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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나라 태국 안에 있는 태국 무슬림들 본문
불교의 나라 태국 안에 있는 태국 무슬림들
2004년 1월 4일 동시 다발적으로 태국 남부주(얄라, 빠티니, 나라티왓 등)에서 18개의
태국 정부 학교들이 방화되었다. 그 시점을 기하여서 태국 군부의 군수 물자 보관소에
50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습격하여 4명의 태국 군을 죽이며 300개 이상의 무기를 탈취
하였다. 정부는 태국 남부 무슬림들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태국 남부 무슬림들을 무력으
로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태 속에서 사건의 주동자나 가담자들이 한 명 한 명 연
행되어 졌고, 이들을 변호하려던 무슬림 변호사가 누군가에 의해서 납치되어 실종되었
다. 태국 무슬림들은 태국 정부의 교시에 의한 납치와 살인이라 여기기 시작하였고, 2
년이 지난 지금에는 태국 경찰과 정부에서 그 사건에 간접적으로 연류 되었음을 시인하
였다. 무력에 의한 강한 진압과 이들을 변호하려던 변호사마저 납치 살해 한 정부에 대
한 태국 남부 무슬림들의 태국 정부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하여서 2004년 1월 4일 이후
지금까지도 태국 남부는 테러와 교전으로 약 2000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망과 중, 경
상을 당하고 900건 이상의 폭탄 테러가 태국 무슬림 들에 대하여서 자행되었다.
태국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소의 나라, 여유의 나라, 불교의 나라, 왕이 통치하는 나
라, 관광의 나라로 인식하곤 한다. 태국의 학교들을 가보면 교실마다, 태국 국기와, 왕
사진, 그리고 불교를 상징하는 그림이 각 교실마다 붙여 져 있다. 그 만큼 우리가 인식하
는 것처럼, 태국은 불교의 나라이자, 여전히 왕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이다. 그
리고, 많은 신혼 여행객들이 선호하는 나라로써 태국은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
많고 관광 인프라가 잘 깔려져 있는 나라이다. 태국의 6천 만 이상의 인구 중 94%가 불
교도인이고, 국교가 불교이니 불교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태국 남부는 상황이 다르다. 태국 남부, 특히 말레이시아와 연결되어 있는 5개
주인 송클라, 얄라, 빠타니, 나라티왓, 사툰 지역은 1989년 태국 종교성의 통계를 인용
하면 적게는 전체 인구의 약 20%가, 많게는 전체 인구의 79%가 무슬림들이 주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도심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어
촌이나 시골에 밀집하여 살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는 전체 무슬림 분포도가 90% 이상
올라간다.
전통적으로 태국인들은 중국 운난에서 넘어와서 AD 1357년경에 수코타이 왕조를 세
웠다고 인식하는데, 태국의 줄라롱콘 대학의 ‘자란 말우림’이란 학자는 태국 남부 무
슬림들은 BC 43년 경부터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철저하게 말레이시
아 민족에 자신들이 근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태국 남부의 사람들은 7세기 말 동남아
시아에 이슬람이 중동과 인도의 상인들에 의해서 전파되기 시작할 때 태국 남부 지역도
무슬림 지역으로 변화 되면서 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주로 태국
남부 “빠타니”주에 밀집하여 살면서 무슬림 왕조를 이루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태국의 라마 1세 왕정 시대 때 태국군이 “빠타니”주에 침략하여 많은 무슬림
들을 방콕과 다양한 지방으로 볼모로 보내게 하였다. 이런 오래된 역사적인 앙금만 있
는 것이 아니라, 1906년 이 “빠타니 술탄 왕조”의 영지와 통치권이 태국으로 합병되
어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어진다. 태국 남부 무슬림 술탄 왕족을 합병한 태국 정
부는 통합 정책을 시행함으로 강제적인 교육 정책과 문화적 동화 계획을 세워서 실행한
다. 그러나, 무슬림들의 정체성인 자신들의 종교와 자신들의 언어를 쉽게 포기 할 수 없
는 것이었다. 그들은 “폰똑”이라는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정부의 인정을 받지는 않았
지만, 그곳에서 계속적으로 무슬림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정체성인 자신들의 언어와 민
족혼 그리고 종교를 가르쳤다. 그러므로 인해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을
고수하고 있고, 자신들의 언어인 자위어(말은 말레이시아어와 약 70% 유사하고 글자
는 아랍어를 변형시킨 것)를 자신들의 공동체에서 사용하며, 여전히 강한 무슬림 공동
체로 태국의 사회 속에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2004년부터 시작된 강력한 저항 이전에도 태국 남부 무슬림들은 끊임없이 태
국 정부와의 갈등과 분쟁을 겪게 되었다. 1960-70년대 초에는 태국 공산당과의 연합전
선을 구축하면서 태국 정부에 대항 하였다. 지금은 태국 공산당은 소멸되었지만, 몇 개
의 무슬림 분리 독립 단체들을 주축으로 계속적인 저항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버림 받아야만 하는 것인가?
약 600만의 태국 무슬림들이 있지만, 이들이 1953년 O.M.F의 서양 선교사님들로 통하
여서 의료 사역, 성경 번역, 문서 사역 등의 여러 가지들을 통하여서 주님께로 돌아온 통
계는 지금까지 약 1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수치로는 약 0.00002% 수준이다. 태국
남부에서 그 당시에 O.M.F 선교사들을 도우면서 태국 무슬림들을 곁에서 지켜보신 한
태국 교회 장로님께서 “이들은 버림 받은 자들”이란 표현을 한 것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게 되었다. 직접 그 이야기를 들으신 선배 선교사님과 우리 가족은 얼마나 태국 무슬
림들이 주께로 돌아 오는 것이 어려웠으면, 태국 교회 장로님께서 저렇게 표현 하실까
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렸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
렇다면, 역사적으로 극도로 잔인하고 포악함이 넘쳐난 앗시라아 제국의 수도인 니느웨
로 가라고 말씀하신 요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그 사랑은 어떻게 된것일까? 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는 것이다. 2006년 현재, 그 당시
에 사역하신 많은 서양 선교사님들은 은퇴로 또는 여러 이유로 거의 대부분이 선교지에
없다. 또한, 그 당시 태국 무슬림들을 위해 의료 사역을 한 병원은 문을 닫은 지 오래 되
어 그 병원 주변으로는 병원 키 만한 수북한 잡초와 넝쿨이 무성하여 병원인지 조차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태국 무슬림들을 향한 하나님의 끈질기며, 포기 하지 않는 놀
라운 사랑의 열정을 나의 친구인 한 중국계 말레이시아 선교사를 통해 깊이 있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육신적으로 연약한 여자 독신선교사로써, 태국 남부에 올 수 없는 환경
이었는데, 태국 무슬림을 위해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껴서, 확인 차,
불가능하게 여겨진, 몇 가지 표적을 구하였는데, 그 모든 것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경
험 하면서, 믿음과 순종으로 태국 남부 외딴 무슬림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왔노라는 당
찬 간증을 나에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태국 무슬림들이 태국 정부로부터 분단의 아픔과 종교와 문화 동화정책으로 인한
깊은 상처들을 보면서, 이미 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인해서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또한,
일제로 인한 종교와 문화적 억압을 경험한 적이 있는 우리 한국 사람들이 태국 무슬림
들을 위해 선교사로 나와서 그들의 아픔, 상처, 그리고 강팍한 마음을 이해하며, 또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으로 녹여 주면 어떻까 라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동병상련의 마음
으로 태국 무슬림들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는 사람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
까? 글을 맺으면서 간절한 기도의 부탁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태국 남부의 평화와 그들
을 향한 복음 전파자들이 더 많이 일어 날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이 사랑의 주님께로 속
히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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