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 축복의 땅. 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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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스티븐 김의 ‘두려움이 없는 여정’-39 예배의 동역자들
2020. 11. 7.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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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예배의 동역자들
북경 연청 감옥의 영어권 예배의 동역자들. 싱가포르 국적의 스티븐 쟈오 형제 (좌에서 두 번째: 12년 형을 받고 수감 중이었는데 매월 홍콩에 거주하는 아내가 면회를 오며 예배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와 콩고 국적의 오덱스 형제 (3번째), 4번째 형제는 필리핀 국적의 로리 형제인데 나보다 먼저 출옥하였다. 이들이 영어권 예배의 찬양팀으로 내가 출옥할 때 예배의 리더로 세움을 받았다. 모두들 억울한 사연을 안고 수감생활을 하던 동료 수감자들이었다. (사진: 옥중에 있을 때 발간한 잡지에서 발췌)
“주일 예배는 몇 시에 드리나요?”
“예배요? 여기 예배 없어요!”
“왜요? 나는 이제껏 감옥에 갇혀있는 지난 2년 동안 한 번도 예배를 빼먹은 적이 없는데요?”
“여기서는 안 됩니다.”
최명진 목사와의 첫 대화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사물함을 혼자 세 칸이나 쓰고 있었다. 그곳에는 먹을 것, 입을 것 등이 꽉 채워져 있었다. 선교 헌금이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돈이 들어온다는 말은 이곳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는 일도 하지 않았고, 예배도 드리지 않았다. 물론 감옥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는 법과 규정을 지키는 것뿐이다.하는 수없이 나는 홀로 예배를 드리며 다른 동역자를 찾아 나섰다. 수소문으로 알게 된 한국인 크리스천은 딱 두 명. 석준섭(가명) 형제와 강원규(가명) 장로였다. 강 장로는 경남 영주 사람인데 사형선고 유예를 받고 이곳에 들어와 무기로 감형 받은 후 줄 곳 이곳에서 5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석 형제는 15년 형을 받았다. 사실 감옥에서 서로를 소개할 때는 특별한 게 없다. 이름 석 자를 말하고, 서로 몇 년 형을 받았고 얼마나 있어야 하는지만 소개하는 것이 인사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정보로는 강 장로는 북한 사람의 부탁으로 보따리를 하나 옮겨주는 과정에서 그 안에 담긴 마약이 발견되어 사형 언도를 받았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사형이 유예되었다고 했다. 나중에 무기로 감형되어 수감 중인데 그는 억울하다며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사는 그런 분이었다. 석 형제는 여의도에 있는 S 대형교회에 다니던 집사라고 하는데 중국 청도에서 사업할 때 형뻘 되는 사업 동료로부터 배신을 당해 빌려준 집기를 돌려받고자 그의 사무실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가 절도죄로 붙들려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라는 정도였다.
우리 셋은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석 형제나 강장로가 어떤 상황이던, 집사이던 장로이던 상관없었다. 감옥 생활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사도신경’을 믿는 사람과는 어느 누구와도 함께 예배를 드려도 된다는 점이었다. 사도신경은 ‘사도’라는 단어 때문에 사도들이 직접 만들어 가르쳤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은 것은 주 후 6세기 후쯤이다. 그리고 가감 과정을 거쳐 12세기에 가톨릭교회에 의하여 공식적으로 인준이 되고 오늘날까지 전해진다고 한다.
북경 연청 감옥에서 함께 한국어 예배를 드리며 출옥 후에도 필자를 '사부'라고 부르며 동역하고 있는 석준섭 형제 (좌측 두 번째). 선교사로 파송 받고 북한 고아들의 아버지로 헌신하고 있다. 출옥하자마자 318 파트너즈의 간사로 섬길 때 하남 그 옆이 하남 은혜교회를 방문해서 담임 목사님과 여러 집사님들과 함께 찍은 사진. 석제범 형제는 중국어에 능통해 옥중에서도 출옥할 때까지 중국인 복음 전도에 열심을 내며 섬겼다.
그렇다면 사도신경과 같은 신앙고백이 왜 필요했을까? 이단을 막기 위해서, 혹은 교육용이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 세기를 거치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전통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종파와 교단이 다르지만, 신앙의 유산과 전통을 같은 뿌리로 삼고 있다는 점은 이런 감옥에선 큰 힘이 된다. 감옥 밖에서는 적지 않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서로 자기네 교단이 최고라면서 싸울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비싼 식사와 음료를 곁들이면서 높은 차원의 학술적 성과를 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과 같이 혼자 있으면 무릇 자신을 지키기 어려운 감옥에선 공통의 신앙고백 ‘사도신경’만 있으면 쉬이 하나가 되고, 의지가 되는 것이다.
북경 감옥은 예배드리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 같았다. 도서관에는 샘플 진열대와 같이 잘 꾸며져 있었고 책장에도 구색을 갖추려는 듯 몇 권의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첫 예배 장소는 도서관으로 정했다. 책 읽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한켠에는 과자를 먹거나 이야기하는 수감자들이 더러 있었다. 우리는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석으로 자리를 잡고 서로 마주 보며 앉아 예배를 드렸다. 강 장로는 예배를 드려본 지 5년이나 되었다며 설레는 눈치다.
북경 연성 감옥의 예배 동역자 스티븐 쟈오와 그의 아내 제스민. 2011년 9월 홍콩에서 첫 집회를 가질 때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기도와 사도신경, 찬송 그리고 말씀 나눔. 마지막 기도와 찬양.
이렇게 평범한 순서로, 평범하게 진행된 예배에 그들은 평범치 않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다. 특별히 석 형제는 마지막에 부른 찬양을 처음 들어 본다며 가사를 적어달라고 한다. 가사를 종이에 적어주고 있는데 그가 “오랜만에 예배드리니까 너무나도 좋습니다. 우리 매일 만나 예배드리면 안 될까요?” 한다. 강 장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우리 매일 만나 예배드립시다” 한다. 갑자기 찬양을 적는 손에 힘이 실렸다.
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 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나의 눈 열어 주를 보게 하시고 주의 사랑을 알게 하소서
매일 나의 삶에 주의 뜻 이루도록 새롭게 되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종이를 건네며 매주 찬양 한 곡씩을 꼭 가르쳐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최 목사에게로 갔다.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예수님께서도 함께 계신다고 하였다. 이 예배에 목사님의 설교가 들어간다면 더욱 은혜가 넘칠 것 같았다.
제주 열방대학 CDTS 2010년 봄 학기 예수 제자 훈련 중 생일을 맞아 조원들로부터 축하와 축복기도를 받고 있는 필자의 모습
“목사님! 목사님! 드디어 북경에도 예배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아 그래요?”
“네! 석준섭 형제와 강원규 장로가 함께했어요. 지금 예배를 마치고 오는 길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바라는 일을 이루셨네요.”
“내일은 목사님께서 설교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이제 북경에도 목사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예상과는 달리 시큰둥한 반응에 나는 좀 의아해 하였다. 그는 개인용 달력을 이리저리 살피며 나갈 날을 세는 것 같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내가 있는 것도 까먹었는지 시선은 달력에만 고정이 되어 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목사님, 내일이나 아니면 다음 주일 예배에 설교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가 나를 한번 쓰윽 쳐다보더니 귀찮다는 듯 말했다.
“나, 목사 아닙니다.”
달력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목사가 자신이 목사라는 것을 부인하면서까지 설교를 거부하다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로 안수 받았을 그가, 말씀을 거부했다. 충격이었다. 그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했다. 이곳 감옥에서 하나님의 사자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재목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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