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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원전 검증, ‘국뽕’과 ‘국익’의 차이 [아침햇발]
- 수정 2024-09-30 07:02
- 등록 2024-09-30 05:00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체코 원전 수주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날 선 공방이 이어진다. 더불어민주당은 저가 덤핑 계약 의혹을 제기하며 국정감사에서 원전 수주의 경제성을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벼른다. 용산은 “엉터리 가짜 뉴스”라고 반박한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이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리고 있다. …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발끈했다. 보수언론도 일제히 “국가적 자해행위”라고 야당 비판에 나섰다.
하지만 의심하는 쪽이나, 부인하는 쪽 모두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명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야당이 적자 수출 의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출 재검토까지 주장하는 것은 성급해 보인다. 자칫 무책임한 정치공세로 비칠 수 있다.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사업 수익률, 투자 금액 등 핵심 내용 관련 의문 중에서 어느 하나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한수원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4호기의 공사비가 20조원(2기에 10조원꼴)인데, 체코 원전 2기 공사비는 24조원으로 2배가 넘으니 덤핑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11년 후쿠시마 재앙 이후 환경이 급변한 것은 상식이다. 국제적으로 안전규제와 노동기준이 대폭 강화돼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수많은 해외 원전사업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해 좌초됐다.
정부와 한수원이 불필요한 정치공방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한수원은 원전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갈등으로 발목이 잡힌 상태이다. 정부와 한수원은 그동안 “아무런 문제 없다”고 호언장담했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정부 스스로 불신을 부른 셈이다. 민주당도 자유롭지 못하다. 바라카 수주 당시 “잭팟” 축포가 터졌지만, 이후 적자 논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사를 시작한 지 벌써 15년이 흘렀는데, 지금까지 속 시원히 진위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왜 경제성 검증을 방치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진작에 검증을 마쳤다면, 체코 원전을 둘러싼 논쟁도 최소화하지 않았을까?
체코 원전의 의문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지난 7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직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한수원 사장이 브리핑에서 금융지원 여부에 대해 “체코 정부가 1호기는 정부 지원으로 조달하고, 2호기도 똑같은 방식으로 하겠다고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최근 한수원이 지난 4월 체코에 금융대출 지원 의향서를 보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비록 구속력 없는 의향서라지만, 체코가 이후라도 생각을 바꿔 지원을 요청하면 현실적으로 한국이 거부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재권 분쟁과 같은 중요한 이슈를 왜 미리 대비하지 못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체코 총리는 자국 기업이 참여하는 현지화율을 60%로 요구했다. 이는 일반적 수준인 50%보다 높다. 현지화율이 높을수록 한국의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산업부는 국내 기업이 체코 현지에 진출하는 것도 현지화율에 포함된다면서, 두산의 체코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가 생산하는 터빈을 사용하기로 한 것을 강조했다.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국내 생산과의 차이를 간과해선 안 된다. 두산스코다 생산의 경우 현지 노동자 급여, 세금 납부 등이 모두 체코 몫으로 떨어진다. 국내 기업의 생산기지가 외국으로 이전했을 때의 악영향을 생각하면 된다.
보수언론은 수주액 24조원이 모두 한국이 얻을 경제적 가치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지식재산권 대가, 금융지원 가능성, 높은 현지화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한국의 실질적인 이익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이런 의문에 답할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한수원에 있다. 또 국회는 이를 검증할 책임이 있다. 국회가 안 한다면 오히려 직무유기이다. 한수원의 모회사인 한국전력공사는 공기업이지만, 민간 지분도 42%나 되는 엄연한 상장회사이다. 한수원이 체코에서 적자를 본다면 한전, 정부는 물론 민간투자자 피해로 직결된다. 더욱이 한전은 부채와 누적 적자가 각각 200조원과 40조원을 넘는다. 체코 사업에서 절대 손해를 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보수언론은 한 칼럼에서 검증 요구에 대해 “야 의원들의 마음속에 국적이나 국익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하다”고 흥분했지만, 어불성설이다. ‘국뽕’이 국익을 보장할 수는 없다. 야당의 자료 제출 요구에 대해 정부와 한수원은 협상 중에 영업비밀을 공개할 수 없다고 난색이다. 국회는 필요한 경우 국가안보 사안도 정부와 협의하고 검증한다. 원전 수출이 국가안보보다 더 극비인가? 국영기업의 수출사업을 국회의원이 검증하지 못한다면, 국회는 왜 존재하나?
최종계약이 이뤄지는 내년 3월까지는 아직 반년이 남았다. 그동안 치열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와 보수언론은 수주를 기정사실화하며, 이미 대박을 터뜨린 것처럼 김칫국부터 마신다. 윤 대통령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10만명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보수언론은 체코 사업으로 청신호가 켜졌다고 한다. 대통령이 원전 성과를 내세우고 싶은 심정은 이해되지만, 체코 방문을 너무 서둘러 오히려 국익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마지막 경쟁자였던 프랑스 국영전력회사(EDF)가 제시한 공사비는 우리의 2배로 알려져 있다. 체코로서는 우리가 유일한 대안인 셈이다. 우리가 느긋한 태도를 보일수록 체코가 몸이 달아 조바심을 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한국이 먼저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최종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위험성이 커졌다. 체코가 60% 현지화율을 요구한 게 단적인 예다. 영리한 장사꾼은 패를 마지막까지 숨기는 법이다. 체코 대통령과 총리가 “무사히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하수의 모습이다. 그런 말은 책임이 따르지 않는 립서비스다.
체코 원전을 둘러싼 정치공방은 결국 에너지 문제의 과도한 정치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 이어, 윤석열 정부의 ‘원전 올인’으로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은 지난 7년간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에너지 문제는 진영 논리와 이념에서 벗어나서, 미래와 후손들을 생각해서 합리적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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