. 로잔 헌장에서 이런 용어를 직접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이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ꡒ인간과의 화해가 분명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은 아니지만, 우리는 복음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가 모두 우리 기독교인들의 의무임을 확인합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모두 신론 및 인간론을 반영하며 또한 이웃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ꡓ (로잔헌장,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부분)


이 구절이 분명히 의미하는 바는,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의 의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사역과 동시에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위한 사회-정치적 행동을 보이고 하나님의 세계를 보다 정의롭게 만드는 사역을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선교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다양한 각도에서 지지됩니다. 첫째,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에서 하나님 나라가 중요한 주제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이나 집단의 삶에서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왕적 통치 아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축사(exorcism)를 통해 사단의 권세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고, 치유와 자비와 공의를 이루는 사역이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 이제는 구원이 종합적이요 또한 다 차원적인 개념으로 점차 이해되고 있습니다.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이러한 이해는 프란시스 쉐퍼가 아주 잘 정리하였습니다. 구원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헬라 사상에 의해 변질되었음을 언급하며 말하기를,


ꡒ기독교적이라고 인식되는 많은 것들이 실상 플라톤적 사상에서 온 것이다. 플라톤 사상은 육체는 나쁜 것이요 멸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영혼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 전체를 창조하셨고, 그래서 인간 전체가 구원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소외는 …(인류의 삶에서 목격되는) 인간이 시공간 속에서 타락함으로 시작되었다. 우선 인류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다. 둘째로,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래서 심리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셋째로, 인간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래서 사회-정치적 문제들이 발생한다. 넷째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환경 문제와 같은 생존의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이 모든 것이 치유를 필요로 한다.ꡓ (「도시 안의 죽음」[1969]:76~77)


만일 쉐퍼의 말이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달한 것이라면, 선교는 다차원적인 것입니다. 선교는 복음 전도, 치유 및 구원 사역, 그리고 사회-정치적 행동들을 포함합니다. 선교를 이렇게 이해하게 될 때, 선교의 다른 측면들에 앞서 복음 전도에 신학적으로 우선 순위가 놓여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겪는 어려움들의 한가운데 궁극적으로는 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가 실천되는 현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복음 전파로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각 사람의 필요들-영적, 정서적, 사회적 및 정치적-을 해결해 주시면서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긴급한 필요를 접촉점으로 삼으셨지만, 그는 변함 없이 그들의 궁극적인 필요, 즉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통전적 선교라고 이해합니다.


2000년 그 이후의 세계

선교 사역을 어떻게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 적절하게 답변하려면 앞으로 세계가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적어도 네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1. 급격한 변화의 세계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음을 모두 감지하고 있습니다. 거의 30년쯤 전에 제가 대학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 사용했던 컴퓨터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것은 엄청 큰 기계였는데, 방 하나를 전부 다 차지하고 있었고, 특별 교육을 받은 전문가가 카드를 사용해서 복잡한 조작 과정을 거쳐야 사용이 가능했던 그런 컴퓨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어떤 종류의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옛날 고물같은 컴퓨터 보다 훨씬 용량도 크고 빠릅니다. 이제는 어린 아이들조차도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는 인터넷과 함께 우리 삶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 왔고, 또 우리가 아직 미처 파악하지 못한 방법으로 앞으로도 계속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또 한가지 예는 아시아 여러 나라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은 부분적으로는 이미 언급된 정보 기술 혁명에 힘입은 것이며, 또한 부분적으로는 세계화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홍콩이나 싱가폴과 같은 국가들이 개발도상국가에서 일약 선진국으로 도약을 했고, 이제는 그들의 국민총생산(GNP)이 그들의 식민지배국이었던 영국을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동아시아의 경기 침체가 잘 보여주었듯이 세계화에는 부작용도 따릅니다. 한국이나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다른 나라들이 타격을 심하게 받았고 경제적 난관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들은 우리의 사고에 필요한 패러다임 전환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합니다. 이것은 선교 사역의 기회를 잘 활용하고 난관들을 피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우리의 선교 사역이 어떤 프로젝트에 많은 재정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면 현재 우리가 겪는 것과 같은 경제적 침체는 사역에 심한 타격이 되었을 것입니다. 혹은 우리가 이러한 변화에 뒤처지게 되면 인터넷을 이용해서 회교도들에 접근할 수 있는 선교적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회교권이라고 해도 인터넷 상의 정보를 검열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2. 복잡화된 세계

서구 사회학자들은 점차 서구 사회가 현대(modernity)로부터 현대 후기(post-modernity)로 이동하는 현상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ꡐ현대ꡑ라고 부르는 것은, 사회의 점진적 세속화, 기술 및 산업의 발전, 경제 성장 및 그로 말미암아 지난 150여 년 동안 서구 사회를 변화시킨 도시화 현상 등과 더불어, 계몽주의가 만들어낸 지적, 사회학적 틀입니다. ꡐ현대 후기ꡑ는 서구 사회에서 현대에 대한 신뢰가 점차 상실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이동 현상이 서구 사회에서 복잡한 과정을 겪고 있다면, 아시아는 훨씬 더 그렇습니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아직도 현대 이전(pre-modern) 사회를 벗어나 현대로 진입하려고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현대 이전 사회로부터 현대 사회로의 이전이 완료되기도 전에 현대 후기라는 새로운 흐름에 부딪힌 것입니다. 단순한 예가 되겠지만, 부족 사회(현대 이전) 출신 사람들의 삶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녀들과 함께 대도시에 나와 살고 TV를 봅니다(현대). 그들의 자녀들은 ꡐ스타워즈ꡑ 같은 게임들을 즐깁니다(이것은 현대 후기적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사회학적으로 볼 때 오늘날 아시아 사회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수 더 떠서 하바드 대학의 사무엘 헌팅턴 교수는 앞으로 다가올 문명들간의 충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가 쓴 「문명의 충돌과 세계 질서의 재편」이란 책의 요점은 대중들은 점차 서구화 되어가지만 각 문화권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과거 전통과 문화를 준거로 삼아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려는 경향으로 회귀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세계 거대 문명들 사이에 세계 경제와 기구들 안에서 영역과 영향력을 놓고 충돌이 야기될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특별히 그와 같은 충돌은 서구(기독교 문명)와 회교 및 유교 문명 사이에서 일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헌팅턴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던 하지 않던 간에, 그가 주장한 내용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들이 오늘 세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을 기독교 선교와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우선 앞으로의 세계는 간단한 해법이 없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엘리트들이 점차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으로 회귀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적절히 상황화 시켜야 할 도전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셋째로, 대중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엘리트 계층의 사람들이 기독교 선교에 대해 더욱 적대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3. 인구 이동

인구 이동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200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가 63억이(33%) 될 것입니다. 기독교 인구는 약 21억이 될 것이고, 나머지 42억은(67%) 비기독교 인구입니다. 아시아 대륙을 말하면, 전체 인구의 7% 정도가 기독교 인구입니다. 전 세계에서 기독교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여섯 나라(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방글라데시, 파키스탄)가 모두 아시아에 있습니다. 이러한 숫자들이 보여주는 단순한 사실은 아시아에서 복음 전도의 사명은 막중하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입니다. 우리는 종종 아시아 다른 국가들이 겪는 가난이 어떤 것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몇 가지 사실이 우리의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생존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가난합니다. 다섯 명 가운데 두 명은 영양이 부족합니다. 15억 인구가 가장 기본적인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전세계 20% 인구가 83%의 부를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선교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라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거대한 것입니다.


4. 서구 기독교의 쇠퇴와 비 서구 세계 교회들의 성장

지난 50년간 비 서구 세계의 교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던 반면에, 같은 기간 동안 서구 기독교는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1980년대 어간에 세계 기독교의 중심은 서구 세계로부터 비 서구 세계로 이동했습니다. 근대 역사에 처음으로 비 서구 기독교 인구수가 서구 기독교 인구수를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과 함께, 우리는 세계적으로 복음주의적 교회와 오순절-카리스마적 형태(즉 성령의 능력과 은사에 특별한 강조를 두는)의 교회가 부흥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러한 부흥은 특히 비 서구 세계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들이 서구 교회들보다 훨씬 더 살아있는 영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비 서구 세계 교회의 어깨 위에 세계 선교의 사명이 점점 더 무거워질 것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비 서구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점진적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또 다른 도전을 가져올 것입니다. 20세기를 지나는 동안 신학적 논쟁을 주도한 의제들은 - 우리가 그러한 의제들에 동의하지 않았을지라도 - 서구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주도한 의제들 가운데에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교리들의 부정, 성경적 윤리의 거부, 보편 구원과 종교 다원주의의 수용 등이 있습니다. 전 세계 복음주의 교회의 부흥과 오순절-카리스마적 교회 운동의 영향은, 비 서구 세계 교회의 자신감 및 영적 생동감을 더해 주었고, 그와 더불어, 이전보다 더 성경적인 신학으로의 회귀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대부분의 신학 저술들이 서구 기독교에서 쓰여지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비 서구 세계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신학 저술도 점차 늘고 있습니다. 이들 신학 저술들 대부분은 비 서구 세계 교회의 현실에 적합하게 쓰여졌습니다. 비 서구 세계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 경험과 자신들의 정체성에 더 많은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에 비례해서 더 많은 저술들이 쓰여지고 출판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어질 때, 비 서구 세계 교회가 감당하는 선교의 효율성도 훨씬 더 강화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선교가 지역 현실에 적합한 신학적 틀을 기초로 사역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선교적 및 목회적 관심에 부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중요한 것인데, 잠시 후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선교의 역할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아시아 선교 사역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네 가지 흐름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맥락에 비추어 아시아 지역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어떤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겠는지 몇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우리 앞에 큰 과제가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세계 각지에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감당해야 할 엄청난 선교적 과제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아시아 다른 지역의 교회들에 나누어 줄 수 있는 영적, 인적 및 물질적 자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시아 교회와 비 서구 세계 교회가 세계 선교에서 더 큰 지도력을 행사해야 할 시대가 도래했다고 믿습니다. 앞에서 서구 교회가 안으로부터 점차 쇠퇴하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서구 교회는 현대와 후기 현대의 압력으로 인해 앞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생존의 문제에 더욱 매달려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혼과 재혼, 낙태와 동성애 문제들과 싸워야 할 뿐 아니라, 교회 안의 자유주의 신학과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서구에 있는 복음주의 교회 혹은 오순절-카리스마적 교회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이겨낸다 할지라도, 물론 현재 상황을 보면 이것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그들의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다른 나라에서 효율적인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선교에 헌신하는 서구 기독교인들의 숫자도 점차 줄고 있는 추세입니다. 어느 중견 미국 선교사가 제게 했던 말인데, 선교사가 되기로 헌신하는 사람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어 미국 선교 단체들의 존립이 위기 상황을 맞이할 정도라고 합니다.


앞으로 비 서구 세계 교회들이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전 세계 선교 사역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한 세대를 지내오면서, 비 서구 세계 교회들이 적지 않은 숫자의 타 문화권 사역자들을 현장으로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가속되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더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타 지역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 현장들로 보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한국 교회는 함께 나눌 자원이 있습니다

한국 개신 교회는 오늘날 아시아에서 가장 성장한 교회입니다. 한국 교회는 20세기 초반 어려움과 고난을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은혜를 주셔서 성장하게 하셨고, 신실함, 용기 및 깊은 기도를 통해 성숙하도록 하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겪은 경험들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다른 지역의 교회들과 나눌 수 있는 몇 가지는, 박해를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킨 일, 기도하는 삶, 교회성장의 경험, 세계 선교를 향한 깊은 관심 등입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가 다른 지역에서보다 길고 또한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기 때문에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현지 교회 지도자들보다 신학적 훈련이 더 잘 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선교사들이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은 현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재정적으로 많은 복을 주셨는데, 한국 교회가 그러한 물질적 자원을 다른 나라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리라 믿습니다.


3. 지역 교회와 협력하고 돕는 일입니다

과거에 서구 선교가 근본적으로 잘못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자민족 중심으로 사역을 한 것과 비 서구 세계의 선교 대상 지역 사람들에게 군림하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그들은 선교 현장에서 자기들의 세계관과 자기들의 신학을 고집했습니다. 그들은 선교 재정과 월등한 교육 수준을 이용해 현지 교회를 조정하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피선교지 교회들이 명실상부 독립된 교회로 성장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숙된 현지 지도자들의 등장이 그만큼 늦어졌기 때문입니다.


19세기에 헨리 벤(Henry Venn)이 처음으로 피선교지 현지 교회들은 ꡐ자립(self-supporting), 자치(self-governing), 자전(self-extending)ꡑ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시대를 앞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타 문화권 선교에서 이 개념은 선교의 기본 원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선교사들이나 비 서구 선교사들이나 이러한 원리를 정말로 자신들의 가슴에 새기고 실제 선교 현장에 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나라에 왔던 과거의 많은 서구 선교사들이 이러한 원리를 그들의 삶과 사역을 통해 실천하지 못했음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현지의 기독교인들을 ꡐ형제ꡑ나 ꡐ자매ꡑ로 동등하게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ꡐ아버지ꡑ나 ꡐ어머니ꡑ 같이 행동했습니다.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섬기는 종의 마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을 방문했었는데, 한국 선교사들도 그런 모습들이 있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습니다. 어떤 선교사들은 그들의 선교 기금을 현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선교의 목표는 선교 현지에 성숙하고 독립적인 현지 교회들을 세우는 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는 선교사들이 현지 기독교인들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에서 사역할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종종 우리가 현지 교회의 참된 종으로 섬기려는 겸손한 자세가 요구됩니다. 또한 선교 기금이나 우리의 우월한 학력을 앞세워 현지 사역자들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며, 이러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선교사로 헌신한 우리 모두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큰 도전입니다.


4. 아시아의 진정한 상황 신학을 모색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숙하고 독립적이 되려면 ꡐ자립, 자치, 자전ꡑ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진정한 토착 신학 혹은 상황 신학을 통해 표현하기 위한 독자적 신학을 모색할 수 있는 능력(self-theologizing)이 있어야 합니다. 아시아에서 가르쳐지고 배우는 신학(복음주의 신학 혹은 자유주의 신학, 카리스마적 신학 혹은 반 카리스마적 신학, 개혁 신학, 가톨릭 신학, 에큐메니칼 신학 등)은 모두 서구로부터 직접 들여 온 것들입니다. 아시아에서 쓰여진 소위 아시아 신학들, 이를테면 보수적 신학이든 에큐메니칼 신학이든지 간에 대부분은 여전히 핵심은 서구적 신학이며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제가 제 책 「망고와 바나나: 진정한 아시아 기독교 신학의 탐구」(1997. Oxford: Regnum 출판사)에서 지적했습니다.


만일 교회가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정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만나려고 하는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종교-문화적 삶의 자리 내부로부터 올라오는 질문들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성경적, 변증적 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변증적 신학은 아시아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 문화 및 종교를 진지하게 연구해야 하며, 그들이 제기하는 대단히 난감한 질문들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해답이 되시는 이유와 방법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아시아 신학은 아시아인의 영적인 세계와 ꡐ이적과 기사ꡑ를 보다 심각하게 여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시아 신학은 영적 세계와 기적을 부정하는 계몽주의적 세계관의 영향에서 벗어난 신학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랜 선교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인들, 회교도들, 일본인들 및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 결정적인 복음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진정한 토착 신학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20년대에 중국 선교의 실패가 한 예가 됩니다. 당시 5.4 운동이 진행될 때 기독교는 지성인들에 의해 심하게 공격을 당하고 거부되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가 현대화 및 문화 갱신이라는 중국의 현안 문제들에 적절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회는 복음을 전체 중국 백성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변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중국이 자신들의 국가적 구원을 도모할 목적으로 그들의 장구한 역사 가운데 처음으로 외국의 각종 문물에 지적, 교육적, 과학적 및 기술적 분야에서 문호를 개방하려고 시도할 때, 중국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효과적인 변증 신학이 없었기 때문에, 교회가 복음을 가지고 중국 토양에 효과적으로 침투해 들어가 지상의 가장 넓은 선교 현장인 중국의 복음화를 가능케 할 적절한 상황 신학을 만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고, 또한 헌팅턴이 말한 것처럼 아시아 각국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종교-문화적 전통과 토착화로 회귀하게 된다면, 앞으로 세대에 기독교 선교가 직면할 도전은 우리가 부름을 받은 개별 선교 현장에서 적절한 상황적 및 변증적 신학을 모색하는 일입니다. 저는 이 분야에서 한국 선교사들과 한국 선교가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실제적인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 선교 사역을 하든지 현지 교회가 적절한 상황 신학과 변증 신학을 모색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신학적 훈련과 교육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 선교 단체들은 한국에 있는 교회와 신학교에 세계적 수준의 선교 학교를 세우도록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선교 학교를 통해 복음 전도, 교회 성장, 선교 역사와 선교 신학 등이 심도 있게 연구되어야 합니다. 또한 문화 인류학이나 유교, 불교, 힌두교, 회교 등과 같은 다양한 아시아 종교와 아시아 문화를 연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결국 현지인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이 전파되도록 아시아 교회가 효과적인 상황적 변증 신학을 모색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우리의 관심은 총체적 선교에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교회 부흥, 복음 전도 및 가치관의 변화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 경제적 성장, 정치적 정의 및 사회 변혁 등의 문제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인적, 물질적, 신학적 및 영적 자원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분야에서도 아시아에서 기독교 선교의 진작을 위해 한국 교회가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화 융(Hwa Yung)/ 최근까지 말레이시아 신학교 교장이었으며 금년 7월 싱가폴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설립한 <아시아 기독교 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망고와 바나나: 진정한 아시아 기독교 신학의 탐구」등이 있다

 

 

출처 : http://www.missionthailand.net/thaimission/thaimission13.htm

'선교 태국 > 펌) 태국 선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차이나와 한국교회의 책임   (0) 2012.10.06
태국 선교보고  (0) 2012.10.06
부탄의 눈물(카렌족)  (0) 2012.10.06
태국 북동부 지역 소개  (0) 2012.10.06
태국 카렌족 상황과 선교전략  (0) 2012.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