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마침내 드러나다 본문
마침내 드러나다 (요약)
봅 쇼그렌 지음. 이숙희 옮김, 죠이 선교회 출판부
1995-08-01 출간
ISBN 10-8942100694 , ISBN 13-9788942100699 페이지수 206
책 소개
성경을 토대로 한 전도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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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공인가? 라는 타이틀로 첫 장을 시작하는 글은
우리는 최고의 그 사람, 즉 자신에게서 최고의 사람됨을 찾는다. 는 논제 아래 다른 사람에게 더 멋있게 보이려는 나의 편협된 모습을 말한다.
우리 삶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과 그의 능력에 관하여 이야기 하다가도 삼십분이 지나면 우리는 우리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려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 사랑한다.
우리는 나를 하나님 말씀의 주인공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죽어야하며 과연 누가 주인공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자라면서 네 가지 죽음을 경험한다.
자아에 대한 죽음, 가족에 대한 죽음, 국가에 대한 죽음, 그리고 인류에 대한 죽음이다.
그러나 한 개인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마지막 죽음인 인류에 대한 죽음을 통해서이다.
인류 전체를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 나라에 정의가 실현되어 인간이 존중받으며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기를 기도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무엇을 얻으시는가?
인간을 위하여 죽는 것은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그는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려고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의 본을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예배는 찬송을 부르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예배는 우주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위를 향하여 지속적으로 사는 삶의 양식이어야 한다.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예전에도, 지금도 항상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질문은 “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거기서 무엇을 얻으실까?” 이어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초점을 갖고 있어야 우리는 우리의 사역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성경 전체에 펼쳐진 아슬아슬한 단거리 경주와 같은 이야기에서 당신은 서론, 전개, 그리고 절정이 각각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창 1 : 28 의 그 계획은 인간이 땅에 충만하게 퍼져 나가 사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멧세지는 복과 의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복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복을 누릴 뿐 아니라 나아가서 지상 모든 민족들에게 복이 되어서 그 결과 하나님께 보다 큰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것, 곧 의무를 말씀하신다.
지구상의 미전도 종족은 누구인가 ?
북인도 유목민 창파 족 1500명, 인도네시아 순다족 2천만 명 뿐 만 아니라 11994종족 집단이 더 있다.
모든 복에는 의무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그가 고난을 받고 제 3일에 죽음에서 살아 나셔야 한다는 것은 최고선이다.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한다는 것은 언약의 최저선이다.
이렇듯 성경은 두 가지 기본 주제를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 하시고, 당신이 세상에 돌아가서 지상의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우리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우리 주변에 복을 내리실 거야 한다면 반쪽 난기독교이며, 그 반쪽은 그의 복을 가지고 돌아서서 세상의 문화를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큰 그림과 그 가운데서 당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하여 보다 집중적인 연구를 할 준비가 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끝까지 복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쌓아 놓으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의 절반 이상을 잃는 것이다.
모든 최고선의 복에는 최저선의 의무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민족을 구하시겠다는 언약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서약하신다.
그리고 마 28: 18~20에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심으로 복음의 최저선을 강조하셨고, 세상이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은 관심을 가지시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고,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므로 더 큰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선민만큼 열렬히 다른 민족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도 과거 어느 날 그들과 같이 선민 밖의 사람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적으로 배정되는 선교 후원금을 배분하면서도 그 종족들도 우리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A (최고선), 하나님은 모든 나라에 복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을 B (최저선) 이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C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A<B 는 물론 아니되 A > B 도 아니고 A=B 의 관점에서 A + B = C 가 성립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모든 성경에서 이런 구절을 담아내고 있슴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창 26: 4 ~ , 시46 :10 ~ , 단 6:25 ~ , 삼상 17:45~ 대하 9:22~ )
최고선에만 초점을 맞춘 기독교는 하나님의 진실하신 마음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드는 왜곡된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만 너무 몰두한 나머지 성경의 남은 절반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생각하고 그 다음 그리스도인임을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먼저 구하지 않고 자신에 대하여 너무 관심을 쏟는 나머지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지는 잊고 산다는 것이다.
A=B 라는 관점으로 구약을 읽으면서 그에 관한 신선한 시각을 갖도록 하자.
하나님께는 오지의 한 종족도 그의 선민만큼 중요하며, 유대인만 편애하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출18:1~) 이방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는 꽤 먼 거리에서 주님이 그들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모든 일들을 들었다. 어떻게 들었는가? 모세에 의해선가 ? 아니다. 당시의 통신 수단인 여행하는 신문이라 일컫는 상인들을 통해서 알려졌다.
하나님은 이렇게 함께 행하시는 하나님을 구전을 통하여 이방나라에 전하며, 그분 하나님을 섬기게 하신 것이다.
복을 받는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은혜로운 선택에 의하여 먼저 복을 받았으므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전체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 목표는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모든 방언, 부족, 나라들로부터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이다.
골 1:25~ 에서 바울은 이방인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영이 실제로 이방인 안에 계심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죄란? 알고 있는 것에 비추어 무엇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많이 받은 자에겐 많이 찾으신다는 것이다.
열국에게로 나가는 것, 누구에게 그 말씀을 하신 것일까?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전체에게 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응답하는 사람은 오직 한명 이사야 밖에 없었던 것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않으시는 분임을 기억하라.
순종하기로 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통찰력을 주셨다.
불순종을 선택한 자들에게는 그 멧세지가 봉한 책과 말과 같이 의미 없는 것 이 된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읽는 많은 사람들에게 책임이 따를 것이다.
말씀을 크고 존귀하게, 즉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성령님을 의지해야한다.
당신에게 통찰력을 주시기 전에 주님은 당신이 순종할 것인지를 먼저 알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진노를 연기 시키되 사랑하는 백성이기에 이스라엘을 영적 소경으로 만드셔서 그 책임을 덜게 하신 것이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높은 통찰력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허락되었으되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하셨다.
순종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더 많은 통찰력을 갖게 되여 통찰력이 넉넉하게 된다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는 자는 그가 갖고 있던 통찰력까지 빼앗긴다.
통찰력을 갖기를 원하는 것은 갈급함이 있기 때문이다.
갈급함이 있다는 것은 순종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당신의 눈을 열어 볼 수 있게 하실 것이다.
당신은 예전과 똑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되돌아 갈 수 없다.
하나님은 더 큰 통찰력을 주셨고 당신은 응답으로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통찰력에 따라 행동하며,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는 주제, 선교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성경의 주요사건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관련이 있으며, 최고선과 최저선이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 약속의 책임 부분의 성취를 위협하는 불순종은 심판을 받게 마련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기 위하여 복을 받았다.
하나님의 변치 않는 목적은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복을 알리는 것이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가장 훌륭한 일군들을 어디로 보내실까?
복음화 된 절반인가?
외국으로 나가는 선교사의 90%는 이미 교회가 세워져있는 지구의 절반을 차지한 민족에게 나가 있다.
미전도 종족에게 한명의 선교사가 나갈 때 기존 교회가 있는 문화권에는 171명의 선교사가 나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90%가 아닌 99.9%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헌금의 96%가 미국 기독교 문화권내에, 3.5%는 이미 교회가 있는 선교지에 쓰여 진다 고 한다.
결국은 0.5%만이 교회도 없는 미전도 종족에게 보내짐을 알 수 있다.
A > B 라는 잘못된 기독문화의 결과 치를 보는 것이다.
효과적인 선교를 위해서는 잘 훈련된 8명의 선교사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다.
남아있는 12,000 미전도 종족을 섬기기 위해서 한 팀씩을 보낸다면 *8 = 96,000명의 선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은퇴로 인한 자연 감소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4,000여명이 더 필요한 것이다.
이에 따른 경비 역시 100,000명의 선교사를 후원하고, 사역을 뒷받침하기위해서는 연 1조 2,000억$ 이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외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의 7천만 성도들 중 1,750만 명이 18~35이기에, 이들의 1%도 안 되는 숫자이고, 미국 개신교 연 실수입을 680조$로 본다면, 그중 0.2%만 후원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더욱이 세계적인 기독교 추세로 본다면 더 좋은 입장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이룰 수 있다고 다짐한다.
이제 하나님의 때가 이른 것 같고, 추수의 기회가 가까워 옴을 시사하며, 하나님의 큰 그림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종용한다.
마지막 방치했던 이슬람권까지도 수용해야 함을 덧붙이며 글을 접는다.
당신은 보내는 선교사인가?
보냄을 입은 선교사인가?
비켜갈 여유 없이 양자택일만이 주어진 축복이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 목 차
001. 누가 주인공인가?
002. 성경의 줄거리
003. 복과 의무에 대한 연구
004. 최고선만을 강조할 것인가?
005. 복을 나눌 의무
006. 볼 수 없게 하신 하니님의 자비
007. 순종할 것인가? 불순종할 것인가?
008. 언약에 이루어지고 있따
009. 우리의 삶의 주제는 무엇인가?
010. 남은 과제와 우리의 자원
011. 하나님의 큰 그림에 참여하라
012. 이슬람 : 방치했던 지역
013. 프론티어스 : 응담해야 할 도전
014. 부록1 : 선교사역지원자 작성양식
015. 부록2: 성경에 나타난 최저선
016. 부록3: 무엇부터 해야 할까?
017. 부록4: A>B인 교회와 A=B인 교회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