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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 (남부 태국) 한국 선교사의 선교 역사와 전망 본문

선교 EH국/Deep South Thai

남태 (남부 태국) 한국 선교사의 선교 역사와 전망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2. 10. 6. 11:30

남태 (남부 태국) 한국 선교사의 선교 역사와 전망

 

 

                남태 한국선교사의 선교역사와 전망| 선교지 소식

야훼나라|조회 27|추천 0| 2004.12.28. 09:46

        1.  서 언 /2


        2.  본 론 /3

         


          제1장  한국 선교사의 남태(남부 타이) 선교 역사 /3

           제1절 태국 인종구분 및 지역 구분 /3

            제2절  나콘시타마랏 및 태국 남부 지역 연구 /4

              1. 위치 및 역사 /4

              2. 기후 /4

              3. 종교 /5

              4. 직업 및 사회 문화의 특징 /6

            제3절  한국 선교사의 남태 선교 역사 /7

              1. K.I.M.선교 /7

              2. K.G.A.M. 선교 /8

              3. O.M.F. 선교 /9

         

          제2장 남부태국 전통 민속의식과 기능적 대체를 통한 선교 전략 /10

            제1절 낭태룽(그림자극)을 통한 선교 전략 /10

            제2절 롯남의식(성결․축사사역)을 통한 선교 전략 /11

            제3절 담넝타이(전통음악)를 통한 선교전략 /11

         

          제3장  남태 선교 전망과 효율적인 선교 전략 /12

            제1절  남태 선교 전망 /12

            제2절  효율적인 선교 전략 /14

              1.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전략 /14

              2. 종교적 문제에 대한 전략 /15

              3. 사회적 인성에 대한 전략 /15

            제3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본 선교전략

              1. 문화선교/16ㅡ18

              2. 팀 선교/19

              3. 전략선교/20


        3. 결 언 /20ㅡ21




         

         

        남태 (남부 태국) 한국 선교사의 선교 역사와 전망


        1.  서  언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한 한국 교회는 이제 세계 3위의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  한국 교회는 약 8천명의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 하였으며, 본 교단에서만 85개국에 1057명의 선교사 (2001년 7월 현재)를 파송하였다.


        한국 교회의 역사적인 성장은 바로 성령의 역사를 통한 사도적인 선교 활동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아울러 70년대의 경제 성장에 힘입은 한국 교회의 경제적 풍요는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20:35하)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양적인 팽창의 기적을 산출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여전히 버려진 지역으로 남아 있는 소위 10-40 창문 지역의 미전도 족속에는 선교사의 손이 부족하며, 이로 인한 선교사 재배치 문제까지 대두되고 있는 동시에 IMF 시대를 맞이하여 선교에도 새로운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이로 인해 총회에서는 “경제 위기에 처한 한국 교회 해외 선교 정책에 관한 공동 선언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그 주요 내용으로는 선교 현지의 프로젝트(PROJECT)성 사역을 지양하고,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은 교단과 선교 단체를 막론하고 공동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중복되는 사역의 추진을 지양하고, 선교사들의 해외 안식년과 여행의 자제, 자녀의 국제 학교 교육의 자제와 행정비 및 비용을 절감하도록 노력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러나 선교의 위기는 경제적 위기에서 오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영적 추수를 기다리는 복음의 사각 지대를 계속 내버려둔다면 우리의 사명인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행1:8)는 지상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태국은 복음이 들어온 지 18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나 기독교 보급률이 1%에도 이르지 못하며 (카톨릭 포함) 10-40 창문 지역의 대표적인 불교국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태국의 2대 종교군인 이슬람 (4%)이 위치해 있는 태국 남부 지역은 더욱 복음 전파가 어려운 지역으로 태국 현지 목회자도 선교사도 사역하기를 거부하는 땅이다.


        이 태국 남부 지역에서 만 9년간 사역하면서 한 텀을 보낸 필자는 제1장에서는 태국 남부 지역 지역연구 및 태국 남부 지역에서 선교한 한국 선교사의 역사를 요약하여 살펴보겠다. 제2장에서는 남부 태국 전통 의식과 그 기능적 대체를 살펴보겠다. 제3장에서는 앞으로의 남태 선교 전망과 남태 지역의 효과적인 선교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이상의 논지를 요약한 후, 남부 태국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모색해 봄으로써 이 글을 맺으려고 한다. 



        2. 본  론


        제 1 장  한국 선교사의 남태(남부 타이) 선교 역사


        앞에서도 잠시 살펴보았듯이 태국은 인구 6000만에 76개의 도에 67개의 소수 부족이 모여 사는 다양한 언어. 문화. 종교를 유지하는 나라이다.  그리고 주변국(중국.버마.라오스.캄보디아.말레이시아.베트남)과의 긴밀한 관계 아래 그 특별한 문화와 전통을 자랑하며 자립심이 강한 민족이다.


          제 1 절 태국의 인종 구분 및 지역 구분


        태국 국민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다섯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로, 순수 타이 혈통으로서 현재 태국인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적으로 4지역으로 분포되어 있다.  즉, 북부 타이족 (15%), 중부 타이족(SIAMESE 족 38%)  북동부 타이족 (MUANG또는 YUAN족 17%), 남부 타이족 (PAK THAI 10% ) 이들간에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있으며 교육의 발달로 중부 타이어를 이해하고 있다.


        둘째로, 타이의 인종 그룹은 중국인들로서 전체 인구의 10-14%의 400만 정도로 추정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방콕에 거주하며, 그 외에 다른 지방 대도시에 산재되어 있다.  이들은 거의가 타이에서 출생하여 타이인들과 결혼하여  타이 문화에 동화되었고 경제적인 부로 인해 사회의 중추적 인물로 일하고 있다.


        세 번째 종족은 말레이 인종으로서 전체 인구의 3-4%를 차지하여 200만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거의가 태국 남부의 4개 주 (빳따니. 나라티왓. 얄라. 사뚠)에 집중되어 그곳 인구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80%가 말레이어를 20%가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외부의 세력에 대해 대단히 폐쇄적이며, 그들의 문화. 언어. 종교를 보수하고 있어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며 모슬렘이 90%이상이며 기독교인은 200여명 정도이다.  1951년부터 OMF에서 집중적으로 선교하고 있으나, 지금은 거의 모든 선교사가 철수하고 있으며 열매가 가장 적은 곳이다.


        네 번째 종족은 동부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캄보디아 인들이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2%를 차지하는 100만 명 정도이며 거의가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7만 명의 베트남인과 방콕 서부에는 6만 명에서 10만의 몬(MON)족이 거주한다.


        다섯째로 타이 국민을 이루고 있는 종족은 북부 지역에 산재되어 있는 산간 부족들이며 이들은 총 48개의 부족으로 80만 정도이다.  이들 중 몇 천명의 소수 부족으로부터 몇 십만의 대부족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태국의 지역 구분은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부 타이, 미얀마와 인접한 북부 치앙마이, 치앙라이를 위시한 소수 부족으로 이루어진 북부 타이, 라오스와 캄보디아와 인접한 콘겐. 우돈 지역의 동북부 타이, 캄보디아와 인접한 톤부리. 라용을 중심으로 한 동부 타이, 그 외 미얀마와 말레이시아에 인접한 400만의 팍따이족과 200만의 빳따니 말레이 종족이 사는 14개도의 남부 타이 지역으로 대별 할 수 있다. 


        특히 태국 남부는 지역적으로는 미얀마 와 말레이시아에 인접되어 있고, 인종적으로는 남태인(팍따이족) 400만과, 말레이시아 주변의 4개도(빳따니, 나라티왓, 얄라, 사뚠)의200만(말레이족) 총인구 600만의 14개 도로 이루어졌다.


        이 남부 지역은 그래서 팍따이 족(12개도)이 거주하는 곳은 거의가 토착 신앙과 혼합된 주술적이며 마술적인 영향 아래 있는 강한 불교가 득세하고 있으며, 말레이계가 주로 거주하는 4개의 도에도 역시 토착 신앙과 변질된 모슬렘이 자리잡고 있다.(90%이상 태국 전체의 4%)


        이 다양한 지역의 다양성을 동시에 섭렵할 수 없으므로 본 논문에서는 본인의 사역중인 남태의 최대의 고대 도시이며, 중심 도시인 나콘시타마랏(CCT 9노회 소속)을 중심으로 지역연구를 살펴본 후에 이곳 남부 지역에서 선교했거나 선교하고 있는 선교사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 2 절  나콘시타마랏 및 태국 남부 연구


           1. 위치 및 역사 (나콘시타마랏)


        방콕으로부터 850Km 떨어진 태국 남부 14개 도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북위 8-9°19′) (경도 99°15′- 100°15′) 동쪽으로는 태국 해협에 위치해 있고 서쪽으로는 안다만 해협과 미얀마에 인접해 있다.  태국 남부 최대의 도시이며, 일찍부터 도시 국가가 형성되어 독특한 언어(팍따이어) 및 문화의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13세기(수코타이 왕조) 실론 불교도의 전파로 소승불교를 일찍부터 받아들였으며 그후 인도와의 무역 거래로 도시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종교 문화의 중심에는 힌두교적이며 인도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콘시타마랏”이란 도시의 지명은 나콘(도시) 싯타마랏(싯탈타=부처)의 합성어로서 “부처의 도시”라는 뜻이다.  그만큼 강한 전통적인 불교를 숭상하고 있고 남부 최초의 도시국가로서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콘시타마랏 도시를 중심으로 17개의 면 단위(암퍼)로 이루어진 전체 인구 150만의 남부 최대의 중심 도시이다.


           2,  기후


        아열대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일년 내내 고온 다습하며, 집중 호우 현상(스콜)이 심한 지역이다.  태국의 일반적인 계절은 여름. 우기. 겨울로 3분하지만 적도 가까운 남부 태국은 일년에 2계절(우기와 건기)밖에 없는 태국 특유의 기후이다.  중부 및 북부 타이의 겨울철(12월-2월)이 없으므로 일년 연중 기온이 가장 높아 연중 한낮 최고 기온이 3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기후를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우기: 11월-1월, 5월-9월 연중 강우량 2490MM

           2)건기: 2월-4월 연평균 기온 28.5(최고 37.6 최저 20.6)

          

           3.  종교

        말레이시아와 인접한 지역의 (4개 도시)영향으로 이슬람의 영향권에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하루의 5차례의 기도 시간에는 대형 스피커로 기도 시간을 알리며 이슬람 세력은 점점 북상중이다.  10년 전 모슬렘 인구는 7%정도였으나 지금은 30%(2001년 7월 현재)를 상회하고 있다.


        나콘의 중심부에 2개의 대형 무슬림 사원이 있으며 그 외 바닷가에 인접한 시골 지역으로 모슬렘이 급속하게 확장되어 마을 단위로 집단 개종자가 늘어나고 있다.  정치 경제권에 이슬람의 영향은 대단하며, 남부 최남단 지역의 4개 도시의 국회의원은 모두 이슬람이 장악하고 있다.  지난번 수상 ‘추완 릭파이’가 남부 지역 출신(뜨랑)인 고로 부수상 중 한 명이 무슬림이었다.


        그 외에 80%를 자랑하는 불교는 국보급의 가장 오래된 남부 최대의 절인 “왓 쁘라탓”(톤부리시대 A.D. 1093년에 세움)을 중심으로 나콘 도시에만도 80개 이상의 대형 절이 중앙 도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연하여 위치하고 있다.


        이들은 태국의 전통적인 절의 형태로 태국인의 모든 생활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바, 때로는 학교로. 병원으로. 마을 회관으로 휴식처와 관광지로 사용되고 있으며 남태인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기독교는 1900년에 미국 장로 교회에 의해 선교 센터가 생겼다.  나콘은 남부 사이임 선교 위원회의 중심 역할을 감당하다가 1910년에 주변 도시인 뜨랑에 선교 센터를 세웠다.  후에 CCT는 나콘을 중심으로 하여 9노회, 나콘의 서쪽인 뜨랑을 중심으로 17노회, 나콘의 북쪽에 인접한 수랏 지역으로부터 방콕의 관문인 페차부리까지를 묶어 8노회를 세었다.  그 외에 남부 최남단 4개 도시에는 얄라에 무지역 노회인 12노회 교회(얄라 침례교회)가 위치해 있다.


        나콘에는 10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들레헴 교회(노회장-텅무안 목사)를 중심으로 10개의 교회와 8개의 전도처가 있으며 기독교인은 600명 정도이며 (CCT) 한 교회 평균 30여명의 교인이 출석중이다.  그 외에 미국 장로 교회 선교사가 세운 기독교 학교(싯타마랏쓱사)에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5000명의 학생과 300여명의 교사와 직원이 있으며 기독교인은 학생이 40여명 교사가 30여명 정도이다.  그 외 동 선교부에서 세운 기독교 병원(원장:쫑디)이 있으며 원장 및 소수의 의사들이 기독교인이며 간호사 중에는 기독교인이 하나도 없다.  현재는 CCT에서 독립하여 개인 병원이 되었다.


        그 외에 EFT산하의 소수 교회(10여 개, 성도 300여명)가 있다.  또한 OMF계의 교회와 오순절. 침례교의 극소수의 교회(5개정도)가 있다.


        특이한 것은 여호와의 증인이 94년 10월부터 극성스러운 포교 활동을 펴고 있고 나콘 시내의 개인 집을 빌려 노방 전도. 축호 전도에 열중하고 있다.


        기독교인은 94년-98년간 200여명이 줄었으며 그 이유는 도시로의 전출 및 교역자의 부족이 주된 원인이다. 그러나 이제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으로 교회와 교인이 느는 추세에 있다.

        정부 통계에 실린 종교 상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98년통계)

         

        종교

        예배 처소

        종교 지도자

        종교인%

        불   교

        565

        5,901

        80

        이 슬 람

        75

        --

        19

        기독교(+천주교)

        19

        --

        0.5

        기   타

        --

        --

        0.5


           4.  직업 및 사회 문화의 특징


        태국 남부 전지역은 고무나무에 의존하여 생활한다.(70%이상)   그리고 1년에 2모작의 논농사가 가능하다.  또한 바다가 접해 있어 어업이 발달하였고 남부 지역은 산이 많아 광업도 발달하였다.  주석 단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1차 산업 의존도가 80%)


        얼마전 발표된 신문 통계에 의하면 태국 전지역에서 살인 강도 강간 및 인명 살상이 가장 심한 지역이 “나콘”이었으며 남부 전지역은 치안 문제가 종교. 정치 문제와 맞물려 심각한 상태이다.  왕은 몇 년 전 국왕 탄신일에 나콘이 태국에서 가장 가난하고 사회문제가 심각한 지역이라고 걱정하며 탄식한 적도 있다.


        남부4개 도시의 회교 과격분자들의 소행으로 본인이 처음 나콘에서 사역하던 해 인 94년 한해만도 35개의 학교가 불에 탔으며 기차에 폭발물이 터지고,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일어났으며 이러한 폭발물 사고와 총기 사건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남부 태국인은 강한 집단주의 의식이 강해 다른 지역 사람들을 수용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고유 언어 (팍따이어 및 남부 모슬렘어)와 전통 문화(연극. ‘낭따룽’이라는 그림 자극. 가무)를 고집하고 있다.


        주로 기독교인은 무당, 박수 출신이며 정신병환자 죽을병에서 기적을 체험한자 등 간증 거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개종자가 극히 적으나 예수를 믿으면 변질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태국 중부 및 북부 지역에서도 남부 지역으로의 여행을 두려워하고 남부 사람들을 마음이 검은 사람(콘 짜이 담)혹은 물어뜯는 사람(콘둣)들이라고 평한다.


          제 3 절  한국 선교사의 남태 선교 역사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남태 지역의 선교는 사회. 정치. 종교 문제와 맞물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교세(교인수. 교회수. 교역자수. 개종자의 수)가 태국 전체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으로 기독교는 주로 북쪽 지역과 소수 산족을 중심으로 교세가 확장되며,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국인 교회(7노회)가 자립을 하고 있다.  남부 태국은 대부분 미자립 교회이며, 미전도종족군(팍따이족. 빠따니말레이족)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극소수의 한국 선교사들이 이 남부 지역에서 선교하였고 또 선교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선교 역사 자료는 전무한 상황이다,  선교 자료의 기초가 없는 상황에서 혹은 설문지 조사로 또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역사를 수집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한국 선교사의 남부태국 입국일 순서에 따라 세 선교부의 시대로 대별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1) K.I.M 선교부


        1956년 5월 11일은 한국 선교의 태동기를 여는 선교사 파송의 기념비적인 날이다.  이때 태국에 파송된 김순일. 최찬영 선교사가 방콕에 도착하므로 한국 선교는 현대 선교의 포문을 여는 화려한 출발을 보였다.  그후 60년대 1가정(송예근 64년) 70년대 4가정(신홍식 71년, 김정웅 76년, 정승회 79년, 임세종 79년)으로 이어오다 80년대에 31가정으로 90년대는 72가정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태국 남부 선교의 포문은 85년 3월23일 KIM 소속으로 파송 받아 9노회 나콘시타마랏에서 사역한 김중식 선교사가 최초이다.  물론 그 이전에 KIM 소속으로 사역하던 신홍식. 한준수(82년 파송)등이 있었으나 이들은 방콕 근교인 펫차부리 지역에서 8노회를 섬겼다.  일반적으로 태국인들은 방콕에서 280Km 떨어진 뿌라쭈압을 남부 태국의 관문으로 여긴다.  이러한 구분은 그들의 언어(팍따이어) 외모(중부 사람보다 검은 피부)문화의 차이에서도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어쨌든 김중식 선교사는 남부 태국에서 구체적으로 CCT소속의 9노회 선교사로서 최초의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의 중심 사역은 9노회의 10여 개의 교회와 전도처를 순방하며 말씀으로 섬기는 일과 젊은 지도자를 발굴하여 제자훈련 하여 이들이 신학 하도록 돕는 일, 노회 내의 평신도 지도자를 훈련하는 일들로 짧은 1년 여간(86년7월-87년12월)의 남부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그 당시에 남부의 치안 상태는 극히 불안하여 시골 교회 방문시 선교사의 차를 폭파시키려는 음모가 있었고, 불교 외의 다른 이단 종교를 불법 선포한다는 이유로 선교사는 항상 불안과 위협을 안고 사역하였다.  그래서 시골 사역 중에는 항상 태국 현지인과 동행해야 하며, 밤늦도록 사역하는 일에 지장이 생기기도 하였다.  사실 이 기간 동안 일부 성도들이 폭도들에 의해 살해되어 가족 전체가 나콘으로 이주하는 일도 생겼다.


        김중식 선교사는 더운 기후와 특이한 음식. 폭도들의 위험. 자녀 교육의 불안정 속에서도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였으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KIM이 해체되는 일로 인해 사역지를 방콕으로 옮기므로 남부 태국 선교의 공백기가 생기고 말았다.  이 시기에 KIM 소속으로 파송 받은 선교사들은 태국내의 수용 단체는 태국 기독교 총회(CCT)였으나 한국의 파송 단체인 국제 협력 기구(KIM)의 초교파 선교 단체였다.  그러나 이들의 교단 배경이 장로교였기 때문에 태국 내에서는 장로교 선교사로 통했다


            2) KGAM 선교


        1987.11.23 강대흥 선교사가 태국 주재 선교사로 파송 받아(KIM소속) 방콕한인교회의 전 사역자인 신홍식 선교사의 뒤를 이어 제5대 담임 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87.12.23 CCT 한인 교회 담임 목사 Visa).  방콕한인연합교회는 국제 협력 기구(KIM)의 방침에 따라 독립하게 됨으로 신홍식 선교사는 선교 사역만 전담하게 되었다.


        후에 강대흥 선교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합동) 태국 선교사로 재 파송되었다.  그후 한국총회선교회(KGAM) KOREA GENERAL ASSEMBLY MISSION을 설립함과 동시에 CCT와 협약을 맺어 선교사 파송을 약속하였다.  그 결과 1991.12.9 김문수 선교사 가정이 입국하여 언어 훈련 후 동북부 지역(13노회) 사역자로 임명되었다.  1993.1.25 권오혁 선교사가 태국에 입국하여 언어 훈련 후 남부 지역(9노회)사역자가 됨으로 (94.9.11) 그동안 끊겨졌던 남태 선교의 맥을 잇게 되었다.


        권오혁 선교사의 주요 사역은 CCT 9노회의 10여 개의 교회와 8개의 전도처를 말씀으로 섬기고, 9노회의 목회자가 없는 교회(70%)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CCT총회전도부과 연합으로 훈련시키며(1달 중 1주일), 교회가 세워지지 않은 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전도 팀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전도하며, 소수의 사역자와 함께 소그룹 성경 공부를 인도하며, 교회 개척중인 지역의 교회 지원 및 목회자와 평신도 전도인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외 KGAM의 후원으로 시골 교회 찬양 반주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반주자 훈련을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또한 9노회의 후원과 관심 아래 태국 남부 말레이시아와 인접한 최대의 상업 도시이며 교육 도시인 핫야이에 대학생들을 위한 공동체 훈련장인 핫야이 MISSION HOME을 96년 2월 12일 개원하여(동원교회 후원) 지금까지 100여명의 대학생들을 배출하였고 현재 12명이 함께 훈련을 받고 있다. 또한 안식년 이후에(99.5) 제 2의 기독학생(중․고등학생) 공동체 기숙사 Vision Home을 개원하여, 영어훈련, computer와 casio를 이용한 피아노 훈련, 한국어 교육 등을 통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교회 지도자 훈련원(2000.2.21)을 개원하여 남부태국 10여개 교회 30여명의 교회 지도자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 시키고 있다. 그 외 미전도종족 남태부족 선교를위해 바다 집시족(차우레족)을 입양하여 17노회와 함께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훈련시키고 있다.


        앞으로의 선교 계획은 5,000명의 학생이 있는 나콘의 기독교 학교와 100여 병동이 있는 기독교 병원을 말씀으로 정복하는 일과, 태국 남부 목회자들을 말씀으로 섬기며, 특히 전무한 상태로 버려진 노회의 주일학교와 학생들을 훈련하는 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그 외 태국 최남단 4개 도시의 모슬렘권 사역을 위해 99년 5월에 입국하여 언어 훈련을 마치고 나콘시타마랏에 머물러 있다가 얄라 지역으로 내려가 있는 양덕훈 선교사와(KGAM소속) 팀사역을 하고 있다.


           3) OMF 선교


        태국 남부 지역 선교의 포문은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열려진 것이 아니라 1951년부터 남부를 집중적으로 공략하여 사역해 온 OMF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물론 그 이전에 (100년 전) 미국의 장로 교회 선교사들이 나콘에 세운 선교 센터(1900년)를 시발점으로 교회 개척. 병원 설립. 학교 설립 등의 기본적인 개척 선교의 장을 열어서 선교의 교두보를 세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선교사와 현지인이 함께 동역하게 되는 현대 선교의 장은  OMF 선교부가 남부 지역을 분할 담당하면서 남부 전체는 OMF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OMF의 헌신은 실로 복음의 불모지에 구석구석 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때로는 갈 곳이 없는 자생적인 태국 교회들이 OMF에 영입되면서 활기를 띄었다.  그 당시 남부의 나환자들을 위한 사이부리 지역의 나환자 병원이 생기면서 그 열기를 가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그후 2명의 독신선교사의 순교로 남태 선교에 새로운 과도기를 맞기도 하였다.


        그 후 OMF에서는 4개의 도의 수도격인 얄라에 OMF 선교사가 세운 교회를 돌아보기 위해 한국의 유홍태 선교사를 파송 배치하였다.(92.9.11 파송 후 95.3. 초순 얄라 입성) 그러나 유홍태 선교사는 OMF 선교부와의 갈등. 자녀 교육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96년 안식년을 떠나면서 남태 선교를 정리하고 OMF에서도 떠나게 되었다.  그후에 한국 선교사가 남태 회교권에서 사역한 역사를 살펴보면 1년여의 사역을 마치고 97년 안식년과 함께 철수한 정상엽 선교사가 있는데, 그의 철수 원인은 둘째 아이의“자폐증” 증세가 이 지역에서 사역하면서 발생하자 고민 중에 아들의 치료를 위해 철수한 것으로서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후 OMF 사이부리 병원은 거의 문이 닫혀진 상태(간호사 2명만 주둔)고 유홍태 선교사가 돌보던 교회는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변하고 말았다.  지금도 얄라 지역의 남부 4개 도시에 소수의 OMF 교회가 남아 있으나 그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OMF에서는 긴급 기도 요청으로 남부 태국의 4개도의 모슬렘권을 향한 새로운 헌신자를 요청하고 있으며 소수의 은퇴 선교사들과 몇몇의 STAFF만이 이 지역을 외롭게 지키고 있다.


        그 외에에 최근에는 (99년부터) 김정배 선교사와 함께 사역중인 CPM출신 평신도 선교사 임태호(이선화) 선교사가 교회 개척과 영어 교육을 통한 제자 훈련 사역을 위해 나콘에 정착하였다 철수 하였으며 ,그 뒤를 이어 2000년 10월경부터 정패성 (장주향)선교사가 교회 개척 사역 중이다. 2000년 3월에는 YWAM의 평신도 선교사 유성환 선교사가 핫야이에서 모슬렘 사역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1999년부터 CCT 소속의 김형석 선교사가 17노회에서(부켇) 한인교회 사역을 기반으로 선교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그 외 평신도 단기 선교사로써 김준표, 박동휘(2000년 사역) 고승희, 오세민 (2000-2001 사역)에 이어서 박정주(2001년 사역) 등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젊은이들이 권오혁 선교사와 사역에 동참했거나 현재 사역중에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한국 선교사의 남부 태국 선교 역사는 극히 제한적이며 사역상의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한국 선교사들의 남부 태국 사역은 그동안 1년에서 2년 정도의 짧은 단명 선교로서 남태 선교의 역사를 기록할 만한 충분한 증인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자료를 찾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시 복음이 필요한 이 태국 남부를 버리지 않으셨으며, 600만의 거대한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하여 훈련된 소수의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사역자를 들어 사용하셨다.  하나님의 주권하에 그 분이 우리 선교사를 들어 계속 이 땅을 정복시킬 것을 믿으며 특별히 남부 태국의 전통의식과 그 기능적 대체를 살펴봄으로서 선교의 전망과 전략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자 한다.




        제 2 장 남부태국 전통의식과 기능적 대체를 통한 선교전략


        타 문화권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방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들이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전통 민속의식을 기능적 대체를 통하여 선교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의 뿌리에는 그 근원을 알수 없는 거대한 신비가 숨겨져 있으며 하나님을 알만한 그 무엇이 숨쉬고 있다.

        모든 남부 태국의 전통 민속의식이 다 마귀적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물론 그 문화의 근원과 뿌리를 살펴보아 분명히 사탄적이고 악마적인 요소가 숨어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문화의 일부에서는 좋은 기능적인 대체를 통해 얼마든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 다음은 남부 태국 전통 민속 의식 중 그 기능적 대체를 통한 선교 전략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 1절 낭따룽(그림자극)을 통한 선교전략

        남부 태국에서는 그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신기한 그림자극이라는(낭따룽) 것이 있다. 이 낭따룽은 하얀 천 뒤에서 밝은 조명을 통해 그림자를 이용해 상영한다. 송아지 가죽을 벗겨 만든 가죽제품을 정교하게 징으로 파서 만든  가죽 공예품을 이용해 배우가 성대 묘사를 한다. 한사람이 여러 개의 낭따룽을 이용하고 또 여러 사람의 성대묘사를 혼자서 다 한다. 그 외 뒤에서 이 그림자극을 도와주는 소리꾼이 있다. 그는 박자에 맞추어 장단을 넣기도 하고 또 장구나 징과 같은 고대 태국 악기를 두드리며 흥을 돋군다. 남부 태국 사람들은 이 그림자극에 완전 빠져서 산다.

        이 그림자극은 그 기원이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중국 남부를 통해 인도차이나를 거쳐 태국 남부와 말레이시아 그리고 심지어 인도네시아까지 전수되었다. 이 낭따룽을 빼고는 태국 남부의 전통의식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들은 명절이나 국경일, 경축행사에 항상 이 낭따룽을 공연한다. 남부 태국 특유의 거친 지방 사투리로 걸쭉하게 빚어내는 소리꾼들의 그 특이한 음과 소리들 때문에 밤이 새도록 이 낭따룽을 즐기는 것이 남부 태국인의 일상이 되었다.

        이들이 이렇게 낭따룽에 빠지는 이유는 이 그림자극은 가난한 서민들의 애환과 눈물, 기쁨과 위트가 베어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소리꾼들을 따라 울고 웃고 때로는 정부를 성토하고 가난한 자들의 억눌림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낭따룽은 남부 태국의 대표적인 전통 민속 의식이다. 본인은 이 낭따룽을 잘 사용만 하면 남부 태국 선교에 좋은 기능적 대체가 가능하리라 본다. 낭따룽은 태국 남부인의 정서와 한과 사랑이 숨쉬는 문화 행사이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는 정부 고관대작 비판과 빗나간 이성간의 사랑, 가난한 자와 부자간의 갈등 등이 주제이다. 이 주제는 천지창조와 하나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식으로 이야기화 한다면 굉장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낭따룽은 창을 하는 자의 창법이 독특하고 굉장히 고음인 것이 우리 나라 판소리와도 같다. 그러나 지칠 줄 모르는 소리꾼과 장단을 맞추는 고수가 하나가 되어 또 기가 막힌 그림자들의 현란한 움직임으로 남부인들을 매료시켰다. 단지 소리꾼과 고수가 복음에 내용에 충실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하면서 그림자극을 통하여 복음을 전한다면 엄청난 복음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것이다.

        모든 남부 태국인들은 낭태룽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제는 판에 박혀 식상한 그림자극보다 무언가 새롭게 저들을 울리고 웃길 수 있는 내용을 찾고 있다. 이들에게 복음의 순수하고 토속적인 내용이 그대로 여과 없이 낭따룽을 통해 전파된다면 정말 멋진 기능적 대체가 가능하리라고 본다.


          제 2 절 롯남(성결․축하 의식)을 통한 선교전략

         

        태국인들은 새해를 세 번 보낸다. 1년중 1월 초순에 전세계인들과 함께 하는 신년행사가 있다. 또 중국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2월중에 보내는 구정 행사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네들의 구정이 있는데 4월 중순경이다. 그런데 이 때의 특이한 행사로는 물을 뿌리며 행사를 즐긴다. 이 때는 전도시가 마비될 정도로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서로 물을 뿌리며 축하 행사를 한다. 모든 차와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물을 뿌리는 신기하고 특이한 행사이다. 이 의식은 원래 힌두교의 전통 의식으로서 인도지방에서 전래된 의식이다. 영적인 의미로는 물을 뿌리며 주술을 하며 액땜을 하며, 귀신을 막기도 하고 내쫓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성결한 의식이라고 하지만 이 내면에는 종교적인 것이 깊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 중 일부는 그대로 전수되어 지금도 죽은 자들에게는 이 롯남이라는 의식이 있다. 태국인이면 누구나가 입관의식을 하기 전에 바로 죽은 시체에 손에다 이 물을 뿌리는 의식을 한다. 각양 꽃으로 장식한 은대접에다 생화를 뿌리고 거기에다 물을 잔뜩 부은 다음에 조문객들은 조금씩 죽은이의 손에 이 꽃 물을 부으며 죽은 여홍을 달래며 슬퍼하기도 한다. 또한 결혼식 때 신랑 신부에게도 축하객이 이 물을 뿌리는 의식을 거행한다. 이 롯남 의식은 4월 명절에 나이 많은 부모님이나 어른들을 찾아가 정중하게 행해진다.

        본인은 이 롯남 의식이 교회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

        특별히 이 롯남 의식과는 전혀 기원이 다르지만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므로 (요3:5)이 롯남 의식이 교회에서 세례의 의미를 가지고 행해지고 있으며 특별히 어른들을 존경하는 사회인 태국 사회에 효도의 관행으로 선행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죽은 사람에게 물 뿌리는 롯남 의식이 아니라 예수 떄문에 살았고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죽고 또 성결해야할 그리스도인이므로 이 물 뿌리는 의식은 저절로 교회 안에서 전통민속의식이 기능적 대체를 할 수가 있었다. 특별히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는 그들의 죽음과 부활을 소망하면서 나이 어린 자녀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서로 기도하고 축복해 주는 아주 경건한 의식으로 변할 수 있다.

        4월 중순의 그들의 구정 행사 때 지내는 광란의 “물과의 전쟁“이 아닌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주님과 함께 죽고 또 성결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아주 진지하고 좋은 기능적 대치를 맛볼 수 있었다.


        제 3절 담넝타이(전통음악)를 통한 선교 전략


        태국인에게 현대 음악이 들어온 것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별히 왕과 왕족들이 주로 유럽에서 서양음악과 찬송가를 이미 접하였기에 이 현대 음악의 역사는 한국보다 훨씬 더 오랜 전통과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태국에서 현대음악이 제자리를 잡아간 것은 현재 9대 왕인 푸미폰왕 때부터이다. 그는 기타, 섹스폰, 피아노 연주에 전문가이며 태국인을 위한 여러 전통적이고 현대적인 노래를 지어 태국인이 부르게 했다. 또한 음악과 관련한 많은 기관에 투자하므로 현대 음악이 꽃을 피우게 하였다. 그러나 태국인들은 현대 악보를 사용하기보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곡에 기타코드를 적어놓아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들 특별히 태국 청년들이 좋아하는 복음 찬송가에는 1/5정도만이 악보가 있고 그 나머지는 모두 가사에 기타 코드를 적어 놓고 부르므로 악보대로 찬송을 하기보다는 코드에 맞추어 찬송하므로 수시로 찬송이 바뀌고 곡조가 엉망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전통 민요라는 “담넝타이“가 있다. 그들은 악보대신 구전으로 들려오는 이 전통 민요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이들이 부르는 복음송에는 수많은 전통 민요풍의 곡이 있다. 한국인이 자주 부르는 ‘예수님이 좋은걸 어떻합니까“ 풍의 곡이 수 십곡 있다. 나는 이 전통 민요를 잘만 사용하면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 기독교인에게도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본다. 조상 대대로 불러 내려오던 그들의 애환과 삶을 노래한다면 그 누구도 안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다 분명한 현대식 악보까지 곁들여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곡들을 모아 책을 만들어 부르게 한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본인은 지금도 남부 태국에서 계속적으로 찬양사역을 해 오고 있다. 시골 교회의 열악한 환경이 찬송가를 제대로 부르는 교회가 없다. 우선 악기가 없고 누군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키보드와 기타를 통하여 시골 반주자들을 9년간 키워오고 있다. 이들을 위한 캠프사역, 반주자 훈련 사역을 진행해 오면서 이들이 담넝타이를 현대 찬송가보다 훨씬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제 좀더 전문화하여 악보 정리와 전통 민요를 통한 음악 사역을 개진한다면 태국인의 깊은 정서에 어울려 복음의 내용이 찬송으로 좀더 많은 태국인들의 가슴에 심겨질 것이다. 특히 남부 지역은 그들 특유의 전통과 지방색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음악과 예술도 다른 지방과는 확연히 틀리며 전통문화 의식의 독특성을 띄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대로 남부 태국 전통의식과 그 기능적 대체를 통한 선교전략은 다양하며 또 그 기능성 또한 크다 할 것이다. 복음이 모든 족속에게 이르기까지.... 그래서 선교사는 더 열심히 노력하고, 현지 문화를 잘 이해해야 진정한 눈 높이 선교가 가능하리라 본다.

         


        제 3 장  남태 선교 전망과 효율적인 선교 전략


        지금까지 우리는 남태 선교의 역사를 살펴보았으며 제 2장에서는 남부 태국 전통의식과 기능적 대처를 통한 선교전략을 살펴보았다.  지금까지의 글이 남태 선교의 과거의 역사였다면 3장부터는 남태 선교의 미래를 여는 선교 역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도전과 VISION속에서 침노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  그 동안도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루어 졌으며 앞으로도 그 분의 뜻대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면 남태 선교의 효율적인 선교 전략을 세우기 전에 남태 선교의 전망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제 1 절  남태 선교 전망


        1956년부터 시작된 태국 선교는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에 따라 성숙되지 못한 많은 면들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태국 교회 지도자들의 외국 선교사들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때문에 태국 교회의 문제를 논할 때에 자주 선교사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이들의 실수라고 결론 짓곤 한다.

        한국 교회는 서구 교회에 비하여 태국 선교에 어떤 평가를 받을 만한 충분한 기간을 보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같은 아시아계인 한국 선교사에 대하여 태국인은 서구인과는 다른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고 신선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특별히 70년 이후의 한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 선교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 교회의 부흥의 역사로 한국 선교사를 부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한국 선교사들은 돈으로 선교하려 하고, 너무 자주 싸우고, 오래 참지 못하는 다혈질적인 성질이 급한 즉, 태국인의 눈으로 볼 때는 수련이 덜된 선교사로 취급하기도 한다.


        태국 정승회 선교사의 논문에서 태국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설문 결과 한국의 선교사가 태국 사역에 조심할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기성 교회를 돕거나 절대 간섭하지 말라.

        (2) 절대 혼자서 일하지 말고 태국 동역자와 함께 그를 앞세워 사역하라.

        (3) 태국 교회의 교역자나 태국 단체의 장이 되지 말고 태국인을 훈련시켜 그 일을 맡기라.

        (4) 각종 도움은 단기적이어야 한다.

        (5) 한국 신학을 심거나 한국처럼 만들지 말고 성경을 중심하라.

        (6) 일반적인 구제는 삼가라.

        (7) 한국인이 하나 되어 일하라.


        특별히 남부 태국 그 기질상 중부와 북부 태국인과는 너무나 다른 점이 많다.  그들의 언어 구조상 목소리가 커서 싸우는 것 같고 더운 지역에서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다 보니 타지역 사람들을 터부시하는 경향으로 배타적이고 고집이 세다.  특별히 토착 문화가 마귀적이고 주술적이므로 일년에 여러 차례 자기 몸을 자해하는 “낀쩨” 라는 채식주의자들의 종교의식을 거행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다른 태국인 들과는 다르게 YES, NO가 분명하여 한번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면 목숨을 걸고라도 그것을 수호한다.  태국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온순하고 우유부단한 반면 남부인들은 과격하고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개종하기가 어려운 일이지, 일단 개종하면 자신의 신앙을 잘 지킨다.  이들은 또한 태국 다른 지역(방콕 외의)태국 북부 및 동북부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여 물질에 의해 왔다 갔다 하며 신앙을 변질시키지 않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또한 교육열이 강해 방콕과 대도시 심지어 외국에까지라도 자녀를 보내 공부시키는 가정이 많으며, 자녀의 출세와 성공을 위하여 부모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의 개방대학인 “랑캄헹 대학”의 학생 60% 이상은 남부 학생 출신들이다.  정부가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작년에는 제2랑캄헹 대학과, 태국 전체에서 가장 넓은 500만평 대지 규모의 공주의 PROJECT인 “와라일락 종합대학”을 나콘에 세웠다.


        이러한 선교의 가능성이 있는 미전도 족속 선교의 중심지인 남부 태국에 지난 40여 년간 3-4가정의 선교사만이 사역했다는 것은 한국 선교의 과거를 재점검해 보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제 2 절  효율적인 선교 전략


        정승회 선교사는 앞의 논문에서 우리 한국 선교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고찰해 보았다.


          (1) 선교 사업의 사유화 경향

          (2) 선교비로 사역을 매입하려는 경향

          (3) 과도하게 경쟁적으로 사역하는 경향

          (4) 현지를 파악하기 보다 무모하게 활동하는 경향

          (5) 선교적 기반을 구축하지 않고 선교의 탑을 쌓는 경향

          (6) 선교사 소명의 결여

          (7) 사역적인 전문성의 결여


        물론 이는 CCT와 EFT(EVANGELICAL FELLOWSHIP OF THAILAND) 선교사간의 사역상 차이점도 있지만 한국 선교사의 일반적인 문제점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선교지에 대한 연구와 안목이 확실히 세워져 효율적인 선교 전략이 세워지기까지는 언어 훈련과 선교지 연구 및 현지 동역자간의 인간관계에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후 다음과 같은 3가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전략


        태국은 불교의 업(KARMA) 사상에 근거한 강력한 계층 의식이 형성되었다.  즉 그릇된 인간 개념, 곧 인간 차별 의식을 개변시켜 모든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창1:27) 동등한 피조물임을 알게 하는 것이 복음 선교의 주요 과제다. 


        이를 위한 접근 방법으로


          첫째는, 개인 전도와 양육을 통해 의식을 전환시키며,

          둘째는, 이와 같은 계층 의식을 전도의 통로로 이용하는 것이다.

          특별히 이를 위해 OMF의 남부 타이 전략을 보며 다음과 같다.

              1.  개인전도  2. 교회 개척  3. 성경 공부  4. 지도자 육성


        남부 태국은 교육열이 높아 시골 지역의 거의 모든 자녀들을 대도시로 보내 공부시키고 있다.  이들이 부모와 그들의 종교인 불교와 이슬람으로부터 6년(중. 고등학교) 내지 10년 (대학까지)동안 격리된다는 점을 간과한다면 주일학교나 청소년 교육은 실로 무궁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본인이 사역하는 나콘의 가장 큰 교회인 베들레헴 교회의 청소년들은  80%가량이 외부에서 온 시골 지역 젊은이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의 사고와 의식이 굳기 전 확실한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일은 너무나 중요하다.


           2.  종교적 문제에 대한 전략


        타이 불교는 혼합적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순수한 소승불교에서 이탈된 미신적 불교로 주민들의 생활 속에 젖어 있다.  남부 지역의 무슬림 역시 말레이시아를 거쳐 북상하였기에 순수 이슬람이 아닌 불교와 기독교 심지어 원시종교인 무속 신앙까지 혼합이 되어 이들은 귀신을 섬기기도 하고, 부적을 부치고, 주문을 외우는 일과 예배 의식에도 태국어가 아닌 모슬렘 언어로 중처럼 염불을 외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의 전략이 있는바


          (1) 변증법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설명하는 방법과

          (2) 상대주의와 유사성을 접촉점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태국인 개종자들의 22.6%가 지옥에 대한 공포 때문에 개종했다고 한다.  이러한 지옥과 극락의 차이 점등을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천국 개념을 변증법적 전도 방법으로 사용하면 큰 효과가 있다.  특히 학구적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종교인인 불교와(무슬림) 기독교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의 입장으로 설명하면 많은 관심과 열매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불교와 기독교의 유사점인 재림주와 재림(부타)에 관한 이야기. 불교의 지옥 개념. 세례요한처럼 부처의 앞길을 예비한 (알렌야 마타이 (ALEN YAH METTAI) 라는 부다의 형제 이야기 등과, 많은 전설과 예화들이 놀라우리 만치 기독교의 내용과 일치하고 있다.  또한 남부 태국의 강한 사투리 식의 태국 남부어를 사용할 때 한결같이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었으며, 태국의 고사 성어와 민화를 연구하여 선교하였을 때 그들의 마음을 더 빨리 여는 계기가 되었다.


           3.  사회적 인성에 대한 전략


        태국 남부인들의 인성에 대한 전도 방법으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복음을 이미 들은 자에게는 강력한 메시지를 통한 쇼크 요법

          둘째, 일반적인 비 기독인 에게는 토착화를 통한 접근 방법이다.


        첫째 방법으로 김순일 선교사도 한때 이 방법을 사용하여 많은 효과를 얻었다.

        불교의 윤회 사상에 젖은 태만성을 깨우는 강력한 메시지 선포는 교회 내에 엄청난 효과를 파급한다.  최근에 한국 교회 닮기 운동이 태국 교회 내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 이런 설교 패턴을 지양해도 되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 외 토착화의 실례를 보면 장례식의 기독교화 및 예배 의식의 토착화, 교회 예배당의 건축 및 부속 건물 사용에서의 불교가 안고 있는 장점들을 사용한 토착화 방법들이 모색될 수 있다.  특히 남부 지역 문화의 꽃이라고 하는  “낭 따룽” (그림자 극)을 이용한 성극과 전통 악기를 사용한 찬양의 토착화, 이들이 잘 부르는 찬양집인 전통 음률에 맞춘 찬양(탐넝타이)등도 토착화의 좋은 MODEL이 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남태 선교의 전망은 어렵지만 항상 어두울 수가 없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남부 팍따이족과 말레이족을 변화시킬 날도 멀지 않았다는 희망을 가지고 TEAM 사역을 하되 집중적으로 대도시의 젊은 층을 파고들어 사역한다면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말씀처럼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선교사로서 무장을 해야겠다. 다음  절에서는 이 논문의 결론 격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본 선교전략을 3가지로 요약하여 살펴보겠다.


        제 3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본 선교전략


        1.문화선교


        서구의 선교사들이 일찍 선교에 헌신하면서 엄청난 선교적 노하우를 축적하였다.

        선교역사가 미천한 한국 선교사들은 서구 선교사들의 이 화려한 업적들을 부지런히 배우고 읽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수는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서구 선교사들의 일부가 저지른 문화에 대한 오해일 것이다. 특별히 그들은  문화상대주의와, 자 민족 중심주의에 빠졌던 것이 큰 문제였다. 선교사들의 문화 즉 서양문화를 고등한 문화로 선교지 문화를 저등한 문화로 애써 분류함으로 생긴 여러 가지 문화종속관계가 있었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문화는 상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선교지 문화는 모두 열등한 문화로 저질의 문화라고 단정하거나 모든 비기독교문화는 미개문화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왜 그런가? 그 이유로 첫째는


        문화자체는 변화한다는 것이다. 문화는 마치 생명력이 있어 움직이는 물체처럼 변화되고 변형된다. 안팎으로부터의 압력으로 또 문화구성원과 세상의 변화,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 문화의 특성이므로 문화는 변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모든 문화의 뿌리에는 문화의 구성자 하나님이 계시다. 모든 문화의 근원에는 알 수 없는 거대한 신비감이 숨쉬고 있다. 그러나 문화의 주체는 인간이므로 그 인간의 근원을 살펴보면 결국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어떤 문화도 100% 마귀적이요 사단적이요 귀신적인 것이라고 단정할 수가 없다. 비록 하나님은 겉에 드러나지 않으시지만 문화를 통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을 그 문화 속에 심어 놓으신다. 문화의 일부에서는 좋은 기능적인 대체를 통해 얼마든지 복음을 잘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수용자 문화를 기독교적 가치와 행동분석으로 유도하게 하는 시도를 해야한다. 즉 기독교적 삶은 그들의 관습과 실체를 지배하고 그것들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버린다.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문화 속에서 일하고 계시므로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변화를 위한 사역을 해야 함을 인식해야한다. 본인은 태국남부에서 9년간 일하면서 태국인의 관습과 실제의 삶 속에 고쳐야할 부분이 많음을 인식하였다. 태국인들의 가장 좋아하는 말이 “사두악 사바이”이다. 그만큼 편안한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들은 편안한 것, 안일한 것, 갈등이 없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필수적으로 게으름이 따라다니게 돼있다. 물론 기후적으로 아열대성 온난기온으로  일년 내내 우리 나라 복더위와 같은 찜통더위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 이것은 당연한 문화의 습관처럼 내려왔다.


        그래서 본인이 사역하는 대학생 기숙사인 Mission Home 과 중,고등학교 기숙사인 Vision Home에서 청결을 목표로 계속적으로 강요하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들의 문화 속에 내가 동화되어 그냥 포기하면서 나도 마음 편하게 살기로 했다.


        그러나 얼마 전에 기숙사가 하도 정리가 안되고 지저분하여 본인과 평신도 단기선교사가 땀을 흘리며 오전 내내 깨끗한 기숙사로 만들고 이들의 반응을 살폈다. 처음에는 뭐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나 했다. 그러나  말없이 계속되는 정리정돈과 청소하는 모습 속에 이들이 하나 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본인들이 더 솔선수범 하여 열심히 청소를 하며 항상 깨끗한 기숙사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주님처럼 “친히 모범을 보일 때“ 저들도 이 모습을 따라 순종하는 것을 보았다.


        그후에 우리는 이들 문화를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기로 했다. 작은 것부터 고치기로 했다. 그래서 기숙사 1층은 항상 이들이 하교 후에 낮잠 자는 장소였으나 이 공간을 문화 공간으로 꾸며 보았다. 그래서 이곳에 기독교 서점을 만들었고 항상 기독교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꾸몄으며 학생들이 부담 없이 와서 즐기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고 예배와 찬양이 저절로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외부적인 변화가 선결 되야 이들의 본성에 숨겨져 있는 게으름, 지저분함, 어수선함이 고쳐질 수 있다는 신념은 적중되었다.


        이외에도 이들을 위해 매주 계속되는 언어훈련 (영어, 한국어) 음악훈련 (피아노, 기타) 취미, 특기훈련 (태권도, 미술) 그리고 문화훈련 ( 좋은 영화 감상, 독서클럽)을 통하여 문화전반에 걸쳐 이들의 세계관이 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선교사는 그 문화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부터 변화를 위한 사역을 감당하여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교사가 먼저 낮은 자세로 저들을 섬기며 모범을 보이며 저들의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조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첫째 변화의 요소들이 그들 스스로의 관점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시키도록 노력해야한다.

        둘째 , 선교사들은 문화의 주변에 깔려 있는 수많은 변화에 관해서 보다는 작지만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소수의 비판적인 변화를 격려해 나가야 한다.

        셋째 , 선교사들은 지도자의 생각을 파악하고 그들과 함께 변화를 위한 사역을 해야한다. 절대적으로 성령께 의지하며 인내와 겸손으로 일관해야 한다.      

        넷째 , 선교사들은 변화과정을 이끌어 줄 사람들의 집단을 중요하게 인식해야한다.

        다섯째, 선교사들은 지속적인 문화 변혁을 낳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여섯째, 문화 변화를 주기 위한 선교사 자신이 변화의 주역이 되야 하며 항상 군림하기보다는 섬기는 자세로 낮아지고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한다.

        일곱째로 문화 변화는 인간의 전적영역이면서 성령님의 감동에 의해 서서히 이루어지므로

        부단히 참고 인내해야한다.


        2. 팀 선교


        우리 총회는 전 세계85국에 1057명의 선교사를 보냈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사명감이 강한만큼 개성이 강하고 일에 대한 욕심이 남다르다. 거기에다가 파송한 교회가 서로 다르다보니 각 파송 교회가 요구하는 선교목표나 요구상황도 서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선교지 상황이 다르다. 자신이 처해있는 현지 교회나 노회 총회의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이 모든 것이 선교사의 하나됨을 막는 것이다.

        거기에다 눈에 안 보이는 악한 사탄의 방해 공작이 선교사들의 하나됨을 막는다.

        우리 총회는 일제 때 중국선교를 시작한 뒤 1956년부터 태국 선교를 시작하였다.

        최찬영. 김순일 선교사의 시작은 아주 좋았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한국선교를 세계선교사에 등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에 1970년대에 두 선교사의 미국 유학 후 태국 선교는 잠시 공백기를 거쳤다. 그후 70년 후반기부터 80년 후반까지 소수의 개척 선교사들이 태국에 합류함으로 태국선교는 그 화려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후90년 초반부터는 선교붐을 타고 시작된 태국선교는 오늘날 29가정 55명의 대 식구가 되었다.(2001년 8월 현재)

        그러나 태국 선교는 이러한 화려한 이면과는 다르게 태국선교를 보는 시선이 곱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태국선교가 너무 4분5열하고 선교사간의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즉 태국에 너무 많은 선교부가 난립하므로 하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태국선교사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다. 그러나 필자는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서 총회의 간섭이나 총회선교부의 강압에 의한 (억지에 의한 )하나가 되기보다는 각 선교부의 독특성을 인정하는 팀 사역에 더 초점을 맞추고싶다. 왜냐하면 선교는 자발적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30여 가정을 하나로 묶는 것은 사역의 효율성보다는 이에 대한 문제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지교회를 무시한 하나됨은 곧 한국교회의 욕심이 반영되기 때문에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태국교회는 CCT/EFT로 이루어짐)

        한국선교사들이 가장 못하는 선교가 팀 사역이라는 비난은 한국선교사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혹자는 한국인의 기질상 어렵다고 자포자기 하는가하면 일부는 태국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자포자기한다. 그러나  우리주님과 사도 바울도 팀 사역을 한번도 양보 하거나포기 하지 안으셨다.. 그만큼 팀 사역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9년간 한 선교부에서 울고 웃으며 팀 선교를 해왔다. 그 동안 선교부 식구들이 남처럼 헤어지는 슬픔도 맛보았고. 새로 우리와 한 팀이 되어 뼈아픈 희생을 각오하면서 한국 선교역사에 길이 남을 팀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몸부림쳤다. 결코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도전해 볼만한 선교전략의 핵심이 팀선교의 장점이다.


        팀 선교의 구체적인 장점으로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 선교지 에서 팀원간의 확실한 중보기도로 서로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팀 정신의 일치로 선교전략을 수립하기에 유리하다.

        셋째는, 선후배간의 갈등보다는 선교의 노하우를 배우고 전수할 수 있다.

        넷째는,  자녀교육, 위기상황,  개인문제 등에서 팀으로 대처함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다섯째, 서로 경쟁적이기보다 팀을 생각하므로 선교의 지나친 중복 투자와 시간낭비를 막을 수 있다.

        여섯째, 현지교회나 현지인 들에게도 한국선교사들의 단결됨 모습을 보임으로 안정적으로 선교의 인푸라를 구축할 수 있다.

        일곱째,,현대선교의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서로 공유하므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다 .


        3. 전략선교


        사도 바울의 선교를 연구하다보면 바울은 철저한 성령의 인도를 받았고(행16:9) 동시에 철저한 선교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바울의 선교전략은 오늘날 우리 선교사들에게도 귀감이 되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만하다...

        그는 특별히 도시중심선교, 회당중심선교, 가정중심선교, 제자양육선교,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오늘날 선교전략의 흐름은 미전도 종족선교, 전문인선교, 팀 선교 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의 흐름도 선교의 전략부재로 선교를 망칠 수 있다. 세계 전쟁사 에서 보더라도 전략 없는 전쟁에서 승리한 전쟁은 한번도 없었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주먹구구식선교는 이제 한국선교사에서 사라져야한다. 우리는 또 은혜(?)를 강조하면서 무조건 기도하고 밀어 부치는 식의 선교에 얼마나 길들여진 백성인가! 서구 선교가 그나마 21세기까지 세계 선교사에 강력하게 어필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계획적이며 조직적이고 전략적인 선교를 꾸준하고 차분하게 진행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본인도 첫째 텀 에는 “무 전략이 전략” 이라는 기치아래 좌충우돌 식의 선교를 감당했었다. 왜냐하면 태국 남부에서 그 동안 뿌리내린 선교사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다 1년여의 짧은 남부선교의 미천한 경험 밖에 없었고 그나마 선교현장 (태국남부)에 남아서 계속적으로 선교하는 선배 선교사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선교전략은 남의 경험으로만 세울 수 없다는 각오아래 선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감으로 다음과 같은 태국 남부 선교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태국 남부 선교는 팀으로 사역해야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둘째, 태국 남부의 선교는 독특한 태국남부 문화를 이해해야 성공할 수 있다.

        셋째, 태국 남부의 선교는 현지 사역자와 긴밀한 유대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

        넷째. 태국 남부의 선교는 무슬림을 공략해야한다.

        다섯째, 태국 남부 선교는 어린이 청소년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여섯째, 태국 남부 선교는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 이교도의 1차 문화 충격을 흡수해야한다.

        일곱째, 태국 남부 선교는 교육, 문화선교를 통한 우회 선교가 효과적이다.

        여덟째, 태국 남부 선교는 대중집회보다 소수의 지도자 제자훈련에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결  언

         

        태국처럼 다양성과 통일성이 잘 섞여진 나라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인종과 언어 문화의 다양성은 불교와 왕정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자연스럽게 용해되어 오늘의 태국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타이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는 비 현실주의, 종교상대주의 윤회주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태국의 선교 역사 특히 한국 선교사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유리의 사명이라 하겠다.  특별히 복음의 불모지인 남부 태국을 연구하고 선교 역사와 선교사들을 조사하는 것은 하나의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하기도 한다.


        태국에 복음이 들어온 지 180년. 한국 선교사들이 사역 한지 40여 년, 그 중에서 10여 년 동안 3-4가정이 사역했고 또 사역하고 있는 남부 태국은 인간 편에서는 완전히 닫혀진 땅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도전과 가능성을 실은 가나안같이 열려진 땅이다.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 제1장에서는 태국 남부 지역연구와, 남부 태국에서의 한국 선교사의 선교 사역을 살펴보았다. 제2장에서는 남부 태국 전통 민속의식과 기능적 대체를 통한 선교전략을 살펴보았으며, 제3장에서는 남태 선교의 전망과 효과적인 선교 전략을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한국 선교사들의 남태 사역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한국 선교사들이 남부에서 사역하다 선교부나 개인의 사정에 의해 사후 대책도 없이 떠났으므로 남부 태국 교회의 한국 선교사의 이미지는 별로 신통치가 못하다.


        물론 남부 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선교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과격한 이슬람교도의 표적이 될 수도 있고 자녀 교육의 어려움. 방콕과 너무 먼 관계로 인한 정보 단절과 교제의 단절, 또한 강한 영적 싸움에서의 수적 열세 및 현지인 동역자의 부재, 그 외 기후 및 음식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전혀 다른 민속의식과 전통들은 현지인 뿐만 아니라 선교사에게는 꼭 넘어야할 큰 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서 능히 이 대적을 쳐 이겨야 할 것이다(엡 6:12-13).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이 소논문이 남태 선교의 기초를 두어 앞으로 더 많은 선교사들이 남태 선교에 헌신하고 VISION을 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출처 : http://www.missionthailand.net/thaimission/thaimission1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