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은 예로부터 합포로 불리던 중요한 항구였으며, 19세기 말부터 근대적인 항구로 개발되었다. 또한, 마산은 1960년대3·15 마산 의거와 1970년대부마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의 발상지이자, 마산자유무역지역을 필두로 한 대한민국 경제부흥의 도화선이 된 도시로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조성으로 그와 함께 인구가 급속도로 유입되어 대한민국 8대 도시 안에 들기도 했으며, 1990년에는 통계청 조사 인구가 50만 명을 돌파하였고, 회원구와 합포구를 신설하였다.
그러나, 인근의 계획도시인 창원시가 발전하면서 1990년대 초에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어 1995년1월 1일 도농통합 직전에는 인구가 35만명까지 줄어들었다. 마산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내서읍에 택지지구를 개발하는 등 인구 감소폭을 완화시켰으나, 인구가 40만명인 시에 구제를 유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잇따라 2000년12월 31일에 구를 폐지하였다.
한편,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생활권이 같은 데다가 과거에는 한 행정구역을 이루었던 창원시, 진해시와 통합하자는 움직임이 지역정치권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2010년에 이명박 정부의 행정구역 통합 추진에 따라 2월 17일 통합시 명칭을 창원시로 확정하고, 7월 1일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였다.[1][2] 통합과 함께 마산시가 폐지되고 통합 창원시마산회원구, 마산합포구로 분구되었으며, 기존의 마산시청사는 마산합포구의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3]
마산이라는 명칭은 이미 세종실록에 마산창(馬山倉)이나 동국여지승람에 마산포(馬山浦)라는 언급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적어도 고려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마산이란 명칭의 유래에 관하여는 조창 관련설, 오산(午山, 용마산) 관련설 등이 주장되고 있다.
고려시대 조창 관련설 : 고려 성종 때에 전국 12곳에 조창을 설치하였는데, 석두창이 마산에 설치되었다. 두척이란 쌀을 재는 말(한말, 두말 …)인 ‘斗’와 자를 뜻하는 ‘尺’의 합성어로 '쌀을 재는 자'(말통)을 뜻하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뜻은 다르지만 소리가 같은 '말 마(馬)'로 옮긴 것이 마산으로 표기되었다는 것으로, 두척산(무학산의 원래 이름), 두척마을, 마재고개 등의 지명이 유력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용마산 관련설 : 용마산(龍馬山)을 오산(午山)이라 부르다가 마산(馬山)으로 부르면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산은 19세기 개항한 이래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도시지역이 창원군과 분리되어 부(府. 1949년8월 15일 '부'를 '시'로 명칭 변경)로 설정될 정도로 주변 지역에 비해 일찍 도심이 형성되었다. 마산은 일찍이 항구지역, 공업지역, 상업지역, 주거지역 등으로 발전하면서 구역별로 각각 다른 별칭이 붙은 것이 특징인데, 주로 시민들에게서 통용되는 별칭은 다음과 같다. 주로 역이나 교통시설물(나들목 등)에서 유래 한 것이 대부분이며, 오히려 그 반대로 현지에서 사용되는 별칭이 시설물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읍면 지역이 마산시로 편입 된 것은 1995년으로 불과 15년정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지역은 읍면 명칭 그대로 불리고 있다(예: 내서, 진동 등).
경상남도 남부 해안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항만도시였다. 현재의 창원시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동쪽으로는 창원시 의창구와 접하며, 마산만과 면한다. 서쪽으로는 진주시, 고성군, 북쪽으로는 함안군에 접하고, 남쪽으로는 진해만에 면한다. 시내와 마산만이 접해있으며, 마산만 한 가운데에는 해상유원지인 돝섬이 자리잡고 있다.
1985년기상청(당시 중앙기상대) 마산측후소가 개설되어 유인 기상관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상관측소는 1996년 마산기상대로 승격하였다. 마산의 1월 평균기온은 영상 2.8℃, 8월 평균기온은 26.6℃[24], 연평균 기온은 14.8℃[1], 연평균 강수량은 1503.7mm로 기온이 높고 강수량도 많은 편이다. 겨울철에는 대체로 온화하고 맑은 날이 많으며, 눈도 적지만 기압골에 의한 강설현상이 나타나면 가끔 큰 눈이 내릴 때가 있다[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