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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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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EH국/태국 선교

펌) 선교 패러다임 전환의 배경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25. 1. 5. 15:48

선교 패러다임 전환의 배경

발행 : 2024년 6월 13일, 임태순 지음, 서울:GMF Press.. 수록면 : 35-59.

임태순
연세대학교(정치외교학 BA, MA)와 Asian Theological Seminary (M.Div.)를 졸업하고 한국해외선교회 개척선교회(GMP) 소속 선교사로 태국 무슬림을 위해 사역하였다. GMP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는 글로벌리더십포커스(GLFocus) 사역본부장으로 사역하면서, 아신대학교와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에서 선교학을 강의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국립과학대학(USM)에서 이슬람 철학(MA), 태국 Assumption University에서 서양철학(Ph.D.), 말레이시아 침례신학대학에서 선교학(D.Miss. 수료)을 공부하였다.

현장은 이미 바뀌고 있었다

시작부터 사역 대상 공동체 안에 살아야 한다. 가능하면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자동차는 언어공부를 마치는 2년 이후에 구입한다. 언어 공부의 진보를 위해 가능하면 한국말을 쓰는 상황과 거리를 둔다. 가난한 무슬림들과 어울리기 위해 아이들 교육은 홈스쿨링을 한다.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 설치는 자제한다.…

초기 현지 적응을 위해 세운 몇 가지 원칙들이다. 그만큼 태국 문화에 빨리 스며들고 싶었다. 그런데 이 원칙들을 현장에서 온전히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적용하기에는 선교지 상황이 너무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태국 사회 자체가 빨리 변하고 있었고 가난한 무슬림 마을이었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의 삶의 형태도 너무나 다양했다. 어디에 기준을 맞춰야 할지 헷갈리는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사역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선교 패러다임은 거대한 변화 중에 있었고 선교에 참여하는 주체들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선교학 책으로 배운 것과는 사뭇 다른 선교현장을 대하면서 선교를 새롭게 배워야 했다.

무너지는 고정관념

우리 가정은 방콕을 중심한 중부 태국 무슬림들을 위해 파송된 첫 선교사였다. 사역을 위한 첫 과제 중 하나는 중부 태국 무슬림 공동체의 상황 파악이었다.1 중부 태국에 백만이 넘는 말레이계 무슬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들이 어느 지역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무슬림 사역이란 점에서 중부 태국은 아직 불모지였고 알려진 정보도 거의 없었다. 몇 년 뒤 서양 선교단체 팀이 들어와 함께 사역할 예정이었지만 초기 몇 년 동안 이 지역 무슬림을 위한 선교사는 우리 가정뿐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이미 이곳에서 일하고 계셨고,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불러 이곳 무슬림들을 향한 복음의 문을 열고 계셨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입국이 편해진 틈을 타 이란으로부터 수백 명이 넘는 무슬림 배경의 개종자들이 방콕으로 들어왔다. 이들은 방콕 여러 곳에 흩어져 교회로 모이고 있었고 이란에서 온 사람들 대상이긴 했지만 복음 전도에도 열심이었다. 초기 몇 년 동안 함께 무슬림 사역에 동역했던 압둘(가명) 형제도 그 중 하나였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꾸란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는데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군 복무 중 예수님을 만났고 신앙 때문에 방콕으로 도망 온 형제였다. 스스로도 불안정한 상황이었지만 압둘 형제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누구보다 훌륭한 무슬림 사역 선교사였고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중부 태국 무슬림 사역 개척을 위해 함께 일했다. 이란에서 온 꾸란 선생이 믿는 자가 되어 태국 땅에서 한국인 선교사와 함께 태국 무슬림을 위해 사역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 일하신다. 하나님이 앞서 선교에 대한 기존의 틀을 깨뜨리고 계셨다. 기존의 선교학 교과서로는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선교 대상으로만 여겼던 필리핀 출신 선교사 가정과도 함께 협력했다. C&MA(우리나라의 성결교와 유사) 소속 선교사였는데 우리 마을 입구에 살고 있었다. 마침 우리가 사용하려는 교재로 홈스쿨을 하고 있어 쉽게 가까워졌다. 캠퍼스 전도 사역도 같이 하고 자주 서로의 집을 방문해 식사도 했다. 필리핀 사람 특유의 유머가 있는 즐거운 가정이었다. 또 다른 필리핀 부부는 자비량 선교사였는데 내가 졸업한 신학교 출신이라 가깝게 지냈고 사역 초기 좋은 동역자로 함께 했다.

1997년 10월, 언어공부를 중단하고 한 달 정도 태국 남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선교의 모습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국제단체의 사역팀과 함께 중부 태국 무슬림을 위해 사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태국 남부에서 열린 그 단체의 필드 연례회의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사역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남부의 무슬림 사역들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서양 단체의 문화를 잘 모르는 우리 부부는 꽤 긴장했던 것 같다. “서양 사람들 속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 북부와 말레이시아에서 사역하는 사람들까지 꽤 많은 선교사들이 참석했는데 이 회의에서 놀란 것이 하나 있었다. 이미 상당수의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선교사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무슬림 사역 팀의 지도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었는데 그는 검은 피부를 가진 아프리카계 혼혈이었다. 그 외에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출신 선교사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태국 남부에서 사역하는 또 다른 국제단체였던 F 선교회 지도자를 방문했는데 그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고 그 팀 구성원 대부분은 아시아인들이었다. ‘선교사는 서구인’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어지고 있었다. 비서구인들이 리더 역할을 하고 있었고 동서양 구별 없이 한 팀이 되어 사역하고 있었다. 한국인인 우리 가정의 합류도 서구 중심이던 기존의 선교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였다.

태국 청년의 눈물

2013년 본부 대표로 선임되어 귀국한 이후의 경험도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태국을 떠나기 전 몇 년 동안 태국 교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태국선교동역회(Sanha-Missionary Thai)의 이슬람 사역 분과 위원으로 섬길 기회가 있었다. 태국 선교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나린(Narin Sritandon) 선교사와 함께 태국 교회가 무슬림 선교에 참여하도록 도전하고 동원하는 일을 도왔다. 나린 선교사는 태국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제선교단체 소속으로 캄보디아에 파송되어 탁월하게 사역을 감당했고 귀국해 태국 교회의 선교운동을 이끌고 있었다. 나린 선교사는 태국 교회가 선교적인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의 헌신으로 실제 여러 영역에서 선교적 변화가 진행되었고 무슬림 선교도 그중 하나였다.

국내로 돌아와 본부 일로 분주하던 2015년 어느 날, 나린 선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태국에서 열린 청년 선교집회에서 많은 청년들이 선교에 헌신했는데 이중 한 팀이 한국에 단기선교로 방문하기 원한다는 것이었다. 한국 내 태국인 교회들 모임을 돕고 동시에 한국의 지역교회가 어떻게 선교에 참여하는지 배우고 싶다고 했다. 기쁘게 이들의 한국 일정을 돕기로 했다. 한동대도 방문하고 선교에 열심인 몇 교회들을 방문해 그들의 선교정책에 대해 듣기도 했다. 필자가 소속한 GMF를 포함해 국내 선교단체들도 방문했고 선교사 훈련기관들도 둘러보았다.

마지막 일정으로 휴전선 근처 통일전망대를 방문하게 되었다.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해서였다. 그런데 통일 전망대를 방문했을 때 단기팀 일원이었던 20대 후반의 태국인 청년이 북한 땅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마지막 날 전체 일정을 정리하는 모임을 하면서 형제의 간증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해 전에 그는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북한 선교의 소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소명 때문에 박사 학위 공부를 하게 되었고 최근 학위 과정을 마쳤다. 지금은 평양에 교수로 들어가서 그곳 젊은이들을 가르치면서 복음을 전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북한 땅을 직접 보니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는 것이다. 태국은 우리가 선교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날 주님은 내 고정관념을 깨뜨리셨다. 북한에 있는 우리 민족을 위해 하나님은 태국 형제를 부르고 계셨다. 태국 교회는 더 이상 선교의 대상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 완수를 위해 함께 해야 하는 선교 동역자로 변하고 있었다.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우리의 좁은 지평선 너머 펼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교를 바라보라 도전하신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필자만 겪은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21세기 선교현장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공감하는 변화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에 초청을 받아 그분의 선교에 동참하는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지평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21세기 세상 가운데 주님은 지금도 새로운 사역의 장을 여시고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우리의 제한된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그리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 안으로 들어오라 초청하신다.

초기 기독교에서 길을 찾다

패러다임이 빠르게 전환되는 기간에는 혼란을 경험하게 되고 자칫 방향감각을 잃기 쉽다. 필자가 선교지에 도착한 20세기 말의 상황이 그랬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지만, 이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관점은 아직 마련되지 못했다. 선교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경계선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혼란한 시기를 이끌어 줄 지침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21세기 선교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초기 기독교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초기 기독교의 모습에 숨겨진 선교 패러다임에서 21세기 선교상황을 담아낼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앤드류 월스(Andrew Wallls)다. 그는 21세기 선교 상황은 초기 기독교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여러 면에서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은 초기 기독교 선교의 부활이 될 것이다(Walls 2017, 3-17). ‘위대한 세기’ 동안의 기독교 선교는 기독교 국가 권력의 비호와 지원 아래 진행되어 온 것에 반해, 비서구 지역의 교회들이 주도하게 될 21세기 선교는 정치적 억압, 적대감, 경제적 빈약함 속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서구 교회 출신 선교사들이 주도하게 될 미래의 선교 상황은 로마 제국의 정치적 박해 속에서 성장한 초기 기독교가 선교하던 상황과 유사할 가능성이 높다.

21세기 선교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에 대한 답을 초기 기독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또 다른 선교 지도자는 아프리카 가나 출신 학자인 라민 사네(Lamin Sanneh)다. 그는 기독교 출범 초기에 진행된 선교운동과 문화를 넘어가면서 발생한 기독교적 정체성의 전환 과정을 분석하면서, 이를 설명할 개념으로서 ‘번역’이란 단어를 찾아냈다. 이 번역 패러다임은 초기 기독교를 설명하는 틀이면서 동시에 근대 선교운동을 분석하고 더 나아가서 21세기 선교운동이 가야할 방향성의 토대가 된다.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의 핵심 중 하나인 ‘번역 가능한 복음’의 발견이 초기 기독교에서 진행되었던 패러다임 전환 과정의 재발견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사네는 그의 책 『선교신학의 이해』(Translating the Message, 1989)에서 설득력 있게 이 점을 설명하고 있다.

가톨릭 선교학자인 스티븐 베반스(Stephen B. Bevans)도 초기 기독교가 직면했던 도전들을 중심으로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선교를 설명한다. 자신의 책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Constants in Context: A Theology of Mission for Today, 2004)에서 21세기 선교를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과정으로 전망하면서 그는 이 전환 과정의 이해를 위한 모델을 사도행전에서 찾는다. 사도행전은 복음이 다른 문화권으로 확장되면서 겪게 되는 기독교 정체성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유대적 정체성에 기초해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 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였다. 복음과 유대 문화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였다. 그런데 복음이 유대 문화를 벗어나 헬라 문화 속에 뿌리내리게 되면서 예기치 못한 질문에 직면한다. 유대 문화를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이 교회에 가입되고 그들의 수가 더 많아지게 되면서 “유대 문화의 껍데기를 제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교회를 세울 수 없겠는가?” 라는 요구가 커진 것이다. 복음을 유대 문화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방인 신자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에 맞는 신앙 표현을 갖고 싶어했고, 유대 문화의 율법적 측면, 예를 들면 할례 등은 자신들의 복음 이해와 무관할 뿐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로 느껴졌다. 유대 문화에 물든 기득권 집단의 저항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대적 정체성을 벗고 헬라 문화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기독교 정체성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베반스는 사도행전 내용의 분석을 통해 이 정체성 전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 정체성 변화 패러다임은 기독교 역사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500여 년 전 종교 개혁도 새로운 상황에 맞도록 복음을 번역하는 과정이었으며 또한 기독교 정체성의 전환 과정이었다. 마찬가지로 21세기 세계화된 기독교가 겪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 역시 초기 기독교에서 진행되었던 패턴을 따르고 있다. 비서구 출신 기독교인 인구가 월등히 많아지면서 서구적 관점으로 이해되던 기독교 정체성은,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다수세계 교회들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될 것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은 복음의 본질적 특성이다.

초기 기독교의 재발견을 통해 21세기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또 다른 대표적 학자는 역사학자 앨런 크라이더(Alan Kreider)라 할 수 있다. 그의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 권력의 강력한 핍박 아래 있었고 사회적으로 주변적 존재였던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문명의 변방에서 시작되었던 기독교가 어떻게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로마 제국을 복음으로 점령할 수 있었는가? 그들의 생존과 영향력의 비밀은 무엇이었나?

초기 기독교 당시의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을 검토한 뒤 크라이더는 그의 책 『회심의 변질』(The Change of Conversion and the Origin of Christendom, 1999)에서 이 비밀을 두 가지로 요약한다. 하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이한 삶의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축귀로 대표되는 영적 능력이었다. 크라이더는 여러 해 뒤에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The Patient Ferment of the Early Church: The Improbable Rise of Christianity in the Roman Empire, 2016)에서 이 질문을 더욱 발전시킨다. 초기 기독교 선교의 특성을 “인내의 발효”라는 용어로 설명하는데, 발효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과 영향력의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이 사용한 누룩의 비유(눅 13:21)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기독교에서 21세기 선교의 길을 찾는 또 다른 학자는 데이빗 보쉬(David Bosch)다. 그는 『길의 영성』(A Spirituality of the Road, 1979)에서 고린도후서에 나타난 선교사 바울을 통해 선교의 본질에 대해 설명한다. 바울은 우월한 문명이나 정치적, 경제적 힘을 앞세우지 않았다. 그의 능력은 철저하게 복음에서 비롯되었으며 그 복음은 ‘약함’이란 그릇에 담겨 있었다. 그는 초기 기독교(바울)의 선교를 약함으로 정의했는데 이는 선교의 본질을 꿰뚫은 놀라운 통찰이다(보쉬 2023, 111). 선교사는 굶주린 거지들을 향해, 어디 가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또 다른 거지일 뿐이다.2 이 책을 통해 보쉬는 21세기 선교가 가야 할 길을 초기 기독교의 선교 방식에서 찾아야 함을 제시했다.

어디서 시작되었나?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들은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돌연변이가 아니다.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도 마찬가지다. 20세기 어느 시점부터 꾸준히 제기되었고 오랜 기다림, 즉 긴 시간에 걸친 ‘숙성’ 과정을 거쳤다. 그러므로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은 20세기 동안 진행된 변화들을 되돌아보고 그것들이 오늘날의 선교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검토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20세기 동안 발생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21세기 선교 패러다임 전환의 배경을 간단하게 살펴보자.

위기와 패러다임의 전환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은 선교가 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제기된다. 1930년대 대공황도 그 중 하나였다. 전 세계 경제가 파국을 맞은 가운데 선교운동에도 엄청난 타격이 가해졌다. 특히 재정적 어려움이 컸다. 그런데 이 위기 속에서 선각자들은 하나님이 여시는 새로운 길을 본다. 인도에 막 도착한 새내기 선교사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도 그 중 하나였다.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 그는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

인도에서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한 마크 랭(Mark Laing) 박사는 그의 논문에서 뉴비긴이 본부 지도자와 나눈 서신 분석을 통해 이 부분을 설명한다. 1930년대에 대공황이란 위기 속에서, 초년 선교사 뉴비긴과 베테랑 선교 지도자였던 스코틀랜드 교회 해외선교회 총무 키드(Alexander Kydd) 박사가 위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놓고 서신을 주고받는다. 한 사람은 대공황을 기존 선교 구조 지속을 위해 극복되어야 할 도전으로 본 반면, 다른 사람은 위기를 기존 패러다임 변화의 기회로 보았다(Laing 2011, 105-9). 단체를 이끌고 있던 키드 박사는 선교가 위기 가운데 있다고 판단했다. 선교 지원자는 늘고 있었지만, 선교부 재정이 지속적으로 적자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역을 위해서는 더 많은 재정’이란 패러다임에 묶여 있던 그에게 재정 적자는 곧 선교의 위기를 의미했다.

한편 1936년 인도 남부 타밀나두 지역에 파송된 젊은 선교사 뉴비긴은 재정 위기 상황을 변화된 선교현장에 맞도록 기존의 선교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았다. 많은 재정이 요구되는 도시의 기관 사역들, 예를 들면 학교나 병원, 각종 선교센터들을 정리하고, 대신 선교사들을 시골 지역의 교회개척 사역에 재배치하고, 선교사 중심의 선교전략도 현지 교회 중심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였다. 지난 세기 서구 선교의 근간을 이루던 크리스텐덤(Christendom) 선교방식, 즉 우월한 서구 문명을 앞세워 기독교를 전파하던 방식을 본질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뉴비긴은 선교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으며, 경제적 위기를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로 본 것은 탁월한 안목이었다.3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년 선교사의 제안은 수용되지 않았고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은 여러 해를 더 기다려야 했다. 마크 랭 박사는 패러다임 전환이 쉽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키드(Kydd)와 해외선교위원회는 상황을 정확히 읽지 못했다. 자신들에 의해 출생한 토착교회들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재정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과거 선배들의 실수를 지적하는 것은 쉽다. 뒤돌아보면서,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상황인데… 그들은 변화를 선택했어야 했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70년 전 선배들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하고 있는가? 오늘날 재정 위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재정과 신임 선교사 동원 상황은 우리의 선교정책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재정적 위기를 선교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변화의 기회로 보고 있는가? 만약 변화의 기회로 여긴다면, 어느 방향으로의 변화인가?

Laing 2011, 109

경제 대공황 위기 속에서 뉴비긴은 하나님이 선교 현장에서 행하시는 변화들을 보면서 이제까지 익숙하던 이전의 선교 패러다임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새롭게 보여주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한 두 사람의 대화는 20세기 내내 진행된 선교학적 토론의 핵심 주제였다.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도 이 토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은 20세기 선교가 겪은 위기들 속에서 제기된 다양한 질문과 토론의 결과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출발점은 어디일까? 많은 선교역사학자들은 그 출발점을 20세기 초에 열린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1910년)라 말한다.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는 세계복음화의 과제 완성을 위한 전략들을 논의하는 최초의 범세계적인 초교파 선교대회였다. 19세기의 성공적 선교에 대한 자축의 자리였고 참석자들은 자기 세대에 전 세계가 복음화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이 회의는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근대 선교운동의 성공 뒤에 있던 잠재해 있던 문제들이 표출되었고 이는 20세기 선교운동 내내 쟁점이 되었다. 게다가 몇 년 뒤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 공산 혁명, 대공황, 그리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 등으로 인해 세계는 격변했고 낙관적 전망을 가능케 했던 상황도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렇다면 이 선교대회가 이후 선교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먼저 이 대회는 국제적인 선교대회의 전형이 되었다. 이전에도 선교대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교파와 국가를 초월해 모든 개신교 선교단체 대표들이 모인 선교대회는 에딘버러 대회가 최초였다.4 이 대회 이후 소위 “에큐메니컬”(초교파적 또는 범세계적) 정신이 보편화되었고 이 정신 위에 다양한 국제 선교조직이 세워졌다.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세계교회협의회(World Ch- urch Council), 로잔 세계복음화회의(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 tion) 등 다양한 국제적 연합 모임으로 이어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1세기 기독교의 중요한 특징인 글로벌 교회 또는 세계화된 기독교의 토대가 이때 시작된 것이다.

이 대회는 세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마 서구 선교사들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사역한다는 의미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서구 선교사들이 세계를 대표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 선교운동 기간 동안 ‘세계’ 또는 ‘글로벌’에 대한 이해는 계속 바뀌었다. 오늘날 선교운동이 사용하는 세계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독교를 의미한다. 이는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을 규정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세계 선교운동은 (서구) 선교단체의 책무인가?”에 관한 질문이었다. 에딘버러 선교사대회의 결의에 따라 범세계적으로 선교에 대해 논의하는 두 개의 국제 기구가 만들어졌다. 하나는 선교단체들 중심으로 국제선교협의회(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1921)가 결성된 것이고.5 다른 하나는 교회 중심의 국제협의 기관으로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hurch Council, 1948)가 결성된 것이다.

아프리카 선교학자인 해리 소예르(Harry Sawyerr)는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를 선교단체 중심의 세계 선교운동에서 교회 중심의 선교운동으로 전환하는 계기였다고 평가한다(Sawyerr 1978, 271-72). 국제선교협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선교의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격렬한 토론이 진행되었고, 이 토론은 1958년 가나 대회가 선교단체 중심이던 국제선교협의회를 해체하고 그 기능을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기관인 전도와 세계선교위원회(the Commission on World Mission and Evangelism)로 통합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종결되었다. 일련의 결정들은 세계 선교운동이 선교단체 중심에서 서서히 교회 중심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성공의 역설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의 주요 배경 중 하나는 근대 선교운동을 이끌었던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의 운명에 관한 토론이다.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은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앞세워 ‘서구로부터 서구 밖의 비기독교 지역으로’ 복음을 ‘일방적으로’ 흘려보내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틀을 중심으로 근대 선교운동은 기독교를 전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 확산시켰다.

크리스텐덤 붕괴 이후의 기독교를 연구하는 스튜어트 머레이(Stuart Murray) 교수는 서구 선교의 열매인 세계화된 기독교는 서구 크리스텐덤 구조의 열매이지만 그것이 크리스텐덤 세계관의 세계적 확장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21세기의 세계화된 기독교는 크리스텐덤의 붕괴 위에 세워진 새로운 기독교로 이해한다.

기독교의 전 지구적 신앙으로의 확산은 크리스텐덤 붕괴에 결정적 충격이 되었다. 서구 선교사들은 비록 크리스텐덤 사고 속에 잠겨 있었고 그 가치와 구조를 다른 문화권에 이식하려 애썼지만, 낡은 가죽 부대 안에 새 포도주를 넣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비강제적 전략들에 의해 비제도화된 토착형태의 기독교로 발전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교회들은, 서구 교회와는 달리 특정 통치구조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이상 크리스텐덤 형태의 기독교가 아니었다.

Murray 2018, 137

선교역사학자 앤드류 월스 교수는 크리스텐덤 패러다임6의 운명에 대해 흥미로운 진단을 내린다. 근대 선교운동의 성공을 이끈 마지막 절정이면서 동시에 그 성공 때문에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7

(지난 세기 동안의) 서구의 선교운동은 크리스텐덤의 마지막 절정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처럼, 크리스텐덤으로부터 떠나는 과정이었다.

Walls 2016, 694

크리스텐덤 패러다임 폐기는 그것이 근대 선교운동 기간 동안 너무나 효과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 모든 곳에 교회들이 세워진 상황은 역설적으로 크리스텐덤 패러다임의 기본적인 틀(서구에서 비서구로 흘러가는 일방적 창구)이 설 자리를 없애 버렸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곳에 교회들이 세워진 상황에도 크리스텐덤 방식의 구조가 유지될 필요가 있는가?

이는 19세기의 대표적 선교 학자였던 헨리 벤(Henry Venn)이 이미 오래 전에 예견한 것이다. 선교사는 ‘자신의 안락사’를 준비하는 존재다. 선교사역이 성공해 현지 교회가 스스로 설 수 있게 되고 선교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면 즉시 떠나야 한다. 선교사는 건축이 끝나면 철거되어야 하는 비계(飛階)와 같다. 크리스텐덤 방식의 선교는 성공을 거뒀고 그 성공 때문에 폐기되어야 했다.

그런데 현지 교회가 이미 뿌리내리고 성장한 뒤에도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은 선교지에 머물러 있었고 여전히 현지 교회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반발이 바로 비서구 지역의 여러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제기된 선교 모라토리엄(moratorium, 일시 중지) 요청이었다. 다음은 1971년 동아프리카 장로교회 총무인 존 가투(John Gatu) 목사가 한 요청이다.

서구 선교사들의 지도력과 재정지원이 현지 교회의 자립과 자치를 막고 있다. 아프리카 교회의 미래에 대해 선교사와 토착교회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서구 선교사들이 5년 동안 철수하는 게 어떤가?

두 가지를 요청한 것이다. 하나는, 서구 교회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고 외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전 세계 모든 곳에 교회들이 있으니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그 지역의 복음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현지 교회들을 믿어달라는 것이었다.8

세계화된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서구로부터 비서구로 옮겨가게 된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우월한 문명과 재정을 앞세워 서구에서 비서구로 흘려보내는’ 크리스텐덤 선교방식이 설자리가 없다. 오히려 선교의 흐름 방향이 역전되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크리스텐덤 선교 패러다임은 폐기되었다. 이제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세워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실루엣

21세기의 변화된 상황을 담아내기 위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은 어떤 모습일까? 여기서는 20세기 말 변화된 선교 상황에 대한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그 윤곽을 대략적으로 가늠해 볼까 한다.

먼저 티모시 텐넌트(Timothy C. Tennent)의 견해다. 21세기 선교 패러다임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저 범세계적 차원의 기독교 무게 중심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비서구 세계의 기독교 안에 답이 있다.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기독교인의 전형적인 ‘얼굴’은 런던에서보다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서구에 사는 우리에게 ‘스웨덴인 불교도’라는 말이 매우 어색하게 들리듯이, 머지 않은 장래에는 ‘백인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리고 조금은 모순처럼 들리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오늘날 네번째 기독교 분파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들은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회, 개신교 등 우리가 친숙한 기독교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새롭게 일어나는 분파이다. 앤드류 월스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아프리카 기독교가 21세기의 대표적인 기독교가 될 것이다.” 필립 젠킨스가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다수세계 교회를 다가올 크리스텐덤(The next Christendom)으로 대담하게 선포한 이유이기도 하다.

Tennent 2007, 105

선교역사학자인 데이나 로버트(Dana Robert)는 서구 교회가 주도했던 근대 기독교 선교운동의 의미를 두 개의 단어로 요약했다. “실패한 비전과 성취된 꿈”(Failed Vision & Accomplished Dream)이다(Robert 2009, 67-69). 어떤 점이 “실패한 비전”이고 어떤 면에서 “성취된 꿈”인가? 먼저 서구 교회가 품었던 비전, 즉 서구 크리스텐덤의 세계적 확장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근대 선교운동은 실패한 비전이다. 서구 기독교를 지탱하고 있던 크리스텐덤 세계관이 붕괴되고, 서구의 선교운동의 결과로 세워진 선교지 교회들은 서구 크리스텐덤과 거리가 먼 새로운 기독교 정체성들로 발전되면서 실패한 비전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성취된 꿈은 무엇인가? 근대 선교운동을 통해 세워진 세계화된 기독교(World Christianity)가 바로 성취된 꿈이다. 각 문화에 뿌리내린 교회들은 다양한 기독교 정체성들로 발전했고 이 다양성은 다시 하나의 글로벌한 기독교로 연결되고 있는데 이것을 초기 기독교가 바라던 꿈의 성취로 보았다.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의 이상을 회복한 21세기 기독교 선교는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될까? 로버트는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변화의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전망했다. 파송받은 전임 선교사들보다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평범한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스럽게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아마추어 선교가 활성화될 것이다. 즉, 비영리 NGO 단체가 주된 선교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고 삶의 총체적 변화를 지향하는 선교가 될 것이다. 각 지역에 형성된 다양한 토착 기독교 공동체들이 범세계적으로 서로 연결되는 ‘세계’ 기독교로 발전할 것이며, 선교운동 역시 전 세계 모든 교회들이 참여하는 ‘글로벌’ 형태가 될 것이다(Robert 2009, 7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