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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죽으러 왔던 그 이름, ‘선교사’”
อารีเอล 아리엘 ariel
2014. 1. 20. 10:30
“죽으러 왔던 그 이름, ‘선교사’” |
양화진역사강좌, 6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 양화진문화원에서 진행 |
2014. 1. 10. |
“만일 내게 일천 생명이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을 모두 조선에 주겠노라” (선교사 켄드릭)
“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선교사 헐버트)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된 기독교. 한국의 기독교도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으러 온 선교사들을 통해 시작됐다. 그래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역을 ‘한국의 막벨라 동굴’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종의 신임을 받던 선교사 헤론의 죽음으로 양화진이 생겨났고, 그제야 선교사들은 조선 땅에 나그네요, 거류민이 아닌 ‘조선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다. ‘죽으러 온 사람들: 그 굴곡의 역사’를 주제로 열리는 2014년 양화진역사강좌 첫 시간인 지난 9일 늦은 저녁, 양화진문화원에는 이 땅에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간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 이야기’를 주제로 강의한 이덕주 교수(감신대)는 “선교사들은 모두 신학교를 마치자마자 조선 땅에 오게 됐다. 그들은 이 낯선 땅에 와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다. 조선이 그들에게는 믿음의 훈련장이 되었던 것”이라며 “선교사들은 이곳 양화진을 막벨바 동굴로 인식했다. 이전까지 선교사들은 나그네요 거류민이었지만 양화진을 소유함으로 조선 땅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이 땅에 사람들이 되길 원했다”고 말했다. 선교사 게일의 증언에 따르면, 1890년 헤론은 극심한 이질에 걸려 고종이 내준 휴양처였던 남한산성에서 요양을 간다.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한 그는 서울로 돌아갔지만, 얼마 되지 않아 16마일 떨어진 곳에 한 여인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출발해 그 여인을 진료했다. 그 여인은 살아났다. 하지만, 헤론은 이때 다시 병이 악화되어 결국, 34세에 나이로 숨을 거둔다. 조선에 온지 6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까지도 서울에는 변변한 외국인 묘지조차 없었다. 당시 선교사 공동체는 조선 정부에 그의 시신을 묻을 매장지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늑장을 부리던 정부를 도저히 기다릴 수 없어 헤론이 살던 집 뒤편에 무덤을 쓰기로 하고 땅을 파기로 했지만, 조선의 풍습 상 사대문에는 시신을 매장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 벙커 선교사가 매장지를 물색하게 됐다. 그렇게 한강변에서 멀지 않은 서울 서대문 바깥 4마일 정도 떨어진 작은 언덕, 양화진에 선교사 헤론을 묻을 수 있었다. ![]() 이덕주 교수는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와 그 가족들에 대해 조사하면서 선교 당시 풍토병과 전염병으로 희생된 선교사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선교지였던 조선에서 갓 태어난 아이들의 희생도 매우 많았다.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아이들은 제때 치료와 간호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선교사 자녀들이 “고향에 있었으면 얼마든지 살아날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부모가 선교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태어나자마자 혹은 채 2~3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죽어나갔다”면서 “빈튼이라는 선교사는 조선에서 세 아이를 낳자마자 잃어야 했고, 아내마저 아이를 낳다가 죽었지만, 그는 정년을 맞을 때까지 조선을 떠나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헌신된 사역자의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화진에는 선교사 가족들의 무덤들도 많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현장에서 죽은 선교사들은 물론이고, 정년 은퇴하고 귀국했던 선교사들 가운데서도 죽기 전에 다시 오거나, 본국에서 죽으면서 양화진에 묻어 달라 유언함으로 죽어서까지 ‘한국사랑’을 표현한 이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헐버트, 스크랜턴 대부인 등이 정년 은퇴나 건강상의 이유로 조선을 떠났다가 죽기 직전 돌아와 양화진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또한 “한국에서 태어난 개척 선교사 자녀들이 대를 이어서 한국에 선교사로 와서 사역하다가 죽어서 부모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에 묻힘으로 2대, 혹은 3대 선교사 가족들의 ‘가족묘지’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양화진역사강좌는 9일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양화진문화원에서 6주 동안 진행된다. 16일에는 조선혜 박사(감신대)가 ‘개신교 선교사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강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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