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님 서신 발 앞에
영적 권위 본문
엊 그제, 시골 모교회 장로님이 소천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바로 캐리어를 끌고 아들래미의 애마, 모닝을 빌려 네 다섯 시간 거리인 주문진까지 10시간 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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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 후 이 곳 마산으로 내려 온 나로서는 장로님 보다는 학생회 때 부터 부대껴 온 삶에서 느끼는 털보 집사님이 더욱 정겹게 느끼는 분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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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에 일본 정치, 군인 놈들이 내선 일체, 반도 번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대륙 준비를 하기위해 진출로로 , 한반도의 수탈 자원을 부산을 통해 동남아 전쟁터로 보내기 위해 부산에서 원산까지 산업 철로 (약탈 철로)를 만들었었습니다 .
6. 25 전쟁으로 많은 곳이 훼손되고 , 경제 개발 전에 강릉부터 휴전선까지는 철길이 제거 되고 작은 제방 뚝같은 뚝 길만 남아 았었습니다.
그 철 길 터 위에 피난민 촌이 형성되고 "수용소" 라 불리우던 곳에서 월남한 분들이 함께 사시던 어릴 시절에 월남하신 털보 집사님이였습니다 .
70년대를 들어서며 고딩으로 믿음를 배우던 시절에 담당 교사 집사님으로 인연을 맺으며, 신앙의 기초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신 분이였습니다 .
청년 때에는 지도자의 길을 준비하는 청소년들에게 말씀으로, 교리로, 교회 헌법으로, 사회 윤리로, 삶으로, 칼 국수 섞인 라면으로 당근과 회초리 역활을 하셨던 분이였습니다 .
시골 교회 주문진 교회가 비교적 종교 리더들이 많은 이유에 한 몫을 하신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늘 기도로 섬겼던 분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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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파송 받을 때에도 늦은 나이에 이렇게 순종할 거였으면, 일찍부터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 시절 순종했으면 더 좋았을 껄 . . .
하시며 안타까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분이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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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을 정치 방패로 삼던 예전 공화국 시절에 그 곳 피난촌 수양소에는 나라가 뒤숭숭하면, 간첩 사건이 나면, 늘 중무장한 경찰이, 사복 경찰이 출입로 마다 지키며 통제 받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
철 없는 우리 들은 그 들의 눈총을 받으며, 집사님 집에 찾아가 라면 달라, 찐 고구마 달라하며, 맡기지도 않은 식사와 군것질 거리를 요구했고, 부인 정 집사님이 준비하시는 동안 같이 놀아주던 큰 애가 예닐곱 먹은 집사님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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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 예배에 참석하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혼자서 가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1시간 전에 장례식장에 들어 갔습니다 .
옛 친구를 만나 옛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들이 한 두명씩 늘어 납니다.
입관식을 한다고 유가족을 불러 모으고 유가족들이 준비를 합니다 .
이 때 정 권사님이 한 마디 합니다.
유가족과 더불어 그 시절 함께했던 분 중에 세명을 함께 하겠다고 . . .
장례 지도사도, 자녀들도 망설이더닌 수긍하여, 저도 저의 식구가 아닌 타인의 입관은 처음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
입관을 마치고 바로 분향단이 있는 곳에서 교회 담임 목사님이 주관하는 입관 예배를 드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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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권면에 순종하는 믿음의 자녀들 모습과
힘들었던 시절에 기도하는 삶과 섬기는 삶을 가르치며, 함께 철야하며, 시골 성도를 섬기며, 동행했었던 제자였었던 영적 리더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권사님으로 인하여 눈물이 맺히고 내 영혼은 행복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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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후 40년만에 만나는 얼굴들,
이름만 알고 기도로 도우시던 선교 동역자 어른들이 찾아 오셔서, 기도만 해 왔지 얼굴을 몰라 수요 예배 때엔 인사도 못 했다고 반겨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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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차량이 필요할 식구들과 오른 쪽 무릎이 신호가 오기 시작하여, 권사님을 한참을 안아 드리며 또 뵙기를 기도하며 기다릴께요, 건강 챙기세요, 하고 처음부터 알아본 자녀들에게도 인사를 나눈 후 귀가 길을 택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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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맡기고 짊어졌던 침구를 떠나 5년 만에 떠난 이틀의 시간이 내 영혼의 축복의 시간이였습니다 .
머리로만 굴리며 주님을 바라며, 기대없이 기도하던 믿음이,
생전 처음 써보는 네비게이션도 황당하여 정신 줄 놓고 눈쌓인 옆 산을 바라보며 빗 속에 운전하던 상행 길 고속도로에서,
달라진 도로 상황과 뒷 차량의 독촉 라이트, 번쩍이는 감시 카메라 불 빛, 경각심용 싸이렌 소리, 스치는 빵 빵 소음, 4차선을 가득 메운 고속도로에서 화물 차량의 고속 운전이 넘치는 밤에 먹통이 된 네비게이션만 원망하며,
정신 줄을 놓고 " 주님 사랑합니다 " " 주 ~ 님 ~ " 만을 속삭이듯 읊조리면
여러차례 u 턴과 다른 길을 나가기도하여, 영덕부터 헤메며 달려온 노을 진 밤이 되어버린 도로를 타고 내려온 하행길 운전 3시간을 넘게 보낸 후 집에 도착했습니다, 밤 9 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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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위반과 속도 위반에 얼마나 걸렸을까 ? 하는 조바심도 있지만
내 삶의 갈 길이 아직 남음에 감사하며
내 영혼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확신하게 되어 감사한 저녁이였습니다 .
( 자며 온 밤을 몸살로 고생했다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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