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주님 서신 발 앞에
펌) 임호식 선한진료소 원장... 울진에서 라오스로, '소외된 곳'으로 향한 길 본문
성서한국/외치는 ㅈr의 소리 [선교 선교사]
펌) 임호식 선한진료소 원장... 울진에서 라오스로, '소외된 곳'으로 향한 길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26. 4. 10. 12:44
▲라오스 비엔티안 선한진료소 앞에서 포즈를 취한 임호식 원장과 아내 서은영 씨.두 사람은 함께 의료와 청소년 공동체 활동을 이어가며, 소외된 이웃과 아이들의 희망을 키워가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관련사진보기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중심 빠뚜사이에서 자동차로 40분. 라오스국립대학교 동독캠퍼스 인근에 선한진료소가 있다. 토요일 오후 5시가 넘었지만 임호식 원장(60)은 여전히 환자를 보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에도 환자가 오면 곧바로 진료부터 챙겼다. 진료소는 곧 그의 집이기도 했다. 그래서 응급 환자가 찾아오면 늦은 밤에도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의사로서 그의 길은 달랐다.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소외된 사람을 돕겠다는 마음을 품었고, 이는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곧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는 경북 울진에서도 가장 소외된 면 소재지를 택해 병원을 열고 15년 동안 동네 주치의로 지냈다.
내과 전문의였지만 팔이 부러지거나 허리가 아파 찾아오는 환자를 전공이 아니라고 돌려보낼 수 없었다. 동료 의사에게 배우고 직접 익히며 사실상 '만능 1차 의사'가 됐다. 이 경험은 훗날 라오스 진료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그를 지난 8월 30일에 만났다.
환자들의 인식을 바꾸다
AD
"의사가 되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됩니다. 굶어 죽지는 않잖아요. 그렇다면 그 힘을 꼭 필요한 곳에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남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신앙과 가치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라오스와의 인연은 2006년 의료 봉사가 계기였다. 봉사 지역은 수도 비엔티안에서 비포장 도로로 8시간, 다시 산골로 2~3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볼리캄싸이주였다. 그곳에는 평생 의사를 본 적 없는 마을도 있었다. 그는 이후 10여 년 동안 그 길을 오가며 진료를 이어갔다.

▲라오스 비엔티안 선한진료소에서 환자의 엑스레이 촬영을 준비하는 임호식 원장. 출처 : A. ⓒ ACN아시아콘텐츠뉴스관련사진보기
라오스의 가장 큰 문제는 시설이나 의사 부족이 아니었다. 문제는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 문화였다. 사람들은 병을 전생의 업보나 운명으로 여기며 "가도 소용없다"고 체념했다.
- 왜 인식 변화를 강조했나요?
"병원을 크게 지어도 환자가 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중요한 건 사람들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저는 환자를 찾아가 설득했고, 때로는 전화를 걸어 약을 꼭 받으라고 독려했습니다."
임 원장은 '찾아가는 병원'을 만들었다. 엑스레이, 초음파, 심전도 장비를 실은 이동 검진 버스로 보리캄싸이주 마을 90%를 돌았다. 주민들은 의사가 왔으니 한 번쯤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갔다. 이 과정에서 당뇨·고혈압·폐결핵 환자를 대거 찾아냈다.
그러나 많은 환자들은 자신이 어떤 약을 먹는지도 몰랐다. 한 달 뒤 보건소에 가라고 했지만 실제로 가는 이는 드물었다. 그는 다시 마을을 찾아가 약을 나눠주고, 전화를 걸어 확인하며 "병원에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반복했다.
10년이 지나자 보건소 하루 환자는 3~5명에서 30명으로 늘었다. 보리캄싸이 주립병원은 '환자가 가장 많은 병원'으로 꼽혔다. 환자가 늘자 약이 갖춰지고, 의사들도 스스로 공부하며 태도가 달라졌다. 이렇게 작은 변화가 선순환을 만들었다.
자립을 위한 교육, 그리고 미래
의료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또 다른 삶의 길을 발견했다. 시골 마을에서 마약과 술에 빠져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만난 것이다. 부모들의 요청으로 한두 명씩 돌보던 일이 공동체로 발전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활동은 멈췄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열심히 돈을 벌며 "이제는 후원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없는 동안 아이들이 다시 방황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2023년 다시 라오스로 향했다.
임 원장은 비엔티안에 선한진료소와 함께 청소년 공동체 공간 '드림라오센터'를 세웠다. 희망을 잃었던 아이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60~8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 청소년 공동체 운영 원칙은 무엇입니까?
"처음 들어올 때는 2개월 합숙 캠프를 운영합니다.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간에 한국어, 영어, 음악, 생활 훈련을 배우지요."

▲라오스 비엔티안 선한진료소가 운영하는 청소년 공동체 '드림라오센터' 아이들과 함께한 단체사가운데에는 임호식 원장과 아내 서은영 씨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 ACN아시아콘텐츠뉴스관련사진보기
임 원장은 아이들이 "경찰, 군인, 교사"만 꿈꾸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시골에서 접하는 직업이 이들이 전부기 때문이다. 의료인을 본 적이 없으니 의사나 간호사를 꿈꾸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 아이들을 병원으로 불러 환자를 돕게 하고, 진료 과정을 지켜보게 했다. 그렇게 '의료인의 길'을 보여줬다. 실제로 공동체 출신 중에는 의대·간호학과·물리치료사로 진학한 아이들이 나오고 있다.
- 아이들의 변화가 보이나요?
"물론이죠. 아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고 책임지는 법을 배웁니다. 누군가는 병원에서 봉사를 하고, 또 다른 아이는 동생들의 공부를 도와주지요. 그렇게 작은 경험이 쌓이며 꿈이 생기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해 다시 공동체에 기여하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 선한진료소는 하루 15~20명을 진료한다. 환자 중 60~70%는 한국인 교민과 근로자다. 진료 수익은 대부분 공동체 아이들 교육비로 쓰인다. 부족 분은 후원과 절약으로 메운다.
이 모든 길에는 아내 서은영씨가 함께했다. 그는 간호조무사 자격을 따 남편을 도왔고, 아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려왔다. 시골 병원에서 라오스로 향하는 결정을 내릴 때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서 씨는 웃으며 말했다.
"주위에서는 큰 결심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게는 너무 쉬운, 너무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임호식 원장은 말했다.
"좋은 병원, 좋은 의사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라오스에서는 순서가 달랐습니다. 먼저 사람을 바꾸는 게 중요했습니다."
그의 20년 가까운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한진료소 간판 뒤에는 여전히 '행동을 바꿔야 한다'는 철학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 곁엔 라오스 아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ACN아시아콘텐츠뉴스에도 실립니다.
'성서한국 > 외치는 ㅈr의 소리 [선교 선교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펌) 마른 땅에 단비를| 선교사의 사랑 배우기 _ 강유진 선교사 (0) | 2026.04.11 |
|---|---|
| 펌)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제가 배웁니다” (0) | 2026.04.10 |
| 펌) 아시아협력기구 임호식 동문 - ‘의료 봉사’ 한계 체감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삶’ 선택하다 (0) | 2026.04.10 |
| 쌩싸이 교육관 건축 이야기 [ 조현상 선교사 ] (0) | 2026.04.10 |
| 펌) 박정욱 선교사, Ajjan Julie 소식방 (0) | 2026.04.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