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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님 서신 발 앞에

펌)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제가 배웁니다” 본문

성서한국/외치는 ㅈr의 소리 [선교 선교사]

펌)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제가 배웁니다”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26. 4. 10. 12:52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제가 배웁니다”… 나를 일으켜 세운 한마디 – 이수정 선교사

 
‘함께 사는 선교’로 제자 세우는 이수정 선교사 (L국)
 
 
 
 
 
 
 
 

이수정 선교사 (L국)

327호 | 사람풍경

선교사들은 전 세계 선교 현장에서 의료나 비즈니스, 교육 분야, 교회 개척 선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선교의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함께 사는 선교’를 했다는 이수정 선교사. 그녀에게는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는 L국 국적의 두 딸이 있다. 취재진을 보자마자 포옹으로 인사를 나눈 이 선교사를 보며, 그녀가 했던 ‘함께 사는 선교’가 무엇이었을지 토닥여주는 그 손길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몽골에서 12년간 선교 사역을 하다, 현재는 L국에서 사역 중인 이수정 선교사입니다. A종족 교회인 샬롬교회, 소수 종족인 몽족 안디옥교회를 섬기고 있고, 마라나타 공동체를 섬기며 마하나임교회를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 몽골과 L국까지 어떻게 두 나라를 섬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어떻게 주님을 만나서 선교에 헌신하게 되셨는지 과정을 나눠주세요.

“제 성장 과정부터 나누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그림을 좋아했어요. 포스터 대회에 참가하면 1등을 해서 붓이나 물감, 크레파스 같은 것들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죠.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미술부는 꿈도 못꾸고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야간반을 다니면서 낮에는 상업 선생님 집에서 집안 청소 등을 했어요. 선생님은 제 학비와 생활비를 책임져주셨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나 선생님 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셨어요. 제가 졸업할 때까지 목욕이나 대소변 처리 등, 그 할머니 돌보는 일을 함께 했어요. 그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10년 동안 계속했어요. 당시 선생님은 굉장히 미남이셔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는데, 집에 들어오시면 웃음이 없었어요. 당시 사모님은 결혼할 때는 꼭 집안을 봐야 한다고 저에게 진담반 농담반으로 몇 번이나 당부하셨죠. 그 시간을 지나면서 저는 독신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이는 어렸지만 할머니를 모시면서 세상의 쓴맛 단맛을 다 보았다고나 할까요? 졸업 후 직장을 가지려고 했지만 잘 안됐어요. 집에 갈 염치가 없어서 방황하고 있던 때, 첫 직장이었던 주산학원 옆에 있던 미술학원이 생각났어요. 무작정 찾아가서 ‘제가 전화도 받고 청소도 할테니 그림을 공짜로 가르쳐 줄 수 있겠냐?’고 제안했어요. 선생님은 한참 동안 생각을 하시더니 그러자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그림을 배우게 됐어요.”

화가를 꿈꾸던 소녀

– 대단한 용기였네요. 그림은 좀 배우셨나요?

“당시 그 선생님은 서양화가셨어요. 그러나 저는 한국화를 선택했어요. 유화는 돈이 정말 많이 들 것 같았거든요. 한국화는 먹을 하나 사면 졸업할 때까지 쓸 수 있었죠. 저는 그림을 그려서 성공하고 싶었어요.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림을 그려서 잘 살아보고 싶었어요. 대학 입학을 위한 실기시험을 다 마치고 기도했어요. ‘주님, 저 대학에 가고 싶어요. 제가 대학에 합격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드리겠습니다.’ 감사하게도 합격했고, 한국화과 86학번으로 다니게 됐어요. 학교 생활을 즐겁고 행복하게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4년 내내 교회에는 가지 못하고 졸업을 앞두게 됐어요. 마음에 굉장히 부담이 되더군요.”

– 어떻게 교회에 나가게 되셨나요?

“1990년 1월 1일, 큰언니가 ‘새벽 예배 같이 갈까?’라고 묻더군요. 그날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린 이후부터 새벽 예배, 철야 기도, 금식 기도에 빠짐없이 나갔어요. 토요일에는 언니가 하는 교회 청소까지 따라갔죠. 그렇게 주님을 믿게 되고 그해 4월 18일 부활절에 침례를 받았어요. 그러다 1992년에 바로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고, 1994년에 신학교, 1997년에는 졸업 후 바로 몽골로 떠나게 됐어요.”

– 주님을 믿자마자 신학교와 선교지까지 가셨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던 거죠?

“어느 날 중국에서 오신 한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게 됐어요. 그때 선교사로 콜링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갑자기 제 가슴이 두근두근 콩닥거리고, 뜨거운 밥을 넘겼을 때처럼 너무 속이 뜨거워졌어요. 그때 주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마음이 계속 들면서 이사야 6장 8절 말씀이 생각났어요. 하나님이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물으실 때,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면서 헌신한 그 말씀이요. 그때 선교사님이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하는 분은 일어나 주세요”라고 하길래 제가 벌떡 일어났어요. 그때 처음으로 주님 앞에 한 주간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저는 그림을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거든요. 그림을 그릴 때는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도 않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기도 끝에 주님이 주신 말씀을 붙들고 1994년에 신학교를 가게 됐고, 1997년에 졸업하고 3월 21일에 몽골로 떠나게 됐죠.”

▲ 마당의 풀을 뽑고 있는 마라나타 공동체 아이들. 이수정 선교사 제공

“제가 여기 있나이다” 선교사로 헌신

– 몽골에서는 어떤 사역을 하셨어요?

“침례교 해외 선교 파송을 받고 교회 개척과 제자 양육을 했어요. 그때 한국경제가 IMF외환위기를 맞을 때여서 파송 교회에서도 후원이 없었어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주님이 굶지 않고 살게 해 주셨어요. 선임 선교사님도 탁구선수 자매들과 살면서 양육을 했어요.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먹고 사셨기 때문에 다른 특별한 사역보다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선임 선교사님과 함께 사역하고 있을 때, 게를레 자매를 만나게 됐어요. 자매는 교회에 새 신자로 등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러다 당시 공동체의 허락을 얻어, 게를레 자매와 별도의 공동체로 살게 됐어요. 그래서 아파트 하나를 얻고, 교회에 안 나오던 게를레 자매 여동생과 현지 학교 한국어학과 교생 실습생 4명 등 총 12명으로 가정교회가 시작됐어요. 게를레 자매와 공동체로 살면서 처음에는 각자 큐티를 했어요. 그런데 혼자 하다 보니까 어떤 때는 좀 늦게 일어나기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같이 하기로 했죠. 게를레 자매가 어느 날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 말씀보다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더 많이 배웁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건 성령님의 음성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때는 게으름 피우고 싶고, 몸도 피곤하고, 좀 더 자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벌떡 일어났어요. 내 뒷모습에서 배운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이 자매는 나를 영적으로 깨우는 사람이다. 이 자매로 인해서 내가 세워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 뒷모습에서 배운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깊이 남네요. 공동체의 삶은 어떠셨어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주셨어요. 이 한 영혼이라도 주님의 제자로, 주님의 강한 군사로,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세워질 수만 있다면 남은 생애를 오직 이 한 사람을 위해서 다 쏟아부어도 부족함이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잘만 키우면 이 땅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설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드니까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부었어요. 제가 신대원 졸업 논문을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한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을 주제로 썼어요. 그때 성경적 초대교회로 가정교회를 연구했어요. 그래서 가정교회로 샬롬교회를 시작했어요.”

– 그렇게 가정교회를 하게 되셨군요.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는 제가 4년 사역을 하고 안식년으로 나올 때는 현지 지도자에게 맡기고, 다시 사역을 개척해 또 다시 현지 지도자에게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지 지도자를 세우고 훈련해서 그 지도자를 파송해 자기 언어로 교회를 세우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12년째 됐을 때, 목회자와 결혼한 게를레 사모 가정에게 교회를 이양하고 몽골을 떠나왔어요. 지금은 L국에 있지만 몽골 교회를 위해 항상 기도해요. 몽골 샬롬교회에서도 이곳에 단기선교를 3번 다녀갔어요. 어떻게 보면 몽골 사역을 기도로 계속 이어가고 있는 셈이죠.”

– 그렇게 몽골 사역이 마무리 되신 거군요. L국에 오시게 된 사연이 있을 것 같네요.

“처음에는 캄보디아를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캄보디아에는 선교사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도시화가 됐고 잘 사는 나라는 제외하고 좀 어려운 지역으로 가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한 선교 콘퍼런스에서 L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을 만났고, 그분들과 함께 L국을 방문하게 됐어요. 한 주간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이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기도하는 가운데 강력하게 부르시는 주님의 마음을 받아 2010년 6월 21일에 L국으로 오게 됐어요. 저는 이곳에서도 한 영혼에 대한 마음을 받으며 함께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몽골의 게를레 사모가 “이수정 선생님이 계실 때 우리가 정말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선생님이 떠나고 나니까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인 것을 알았다”고 말해줬어요. 이 말을 듣는데 너무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계속 있었으면 저를 계속 의지했을텐데 제가 떠남을 계기로 그들이 더 굳게 세워졌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서도 몽골에서 받은 마음 그대로 사역하기로 했어요.”

▲ 몽골 샬롬교회 감사예배에서 아이들의 모습. 이수정 선교사 제공

몽골 사역을 마무리하고

– 사람을 세운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군요.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와서 양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L국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많아요. 그래서 부모 동의 아래 아이들을 위탁 양육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선교사님들과 기도하는 시간에 현지 아이가 연결되도록 기도 부탁을 했어요. 몇 개월 후에 한 아이를 소개받았는데, 그 아이가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이레’에요. 이레는 우리 샬롬교회 사역자 사라 선생님의 큰딸이에요. 오빠가 셋 있고 그다음에 이레, 닛시, 다니엘이 있어요. 지금은 이레, 닛시는 한국에, 다니엘은 우리 마라나타 공동체에서 같이 살고 있죠.”

– 아이들을 위탁하는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처음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물론 저는 이 아이들이 복음의 증인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의 군사로, 예수님의 거룩한 신부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초청했죠. 아이들 부모님은 그저 ‘우리 아이 잘 키워주십시오’ 그런 마음으로 보내시는 거죠. 이레나 닛시도 엄마처럼 농사일 하면서 살기보다 공부하고 싶다면서 왔어요. 저희 공동체와서 아이들은 아침에 6시에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등교를 해요. 하교한 이후 저녁 7시에는 가정 예배드려요. 이 아이들은 에베소서를 50번 읽었고, 로마서도 30번 이상 읽었어요. 50번이 목표에요. 아이들이 성경 말씀을 계속 읽으니까 성경도 잘 읽게 되고, 또 나눔을 계속하니까 발표력도 생겼어요. 이레가 13살에 저한테 와서 지금 28살이니, 15년을 함께 살았네요. 닛시는 25살이에요.”

<이상 327호에 게재>

– 짧은 시간 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정말 한 영혼을 양육시키셨네요.

“한번은 이레가 한국어로 엄마를 뭐라고 하냐고 묻더니 다음 날 학교 갔다 오면서 ‘엄마!’라고 부르더군요. 근데 제 마음이 갑자기 콩닥거리면서 ‘내가 엄마라고! 엄마 맞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몽골에서 게를레 사모가 저를 ‘선교사님’이라고 부르는 것만 듣다가 엄마라는 말을 들으니까 엄마의 마음이 제 안에서 생겨나는 것을 느꼈어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됐어요. 저는 결혼한 적도 없고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지만 이레가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그래, 엄마라면 어떻게 할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저에게 부어 주십시오’ 기도하게 됐어요. 지금은 이레와 닛시는 진짜 친딸처럼 어색함이 하나도 없어요. 이레와 닛시는 사랑을 저에게서 배웠다고 말해요. 물론 친엄마인 사라 엄마도 자녀가 여섯이나 되다 보니까 자기들에게 섬세한 사랑을 줄 수가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죠. 이레가 엄마한테 전화할 때마다 ‘엄마,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라고 말해야 한다고 당부했어요. 물론 지금 같이 사는 아이들에게도요. 생일 때는 ‘엄마, 저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엄마를 만날 때는 꽉 안아주면서 ‘엄마, 보고 싶었어요. 사랑해요’라고 말하라고 했죠. 처음에는 사라 엄마가 가만히 있었는데 나중에는 ‘나도 사랑해. 보고 싶었어’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주변 선교사님들이 이레와 닛시를 보면서 말이나 행동하는 게 저와 똑같다고 그래요. 그럴 땐 너무 감사하면서도 좀 쑥쓰럽기도 하죠.”

▲ L국 브루족 성도들과 함께. 이수정 선교사 제공

마음으로 낳은 자녀를 주님의 제자로 양육하며

– 아이들이 자라면서 어려움도 있었겠죠?

“이레가 중학교 때 너무 힘들게 학교를 다녔어요. 예수 믿는다고 친구들이 짝꿍을 안 해줬어요. 힘든 시간들이 있었지만 잘 참고 견뎠어요. 이레가 고등학교 올라가고 동생인 닛시도 중학교를 가게 되면서 국제학교로 옮겨 함께 다니게 됐어요. 아이들이 입학할 때는 둘 다 영어 알파벳도 몰랐는데 초등 과정, 중등 과정, 고등 과정까지 마치고 졸업까지 했어요. 이레는 이 과정을 4년 안에 해야 하니까 입시생처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공부하며 졸업을 했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영어, 태국어, L국어, 한국어를 해요.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워서 돌아가면서 예배 인도도 하게 됐죠.”

–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이 매우 행복해 보이십니다. 선교 사역을 하다 보면 위기의 순간이 오기도 할 것 같은데요, 혹시 그런 경우가 있으셨나요?

“건강이 위태로웠어요. 몽골에 들어가면서부터 어지러움과 두통이 심했어요. 2005년도쯤부터는 위통이 계속 왔어요. 공복 시간에 위통이 오는데 다른 치료는 할 수 없고 문을 닫고 주님께 저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목놓아 울부짖었어요. 위통이 한 번 오면 마른 나뭇가지가 타는 것처럼 쓰라리면서 그 통증이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소리 내서 주님을 불러서 기도하면서 울고 나면 약간 힘이 빠지고 잠이 들면서 통증이 좀 가라앉죠. 그렇게 꼭 하루에 두어 번씩 위통이 왔어요. 게를레 사모가 그때마다 저를 돌봐줬어요. 그러다 게를레 사모의 권유로 병원에 갔더니 위염이라고 하더군요. 위염이라면 염증이 마르도록 기도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위 염증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마를지어다!” 기도했는데, 그 순간부터 위통이 한 번도 없었어요.”

–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이군요.

“다음 해 8월에 단기선교팀들이 왔어요. 미용팀과 의료팀이 왔는데 초음파 하시는 선생님이 저에게 초음파를 해주시겠다고 했어요. 선생님이 결과를 보시더니 난소에 혹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한국에 가서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하더군요. 한국에 와서 여러 검사를 받다가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초기여서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2007년 11월에 수술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2008년도에 몸을 추스르고 몽골에 들어갔지만 몸이 안 좋아서 사역을 할 수가 없었어요. 몽골 사역을 마무리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그때부터 갖게 됐어요. 다음세대를 세워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2009년에 교회를 게를레 사모 가정에 위임하고 철수했습니다.”

▲ 샬롬교회 성도들과 함께 모시떡을 만들려고 준비하는 모습. 이수정 선교사 제공

– 한 영혼을 위해 달려오셨던 시간 가운데 이런 위기를 지나셨던 거군요. 앞으로 계획과 기도 제목 나눠주세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는 사역이 계속 이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가족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안전하게 거주하며 사역할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사역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가족 공동체로 잘 세워지고, 아이들 모두 성경적 신약 교회를 꿈꾸는 다음세대로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그리고 몽골과 L국의 샬롬교회, 안디옥교회, 마하나임교회, 그리고 또 샬롬교회가 세운 가정교회들이 여럿 있어요. 각 교회들이 구원의 방주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기도해주세요. 우리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사는 자들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어서 복음의 증인들이 되도록 기도해주세요. 또 이 공동체에서 함께 하는 선생님들과 중보적 선교적 존재로 연합해서 살 수 있도록, 건강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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